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라는 명(明)과 암(暗)
1989년 WWW(월드와이드웹)의 발명은 인터넷 접속 방식과 정보 공유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이후 30년 남짓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류의 삶은 크게 변화하게 된다. 소통, 사교, 업무, 의식주 해결 등 대부분의 일상이 인터넷을 매개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2018년 출생 신고까지도 온라인으로 가능하게 되면서 한국은 완벽하게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이라는 공간과 분리가 불가능한 디지털 네이티브가 살아가는 국가가 되었다.
모든 것이 인터넷과 연결되는 상황이 되니 폐해도 만만치 않다.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이용자들이 부스러기처럼 흘린 정보의 조각들은 누군가에게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몇 가지 조합만으로도 개인을 식별해 특정할 수 있게 해 언제든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에 떨게 만들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월드와이드웹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리가 현재의 인터넷 환경을 두고 우리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라고 했을까?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인터넷을 둘러싼 부정적인 의견은 커가고 인터넷 사용에 대한 규제 요구와 움직임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되고 있다. 더 이상 익명성을 기반으로 서로의 생각과 지식을 공유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커뮤니티를 만들며 서로를 연결해 주는 인터넷의 미덕만을 찬양하거나, 공유와 개방이라는 미덕의 기반인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목소리는 변화한 시대를 읽지 못하고 과거의 호시절만을 기억하는 낭만주의자의 몰지각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인식은 규제 요구로 쉽게 이어져 왔다. 이에 화답하듯 각국의 정부는 앞다투어 규제를 위한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규제하고자 하는 플랫폼 역시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과 안전
현재의 상황과 오늘의 주제를 연관해 두 가지 질문을 해보자. 인터넷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규제의 요구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전제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혹은 원하는 안전함이란 무엇일까? 또 법적 혹은 제도적인 규제를 도입한다면 “안전한” 인터넷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까?
사실 위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이용자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위험을 느끼는 이유부터 정리해 보자. 대체로 사람들이 자신이 온라인 공간에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했거나 타인이 생산한 표현물이 촉발하는 부정적인 결과나 감정으로 집약된다. 전자는 민간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넘겼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거나 자신이 과거에 인터넷에 올렸던 개인정보나 타인이 자신과 관련한 개인정보를 인터넷에 올리는 등의 이유로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한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댓글, SNS 등의 플랫폼에 게시하는 글을 포함해 사진, 가요, 게임, 상품 등 다양한 종류의 표현물들이 전달하는 고정관념, 혐오, 성적인 불쾌감, 허위 정보, 불법 정보 등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오해를 줄이기 위해서 오픈넷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운동을 해왔으나 해악이 뚜렷하고 불법성이 명백한 정보는 차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음을 미리 밝힌다). 지면이 한정되어 있고, 전자의 경우 중 민간 혹은 공공의 서비스 이용을 위해 교환하는 개인정보의 문제는 한국에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고,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인터넷에 유출된 개인정보에 의해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하는 경우는 인터넷 게시물에 의해 촉발된 문제에 속할 수도 있으니, 후자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이어가 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터넷 공간에서 “안전”을 성취하기란 쉽지 않다. 인터넷상에서 유통되는 표현물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삭제가 가능한 불법정보라고 하기보다는 개인의 사상이나 의견으로 작성된 콘텐츠들이다(불법정보에 관해서는 오픈넷의 관련 글참조) . 개인의 사상은 정치적 신념, 성별 혹은 젠더, 사회적 지위, 경제적 배경 등이 교차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뜻하지 않게 혹은 의도적으로 고정관념을 강화하거나 혐오를 전달한다. 이와 같은 표현물들은 불법정보가 아니므로 유해하거나 불쾌감,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더라도 강제로 삭제할 수 없다. 고정관념이나 혐오를 강화하는 정보는 소수집단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이 정보들이 여과없이 유통될 때 취약계층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특정 집단이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느끼는 불안함은 합리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특정 집단의 소수자성과 취약성은 물론이고 특정 표현물에 대한 판단은 판단 주체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게임은 학부모들에게는 유통을 금지해야 하는 해악일 수 있으나 청소년들에게 그것은 유일한 해방구일 수 있다. 또 중2병이라는 표현은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을 폄하하는 발언이다. 하지만 이 표현도 누군가에게는 유해한 고정관념이 될 수 있다. 성노동자라는 표현은 어떤가?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 중 자신의 일을 직업으로 인정받고 노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당함과 강간 등을 포함하는 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성노동자라는 단어를 쓰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반면 성노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여성 전반에 대한 모독이라며 부정하는 이들도 있다. 인터넷 이용자들의 다양한 정체성을 세심하게 고려한다면 안전한 인터넷 공간을 조성한다는 목표 자체는 도달하기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른다.
