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잃고 집을 만드는 여성들
서울역 광장, 을지로 지하도, 영등포역 주변. 거리의 홈리스를 떠올리면 으레 중년 남성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하지만 홈리스 중에는 보이지 않는 '그녀들'이 있습니다. 안전하지 못한 거리에서 발견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홈리스로 보이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여성들입니다.
이채윤 연구자는 <여성 홈리스의 ‘집’ 만들기 : 서울역 인근 여성 홈리스의 생존과 돌봄>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냅니다. 사회의 편견, 폭력의 위험, 불안정한 삶 속에서도 자신만의 일상을 만들어가는 여성 홈리스들. 그들에게 '집'이란 무엇일까요? 그들은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까요?"
| 홈리스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8년에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활동을 시작하면서였어요. 복지를 다르게 보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홈리스야학은 홈리스행동이라는 단체에서 운영하는데, 주말 배움터로 시작해서 지금은 평일 저녁에도 한글 교실, 컴퓨터 교실, 영어 교실, 노래 교실, 권리 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어요. 야학에서 홈리스 개개인을 만나고, 그들이 겪는 문제들을 보면서 점점 더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특히 홈리스가 한국 사회에서 문제화되는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죠.
| 야학 활동이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제 연구 주제가 여성 홈리스인데, 야학 활동을 하면서 형성된 문제의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어요. 처음에는 여성 홈리스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양동 쪽방촌 주민들의 생애사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재개발을 앞둔 상황에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작업이었는데, 그때 편집자님이 "왜 여성은 없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 질문이 저를 고민에 빠뜨렸어요. 야학에도, 쪽방촌에도 분명 여성분들이 계셨는데, 제가 그동안 그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죠.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비가시화된 여성 홈리스들의 경험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또 당사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어떤 관점으로 볼지에 대해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죠. 홈리스라는 범주 안에서도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고유한지, 또 홈리스라는 열악한 주거 환경 때문에 공통으로 겪는 경험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 “사회복지의 온정주의*적 태도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견지한 공동체와 함께하고 싶었다”는 표현이 있더군요.
중학생 때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있어요. 장애인분의 식사를 도와드리는 과정에서 너무 쉽게 위계가 생긴다는 것을 느꼈어요. 엄청난 권력 차이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었지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라는 구도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위계가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봉사해서 뿌듯하다'가 아닌 '불편하다'는 감정을 느꼈어요.
최근에는 돌봄을 받는 것을 수동적으로만 보지 않으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온정주의적 태도는 누군가의 악의가 아니라, 돌봄 과정에서 쉽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봐요. 노동을 전제로 복지를 주겠다는 식의 조건부 수급 같은 제도적 문제들을 바꿔나가는 동시에, 일상적인 돌봄 관계에서도 온정주의적 태도가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다는 걸 인식하고 경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온정주의: 클라이언트의 자기결정권과 상충될 수 있는 개념으로, 클라이언트의 이익을 위해 사회복지사가 강제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을 말해요.
| 많은 사람들이 홈리스를 단순히 노숙인으로만 이해해요. 이런 이해의 한계는 무엇인가요?
'이슬 맞고 자는 사람'이라는 뜻의 노숙인은 정말 거리에서 지붕 없이 사는 사람만을 뜻해요. 반면 '홈리스'는 훨씬 포괄적인 개념이에요. 적정한 집(home)이 박탈된(less) 상태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쪽방, 여인숙, 모텔 등을 전전하며 사는 분들도 포함되죠. 이들은 일용직 등으로 소득이 생기면 잠시 거처를 구하다가 돈이 떨어지거나 일자리를 잃게 되면 다시 거리로 나오는 '회전문' 상황에 놓여있어요. 단순히 노숙인이라고만 하면 이런 열악한 주거 환경과 문제의 맥락을 살펴보기 어려워요. 홈리스라고 할 때는 더 넓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요. 집이 어떻게 부동산이 되고 자산이 되고 투자의 대상이 되는지, 왜 이들이 홈리스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등의 문제를 함께 볼 수 있죠.
