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편 빠르게 읽기
- TV조선, 지역주택조합 성공 사례 방송했지만 허위…협찬 방송 의혹도
- 사실과 다른 ‘확보율 95%’ 내세우며 조합원 가입 권유
- “1억 원 저렴해 가입” 인터뷰한 조합원 알고 보니 시행대행사 직원 의혹
- “방송에 나왔는데 거짓일 리 없다” 믿었는데 159명 100억대 피해 발생
지난 2022년 12월 1일 대법원은 서울 돈암동 ‘이안 성북’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장과 시행대행사 공동대표 등 4명에게 사기와 업무상 횡령 등으로 징역 7년까지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별다른 자금이 없어서 토지 확보를 거의 하지 못하였고, 체계적인 계획도 없었으며, 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라고 판시했다.
‘이안 성북’ 지역주택조합 사건은 뉴스어디가 지난 달 보도한 서울 옥수동 지역주택조합 사기 사건에 앞서 발생한 또 다른 ‘지주택’ 사기 사건이다. 두 사건은 많은 피해자를 낳은 지주택 사기라는 것 외에도 사기꾼들이 돈으로 언론의 ‘기사형 광고’ 등을 사서 피해자를 유혹하는 수단으로 동원했다는 점에서도 닮은 꼴이다.
당초 ‘이안 성북’ 지역주택조합 측은 2016년 계약 후 2019년 380세대가 입주할 예정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삽도 뜨지 못했다. 수사와 재판에서 확인된 피해자는 159명, 피해액은 무려 100억 원가량이다. 일부 피해자는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겼지만, 상당수는 “기억을 꺼내고 싶지 않다”라며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조합 관계자들은 사기행각 끝에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 못지 않게 이 사건의 한 축을 이뤘지만 이익만 본 주체가 있다. 바로 언론사다.
‘이안 성북’ 지주택 사기 사건이 본격 시작할 무렵, 조선일보 계열 종합편성채널인 TV조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자. 2016년 3월 24일, TV조선 <광화문의 아침> 진행자와 기자는 ‘이안 성북’을 이렇게 소개했다.
MC 이창섭
오늘 첫 순서는요, 생생 경제입니다. 최근 지역주택조합 아파트가 늘고 있지만 사업이 무산될 수 있어서 지지부진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MC 이하정
그런데요, 이곳만큼은 유난히 인기가 높습니다. 어느 지역일까요? 김기성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중략)
김기성 기자
성북구 쪽에 아리랑 고개라고 아시죠. 돈암동 동선동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입니다. 제가 지난 주말에 찾아가 봤는데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대부분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같은 경우에 조합원 모집을 시작하고, 3~4개월 지나야지 본 궤도에 오를까말까 하는 정도가 보통이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여기 같은 경우에는 홍보관을 열고 3주가 채 되지 않았는데 조합원의 90%가 모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게 보는 게 옳을 거 같습니다. 왜 이렇게 인기가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저렇게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면, 결국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를 고를 때 어떤 데를 가야되겠다,라는 팁이 나오기 때문에 제가 오늘 들고나와서 말씀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TV조선 ‘광화문의 아침’, 2016.3.24. 방송
TV조선이 “유난히 인기있고, 성공했다”라고 언급한 돈암⋅동선동 지주택 아파트의 이름이 ‘이안 성북’이다. 지주택 아파트는 무주택자들이 조합을 만들어 건설하는 방식이다. 일반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토지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토지 매입이 순탄치 않아 무산되는 경우도 많다. 성공률이 10-20%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사업이 실패할 경우, 그간 들어간 사업비 등은 조합원이 떠안아야 한다. 분양가가 싸다고 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높다. 그런데도 TV조선은 ‘이안 성북’ 지주택의 사기 행각이 본격화될 무렵 언론의 공신력을 통해 ‘이안 성북’에 일종의 ‘보증’을 서 준 것이다. 이날 TV조선 <광화문의 아침>은 11분 동안 ‘이안 성북’ 사업을 홍보했다.
‘이안 성북’ 광고에 열을 올린 것은 TV조선만이 아니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신문, 한국경제신문 등도 기사형 광고, 전면 광고 등으로 ‘이안 성북’을 홍보했다. 기사형 광고는 중앙, 동아, 경향, 국민, 서울, 한국,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등 9개 매체가 1건씩 보도했다. 온라인 기사를 포함하면 총 50건으로 아시아뉴스통신 5건, MBN⋅팍스넷⋅업코리아⋅매일경제가 각 3건 등 순이었다. 전면 광고는 중앙 7건, 동아 6건, 조선과⋅한국경제가 각 5건, 매일경제 4건 순으로 모두 27차례 게재됐다.
뉴스어디가 확보한 이안 성북 광고비 집행내역에 따르면, 2016년 3월과 4월 두 달 동안 ‘이안 성북’의 1・2차 신문광고, 3차 인터넷광고(애드버토리얼)에 사용된 비용은 총 9억 4천 만원에 달한다. 전체 광고비 16억 원의 60% 가량이다.
