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의 필리핀 가사관리사들 입국
지난 8월 6일,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100명이 한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오는 9월부터 6개월간 한국 가정에서 가사관리사로 일하게 된다. 모두 최저임금과 4대 보험을 적용받는다. 전일제 고용 시 월 238만 원을 받게 된다.
서울시는 총 157가정을 선정했다. 선정된 가정은 동남권(서초, 강남, 송파)이 59가정, 도심권(종로, 중구, 용산, 성동, 광진, 서대문, 동대문)이 50가정, 서북권(은평, 마포, 양천, 강서)이 21가정, 서남권(구로, 영등포, 동작, 관악)이 19가정, 동북권(중랑, 성북, 노원, 강북)이 8가정이었다.
선정된 가정을 보면 동남권이 약 40%로 가장 많다. 소득 수준이 높은 동네다. 강남 8학군이라는 말처럼, 이 지역은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지에도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가사를 도우러 온 건지, 자녀 교육을 위해 온 건지 혼란스럽다. 자녀 교육도 가사의 일환인가 싶다. 가정 내 언어로 영어를 쓰는 걸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글쎄. 어디까지가 업무 범위인지 구분 짓기 어려운 상황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일하는 가정 자녀의 영어까지 신경 써줘야 하는 상황이 눈에 그려진다. 행여 우리 가사관리사는 영어를 잘한다, 우리 가사관리사는 생각보다 못한다며 비교 대상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실효성에만 집중되어 있다
언론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시민들의 관심사도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실효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이 어떤 비자를 통해 국내에 입국했고, 급여를 얼마를 받는지, 가사관리사 제도가 실효성이 있을지에만 집중하고 있다. 일부 논쟁에서는 최저임금을 줘야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집중되기도 한다.
이러한 실효성 논쟁이 불필요한 건 아니나, 여기에만 집중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번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은 6개월 시행을 거쳐 정식 도입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된다. 만약, 실효성이 좋아서 도입이 확대된다면 향후 우리나라에는 해외 가사관리사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제도를 안착시켜야 한다면, 우리나라에 오는 사람들이 어떤 문화와 배경 속에서 온 사람들인지 아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알아봤다. 필리핀 가사 관리사, 그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어떤 배경을 갖고, 고학력의 전문가 일자리를 버리고 우리나라의 가사관리사로 왔는지 말이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그들은 누구인가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한국에 온 표면적인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 것이다. 1인당 GDP를 봐도 필리핀과 우리나라의 소득 격차는 현저하다.
2022년 기준, 필리핀의 1인당 GDP는 약 3,500달러다. 같은 해 우리나라 1인당 GDP인 32,000달러에 약 10배 못 미친다. 국내에서 최저임금이, 필리핀 현지에서는 몇 달 치 월급이 된다. 돈, 해외로 나가서 일하기 충분하고 유일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면도 분명히 있다. 과거 70년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을 나가 외화를 벌어오고, 자신들의 가정을 먹여 살렸듯이, 국내 영화나 소설들이 그 당시 우리나라 상황과 각 가정의 상황을 보여주듯이,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에게도 그 이면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래서 조금 알아봤다. 필리핀 가사 도우미 그들은 누구이며, 왜 고학력의 그들이 해외로 나가는지 말이다. 조금만 살펴본 그들의 이면은 씁쓸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세계화의 하인들
책, <세계화의 하인들>은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이주가사노동자로 일하는 필리핀 사람들을 다룬 책이다. 책은 제목처럼 세계의 하인으로 일하는 이유가 세계화와 연관된다고 말한다.
세계화는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개발도상국에 이전시키고, 고부가가치 사업을 선진국이 차지하면서 국가 간의 경제적 불평등을 만들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의 경제 성장이 일어난 건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이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폐해가 있던 것도 사실이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 산업에 의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선진국이 원하는 고용 시 일만 하다 보니, 그 나라의 발전이 더디게 된다. 인구는 많은데, 산업 발전이 더뎌 일자리가 없고, 경제발전이 더뎌져 임금이 낮은 것의 반복이다. 그 결과 해외로 나가는 것이다. 필리핀 여성들은 주로 이주가사노동자로 해외에 나간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150만 명의 이주가사노동자가 있고, 필리핀 정부 추산에 따르면 이주가사노동자 3분의 1이 필리핀 사람들로 전해진다.
이번에 국내에 들어온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중 대다수가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로 전해진다. 한 가사관리사는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했고, 다른 가사관리사는 교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한국에 왔다. 이렇게 고학력자 임에도 해외 가사관리사로 일하는 것도, 앞서 필리핀의 산업 상황과 연관된다.
