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주옥같은 열대야를 보내고

202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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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입니다

2024년의 여름, 열대야

2024년의 여름밤은 너무나도 더웠다. 더위로 잠 못 들고, 더위로 일어난 나날들이었다. 자려고 누운 방안에 온통 더운 공기가 가득했다. 환기 시키려 창문을 열었지만, 소용없었다. 선풍기를 강풍으로 틀어도 그저 더운 바람을 밀어낼 뿐. 에어컨처럼 온몸에 냉기를 휘감아 주지 못했다. 

잠 설치는 날이 많아지자 피로가 몰려왔다. 입술에 하얀 포자가 하나둘씩 생겼다. 구내염이었다. 구내염 치료를 위해 알보칠을 사러 약국에 갔고, 약사에게 구내염 발생 이유를 물었다. “비타민 B가 부족하거나 피로가 쌓이면 발생할 수 있어요.” 라고 했다. 비타민 문제는 아닐 터였다. 종합 비타민을 거의 매일 먹으니까.

이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약사가 물었다. “잠 잘 못 자시나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고 있는 반팔티를 팔락였다. 그리고 물었다. “요즘 저 같은 사람이 많나요? 더워서 잠 못 자고 피곤해서 약 사러오는?”. 약사가 말했다. “한국인은 항상 피곤해해요.”

짧게 쓴 웃음 짓고 나오려는 내게, 약사는 “알보칠 바르고 빨리 나으세요.” 라며 부채 로고가 새겨진 자양강장제를 건넸다. 자양강장제를 마시고, 며칠이고 알보칠을 발랐지만 구내염은 낫지 않았다. 한쪽이 나으면 다른 한쪽이 나고, 다른 한쪽이 나으면 또 다른 한쪽에 났다. 7월에 생긴 구내염은 9월이 되서야 사라졌다. 열대야가 끝난 시점이었다. 잠 푹 자니 해결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그렇게 여름이 끝났다.

2020년의 여름, 장마

2020년의 여름은 시원했다. 당연하다. 당시 한반도는 이상 저온 현상을 겪었다. 전 세계는 고온 현상이 나타났는데, 유독 한반도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저온의 여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던 건 아니었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고, 56일의 기록적인 장마로 외부 생활이 어려웠다.

멈추지 않는 비에 거리 곳곳에는 물웅덩이가 무수히 고여있었다. 뛰어도 넘을 수 없는 큰 웅덩이는 밟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밟은 웅덩이에 신발과 양말이 젖었고, 젖은 신발과 양말은 웅덩이를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젖은 양말과 신발은 빨아도 잘 마르지 않았다. 햇빛이 간절했지만, 하늘에 먹칠한 구름만 가득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를 보며,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비가 구름에 있는건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내리면 마를 법도 한데, 누가 마르지 말라고 계속 수증기를 쑤셔 넣는 것 같았다. 세상 모든 구름이 한반도에 모여 있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끝나지 않는 비에 짜증이 났었다. 숨쉬기 힘든 마스크도 빨리 벗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장마나 코로나나 당시로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출처 : Unsplash

“다신 겪고 싶지 않다.” 장마가 끝나는 날, 내 일기에 쓰인 마지막 문장이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장마와 열대야는 앞으로 더 심해질 것 같다.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의 결론이다.

온실가스 배출은 줄지 않았다

IPCC가 낸 6차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감축이고, 둘째는 적응이다. 감축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고, 적응은 1.5도 혹은 2도가 올라간 지구에 적응해서 살 수 있도록 정책과 서비스, 시스템 등을 정비하는 것이다.

