토론

[이태원 참사]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1)

20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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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자란 동네 용산에서 굴러다니는 중입니다.
참사 발생 이후 기획한 집담회 행사의 포스터

집담회 기획 (22.12.22.) - 말 걸기, 물꼬 트기

"얘들아 이태원 뭐냐..." 그날 저녁, 친구에게 메시지를 받은 나는 무심코 'ㅋ'을 연타하며 답장을 보냈다. 늘상 일이 바빴던 친구이기에, 오래간만에 여유를 즐기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이 친구가 놀러가서 아주 신이 났구나.' 하지만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그 행간이 다르게 읽혀 혹시나 하는 마음에 SNS에 접속하니 충격적인 장면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도무지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지 싶어 오밤중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내 생각을 멈추고자 쫓기듯 잠을 청했고, 다시 깰 때쯤에는 사상자 숫자가 급격히 불어나 있었다. 한동안 얼이 빠진 채로 방 안 곳곳을 서성였다.Q1)

이튿날 아침, 친구들은 서로의 안부부터 확인했다. 괜찮냐고 물었고, 또한 괜찮다고 답했다. 물론 그래서 정말 괜찮았던 건 아니다. 이미 참사를 둘러싼 반응들에 기진한 상태였다. 한 지인은 현장 사진을 공유하며 "내가 이래서 핼러윈을 싫어하는 거야"라는 코멘트를 달았다. 또 다른 지인은 전화로 "너는 저런 데 안 다녀서 다행이다" 걱정스레 덧붙였다. 아직 귀가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지 않냐고, 그런 항변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내뱉지 못했다. 다들 혼란한 와중이라 그러겠거니 이해를 우선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주변 피해가 없다며 쉽게 한시름 놓던 자신이 부끄러운 탓도 있었다.Q2)

참사 직후 내가 겪었던 것들이란 그렇다. 슬픔과 분노보다 무력감과 소외감이 훨씬 깊었다. 먼저, '왜'라는 의문을 가질수록 무력감에 휩싸였다. 우리 사회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망가졌는지 가늠하기 어려워 그 해결도 요원해 보였다. 그런가 하면, 속절없이 흐르는 일상에 소외감이 들었다. 모두 이 정도 비극쯤은 금세 잊고 지내는 건지 지나치게 조용한 풍경이 이상스러울 때가 많았다. 정치권과 시민 사회는 기민하게 대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감정은 여전했다. 정권의 책임을 묻는 것 이상의 고민과 국가가 가로막은 애도를 나누기엔, 어쩐지 전부 아쉽게 다가왔다.Q3)

그해 겨울, 수시로 이태원역을 찾았다. 하루는 피켓을 들고 "프리허그"를 외치는 외국인 모녀를 보았는데, 내가 그런 캠페인에 더 이상 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몹시 당황했다. 동시에 방문객들에게 일일이 국화꽃을 쥐여 주는 상인의 모습을 숭고하게 바라보았다. 그만큼 복잡한 심정이 뒤따랐고, 어쩌면 꼭 복잡하게 참사를 해석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초등학교 동창을 잃은 친구와의 동행이었다. 골목 주위를 걷다 정류장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몇 대의 버스를 떠나보냈다. 아무래도 소화하지 못한 말뿐이라 두서는 없었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Q4)

흔히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그런 연결이 어떻게 가능한지 몰라 곧잘 헤맨다. 그 무렵, 나는 갈피를 잡고 싶어 일정이 되는 대로 관련 행사에 참석했다. 대개는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각자의 경험과 기억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반복되는 여성들의 죽음을 연상했다는 목소리도 있었고,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염려된다는 목소리도 있었고, 해외에서 소식을 접하고 추모 공간을 꾸렸다는 목소리도 있었고, 유가족과 생존자의 회복을 돕고 싶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혼자 하던 속앓이를 털어놓으며 치유될 수 있음을,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을 수 있음을 실감했던 것 같다.Q5)

집담회를 직접 기획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각자의 경험과 기억을 나누는 데서 출발하고 싶었다. 다만, 전문가의 조언도 유념했다. 허심탄회한 모임은 위험할 수 있다고. 저마다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이 따로 있기 마련이기에, 그런 바람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상처가 덧난다고. 때문에 얼마간 주제를 좁힐 필요가 있어 참석자들과 공유할 몇 가지 질문을 미리 정했다. 또한 그에 대해 내가 먼저 대답해 보았다. 그러니까, 나의 이야기로 말을 걸고 물꼬를 트고 싶었는데, 사실 이 글이 그 당시 그렇게 쓰인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데 여전히 유효하지 않나 싶어 조금 고쳐 남겨 본다.Q6)

질문들

Q1) 어디서 어떻게 참사 소식을 접했나요?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었나요?
Q2)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위로 혹은 상처가 되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Q3)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 대해 어떻게 느꼈나요? 무엇이 고민되었나요?
Q4) 어떻게 추모하고 애도했나요? 그 방식을 어떻게 이어 가면 좋을까요?
Q5) 어떤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을까요? 어떤 이야기까지 들어 보았나요?
Q6) 지금 당장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혹은 어떤 실천을 해 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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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들을 묶어서 많은 시민들이 함께 답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네요.

이선후 비회원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조금이라도 이야기하고 나누는 것~
공감합니다!

적어주신 질문들에 대해 많은 분들이 함께 대답해 보면 좋겠습니다.

현장의 이야기를 이렇게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참사가 처음 났을 때 다른 곳에 있었고, 1주기 때에야 비로소 분향소를 지킬 수 잇었는데요. 상민님이 답변하신 질문들을 보고 대답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보이네요. 더듬더듬 짚어갔을 상황과 질문들 공유해주셔서 감새횽.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덕분에 한번 더 기억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