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주한 질문'들']진정으로 인간적인 노동체제에 관하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실천했던 노회찬 5주기를 맞이해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 불평등 심화 등 복합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마주한 ‘질문’들을 나누며,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진보적인 대안을 고민하는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심포지엄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행사는 노회찬재단 공식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됩니다?심포지엄 안내 보러가기 http://hcroh.org/notice/462/
1. 들어가는 말
1919년에 베르사이유 조약의 일환으로 채택된 국제노동기구(ILO) 헌장은 전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항구적인 평화는 사회정의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당연하게도 사회정의가 세계평화에 기여하려면 모든 나라들이 동참해야 한다. 헌장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어느 한 나라라도 진정으로 인간적인 노동체제를 도입하지 않는 것은 다른 나라들이 자국에서 노동자들의 지위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에 장애물이 된다.” 요컨대 “진정으로 인간적인 노동체제”는 “사회정의”와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2. 진정으로 인간적인 노동체제
“진정으로 인간적인 노동체제”는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다.
가. 진정으로 인간적인 체제
첫 번째 독법은 노동에 관하여 “진정으로 인간적인 체제”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의 이행을 둘러싼 조건들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고용보장, 적정임금, 노동삼권 보장, 사회보장 등이 해당될 것이다.
나. 진정으로 인간적인 노동
두 번째 독법은 “노동 자체가 진정으로 인간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체제로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사유와 행위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형이상학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표상과 현실. 이 두 가지는 인간의 노동을 진정으로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자연을 지배한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의 경험을 통해서 자연에 복종한다. 생물학적ㆍ물리적 현실을 부정하는 노동은 인간적인 노동이라고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유를 금지ㆍ부정하는 노동도 인간적인 노동이라고 할 수 없다.
3. 정의로운 노동분업
정의로운 노동분업은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첫째는 노동을 할당하는 원리의 정의로움에 관한 것이다. 둘째는 그렇게 할당된 노동을 이행하는 방식의 정의로움에 관한 것이다.
가. 할당원리의 정의로움
공동선의 실현에 필요한 여러가지 일이 있다고 할 때 그 일을 누구에게 할당한 것인가? 식당을 예로 들면, 누가 메뉴와 가격을 정하고, 누가 요리를 하고, 누가 홀서빙을 하고, 누가 계산을 하고, 누가 설겆이와 청소를 할 것인가를 정하는 문제이다.
나. 이행방식의 정의로움
이행방식의 정의로움은 어떤 식으로든 정해진 할당원리를 적용한 결과로, 요리를 하거나 홀서빙을 하거나 청소를 맡은 노동자가 각자의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그것이 진정으로 인간적인 노동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관한 것이다. 국제노동기구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1944)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자가 자신의 기술과 지식을 최대한 발휘하고 공동선에 최대한 기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을 보장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언의 구절은 진정으로 인간적인 노동을 위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노동자가 자신의 기술과 지식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의 이행조건(how to work)에 관한 것이다. 둘째, 노동을 통해서 공동선에 최대한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의 내용과 목적(what and why to work), 즉 노동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4. 전환의 시대, 노동의 의미를 묻다
가. 디지털 혁명과 노동의 의미
디지털 혁명과 함께 오늘날 일의 세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대한 변화들, 특히 기후생태위기에 노동법이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양한 부분들이 검토되어야 하겠지만, 특히 무엇보다 노동을 임금노동 즉 고용으로 환원하는 고질적인 제도적 습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노동과 고용은 같은 말이 아니다. 노동은 인간의 신체적ㆍ정신적 에너지의 발현 그 자체이며, 고용은 특정한 시대 특정한 문화적 조건 속에서 노동이 제도화된 형식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자동화 사회에서는 고용에 기반한 포드주의적 혹은 케인즈주의적 모델의 부활은 불가능하다.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고용의 종말은 노동의 재발명을 요청하며, 노동법은 고용을 넘어 전개되는 노동의 지평을 품어야 한다.
나. 기후생태위기와 노동의 의미
나의 노동이 자연을 파괴할 때 나는 그 노동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사업의 조직과 경영이 생태ㆍ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노동조합이나 노사협의회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협의ㆍ교섭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업의 생태적 책임을 제고하고,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노동이 자기 자신과 사회, 그리고 자연에 대하여 갖는 의미에 대하여 성찰하고, 발언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분업은 모든 인간사회에 고유한 특징이다. 탈탄소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게 될 것인가? 사회적 분업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해서 노동의 의미는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가? 이것이야말로 사활이 달린 질문일 것이다.
다. 사용가치로서의 노동
이른바 “자생적 시장질서”(하이에크)를 신봉하는 지금의 체제에서는 시장이 각 상품의 교환가치를 정확하게 가격에 반영한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노동이라는 상품에 대해서도 노동시장에서의 교환가치, 즉 임금이 노동의 가치를 그대로 대변한다고 간주되지만, 그래서 고임금을 받는 의사가 저임금을 받는 청소 노동자보다 훨씬 가치 있는 노동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사실 이 임금에는 노동의 사용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사용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청소 노동자의 노동이 성형외과 의사의 노동보다 가치가 더 낮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 헌법에서 말하는 “적정임금”의 판단기준을 새로 정립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것이다.
라. 직업적 인격과 사회적 인출권
프랑스의 노동법학자 알랭 쉬피오(Alain Supiot)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공동연구한 결과를 정리하여 1999년에 출판한 보고서, <고용을 넘어 – 유럽에서 노동의 변화와 노동법의 미래>에서 “직업적 인격” 및 “사회적 인출권” 개념을 제안했다. 직업적 인격과 사회적 인출권 개념은 고용 또는 일자리의 변동이나 재배치, 나아가 좀 더 일반적으로 노동의 전환이 요구되는 모든 국면에서, 노동자들이 그 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사회적 위험에 보험의 방식으로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개념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각자의 지향과 의지와 판단에 따라 능동적으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자유와 가능성을 높이고자 하는 개념이다.
5. 결론에 갈음하여
상품으로 취급되는 노동이나 양으로 환원되는 추상적 노동이 아니라 구체성을 회복한 살아 있는 노동, 타인에 대한 의무로서의 노동 그리하여 사회적 연대의 토대를 구성하는 노동에 대한 비전, 그리고 구체적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일터와 분업의 재조직, 도시의 재디자인, 주체의 재구성,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재구축. 이런 전망과 상상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