“사업부지 95% 확보했다” 허위 내용 방송⋯조합원 유혹
TV조선 <광화문의 아침>이 ‘이안 성북’ 지주택 사기 행각에 어떻게 활용됐는지 좀 더 살펴보자. 방송에서 기자는 “리스크가 있는 게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라면서도 “돈암동 같은 경우는 어떻게 (성공)했는지 얘기를 들어”보자며, 조합추진위원회 김홍배 위원장 인터뷰를 내보냈다. 김 위원장은 “사업부지 95%를 확보”했고, “사업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7,200평을 제가 처음에 계획을 해서 시작을 했고요. 지금 사업 부지는 95% 다 확보를 하였습니다. 사업 진행하는 데는 이상이 없습니다.
김홍배 돈암동선 조합 추진 위원장(TV조선 ‘광화문의 아침’, 2016.3.24. 방송)
TV조선이 내보낸 인터뷰 내용과는 달리 김홍배 조합추진위원장은 택지의 95%를 확보한 것처럼 속이고 조합원을 모집한 사기 혐의가 확정돼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을 최종 선고받았다. 시행대행사 대표 이현재, 황문철도 사기, 업무상 횡령, 업무상 배임 등으로 각 징역 7년과 4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현재 씨는 2014년에도 사기죄 등으로 복역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서울 사당동에 지역건설주택 사업 지분을 주겠다며 김 모 씨로부터 2억 5천만 원을 편취한 혐의도 함께 재판받았고, 역시 유죄가 확정됐다.
이날 방송에서 김기성 기자는 ‘사업 부지 95% 확보’를 강조했다. “상당히 의미있는 숫자”라며 “95%만 확보하면 나머지 5%는 강제 매수 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돈암동 같은 경우에는 95%를 확보를 했다고 그러는데 95%가 상당히 의미 있는 숫자입니다. 뭔가 하면 지역주택조합 같은 경우에 땅의 95%를 확보하면 나머지 5%는 땅 주인들이 안 판다 그래도 강제 매수를 할 수 있도록 이렇게 법에 규정이 돼 있습니다.
김기성 기자 (TV조선 ‘광화문의 아침’, 2016.3.24. 방송)
이 지주택 사기 사건과 관련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 소송 대리를 맡았던 권준상 변호사(법무법인 신사)는 TV조선이 방송한 김홍배 추진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사업 부지 확보율이) 95%라고 하는 건, 이 조합이 다른 지역주택조합하고는 다르게 성공률이 100%다, 이렇게 이야기한 거나 마찬가지”라며 “그것(사업 부지 95% 확보 발언) 때문에 처벌받았다고 보시면 된다”라고 말했다. TV조선 <광화문의 아침>이 방송한 김흥배 조합추진위원장의 인터뷰 내용이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결정적 증거라는 말이다. 지난 2017년 시작된 손해배상 소송은 6년만인 지난달 24일 피해자들인 원고의 일부 승소로 끝났다.
피해 조합원들은 또 TV조선 <광화문의 아침> 방송을 근거로 조합추진위원장 등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조합원 수십 명이 ‘광화문의 아침’ 방송을 증거자료로, 조합추진위원장이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조합에 가입하도록 했다”라고 밝혔다. 해당 방송이 조합원 가입 여부에 영향을 미쳤음을 추론할 수 있다.
뉴스어디는 당시 <광화문의 아침>에 출연해 돈암동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사업부지 95%를 확보했다고 방송한 김기성 기자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했는지 물었다. 그는 ‘오래된 기억’이라면서도 현장에서 확인한 바로는 “계약서도 일부 있었고, 매도의향각서가 있었다. 그 사람들이 주는 서류를 보고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기자는 해당 서류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그가 홍보관에서 확인했다는 서류는 단순히 해당 토지가 매물로 나와 있다는 내용인 ‘매물확인 매도 동의서’와 법적 구속력을 담보할 수 없는 ‘구두동의 확인서’ 등이었다. ‘사업부지 95% 확보’라는 주장의 근거가 전혀 될 수 없는 자료들이다.
그러나 TV조선 <광화문의 아침>은 ‘사업부지 95% 확보’를 내세우며 해당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마치 확실하게 성공할 것처럼 선전하고 조합원 가입을 권유했다. 돈암동 지역주택조합은 2016년 3월 TV조선 방송이 나가고 20여 일 뒤 조합원 모집을 끝냈다. 돈암동 ‘이안 성북’ 사기 사건 담당 재판부는 “피고인의 조합원 모집은 이례적인 인기를 끌며 2016. 4. 중순경 조합원 380명 모집을 완료하였다”고 했다.
