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관심 영역 이외의 것들에 대해
*영화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으니, 영화를 보지않으신 분들은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본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2024
감독조나단 글레이저
출연크리스티안 프리델 | 산드라 휠러
정보12세이상 관람가 / 105분 / 드라마,독립예술
개봉2024.06.05 (한국 기준)
겁이 많은 저는, 귀를 틀어막은 상태로 영화 첫 시작을 함께했고, 귀를 틀어막은 상태로 영화가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귀를 틀어막지 않아도 되는 극초반과 극후반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지루하다’로 표현할 수 있지만 문득 문득... '꺼림칙'하고 나중엔 '반성하게' 됩니다.
영화의 첫 장면, 들리는 것에만 집중하기
영화의 첫 장면은 검은색, 그저 검은 바탕입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검은색이 유지되며 기괴한 소리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실제로는 2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고 하는데, 체감상 5분 이상 지속된 것 같았습니다. 땅굴 깊은 곳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는 듯합니다. 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한 명이 아닌 여러명인 것 같기도 합니다. 공포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에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환호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살려달라 외치는 소리같기도 합니다. 현악기의 기분 나쁜 불협 화음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같기도 한’ 추측입니다. 검은색 화면 덕에 추측이 늘어납니다. 혹여나 영화 상영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몇 번을 문쪽으로 시선을 주었지만 영화관 직원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롯이 소리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이 소리는 무엇일까, 하며 공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곧이어 새가 날아다니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이 떠드는 산뜻한 소리도 들리고요. 그리고 한 가족의 소풍 장면을 보여주며, 영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의 청각에만 집중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던지듯이요.
영화의 주인공, 나치 친위대 실제인물 ‘루돌프 회스’ 가족
영화의 주인공은 ‘루돌프 회스’ 가족입니다. 루돌프 회스는 실제 인물로, 제2차 세게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 중령이자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책임자였는데요.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효과적으로 학살하기 위해 소각 시스템을 철저히 이성적으로 의논하는 장면도 나타납니다.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인물인 것이죠. 루돌프 회스 가족은 강제수용소와 담 하나를 두고 2층짜리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가난했던 회스 부부는 커다란 마당이자 정원이 있는 그 집을 굉장히 흡족해 합니다.
영화는 지루합니다. 회스 가족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마치 브이로그처럼요.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집에 들어올 때 신었던 군화를 벗고 생일 때엔 생일 잔치를 합니다. 아빠는 일을 나가고 엄마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봅니다. 새로운 아이가 태어난 것 같아요. 막내는 정원에 핀 꽃을 보고 형•누나•오빠•언니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놀이를 합니다.
영화의 내러티브 방식,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대한 괴리감
그런데 문득 문득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놓고 드러나진 않지만, 저 멀리 보이는 저 굴뚝은 분명히 유대인들을 학살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여주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그 와중에 태평하게 회스 부인은 막내딸에게 꽃에 대해 설명합니다. 색감도 예쁘고 장면도 정말 평화롭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자꾸 뒷 배경으로 향합니다. 그런 제 마음을 감독은 정확히 파고 듭니다.
회스 부인이 집에 놀러온 지인들과 떠듭니다. 지인이 남편에게 폭행 당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지만, 담 너머 자행되고 있을 폭행은 생각거리 조차 되지 않습니다. 집에서 일하는 유대인들도 ‘굳이?’ 싶을 정도로 장면에 툭툭 튀어나옵니다. 지인의 폭행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에도 집에서 일하는 유대인들이, 회스 부인보다 앞에 위치한 상태로, 집안일을 합니다. 화면 중앙을 마구 걸어다니죠. 떠드는 이야기는 들리지만 실제 화면에서는 유대인들의 일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예쁜 정원을 꾸몄다며, 회스 부인은 친정엄마에게 자랑스럽게 정원을 보여줍니다. 정원의 벽 뒤엔, 수감소가 있고 그곳에선 회색 연기가 계속 뿜어져 나옵니다. 누군가가 소리를 지릅니다. 누군가는 명령조의 어투로 사납게 얘길합니다. 회스 부인에게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일까요? 그저 엄마와 따뜻한 대화를 나눌 뿐입니다. 자신이 가꾼 예쁜 정원에 대해서요.
그래서 저는 계속 의문이 듭니다. 이 소리, 나만 들리는 건가? 저거, 나만 거슬리는 건가? 영화의 회스 가족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리고 이것에 무뎌진 듯한 가족들의 모습도 종종 나옵니다.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들에게 빼앗은 옷들 중 고급진 옷은 직접 입어보기도 하고 아들 딸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캐나다 마켓’이라며 은어로 표현합니다. 회스 부인은 평범한 엄마같지만 유대인이 신경에 걸리는 행동을 하면 가차없이 얘기합니다. “내가 남편한테 말하면 너는 한순간 재가 될거야.”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으면서 말이죠. 아이들도 수용소의 소리에 노출되어있긴 마찬가지 입니다. 작은 아들은 군인 피규어를 들고 다니며 역할극을 하는데, 그 대화는 마치 수용소의 관리자와 수감자들의 대화같습니다. 큰 아들은 작은 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온실에 가두는 놀이를 합니다. 수용소처럼요.