감축이건 적응이건 온실가스 배출 감소는 필요하다. 특히 이산화탄소는 꼭 제거되어야 한다. 직접 없애지 않는한, 대기 중에 계속 머물기 때문이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그대로 둔 채, 계속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면, 대기 속 이산화탄소는 지구를 둘러싸고 계속 뜨겁게 데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추지 않는 건, 불에 기름 뿌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보고서를 처음 읽었을 때 허무했었다. 그렇게 정부건, 기업이건, 시민이건 대응하겠다고 하는 데 실질적으로 줄어든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다. 7차 보고서 작성을 시작했다는데, 희망 이야기가 나올지 의문이다. 한편으론 더 악화한 이야기만 나올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을 하니 벌써 짜증이 난다. 매년 구내염과 함께한다고? 매년 젖은 신발을 신고 다녀야 한다고? 열대야가 계속되고, 장마가 계속 될 거라는 말보다, 여름이면 구내염과 함께하고, 젖은 양말과 신발과 함께 할 거라는 사살이 더 짜증이 난다. 참, 주옥같은 일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1960년에 태어난 사람은 심각한 폭염을 평균적으로 일생에 네 번, 2020년에 태어난 아이는 무려 열여덟 번이나 겪게 된다고 한다. 또한, 지구 온도가 0.5도씩 상승할 때마다 발생 빈도는 갑절로 늘어난다.1)

최근 친구가 아이를 낳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뭐가 가장 걱정이냐고 물었다. 친구는 “날씨”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야 저거 봐, 저 날씨를 보라고. 저게 사람 사는 날씨냐고. 내가 바나나야? 오렌지야? 귤이야? 내 애가 저런 날씨에 밖에 돌아다니기나 하겠냐고.” 라고 말했다.

그 뒤 친구는 한참 동안 어릴 때 보낸 여름 방학 이야기, 결혼 생활 이야기, 먹고 사는 이야기, 자식 이야기를 했다. 예전 여름은 이랬고, 이렇게 놀았고, 이런 추억이 있었고, 결혼하니 이렇고, 저렇고 따위의 이야기였다.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은연중에 “날씨 더 더워지면, 예전처럼 밖에 돌아다니면서 놀지도 못하겠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친구가 내게 말했다.

“야, 주옥같은 소리하지 마.” 그리고 말했다. “삼촌이라는 인간이,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야지. 내 애 말귀 알아들을 때 그딴 말 하지도 마.”

이런 말을 하는 사이 애가 잠에서 깨어 울기 시작했다. 친구는 “이제 노는 시간 끝났다.”며 쫓겨 내듯이 나를 내보냈다. 친구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2020년의 태어난 아이는 심각한 폭염을 열여덟 번 겪게 된다"는 부분을 몇 번씩 읽었다.

“그러면 안 되지.”

그 뒤 절망하기보단 나부터 잘하자는 생각으로 8월 한 달 동안, 웬만하면 걸어 다니며 대중교통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러다 보니 하루 평균 22km를 걸었다. 22km의 수치가 나 자신이 얼마나 영향을 줄였나 하는지 수치화한 것 같았다. 기후위기가 22km 만큼은 멀어졌길 하는 바람이다. 한 가지 의문인 건, 그렇게 걸었는데도 살이 쪘다는 것. 멀어진 만큼 무거워졌다. 걸어서 살 뺐다는 말은, 다 거짓말인 것 같다.

1) <기후책> (그레타 툰베리 외/ 김영사/ 2023)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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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마다 '올해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었다'라고 말하게 될 거라는 게 현실로 느껴지는데요. 결국 인간이 만든 문제 속에서 해답도 인간이 찾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온실가스 감축, 탄소배출 감축 등 말로만 해왔던 일들을 실천으로 바꾸는 게 미래세대에게 조금이라도 덜 민폐를 끼치는 것 아닐까 고민하게 되네요.(열심히 걸으면 살빠진다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건 조금 슬픕니다)

기후위기에 관심 없어하던 제 지인들도 이번 여름을 지내면서 심각성을 '조금씩' 느끼는 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여름이 지나면 몸으로 느끼던 것들이 없어지게 되어 다시 무던해지는건 아닌가 걱정이 되네요.

기후변화가 실감 나는 날씨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