| 시민들이 갖는 홈리스에 대한 편견 중 가장 바로잡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가장 바로잡고 싶은 것은 '게으르다'는 편견이에요. '게으르니까 가난하다'라고 인식하거나 서울역 광장에서 술 마시며 비틀거리는 모습만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죠. 하지만 이런 단편적인 이미지가 홈리스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있어요. 실제로는 경제적 변화, 산업재해, 실업 등 다양한 사회적 계기로 빈곤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여성들의 경우, 소득원이 남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가족 해체가 빈곤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제가 만난 홈리스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세요. 교회에 가서 식사하고, 일용직 일을 하고, 야학에 참여하는 등 자신만의 일상을 만들어가요. 직업이 없다고 단순히 게으르다고 말할 수 없어요.
| 여성 홈리스가 겪는 특별한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문제는 거리에서의 안전이에요. 집이 있으면 외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지만, 집이 없으니 그런 물리적 장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여성 홈리스들은 다양한 생존 전략을 발전시켰어요. 머리를 짧게 잘라 남성처럼 보이게 한다든지, 아주 깔끔하게 다녀서 홈리스로 보이지 않게 한다든지, 혹은 반대로 아주 더럽게 다녀서 접근을 막는다든지 하는 방식으로요. 친밀한 남성 파트너를 두어서 다른 남성으로부터의 보호를 받기도 해요. 하지만 이런 전략들은 모두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대응일 수밖에 없죠.
제가 만난 한 분은 밤새도록 걸어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 때문에 한 곳에 머물거나 잠을 청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건 남성 홈리스와의 중요한 차이점이에요. 남성들이 광장이나 한 장소에 머무를 수 있지만, 여성들은 안전 문제 때문에 계속 이동해야 하는 거죠. 이런 이유로 여성 홈리스는 파악하기도 더 어려워요.
| 연구 논문에서 '규범적 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셨는데, 무슨 뜻인가요?
집을 단순히 물리적 공간으로만 볼 수 없어요.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려면 집 안에서의 젠더화된 관계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거든요. 우리 사회는 집을 ‘정상 가족을 이룬 사람들이 물리적인 공간을 공유하는 곳’으로 당연하게 여겨요. 특히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가정 해체로 인한 여성 노숙인들이 많았는데, 이들을 '가정 해체의 주범'이라고 비난하면서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았어요. 물론 지금은 그런 인식이 많이 변했지만, 여성 홈리스의 경험을 이해하려면 이런 '규범적 집'의 의미를 고려해야 해요. 그들이 떠나온 집이 어떤 집이었는지, 가족관계는 어땠는지 등을 함께 봐야 하는 거죠.
| '집 만들기'라는 개념으로 여성 홈리스의 생존 방식을 설명하셨는데요.
제가 만난 분들은 단순히 '집이 없는 상태'에 머무르지 않아요. 어디서 샤워하고, 밥을 먹을지, 서울역 주변의 지원기관들을 어떻게 이용할지 등을 고민하며 자신만의 일상을 만들어가요. 집이라는 건 다양한 의미를 가져요. 씻는 공간, 자는 곳, 사적인 공간, 친밀한 관계를 맺는 공간 등이죠. 이런 기능들이 파편화된 상황에서 여성 홈리스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런 필요를 충족하려 노력해요. 물론 이 과정이 쉽지는 않죠.
예를 들어 제가 만난 한 여성분은 처음에는 아이와 함께 쉼터를 전전하다가, 아이가 크고 난 후에는 거리 생활을 하게 됐어요. 그분은 교회를 잘 활용하셨는데, 예배에 참여하면 식사나 용돈을 주는 곳들의 정보를 잘 알고 계셨죠.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을 알게 되고 활동반경이 넓어지다 보니, 오히려 그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기도 했어요.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 다시 취약성으로 이어지는 거죠.
| “홈리스를 위한 공간의 '깨끗함'이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는 문장도 기억에 남아요.
