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노벨문학수상 한강, 소설 속 폭력은 어떻게 구현되는가?
개요 폭력에 대한 전지구적 공감 : 한강의 노벨문학수상 국가폭력 :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상식으로 대변되는 폭력 : <채식주의자> 개인의 세계관으로부터의 폭력 : <채식주의자> 폭력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 폭력에 대한 전지구적 공감 : 한강의 노벨문학수상 10월 10일,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노벨 문학 수상작을 원서로 읽을 수 있다는 벅차오르는 감정이 한결 지난 후, 수상의 이유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2024년 노벨 문학상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작가 한강에게 수여되었다.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은, 전 세계인들의 공감을 받았다는 것. 폭력에 대한 구체적인 개인의 이야기 혹은 목소리를 초연히 담아낸 한강 작가의 글들이 공감을 받은 것이다. 또다시 그 말은 여전히 전 세계에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일 테다. 그것이 물리적인 폭력이든 상징적이거나 명시적이지 않은 폭력이든 간에 말이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가 한강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앞의 세 소설 모두 ‘폭력’에 대한 깊은 성찰이 묻어난다. 앞의 두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는 한국에서 자행되었던 국가폭력에 대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채식주의자>는 일상생활에서 상식으로 작동되는 폭력과 미시적인 차원에서 작동되는 폭력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야 말로 인간 삶의 폭력에 대해 다측면으로 분석했다고 볼 수 있다. 국가폭력 :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국가폭력은 국가권력을 통해 발현된 폭력이다. 폭력에 주체가 국가인 모든 폭력이 국가폭력이다. 넓게 본다면 폭력을 가하지 않더라도 방치하고 묵인한 경우도 국가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폭력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심지어 현대까지도.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4월 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국가에 대한 언론의 탄압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국가폭력이다. 하지만 가장 비통한 지점은 국가 혹은 지배 계급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수십 년이 지났다는 것에 있다. 분명한 가해자가 있음에도 가해자임을 인정하지 않아, 우리는 누구에게 분노해야 할지 모르는 세월을 살아왔다. 나를 단숨에 눌러버릴 수 있는 그 권력 하에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억눌려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폭력에 대한 무감각함과 일종의 정당함을 국민에게 내면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폭력 속에 살고 있음에도 폭력이 없다고 생각하며, 폭력이 당연시되는 사회 속에 존재하고 있다. 한강 작가는 2017년 북핵 문제와 한반도 전쟁 위기에 대한 생각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미국이 전쟁을 얘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으로. 한강 작가는 영토에 살고 있는 개인들은 고려되지 않고 그저 국가 간의 거대한 세력 싸움에만 집중한 부분을 꼬집는다. 그는 이것을 “subhuman”이라고 정리한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이곳에 살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We have several scenarios.” “We will win.” “If war breakds out on the Korean Peninsula, 20,000 South Koreans will be killed every day.” “Don’t worry, war won’t happen in America. Only on the Korean Peninsula.” “서울과 도쿄,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전쟁이 날지도 몰라.’ 말을 배웠던 어린이집 시절부터 모두가 얘기한 그 말. 언젠가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그 얘기를 듣고 자란 한국인들. 국가폭력과 국가 간의 폭력은 우리에게 참 무뎌졌다. 한편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전쟁은 이미 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란과 이스라엘. 이전의 폭력적인 지배에서 벗어나 현대에는 비폭력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때론 ‘신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명시적이고 물리적이고 강제적인 폭력 혹은 지배에서 벗어나, 다양한 신념과 독립적인 제도들이 존재하는 산업적인 사회 혹은 과학적인 사회로 이행되었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강대국 간의 전쟁 빈도는 줄어들었음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 파괴력은 증가했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레 군에 대한 자본집약도도 높아졌다. 전쟁 무기의 치명적 파괴력이 증대되자, 혹자는 강대국들의 군사적 타격 범위가 지구 전체보다 훨씬 클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군사적 효율성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부대의 팀 규율로 혹은 정밀한 후방지원 계획 등으로. - 휴전 국가인 한국은 당연하겠지만 - 세계 어느 나라든, 전시 상황이 되면 모든 국민들이 전쟁 태세에 돌입할 준비가 된다. 