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정] 거리에 섰던 2030 여성들의 시간을 기록하는 연구를 하려 해요
*본 게시물은 <연구원정 부트캠프>에 참여 중인 대원님의 연구과정을 정리한 글 입니다.
🚀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이건 세 번째 글이에요!
첫 번째, [연구원정] 기록되지 않은 여학생,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 운동의 역사를 찾습니다
두 번째, [연구원정]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운동에 대한 선행연구의 모양새
오밤중에 비상 계엄을 듣고 놀라고, 오늘 오후엔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에 방방 뛰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이 거리의 한복판에 계셨나요? 계시지 않았더라도 혹시 생중계 영상으로 함께 해주시지는 않았나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12월 14일에 가결됐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여의도 광장은 사람들로 빽빽했죠.
그 중 단연 주목을 많이 받은 것은 바로 응원봉을 든 2030여성들이었습니다. 집회 현장에서 볼 수 있었던 건,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가득한 2030 여성들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안에 들어있었고요. 사실 언론에서는 갑자기 2030여성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처럼 주목했지만, 사회운동을 2030여성이 이끌어갔던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젊은 여성들은 늘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갔고, 거리에 섰습니다. 다만 이 사회가 그걸 주목하고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죠. 이번 시위를 겪으며 더욱 여성이 거리에 선 시간들을 기록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직관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구들이 이미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었거든요. 여성들이 만들어낸 공간과 시간을, 촘촘하게 연결짓는 연구가 많아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될까요? 혹은 무엇을 상상할 수 있게 될까요?
2000년에도 여전히 거리에 섰던 여성들이 있어요
2030 여성들이 거리의 선봉에 서서 한국 사회를 바꿔낸 역사는 유구합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2000년대에 2030 여성들이 진행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2000년 여성국제법정(공식명칭: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 앞서 여성 대학생들의 시민들의 참여 독려를 위해 2000년 학생법정을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지역별로 양상과 기간은 다양했어요. 2000년 학생 모의법정은 1998년 8월에 기획해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이뤄졌어요. 정대협이 서울대, 이화여대, 홍익대, 명지대 등 국내 50여 대학 여학생 모임과 일본 오비린대학 학생 중심으로 출범 소식을 밝힌 것이 시작이었죠. 어떻게 이 사회에 의제를 던질 것인가, 그 방법들이 차곡차곡 모였습니다. 시위로, 문화제로, 법정의 형태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해결하라고 외쳤죠. 그 시간을 글로 엮어낸 자료는 부족했지만, 당시의 2030여성들은 당신들이 남길 수 있는 사진과 회의록을 철두철미하게 기록해뒀습니다. 저는 이 분들이 남긴 족적을 더듬어 따라가 보려 해요.
여성의 시선에서 질문합니다. ‘객관성’이란 뭐죠?
페미니스트 질적연구에서는 ‘기록이 곧 문헌’이라는 공식을 해체하고 모든 감각으로 들어오는 자료를 기록으로 간주합니다. 심지어는 몸 조차도요. 언제,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왜 만들어진 것인지 밝혔을 때 오히려 객관성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아주 주관적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연구자가 문서의 구성성을 밝혀 문서가 가진 역사성을 드러냈을 때, 비로소 그 문서를 통한 하나의 역사적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도나 해러웨이라는 학자는 이것을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이라는 표현으로 드러내기도 했죠. 연구자가 자신의 특수한 장소성과 위치를 연구에 반영할 때야말로 그가 가진 주관성과 한계를 드러내고 역설적으로 객관성에 더욱 근접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회과학적인 지식 생산의 장에서 여성의 경험과 지식은 지식의 형태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연구는 결국 사회적인 맥락 위에 놓여있기 때문에 연구자와 연구대상의 분리가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페미니스트 질적연구는 흔히 주체와 객체의 분리로 대표되는 ‘객관성’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것이죠.
시간을 찾는 여정은 이렇게 진행될 거에요
연구의 핵심 자료는 두 가지 종류입니다. 하나는 이들이 남겼던 사진과 문서 자료들, 다른 하나는 그 자료를 더 심층적으로 연결해 줄 사람의 이야기들입니다. 연구원정 부트캠프에서는 어떤 자료를 어떻게 배치할 지 고민하는 시간도 가졌는데요.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 회의록의 글자를 들여다보면서 또 눈물을 뚝뚝 흘렸답니다. 누가 크게 주목하지 않아도 뚜벅뚜벅 자신들의 시간을 쌓아 올렸던 당시의 2030 여성들의 마음이 와 닿았어요. 마치 윤석열 탄핵 시위에서, 내가 꼭 가야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처럼 당시의 여성들은 내가 꼭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해결하겠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거든요.
시대를 막론하고 여성들은 길에 나왔고, 저에게 남겨진 과제는 그것들을 차곡차곡 역사로 만드는 일입니다. 큰 숙제를 받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이 글이 잘 정리가 된다면, 이후에 다가올 사람들에게 어떤 용기, 어떤 응원을 줄 수 있을까 기대도 되어요. 연구원정 부트캠프 일원으로 작성하는 글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구독은 저에게 막중한 책임감을 지워주니까요, 혹시 지나가다가 이 글을 읽으셨고 공감하셨다면 구독을 해주세요. 그럼 제가 도망가지 못하고 계속 글을 쓸 수 있을 겁니다 크크. 앞으로도 계속 저는 기록하고 쓰는 역할을 다하겠어요. 20년 뒤에, 30년 뒤에, 100년 뒤에 다가올 여성들을 기대하고 상상하면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