이건 정말 복잡한 문제예요. 깨끗한 게 좋고, 위생을 잘 챙겨야 건강도 지킬 수 있죠.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배제하는 요인이 되거나, 자신의 위치가 다름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게 참 모순적이에요. 기억나는 분이 있는데, 정신건강 문제로 청소를 잘 하지 않으시는 분이었어요. 고시원에 사셨는데 한 층에 방이 20개가 있고 화장실은 하나뿐이라 씻기도 어려운 환경이었고요. 이분이 제가 현장 연구하던 공간에 오셨다가 옷에서 빈대가 나와서 한동안 발걸음을 끊으셨어요. 깔끔한 공간에 자신이 벌레를 옮긴다는 것에 마음이 불편하셨던 거라 생각해요.
다행히 그 후로도 다른 활동가들과 관계를 이어가면서 방 청소도 하고, 씻는 것도 함께 해나가기 시작하셨어요. 위생이라는 습관을 함께 쌓아가는 것이 서로를 돌보는 일이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로 '깨끗함'이라는 기준과 규범이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 요양병원의 '사회적 입원' 문제도 언급하셨어요.
요양병원에서는 환자의 치료에 따라 수가를 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홈리스 개개인이 '수익원'이 되는 현상이 있어요. 병원 측에서 차를 몰고 와서 홈리스를 담배 등으로 유인해 입원시키고, 필요하지 않은 향정신성 의약품을 투여하는 등의 인권침해가 있었어요.
반면에 홈리스분들 중에는 잠자리를 찾아 자발적으로 병원에 입원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아는 분은 중간중간 몇 달씩 안 보이시면 병원에 가신 거였죠. 본인의 집에서 지내는 게 가장 좋겠지만, 필요하지 않은 치료까지 감수하면서 병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 ‘노숙인쉼터’와 같은 시설 중심의 복지 정책이 갖는 한계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시설 자체의 문제예요.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집단 거주시설에서는 사적인 공간이 없고, 정해진 규율에 따라 생활해야 해요. 특히 노숙인 시설은 70~80년대의 부랑인 시설에서 시작됐어요. 당시에는 사람들을 잡아 와서 규율을 강요하고 갱생시키려 했죠.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어요.
둘째는 시설 정책이 단계별로 설계되어 있다는 거예요. 건강이 안 좋은 분들은 요양시설, 그다음 재활시설, 일할 수 있는 분들은 자활시설로 가는 식이죠. 결국 노동 시장 복귀를 전제로 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접근은 특히 여성 홈리스의 현실과 맞지 않아요. 여성 홈리스의 경우 가정폭력, 이혼, 정신질환 등 정말 다양한 원인으로 홈리스가 됩니다. 이런 복잡한 삶의 경로에서는 획일화된 시설 정책이 적합하지 않아요. 또 현재 시설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거나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렇다면 시설의 목적 자체를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요?
| 그러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지원주택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우선 주거를 제공하고, 거기에 복지 서비스를 결합하는 방식이죠. 자기만의 방과 화장실이 있는 독립된 공간을 제공하면서,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긴밀하게 연계하는 거예요. 특히 여성 홈리스의 경우 이런 모델이 더 적합할 수 있어요. 기존 시설에서는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규율이 엄격해서 불편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반면 지원주택은 독립된 공간에서 자율성을 가지고 살 수 있어요. 안전한 공간이 확보되니 그곳을 기반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죠.
| 연구자의 위치와 관련된 서술이 인상적이었어요. 연구 과정에서 겪은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으셨나요?
가장 어려웠던 건 대화할 때 '내가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얼마나 같은지'를 생각하는 거였어요. 예를 들어 저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 홈리스분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고, 실제로 여성으로서 겪는 불편이나 위험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관계를 쌓아갔어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조건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과연 이것을 공감대로 삼아도 되는 건가 하는 고민이 들었죠.