모순적 상황에 대한 억울함을 느낀다
사용자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검증된 사람들이 오고, 고학력에 선망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오는 건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 당사자인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억울함을 느낀다. 원해서가 아닌, 환경적인 상황에 의해 자신의 고학력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책, <세계화의 하인들>에서는 필리핀에서 교사였던 사람들이, 해외에서 가사관리사로 일하는 것에 억울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스스로 원해서가 아닌 환경적인 상황에 어쩔 수 없이, 교사에서 가사관리사가 된 것에 억울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혼이 불법인 가부장적인 제도
필리핀 여성들이 박탈감을 느낌에도 해외로 나가서 일하는 건, 필리핀 특유의 강한 가부장제 문화 때문이다. 필리핀은 바티칸을 제외하고, 이혼이 불법인 유일한 나라다. 전국민의 80%가 가톨릭을 믿는데, 이혼이 종교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내부적으로 법안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으나 하원을 넘어도 상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보수적인 분위기와 종교의 압력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류다.
책, <세계화의 하인들>은 이러한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국의 이주 가사관리사로 일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번 돈을 다시 본국에 송금해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부장제와 보수적인 분위기를 피해 해외로 왔지만, 가족을 부양하는 일은 차마 놓지 못하는 것이다.
전체 GDP의 8.8%를 담당하는 영웅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필리핀 이주가사노동자들은 매해 260억 파운드(한화 약 45조)를 필리핀 본국으로 보내고 있다. 이는 필리핀 GDP의 8.8%를 차지한다. 또한 필리핀 전체 가구의 12%가 이렇게 송금한 금액으로 생활한다고 전해진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필리핀의 전임 대통령인 두테르테는 그들을 “산업 영웅"으로 불렀다.
과거 우리나라가 독일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 나간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했듯, 필리핀에서도 동일한 말들이 이루어졌다. 두테르테는 전 필리핀 대통령은 2019년 한 행사에서 “필리핀의 발전을 위해 그 어느때보다도 해외에서 일하는 여러분들과 여러분 가족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계속 필리핀을 자랑스럽게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녀는 그들를 알지 못한다
보수적인 종교와 가부장제를 피해 해외에서 일을 하고, 그 돈으로 가족들을 부양하고, 산업 영웅으로 불려도,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 가정에서 그들의 자녀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CNN은 해외 가사관리사로 일하는 필리핀 여성 4명을 인터뷰 했다. 그 중 돌로레스(Dolores)라는 여성은 “내 자식이 6개월 됐을 때 일을 하러 해외에 왔고, 다시 돌아왔을 땐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자신이 해외에 나가 돈을 벌면 자녀를 교육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들을 이주노동자로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여전히 교육이 이 가난과 빈곤을 탈출할 대안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교육시킨 자녀의 학업 성취도가 더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다. 어머니의 부재로, 자녀가 더욱 형제자매를 돌보는 책임감을 갖게 되어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9월부터 시작되는 그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을 정확하게 모른다. 얇게 알아본 내용 마저도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의 삶을 다 반영하는 건 절대로 아닐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양가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감정적으로 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처한 상황은 분명 안타깝다. 억울함을 느끼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자녀를 자주 만나지도, 자녀가 알아보지도 못하는 상황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당장 필리핀이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고, 자라나는 자식이 있고, 필리핀 현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비해 몇 배나 되는 큰돈을 벌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게 한편으론 다행이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단순 급여만 비교하고, 실제 실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생각하지 않았을 때 이야기지만 말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 가정을 도우러 온 사람들이지만, 결코 하인처럼 부려 먹으려고 온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가사관리사 제도를 보면 업무의 경계가 모호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안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장치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개개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필리핀 가사관리사와 국내 가정 모두 서로 존중하며 원하는 바를 얻으면 좋겠다.
코멘트
4필리핀 가사관리사 입국 뉴스를 전후로, 최저임금과 그들의 노동환경을 걱정하는 기사를 많이 접해서 관심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 배경과 그들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네요. 잘 읽었습니다.
보수적인 종교와 가부장제를 피해 해외에서 일을 하고 = 이구절!있다 저 본론에.
=> 이뜻은 아마 필리핀의 종교인 힌두교
즉 카스트 제도가 어느정도는 존재할수있다.
=> 해결책 68혁명, 전통주의 파괴 ,개인주의 업!
=> 패미니즘 사상 운동가가 있어야한다,
그리고 저임금과 소득 격차 해결
남녀동일고용,임금,노동강도 평등하게 해주고
그리고. 더일하면 성과제도 도입!
그리고 또 여성인권 강화!
필리핀 가사도우미 여성들이 입국했다는 뉴스 댓글에 ‘한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면 자녀와 영어 소통이 되겠느냐’는 댓글이 있어서 의아했었는데 자녀의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영어를 사용하는 필리핀 가사도우미’여야만 한다는 이유가 있었던 거군요.. 고학력임에도 해외에서 가사도우미 노동으로 외화를 벌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의 억울한 마음도 공감이 됩니다... 곰곰히 생각해볼 점, 꼭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주변의 가사 관련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대안이 있으면 좋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