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 현대산업개발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했어요
안녕하세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입니다?
지난 3월 15일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이 주주총회 소집공고를 발표했습니다.
연이은 대형 건설사고 이후 열리는 이번 정기주주총회 안건은
회사의 건설 안전·품질관리에 대한 쇄신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현산이 내놓은 이사의 선임, 정관의 변경 등의 주주총회 안건은
향후 또다른 부실공사를 방지하도록 회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기에는 대체로 부족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번 주주총회에서 현산 측은 정익희 대표이사 겸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사내이사로 선임하고, 지속가능경영체계에 대한 전문(前文) 신설, 이사회 내 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등의 정관 일부를 변경하는 안건을 상정했습니다.
이는 또한 네덜란드 연기금 APG의 주주제안을 일정부분 현산이 수용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산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이하 'ESG') 관련 APG의 권고적 주주제안권 도입 안건은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현산의 이번 부실공사로 인한 사고는 ESG 중 특히 사회(S) 및 지배구조(Governance) 영역의 중요성을 드러냈고, 상법이나 정관이 주주총회 결의사항으로 명시하지 않은 ESG 관련 사항에 대해서도 주주들에게 주주제안을 할 권리를 보장할 필요성을 보여줍니다.
그외에도 기존 경영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사고에 책임이 있는 이사들을 연임시키고, 사외이사 중 안전 관리를 전담하고 안전보건위원회에서 활동할 산업안전 및 건설품질 관리 전문가를 선임하는 안건이 부재한 등 주주총회 안건을 통해 본 현산의 쇄신 의지는 최소한에 그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에 참여연대는 지난 3월 22일 노동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이번 현산 주주총회 안건의 함의를 분석하고, 여전히 혁신에 소극적인 회사를 비판하며,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자, 소액주주들에게 기존 문제이사의 연임에 반대하여 회사의 책임을 묻고, ESG 관련 권고적 주주제안권 도입 등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안건에는 찬성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현대산업개발 주주총회 안건 분석 1. 정관의 변경 관련
경제개혁연대는 2월초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대산업개발’) 주주인 네덜란드 연금 투자회사 APG(Stichting Depositary APG Emerging Markets Equity Pool)로부터 위임을 받아 정관 변경에 관한 주주제안을 했음. 정관 변경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ⅰ) 지속가능경영, 안전경영 및 건설 관련 법령의 준수 등에 관한 회사의 의무를 명문화하는 전문(Preamble)을 신설하고, ⅱ)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이하 ‘ESG’)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권을 도입하고, ⅲ) 이사회 내 위원회인 ‘안전보건위원회’ 설치하며, ⅳ) 지속가능경영 공시를 도입하는 것이었음.
APG와 경제개혁연대는 현대산업개발과 주주제안한 정관 변경에 대해서 논의를 해음. 현대산업개발은 최종적으로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 (이하 ‘ESG’)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권 도입”에 관한 정관 변경을 제외한, ⅰ) 지속가능경영, 안전경영 및 건설 관련 법령의 준수 등에 관한 회사의 의무를 명문화하는 전문(Preamble) 신설, ⅱ) 이사회 내 위원회인 안전보건위원회 설치, ⅲ) 지속가능경영 공시 도입은 일부 내용을 수정하여 수용함. 당초 이사회 내 위원회에 안전보건 전문 사외이사를 포함시키고자 했으나, 안전보건 담당의 특성, 선임의 현실적 어려움, 향후 ESG 담당 사외이사 선임 가능성 등을 고려해 안전보건 담당 이사를 선임하되, 사외이사로 한정하지 않기로 함. 이외에는 당초 주주제안과 회사 측 수정안이 내용적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음.
현대산업개발이 일부 주주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함. 현대산업개발은 시공사로서 충분한 안전관리를 하지 못해 붕괴사고를 막지 못한 만큼, 이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응분의 법적·도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임. 다만, 이와 별개로 적어도 두 번의 사고를 거울삼아 앞으로는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경영에 최선을 다해야 함. 현대산업개발이 APG와 경제개혁연대의 주주제안을 일부 받아들여 정관 개정을 시도하기로 한 것은 거버넌스 차원에서 안전경영 강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뜻인 만큼, 유의미한 변화의 시작으로 기대해 볼 수 있음. 건설관련 법령,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법률상 의무와 제재, 처벌을 정하고 있음. 또한, 사용자와 노동자가 참여하는 산안보건위원회, 노사협의체 구성도 의무화하고 있음. 그러나 이와 별개로 최고경영진과 이사회가 자신들의 업무로 안전보건에 관한 감독업무, 사고발생시 수습 및 보상 등 처리를 하도록 정할 필요가 있음. 거버넌스 차원에서 안전보건을 다루어야 ‘사전에’ 사고를 방지하고, 안전보건 강화 및 품질관리 개선을 이끌 수 있음.