인터넷 규제의 부작용
인터넷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하지 않을지라도 한국은 인터넷 표현물에 대한 규제에 적극적인 나라였다. 2000년대로 진입하자마자 인터넷 사이트에 등급을 부여하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법제화가 시도되었으나 2002년 제도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03년에는 당시 한나라당을 시작으로 악성댓글, 명예훼손, 허위 사실 유포 등에 대한 통제를 이유로 인터넷 실명제 법안 도입 논의가 시작되었고, 2006년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합의로 정보통신망법이 개정되면서 인터넷 실명제가 통과 되었다. 2012년 위헌 판정을 받아 제도는 폐지되었으나 인터넷 게시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실명제 도입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2008년 이후에는 사이버모욕죄 신설, 인터넷 실명제 확대, 인터넷 이용자 규제강화, 허위사실 유포시 처벌 등 인터넷 게시글이 집중적으로 유통되는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포털 규제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형법 개정안과 정보통신망법, 전기통신기본법 등의 개정안이 추진되기도 했다. 인터넷 실명제 이전과 이후의 글게시 행위와 게시글 및 댓글의 내용을 분석한 우지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실명제 실시 이후 게시판에서 게시글과 댓글의 숫자가 감소했고, 삭제한 글의 빈도도 늘어났다”고 한다. 반면 “글을 쓰는 아이피의 숫자가 줄어들어 게시판 참여자의 숫자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실명제의 실시가 “글게시자들의 글쓰기 행위를 광범위하게 변화시키면서 다소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는 “실명제의 도입으로 얻고자 한 효과가 부분적으로 검증되었다”고 우교수는 결론 내렸다. 단 한 편의 연구로 전체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규제가 안전을 보장한다고 확답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라고는 할 수 있겠다.
인터넷 표현물에 대한 규제 요구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먼저 힘 있는 자들의 권력 남용으로 악용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2024년 2월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상에서 유통되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영상을 차단하고 여당과 대통령실이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제작자와 공유자를 고소해 경찰이 틱톡 한국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제작자와 공유자를 추적한 뒤 수사 중에 있다. 인터넷상의 표현물에 대한 규제 요구는 엉뚱하게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는 화살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가부장제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여성들이 고안한 전략인 미러링에 대한 거센 비난이 있었고, 손가락 이미지가 “불순한 의도”를 담았다는 억지 주장에 이미지 제작에 관계되었던 여성들이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게 된 사건들도 떠올릴 수 있다. 또 2019년 형법상의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후 식약처가 임신중지약 도입을 미뤄 여성들의 안전한 임신중단 권리가 침해된 상황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약사법 위반을 이유로 임신중지약을 배포해왔던 위민온웹의 접속을 차단했다. 위민온웹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대상으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헌법불합치 판결로 현재 한국에서 임신 중단을 원하는 여성은 아무런 제한 없이 수술로 임신중지를 할 수 있고’, ‘위민온웹은 ’대한민국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지 아니한 약사가 약을 배포해서는 아니 된다는 약사법의 조항을 위반해 약을 배포하고‘ 있으며, ’해당 사건의 의약품이 유통될 경우 그 오남용으로 인해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는 이유를 들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웹사이트 차단 결정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즉 법원은 WHO가 안전성을 입증한 임신중단유도제가 아니더라도 시술을 통해 제한없이 임신중단을 할 수 있으며, 국민보건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위민온웹의 사이트 전체를 차단한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해결 방안은 있을까?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먼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일이 시급하다. 또 문제시되는 표현물 유통 규제에 급급하기보다는 근본적인 사회적 개선이 필요하다. 삭제를 우선시하기보다는 차별과 편견, 해악을 발생시키는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모든 매체는 그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와 가치를 반영한다. 따라서 주류 담론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인터넷상의 게시물을 아무리 삭제한다고 해도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게시물들은 끊임없이 다시 올라올 것이다. 부정적인 게시물 알고리즘 증폭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개발할 것을 플랫폼에 요구해야 한다. 대안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것도 방법이겠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리의 사상을 다섯 개 남짓한 플랫폼에 맡기고 있다. 소수의 기업에게 우리의 사상을 재단할 권리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어떤 정보들이 삭제되었고, 어떤 정보들이 삭제되지 않았는지를 리포팅하는 투명성 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도 유효할 것이라 본다. 이와 같은 요구들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그들의 대응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안전한 디지털 공간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모읍니다.