자본주의와 군사주의 혹은 군사문화와 전쟁체제가 결합한 사회가 된 것이다. 찰스 틸리에 따르면 사회 내적인 폭력이 감소함과 동시에 국가폭력은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국가의 구석구석 아주 작은 시골까지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이 세밀하고 강력해지니, 국가가 폭력수단을 감독, 통제, 독점하는 경향이 커져 사회 내적으로는 되려 폭력이 감소하고 평화로워지는 것이다.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으로 표현되는 국가의 목적이자 목표가 달성된 형태처럼 말이다. 상식으로 대변되는 폭력 : <채식주의자> 최근 지인들이 결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알게 된 독특한 심지어는 기이한 문화, 청모. 청모는 청첩장 모임의 줄임말이며, 청첩장을 반드시 대면으로 전달하고 그 자리는 청첩장을 주는 사람 즉 결혼 당사자가 밥값을 지불해야 한다. 결혼식의 높은 경제적 부담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정부가 나서서 이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한 것과는 반대로 청모의 문화가 발달한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그 관례가 어디서부터 도출된, 어디에서 야기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요지는, 내가 결혼식장에 방문하여 축의금을 내고 결혼 당사자들을 축하하니, 그 초대장은 대면으로 받아야 하며 그 자리는 결혼 당사자의 지갑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청모에 참여한 나는, 그저 불편함만 느껴지는 자리였다. 처음 보는 지인의 예비 배우자가 나타나 이미 모바일로 받은 청첩장을 재전달하고,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이 자리는 반드시 결혼 당사자가 결제해야 한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결혼 당사자들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 결혼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끌 시끌해야하는 이 자리는 그저 불편만 하다. 몇 번 기이한 청모를 경험하니 이후 나는 온라인 청첩장으로도 충분하다는 답장과 절대 결혼식에 가지 않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 하면서도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드는 - 이상한 변명을 하고 있다. 청모를 처음 가던 날, 엄마 아빠한테 물어봤다. 엄마가 결혼할 때도 청모가 있었어? 아니. 모바일로 청첩장을 전달할 수 없는 그 시기에도 청모는 없었다. 청첩장을 줄 때, 축하하는 자리에 초대하는 입장에서 음식을 대접한다는 건 문제 될 게 없다. 나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한다. 기쁜 자리에 와줬으면 좋겠다, 회포를 푸는 자리에서 행복한 날. 그런데 이상한 점은 기특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마인드에 ‘청모’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점이다. ‘뭐라고 이야기할지 모르니까 이름이 붙은 거지~’ 아니다. 청모라고 이름 붙인 이후 이것은 사회적인 약속으로 자리 잡았다. 결혼 전에 꼭 해야 하는. 결혼식의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는 청년들과는 반대로 청모의 문화가 발달한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만약 A가 결혼식 전 청모를 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청모를 하지 않았으니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더라도 가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청모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A는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바라볼 가능성도 존재한다. 상식을 누가 생산하고 또 재생산하느냐, 는 학자마다 혹은 학파나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이것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네오맑시스트 안토니오 그람시는 ‘헤게모니’라는 단어를 통해 물질 토대를 갖고 있는 지배계급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이슈들을 common sense 상식으로 자리 잡게 한다고 주장했다. 미셸 푸코는 우리가 자유 속에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유 속에서 무엇을 욕망하도록 모세혈관부터 주입’되고 있다고 말한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자명하지 않은 것 - 여기서 자명하지 않은 것은, 한가지로 통일할 수 없는 다양성을 뜻한다 - 을 자명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상징적 권력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소설 <채식주의자>에서는 한국 사회에 깊이 박힌 가부장제의 현황과 당연해진 식생활(육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사회에서 상식으로 자리 잡은 제도나 신념, 가치들을 통해 진정으로 이득을 얻는 사람 혹은 집단은 누구인지 고민 해 봄직하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상식이 개인의 고유성과 개별성을 존중하지 못한 채 남아있다. 이런 상식들은 소설에서도 나타나듯이 가부장제처럼 뿌리 깊게 박혀있기도 하지만, ‘국룰’이라는 단어처럼 가벼운 농담거리로 내재화되어 있기도 하다. 연봉 수준에 맞춰 국룰로 사야 하는 자동차가 정해진 사회는, 자신만의 의견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폭력을 가한다. 개인의 세계관으로부터의 폭력 : <채식주의자> 세계관은 독일어 das Weltanschauung에서 시작되었다. Welt는 world 세계를 뜻한다. Anschauung은 동사 anschauen의 명사형이다. anschauen은 an + schauen. ‘보다’라는 뜻의 schauen과 ‘목표의 방향으로’라는 뜻의 an이 합쳐졌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닌 관조하다, 살펴보다, 응시하다 등의 뜻이다. 