지금으로선 정관을 변경하는 시도일 뿐이지만, 회사가 변경하려는 정관을 취지와 목적대로 충실히 이행한다면, 건설안전 및 지속가능경영 강화, 주주가치 개선에 상당히 기여할 수 있음. 반대로 회사가 형식적으로만 정관을 변경할 뿐, 전문의 선언적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고, 안전보건위원회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지 않거나, 지속가능경영 공시를 내실 있게 하지 않는다면, 이번 주주제안이나 정관 변경 시도가 갖는 의의는 매우 퇴색할 것임. 따라서 현대산업개발은 주총에서 정관 변경이 통과될 경우, 당초 주주제안의 취지와 목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정관 내용을 충실히 이행해야 함.
권고적 주주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임. 국내 기업에서 도입한 사례가 없고, 과도한 주주권 행사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음. 2번의 붕괴사고는 현대산업개발과 같이 대규모 건설사업을 영위하는 회사에서 안전과 같은 ESG 이슈가 기업가치와 주주가치에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줌. 기업가치와 주주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ESG 이슈라면, 당연히 주주의 적극적인 관여활동(Engagement)이 이루어져야 하고, 지배주주 이외의 주주가 실효성 있는 관여활동을 할 수 있으려면, 주주제안과 같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함.
실제로 ESG 이슈에 관한 직접적인 주주제안이 가능한 국가의 기업에서는 기후변화, 성별 임금격차, 인종차별, 노동 이슈 등 다양한 ESG 관련 주주제안이 제기되고 있음. 이러한 ESG 관련 주주제안 등 적극적 주주활동은 궁극적으로 지속가능경영 강화와 기업가치 향상, 주주가치 제고 모두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임. 그런데 상법상 주주제안에 대한 통설적 견해에 따르면, 주총 결의를 전제하는 주주제안 역시 상법 및 정관이 정한 주총 결의사항에 대해서만 할 수 있음. 물론, 이 같은 견해가 판결을 통해 명확히 인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견해가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주주활동에 매우 적극적인 기관투자자라고 하더라도 쟁송 가능성 등 각종 비용을 감수하면서 ESG 이슈에 관한 주주제안을 하기가 매우 어려움.
실제로,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ESG 이슈에 관한 회사의 직접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내용의 주주제안이 사실상 전무했음. 만일 미국 등과 같이 ESG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이 활발히 이루어졌다면, 회사를 상대로는 안전·보건이나 건설 품질관리에 관한 주주제안이 당연히 제기됐을 것임. 그러나 국내에서는 ESG 이슈에 관한 직접적인 주주제안이 어렵기 때문에, 경제개혁연대와 APG 역시 부득이 ‘정관 변경’의 방식으로 주주제안을 했던 것임. 현행 상법에 따른 주주제안으로는 정관 변경이나 이사 선임과 같은 방식 이외에는 사실상 ESG 이슈에 관한 주주제안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는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이번 주주제안과 같이 회사가 자발적으로 정관을 통해 ESG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권을 명시적으로 보장하는 것임.
권고적 주주제안은 가결되더라도 권고적 효력만이 있으므로, 경영진은 가결된 사항에 구속되지 않음. 따라서 권고적 주주제안을 통해 주주가 경영 의사결정에 직접 개입한다거나, 경영진의 재량적 권한을 제한하지 않음. 결국, ESG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은 실질적으로 ‘ESG 이슈에 관해 보다 적극적으로 주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제도’로 이해할 수 있음. 비록 구속력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회사로서는 주총에서 승인된 안건을 합리적 이유 없이 수용하지 않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임. ESG 관련 주주제안이 기업가치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에도 합리적 이유 없이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경영진은 잘못된 의사결정에 대해 (재)선임 반대 등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추궁당할 수도 있음. 결론적으로, 권고적 주주제안은 이사의 재량적 권한과 주주권을 균형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제도임.
ESG 관련 이슈는 특성상 회사가 주주들의 요구를 구속력 있게 이행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려움. 예를 들어, 주주는 회사에게 주주제안으로 건설안전 및 품질관리에 관하여 이사회 차원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감독할 것을 요구할 수 있음. 그러나 이러한 주주제안은 형식적인 이행 여부보다는, 제안 취지에 맞게 실질적으로 이사회가 운영됐는지가 중요함. 그렇다면, 이러한 사안에 관한 주주제안에 대해서는 강제적인 구속력을 부여하기보다는 권고적 효력만을 갖게 하되, 지속적으로 주주에게 이행 상황을 보고하고, 평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 더욱 실효성이 크다고 판단됨.
