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AI: 둘째 날 스케치
by. 💂죠셉
지난 금요일, NC 문화재단이 주최한 FAIR AI 컨퍼런스에 다녀왔습니다. 행사 둘째 날 주제가 바로 지난주 저희 레터에서 소개한 임베디드 에틱스(Embedded EthiCS)였기 때문인데요. 임베디드 에틱스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2017년 무렵 시작된 다학제적 교육 프로그램으로, 컴퓨터 공학 커리큘럼에 윤리를 끼워 넣음(embedded)으로써 둘의 융합을 시도합니다. 특히 이번 컨퍼펀스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커리큘럼에 반영시켜 온 스탠포드 HAI의 제임스 랜데이와 메흐란 사하미 교수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하미 교수는 국내에서도 제법 읽힌 <시스템 에러>의 공저자 중 1인입니다.)
임베디드 에틱스는 2016년 경 하버드 철학과 교수인 바바라 그로스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됐습니다. 현실 문제에 윤리적 고려를 반영해야 하는 과제를 줬을 때 평소 기술 윤리에 제법 관심을 가진 학생들조차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전혀 모르는 듯한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죠.
컴퓨터 공학자가 철학자, 인류학자, 윤리학자 등과 한 팀을 이뤄 디자인하는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이자 목표는 학생들을 최대한 다양한 윤리적 관점에 노출 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가령 AI의 설명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윤리적’ 작업이 AI의 성능 저하로 이어져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 한 예시겠죠. 이렇듯 기술을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다양한 기술적, 사회적 함의와 닿아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반복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윤리적 상상력을 기르고, 기술 개발에 윤리를 고려하는 건 가치의 교환/협상(trade off)이라는 사실을 체화하는 것이죠.
물론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시간을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기술에 대한 윤리적 감수성이 졸업 이후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후속 연구도 보이지만, 이런 노력이 가시적인 열매를 맺는 건 임베디드 에틱스 졸업생들이 여러 사회 조직의 결정권자가 되는 시점일 테니까요. 이날 사하미 교수가 공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베디드 에틱스를 경험한 학생들도 해당 커리큘럼이 얼마나 본인에게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 모두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1점(전혀 동의하지 않음)부터 7점(강하게 동의함) 사이에서 1-3 사이에 위치한 학생의 비율은 꾸준히 20-30%를 기록했습니다.
프로그램 도입을 위한 이해관계자 설득을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지지해 줄 사람(proponents)을 찾아 시작하면 된다’는 사하미 교수의 조언에서 드러나듯, 윤리를 강조하는 방향성이 모두에게 설득력을 가지길 기대하긴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술을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들의 인식 개선을 시도하는 임베디드 에틱스는 순수 ‘임팩트’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매력적인 솔루션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하버드와 스탠포드 뿐만 아니라 미국 유수의 대학들이 이 방향성에 동참 중입니다. (행사에 참여한 서울대 천현득 교수 발표에 따르면 한국 대학 중에서 임베디드 에틱스를 적용한 곳은 현재까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픈소스로 원하는 누구나 정보를 얻어갈 수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이 웹사이트에서 시작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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