결론적으로 세계관이라는 것은 세계를 관조하고 응시하는 시각을 뜻한다. 칼 만하임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특수한 세계관을 갖고 세계를 본다. 그렇기에 100명이 있다면 100개의 세계관이 있다. 한 존재의 사회구조적인 위치에 기반하여 생성되는 세계관은 존재구속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세계관은 사회 안에서 어떤 위치에 종속되어 있는지에 따라 다른 시각을 갖게 한다. 이는 타인의 세계관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과 연결된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은 ‘영혜’지만 영혜는 서술자가 되지 않는다.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언니. 세 시점으로 영혜를 바라본다. 남편은 영혜를 ‘같이 살기에 무던한 여자’라고 바라본다. 누구와 같이 살기에 무던할까. 지극히 남편의 기준에서 같이 살기에 무던한 여자다. 남편의 세계관에서 바라볼 때의 영혜는 무던한 여자다. 영혜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당연히 서로의 관계로부터 나오는 사랑은 없다. 가부장적인 남편에게 잘 맞는 영혜는 그렇게 선택 ‘당한다’. 영혜의 형부는 영혜를 욕정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형부의 세계관에서 영혜는 욕정의 대상이자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줄 여성이다. 자신이 욕망했던 영혜의 몸에 꽃을 그리는 작업이 우연하게도 영혜에게 삶을 찾아주는 계기가 되지만, 그것 따윈 형부에게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작품을 완전하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영혜의 언니는 영혜에게 모성애를 느낀다. 한없이 도와주고 아파하는 사람이다. 몸에 꽃을 그리면서 안정을 찾는 영혜에게 언니는 ‘아직 아픈 아이’일 뿐이다. 언니의 세계관에서 영혜는 보살핌을 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타인의 모습을 타인에 투여한다. 그렇게 폭력을 행사한다. 내 눈으로 바라보는 타인이, 그래야만 한다고 말이다. 나의 세계관에 맞지 않는 타인은 비상식적이고 이상한 존재다. 한편 우리는 타인이 될 수 없다. 즉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세계관을 갖게 되는 그 순간부터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폭력이 인간 존재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세계관으로부터의 폭력을 드러내기 위해, 한강 작가는 서술자를 영혜가 아닌 영혜 주변 인물로 구성했다. 하지만 영혜 또한 이 세계관으로부터의 폭력을 행한다. 예컨대 그 어떤 폭력을 행하지 않는 나무가 되고 싶어하지만, 실은 영혜의 꿈 속 나무는 뾰족한 가시로 영혜에게 폭력을 행한다. 3부 나무불꽃에서 나무들은 ‘불꽃’처럼 보이며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영혜 또한 그 자신의 세계관에 갇힌다는 것. 우리는 결국 폭력성과 떨어질 수 없음을 드러낸다.  폭력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 최근 나는 캠페인즈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총 3편의 원고를 작성하였다. 글을 쓰기 위해 당시의 나를 다시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무서워서 돌아보지 못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나는 금방 그곳으로 이동했고 또다시 두려움을 경험했다. 이후 쳐다보지도, 가보지도 않았던 이태원에도 방문했다. 근 2년간 가보지 못했던 곳(못했던 걸까, 안 했던 걸까 여전히 모르겠는 그곳). 뉴스 기사의 사진으로만 바라보았던 이태원이었다. 뉴스 기사들 속의 이태원은 적막했다. 실제 방문해 보니 다시금 활기를 찾고 있었다. 대규모 압사가 일어났던 공간은 여전히 어두운 분위기가 있는 듯했으나 이태원의 대표 술집이라고 불리는 가게들은 웨이팅을 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 이태원참사에 대한 얘기도 했다. 나만 그랬는지, 너는 어땠는지. 돌이켜보니 나는 지난 2년 동안 단 한 번도 이태원참사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참사 직후에 가족들과 뉴스를 보며 간간히 이야기를 나눌 때도 나는 입을 닫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참사를 비용의 이슈로만 바라보고 나에게 동의를 요청할 때도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 대화가 그 순간이 당황함을 넘어선 황당함이었고 무엇이라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고 감정은 차올랐지만, 혀에 걸려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말이 나오지 않는 거였을까. 나 또한 침묵과 외면으로 폭력을 행하고 있었다.  폭력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행했던 폭력을 반성하며 돌이켜보는 과정일 테다. 국가폭력에 대해 내가 저항하지 않고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았는지, 상식이라는 틀로 누군가에게 행했던 폭력은 없었는지, 그저 나의 시각에 비추어 타인을 배제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한강 작가는 글을 통해 그만의 언어로 그 과정을 반복했다. 그의 소설에는 유독 ‘꿈’이 많이 나타난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 혹은 바꿀 수 없는 권력에 맞서는 행위를 글로 승화하면서, 그 과정이 자연스레 꿈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한국에서 겪는 다면적 폭력에 대한 글을 작성했음에도, 여전히 폭력을 - 혹은 폭력에 가까운 - 시선으로 그를 보지 않았던가. 한강의 남편이 누구고. 한강의 아들은 누구고. 한강의 집안 내력에 관해 이야기하고. 한강의 출신 학교를 이야기하고. 한국의 대표 얼굴이 된 것처럼 이야기했다. 한국인이라는 명목으로 받는 관심에 어쩌면 한강 작가는 씁쓸한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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