2. 임원의 선임 관련
정몽규 전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광주 화정 참사 이후 사고의 책임을 진다며 회장직을 사퇴했으나, 정 회장은 여전히 지주회사 HDC를 통해 현대산업개발을 지배하고 있음. 2022년 1월 기준 HDC가 보유한 현대산업개발 지분이 무려 43%에 이르고, 3월 기준 정몽규 회장 등 특수관계인의 HDC 지분 또한 41%에 이르기 때문임. 이번 주주총회에서도 HDC의 표가 사실상 정관 변경 등 지배구조 개선 관련 안건 통과의 가장 주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임.
이번 주주총회 안건에 오는 3월 24일자로 임기가 만료되는 권순호 사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은 올라오지 않았지만, 정몽규 회장과 권순호 사장 외의 다른 이사들, 김대철 부회장, 정경구 전무, 하원기 상무 등 기존 사내이사인 경영진의 경우 여전히 그 직을 수행하고 있음. 이번에 정익희 부사장 겸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사내이사로 선출하는 안건이 상정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사내이사로 기업의 내부자인 정 부사장이 얼마나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회사의 안전 및 품질관리에 대해 의견을 내고 전권을 행사할지는 확인하기 어려움.
많은 인명 피해를 낸 광주 학동 재개발 구역 및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는 심각한 부실공사가 그 원인임. 특히 화정 사고의 경우 건설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무단구조변경, 물탄 콘크리트, 감리 소홀 등 총체적 부실로 발생한 인재로 판명남. 고용노동부가 지난 1월17일부터 같은달 26일까지 현대산업개발이 시공 중인 대규모 건설 현장 12곳을 특별감독한 결과 총 636건의 위반사항을 적발해 306건은 사법 조치하고, 330건에 대해서는 과태료 8억4천만원을 부과하기도 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부실 공사에 책임이 있는 기존의 이사들이 물러나거나 책임을 지는 모습은 찾기 힘듦. 노동시민사회단체는 현대산업개발이 안전사고를 근절하는 확고한 의지가 있음을 시장에 보여주려면, 회사의 안전경영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건설 품질관리를 혁신하기 위한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해당 이사를 안전보건위원회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요구해왔음.
그런데 현대산업개발은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기존 사외이사를 그대로 재선임하는 안건을 제출함. 연임 안건이 제출된 권인소 사외이사의 경우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이자 로봇·전기공학 분야 전문가로 건설 안전과 관련된 인물이라고 보기 힘들며, 기존 사고의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적절한 인사라고 보기 어려움. 이사회는 권인소 사외이사의 추천 이유를 들어 로봇·전기공학 분야의 권위자로서 풍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기술과 관련하여 다양한 분야의 사업 투자 추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며, 회사의 주요 경영활동 관련 의사 결정시 합리적 판단과 조언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는데 이와 건설 안전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
또한 유병규 사장의 경우 경제학 박사이면서, 2018년부터 지주회사 HDC에 재직한 인물로서 건설 품질과 안전과는 거리가 먼 인물임. 이사회는 유병규 사장에 대한 추천 이유로 국내 최고의 경제분야 전문가로서 오랜 학술활동과 연구업적을 바탕으로 회사의 위기대응능력을 재정립하고 실적개선 및 지속적인 성장동력을 마련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는데, 이 또한 유 사장의 선임안건이 건설 품질 쇄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보여줌.
결국 회사는 사내이사인 정익희 부사장만을 건설품질 안전 전문가로 이사회에 두고, 다른 전문가인 사외이사는 선임하지 않았는데 이는 기존 CSO를 사내이사로 올리는 것으로 안전보건 전문이사 선임을 갈음한 것에 지나지 않아, '이사회 내 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및 운영' 정관 변경 안건의 실행 의지가 희박함을 보여줌. 검찰은 화정 사고 관련 현장소장 등에게만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어, 기존 이사들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지워지지 않은 상황임.
특별감독 후 노동부 관계자는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서류상의 안전보건관리체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본사가 현장의 법 준수 사항을 수시로 확인해 적극적으로 조치해야 한다”고 발언했음. 현대산업개발은 말뿐만인 혁신을 외칠 것이 아니라, 기존 경영진이 광주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모색해 발표하고, 안전보건위원회 담당 사외이사를 선출하며, ESG 관련 권고적 주주제안권을 도입하는 등 보다 적극적 행동에 나서야 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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