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정치를 꿈꾸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명절에 오랜만에 친척들과 모이면 주의해야 할 게 있다. 바로 ‘정치 이야기’다. 약삭빠른 정치인들은 전국 각지의 유권자들이 지역별로 섞이는 명절 밥상에 본인들의 이야기를 올리고 싶어 한다. 명절 정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유튜브가 있어서 공유한다. (3:13초부터 보면 더 재미있다.) [문쌤] 명절특강! 세뱃돈 네 배로 받는 가불기... 드디어 공개한다 세뱃돈 이외의 수입을 챙기고 싶은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이용하라는 팁이다. 큰아빠와 다른 정치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완벽하게 패배를 인정하면 용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평화로운 가정을 지켜야 하므로 우리 집에서는 어림도 없다. 실제로 몇 년 전 일명 조국사태 때문에 난리 난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끼리 조국 교수에 대한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치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또 내 오래된 친구들 사이에는 명문화된 규율이 있다. ‘정치 이야기 금지’. 시사 이야기는 자주 하지만 그 상황에서 급발진하여 특정 정치 세력을 비난하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경고가 들어온다. 그러면 잠시 흥분했던 침착했던 친구는 다시금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곤 한다.
정치 이야기와 관련된 흥미로운 조사를 소개하고 싶다. MBC 패널조사에서 ‘정치 스트레스’에 관해 물었다. 항목은 다음과 같다.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 “내가 지지한 후보가 졌을 때 화가 나거나 우울하다.”, “정치 이야기 피곤하고, 피하고 싶다.” 조사 결과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79%, '내가 지지한 후보가 졌을 때 화가 나거나 우울하다' 65%, '정치 이야기가 피곤하고 피하고 싶다' 61%로 집계되었다. MBC는 조사 결과에 대해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세 문항 중 하나의 문항에 하나라도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는 91% 였는데, 4천 4백만 명의 유권자로 환산하면 약 4천 만 명이 '정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겁니다.”
미국심리학회(APA)는 선거철 정치 스트레스 관리법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 정치 뉴스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미디어 소비를 제한하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거나, 산책을 하거나, 친구나 가족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십시오.
- 선거에 관한 토론이 갈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아예 참여하지 마세요.
-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은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 선거일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삶은 계속될 것입니다.
- 투표하십시오. 스트레스가 많은 선거에 참여해서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느끼시길 바랍니다.
사실 이 정도로 스트레스를 주는 주제라면 이야기를 안 하는 게 맞다. 몇몇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현상이라면 진작에 다 같이 주의하고 쉬쉬해야 주제여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니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정치 이야기는 이렇게 하기 어려울까?’ 사실 정치 이야기는 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한 이후에 대화 상대와 어떻게 지내느냐가 문제다. 그럼, 질문을 이렇게 바꿔본다. ‘정치 이야기를 한 후에도 어떻게 안 어색해질 수 있을까?’ 혹은 ‘정치 이야기 후에도 어떻게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결국은 서로의 민감하고도 다른 의사를 직면했을 때 그것을 수용하고 지낼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세련되게 대화 할수 있는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에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한 APA의 스트레스 관리법을 보면 ‘선거일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삶은 계속될 것입니다.’라는 항목이 있다. 우리는 정치라는 두 글자가 단번에 변화를 이뤄낼 것이라는 기대 혹은 우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두려웠던 게 아니었을까?
김민하 작가가 지은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에서 몇 문장을 옮겨본다. “결국 권력과 변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권력의 선의를 믿거나 사익 추구를 의심하거나 하는 양자택일로 귀격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관점은 마치 정치를 만능 스위치가 존재하는 방에 들어가기 위해 각 세력이 경쟁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한다.”
정치에 대한 우리의 의견과 선택이 매번 절벽 끝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듯한 위기 상황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상대방의 다른 선택과 이야기를 그저 의견으로 받아들일 여유 따위는 우리에게 없다. 이런 양극화된 정치는 계속될 것이다. 이미 너무 많은 정치인이 그 단맛을 보았고 유권자들도 그들에게 길들여졌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의 선택에 더 많은 기대를 걸어야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악순환과 관련된 문장이 있다. “민주주의는 주권자들의 총의를 모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논의의 장을 여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반대’를 통해 ‘우리 편’을 조직하는 효과적 방식을 찾는 도구로 전락한다. 이것이 온갖 정치적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앞의 현실이 변하지 않는 이유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만능 스위치를 통해 바꾸려고 했던 현실에 우리가 직접 개입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도구는 여기에 써야 한다.”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김민하. 이데아)
우리는 정치 이야기를 어떻게 안 어색하게 할까를 고민할 게 아니라, 우리의 대화를 어색하게 만들어버린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 투표 말고는 어떻게 정치에 개입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뉴스부터 읽어보자. 뉴스를 통해 내가 관심 있는 문제를 찾아보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다양한 주체(국회의원, 지방의원, 국기기관, 시민사회단체 등)를 찾아보자. 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건의하고 제안해 보자.
시민의 한 표는 작아 보이고 그 표를 받는 세력은 커 보인다. 하지만 정치를 어떤 세력만의 것으로 두지 말자. 정치는 시민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코멘트
3친구들이랑 가족들이랑 정치얘기 안 한다는 게 신기해요. 저는 친구들이랑 가족들 모이면 정치얘기 꽤 하는 것 같아요. 깊게는 못 하는 것 같고 드라마욕하듯 하는 것 같긴 하지만요 ^^;
정치얘기를 건강하고 건전하게, 유익하게 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너무 금기시 하는 것보다는, 스트레스 받아도 해야하는 얘기라는 게, 글 읽고 나니 새삼 또 공감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정치 이야기를 어떻게 안 어색하게 할까를 고민할 게 아니라, 우리의 대화를 어색하게 만들어버린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
공감이 가네요. 어색한 거 싫으니 정치를 제대로!
미디어스에 김민하 작가가 쓰고 있는 칼럼들을 잘 읽고 있는데 책의 내용도 궁금해지네요. 사실 명절 밥상에서,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정치이야기를 편하게 꺼낼 수 없는 게 생산적인 논의가 아니라 진영논리에 의한 대립에 머무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모든 문제가 다 나쁜 정치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나쁜 정치, 원칙 없는 정치가 만들어내는 악영향이 우리 삶 곳곳에 있다고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