TV조선, 시행대행사 직원을 조합원으로 조작 인터뷰한 의혹도
“25평형을 봤을 때 1억원 정도 저렴한 가격이어서 저희는 조합원에 가입하게 되었거든요. 입지도 좋고 주변 시세를 볼 때 가장 저렴하고 다른 데 전세값보다 오히려 집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〇〇/ 성북구 장위동(TV조선 ‘광화문의 아침’, 2016.3.24. 방송)
<광화문의 아침>은 돈암동 ‘이안 성북’ 아파트 사업 홍보 방송에서 분양가가 1억 원 정도 저렴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는 노 모 씨 인터뷰도 내보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조합원이라던 노 씨가 시행대행사 직원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뉴스어디는 <광화문의 아침> 출연 기자 김 씨에게 노 씨가 진짜 조합원인지 확인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쪽(시행대행사 측)에서 섭외를 해줬던 거 같다”라면서도 “조합원이라는 걸 확인했던 거 같다. 명부가 있었던 거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뉴스어디가 2016년 3월 30일까지 돈암동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한 계약자, 실입금자 명단을 확인했으나 노 씨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피해자 소송 대리를 맡았던 권준상 변호사는 “제가 계좌 다 털어가지고 사기꾼 회사 노순주택개발(시행대행사)이라는 쪽에서 경리를 봤던 사람인 것까지 다 법원에 제출하고 그랬었다”라며, “그걸(직원이라는 사실을) 방송사에서 몰랐을까요?”라고 말했다.
사기 업체 띄운 배경에 협찬 방송 의혹
TV조선이 특정 지역주택조합을 홍보하면서 사업부지 95% 확보라는 허위 사실을 내세우고, 조합원 가입을 권유한 배경은 뭘까. 뉴스어디는 당시 <광화문의 아침>에서 ‘이안 성북’ 지주택 아파트를 소개한 김기성 기자에게 해당 방송이 이른바 ‘협찬 방송’이 아니었는지 물었다. 김 기자는 “누군가가 그런 데가 있고, 위치가 참 좋다고 어디 이야기를 들어서 취재한 것 같다”, “업계에서 이야기를 들어 취재를 한 것 같다”라고 답했다. 또 당시에 협찬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이 방송이 나간 2016년은 TV조선이 협찬 매출로 큰 이익을 보던 해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7년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에 따르면, 2016년 TV조선의 협찬 매출은 광고 매출을 앞질렀다. 주요 방송사 중 유일했다. 당시 방송법에는 협찬 방송 규제 조항이 마련되지 않아 방송사와 광고주 간 음성적으로 거래가 이뤄지거나, 신문과 방송 겸영 과정에서 신문광고와 종편광고를 패키지로 판매한다는 의혹도 제기되던 때다.
뉴스어디는 ‘대우 이안성북 아파트 2차 매체광고 및 제작내역(2016.3.)’에서 패키지 판매 의혹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자료를 발견했다. TV조선 <광화문의 아침>이 ‘이안 성북’을 소개한 날은 2016년 3월 24일. 이날을 전후한 2016년 3월 11(금)~3월 28일(월) 사이 ‘이안 성북’ 지역주택조합 측이 집행한 광고비 내역을 보면, TV조선의 모기업 격인 조선일보가 받은 이안 성북 광고 단가는 다른 신문보다 많게는 5.5배, 적게는 1.5배 정도 높았다. 조선일보의 ‘이안 성북’ 내지 광고 회당 단가는 33,300,000원으로 동아일보의 22,200,000원보다 천만 원 이상 많았다. TV조선 <광화문의 아침> 방송과 이른바 ‘패키지 판매’로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사형 광고 등에 실린 허위 내용으로 피해가 끝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언론사들은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고 여전히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일반 광고보다는 기사형 광고나 협찬 방송과 관련한 규제가 훨씬 느슨하기 때문에 사기 행각 등에 악용되는 경우도 많다. 관련 제도 정비와 규정을 어긴 언론사에 대한 실질적 처벌 조항이 도입돼야 하는 이유다.
1편 읽기_ “2억원 웃돈 기대, 탁 트인 한강 조망” 기사⋯ 사기 아파트 광고였다
2편 읽기_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기사형 광고’, 사기성 사업에 악용
취재⋅사진⋅영상편집 박채린(rin@newswhere.org)
* 이 기사는 뉴스어디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코멘트
3저희 집 근처여서 흥미롭게 읽었네요. 사실 언론사가 사기꾼의 행동을 모두 다 확인하고 막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아니오'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언론사가 수사기관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이런 문제들이 발생했다면 원인을 찾고, 윤리적인 언론사 운영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요소가 있겠죠.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느냐도 중요할 것 같고요.(이번 기사에 지적된 매체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반대로 언론사 자체적인 정화작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규제로 막을 수 있는지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에선 언론을 자기 편에 세우려는 사람들이 규제를 만드는 게 늘 문제만요...
'지주택은 원수에게 권한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지요. 어쩌다가 성공한 곳도 있지만 드물고 열에아홉은 조합원들이 큰 돈을 날리고 조합을 만든 자들과 그들과 연관된 회사들이 그 돈을 다 털어먹고 끝나는.. 그걸 광고 아닌 척 광고하여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언론사를 언론사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론사가 수익성을 위해 광고상품을 판매할 때 생기는 끔찍한 문제네요. 광고를 광고로 구분하지 않고 보도하듯 하면 이렇게 사기로 연결될 수 있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기자가 ‘사업부지 95% 확보’ 근거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책임도 크지만 무엇보다 이런식으로 방송을 만들고 돈을 버는 시스템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 같네요. 실망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