한 분은 저를 보고 "여기 살 것 같지는 않은데 어쩐 일로 왔냐?"라고 묻기도 했어요. 서로 다르다는 걸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실제로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오히려 그런 지점을 더 인식하고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장 연구다 보니 정식 인터뷰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도 많았는데, 그런 자연스러운 관계 속에서도 연구자로서의 거리두기와 윤리적 고민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 고학력자이자 관계에서의 ‘올바름’의 문법을 체득한 나에게 익숙한 언어습관과 문화는 여성 홈리스와의 만남에서 반복적인 성찰의 대상이었다. 연구자를 도구로 삼는 현장 연구의 장에서 나의 위치성과 역사, 내가 생애에 걸쳐 형성한 윤리에 대한 감각은 소통 가능한 이야기의 범위에 영향을 미쳤다. 나의 역사와 관계적 감각은 나의 문화적, 계급적 맥락과 분리 불가능하다. 이러한 나의 특성은 여성 개개인과 특정한 관계적 맥락을 만들어 내며 어떠한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어떠한 대화를 불가능하게 했다. 본 연구는 내가 연구 참여자들과 나눈 대화와 내가 보고 들은 내용이 나의 생애 궤적과 위치성을 통과하며 굴절됨을 인식하는 가운데 지속되었다.
| 연구 과정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나요?
한 분이 "나는 행복하다"고 하셨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분은 친구 남편이 "집도 없는 게 뭐가 행복하냐"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으시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으셨대요. "나는 진짜 행복하면 안 되나, 난 집이 없으니까 행복하면 안 되나" 하고요.
이분의 행복이 홈리스로서 겪는 문제가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불행하기 쉬운 세상에서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저항처럼 느껴졌어요. "홈리스는 불쌍하다"라고 하는 사람들을 향한 반문이기도 하죠. 연구자로서 이분들의 행복을 드러내는 게 혹시 구조적 문제를 가리지 않을까 조심스러웠지만, 동시에 이분들이 진정으로 고유한 개인이고 다양한 감정과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숫자로 환원할 수 없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제도와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사회복지를 다시 공부하고 있어요.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면서 배운 관점,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이것을 어떻게 제도적 변화로 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죠.
특히 여성 홈리스처럼 젠더화된 구조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집단들을 어떻게 함께 돌보며 살아갈 수 있을지, 이들을 단순히 시설에 수용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방법은 무엇일지, 그런 고민을 계속하고 싶어요.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고유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겪는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글 | 최성욱
오늘의 인터뷰이 채윤님이 추천한 콘텐츠를 소개해요.
홈리스뉴스
홈리스행동에서 매월 발간하는 홈리스뉴스를 추천합니다. 홈리스의 삶에 기반하고, 홈리스 문제에 대한 선명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 글들이 담깁니다. 홈리스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홈리스뉴스를 구독해보시면 어떨까요. 인터넷으로도, 종이신문으로도 받아볼 수 있습니다. 여성 홈리스 특별판 링크를 첨부합니다.
특별판 보러 가기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268쪽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이 거리에 선 여자들을 만나 이들의 삶을 듣고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의 서사로 말끔히 정돈될 수 없는, 거칠고, 군데군데 비어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기록했습니다. 이 여자들의 기록을 읽으며 함께 난장(亂場)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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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성별>
셀린 베시에르 & 시빌 골라크, 372쪽
왜 집을 나온 여자들은 가난의 굴레에 쉽게 얽혀드는 것일까요? 그간 가난과 계급 격차는 가족 간 불평등의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이 책은 빈부격차가 가족 안 불평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는 새로운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촘촘한 연구를 제시합니다. 여성 홈리스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문제화하기 위해서는 가족에 관한 비판적 사유가 필요합니다. 이 책은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사유를 더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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