코멘트
7" 부정적인 게시물 알고리즘 증폭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개발할 것을 플랫폼에 요구해야 한다. 대안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것도 방법이겠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리의 사상을 다섯 개 남짓한 플랫폼에 맡기고 있다. 소수의 기업에게 우리의 사상을 재단할 권리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어떤 정보들이 삭제되었고, 어떤 정보들이 삭제되지 않았는지를 리포팅하는 투명성 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도 유효할 것이라 본다." 는 제안에 공감합니다.
몇몇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있지만, 글의 전반적 취지에는 동의합니다. 마치 통합진보당의 활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헌재의 판결에 의해 해산되는 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듯이, 올바른 문화란 '토론과 합의를 통해 균형점을 점차 찾아 나가는 것'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빠르고 확실한 규제와 균형을 이루어야겠죠.
인터넷이 생기고부터 지금까지 어떤 문제들과 규제, 대응 노력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네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논읫거리가 잔뜩 있는 느낌입니다.
저도 얼마 전에 비슷한 내용의 연구를 진행했는데요, ‘플랫폼’이 정하는 결정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플랫폼이 합리적으로 콘텐츠와 이용자의 규제를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더라구요.
"우리의 사상을 다섯 개 남짓한 플랫폼에 맡기고 있다."라는 문장이 충격이면서 이 글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럴수록 더욱 기업에 요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유해한 고정관념'이라는 말도 생각해볼 거리가 되는 것 같아요. 불법 정보와는 그 선이 다른 것들을 많이 봐왔던 기억이 나네요.
"대체로 사람들이 자신이 온라인 공간에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했거나 타인이 생산한 표현물이 촉발하는 부정적인 결과나 감정으로 집약된다. ... 인터넷 공간에서 '안전'을 성취하기란 쉽지 않다. 인터넷상에서 유통되는 표현물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삭제가 가능한 불법정보라고 하기보다는 개인의 사상이나 의견으로 작성된 콘텐츠들이다. ...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특정 집단의 소수자성과 취약성은 물론이고 특정 표현물에 대한 판단은 판단 주체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인터넷 이용자들의 다양한 정체성을 세심하게 고려한다면 안전한 인터넷 공간을 조성한다는 목표 자체는 도달하기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른다."
저는 이 부분을 눈여겨 보게 되네요. 명백한 부분은 규제가 필요하겠지만(이 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표현하는..) 무 자르듯이 자르기 어려운 공간이 있고, 이는 시민들이 끊임없이 논의하여 함께 채워나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겠지요. 결국 시민들의 집합적 역량을 상승 시키는 것에 달린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온라인 공간에 되도록이면 흔적을 남기는 걸 꺼려하는데요.(그러면서 코멘트를 쓰고 있는 게 모순이지만요) '온라인 공간이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비단 온라인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규제와 표현의 자유를 논하기 전에 무엇이 안전한 공간인가에 대한 고민이 먼저 이뤄지면 좋겠네요. 글에서 언급해주신 사례들처럼 한국 사회에선 규제에 몰두해서 안전한 공간을 훼손하거나 반대로 혐오 표현이 난무해서 안전한 공간이 훼손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