앞서 얘기한 장면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회스 가족에게 외할머니인 회스 부인의 친정엄마가 방문합니다. 낮 시간에 회스 부인이 가꾼 정원을 둘러봅니다. “저기가 수용소 벽이니?” “네” 간단한 대화로 수용소의 얘기는 끝을 내고, 꽃을 가꾸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털어놓습니다. 수용소에서 소각되어 나온 재들을 비료삼아 꽃들이 자란 장면을 보여줍니다. 유대인들을 소각한 그 재로, 아름다운 꽃이 핍니다. “그 이가 제게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래요.” 회스 부인은 말합니다. 회스 부인은 아우슈비츠에서의 삶이 너무나도 만족스럽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오래 머무를 것 같던 친정 엄마는 편지를 남기고 떠납니다. 전날 밤 잠에서 깬 친정 엄마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빨간 불꽃과 냄새에 잠에서 깨게 됩니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빛이 사라지자 밤에는 보이게 된 것입니다. 회스 가족과 반대로, 비인간적인 상황을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친정엄마는 떠납니다.
과거와 현재의 만남, 이미 삼켜버린 악에 대하여
그리고 영화가 유일하게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회스 장교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대뜸 헛구역질을 합니다.
김수영의 시 <눈>이 문득 떠오릅니다. 눈과는 정반대로 ‘가래’는 불순물을 의미합니다. 화자는 ‘가래’를 ‘기침’으로 정화하고 싶어합니다. 회스 장교는 ‘헛구역질’로 ‘가래’를 내뱉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나오질 않죠. 수 많은 폭력들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회스 장교의 몸 속엔 자신의 악행이 불순물로 남아 있었던 걸까요? 그것을 아예 없애기 위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뱉으려고 하지만 불순물은 결국 나오지 못합니다. 자신의 악행을 그대로 흡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요.
이동진 평론가는 이것을 ‘소화’해버린 악이라고 표현합니다. 몇 번이고 헛구역질을 하지만 아무것도 뱉어내지 못한 회스 장교가 서 있던 자리를, 지금에 와서야 청소부선생님들이 걸레질을 합니다. 아주 조금의 불순물을 계속해서 닦아냅니다.
저항 정신, 온기로만 볼 수 있는 것
회스 장교가 여느 아빠와 마찬가지로 다정하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줍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인데요. 빵 부스러기 혹은 돌맹이로 길을 만들려고 했던 그 이야기와 맞물려, 한 폴란드 소녀가 나타납니다.
이 소녀가 나오는 장면은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가운 땅들과 수용소 내부 노동 현장과는 반대로, 소녀만이 빛을 냅니다. 소녀가 전달하는 사과들과 먹을거리들 만이 빛을 냅니다. 이 소녀는 실제 존재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당시 아우슈비츠 근처에 살던 10대 소녀 ‘알렉산드라 비스트로니 코워제이치크’는 밤마다 아무도 모르게 노역 장소에 과일을 갖다 놓았다고 하는데요. 일반 카메라로 촬영되는 다른 장면과는 다르게,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녀의 온기를, 따뜻한 마음을, 인간으로서 갖는 따뜻함을 촬영한 것이지 않을까요. 질서 유지를 가장 중요시했던 사회에서 만들어낸 가장 비인간적인 상황, 그리고 그 차가움에 반기를 들며 따뜻한 희망을 전달했던 소녀.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것, 그때가 아닌 지금.
저는 독일어문학과를 전공하는 학부생입니다. 나치가 자행했던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역사도 배웠으며 특히 예술을 좋아하는 저는, 관련된 책들과 영화를 종종 보았습니다.
쉰들러 리스트
사울의 아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더 리더 : 책읽어주는 남자
조조 래빗
많은 분들이 본 유명한 영화들일 텐데요. 제게 이 영화의 공통점은 직설적인 내러티브 방식입니다. 가해자들이 서스럼없이 행하는 악행의 순간들도 직관적으로 드러납니다. 피해자들이 고통에 겨워 죽음을 그저 맞닥뜨리는 장면들도 나타나지요. 인간이 이럴 수 있을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나눠지고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권력 관계를 드러내며, 피해자가 겪는 고통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다릅니다. 집에서 일하는 유대인들을 제외한다면,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뒷 배경 소리로, 뒷 배경 건물로, 뒷 배경 연기로, 마당의 재로, 표현 됩니다. 너도 들리지 않은 척 하고 있지 않아? 너도 보이지 않은 척 한 것 없어? 너가 회스 부부와 다른 점이 없다고?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오스카 수상소감입니다.
All our choices were made to reflect and confront us in the present not to say look what they did then rather look what we do now.우리의 모든 선택은, 그때 그들이 한 일이 아닌 지금 우리가 한 일을 보기 위해, 현재의 우리 자신을 반영하게하고 직면하게 합니다.
감독은 영화에서 다룬 비인간화가 과거만의 일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요. 그리고 이스라엘 희생자들과 가자 지구의 희생자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리고 다시 물어봅니다.
How do we resist?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까요?
온기로 빛을 내던 폴란드 소녀의 저항정신에 대해 얘기하며 수상소감을 마칩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금 이 영화 제목을 떠올려봅니다. 관심·흥미·이익이라는 뜻의 das Interesse와 영역·지역이라는 뜻의 das Gebiet의 합성어입니다. 관심있는 영역…….. 그리고 부끄러워집니다. 나 또한 내가 관심있는 영역만을 바라보진 않았나. 바로 옆 담장 너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는 있지만, 관심을 두지 않고 눈과 귀를 닫지는 않았나. 먼 나라의 일이라고 혹은 나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것들에 대해서 떠올리며,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도 같은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칩니다. 영화를 추천해주신 서창훈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