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사태에 묻혀선 안될… 반도체 기업의 ‘입틀막’ [열아홉, 간이 녹았다 7화]
앞서 작성했던 기사가 질긴 인연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11월 기자는 고소당했습니다. 명예훼손 및 허위 사실 유포 등의 혐의였습니다.
내란 사태로 많은 언론의 눈과 귀가 국회와 대통령실로 집중되는 시기에, 기자는 인천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입틀막’ 당해도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해야 할 일도 많았습니다.
11일 오전 11시 30분 인천 영종도에 있는 스태츠칩팩코리아 앞으로 약 30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맞은편에는 그 모습을 촬영하는 회사 관계자도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옆구리에 서류 봉투를 끼고 다니면서 기자들에게 접촉했습니다. 봉투 안에 담긴 건 사측의 입장문이었습니다.
“회사명이 직간접적으로 노출되거나 사실과 다른 보도로 인해 당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드립니다.”(스태츠칩팩코리아 입장문 일부)
기자회견 이후에 입장을 밝힌 것도 아니고, 기자회견 시작과 동시에 ‘법적 조치’를 운운하는 입장문을 배포하는 회사라니. 기자회견을 시작도 하기 전에 ‘기사 쓰면 고소당할 줄 알아라’ 하고 엄포를 놓은 것과 다름 없습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를 상대로 ‘입틀막’ 하던 회사는 다른 언론사의 입까지 틀어막으려 했습니다.
회사의 ‘경고’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오늘(12일) 정오 기준 총 10군데 언론사에서 기자회견에 관한 보도를 했습니다. 그중 회사의 실명을 언급한 곳은 미디어오늘, 한겨레, 인천투데이 3곳이었습니다.
기자는 지난 9월부터 반도체 공장에 취업을 나간 직업계고 학생 선우(가명) 씨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그는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하고 약 1년 2개월 만에 간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생사의 문턱을 넘자, 산재 승인이라는 지난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열아홉이었습니다.(관련기사 :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
선우 씨는 반도체 후공정 업체인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4조 3교대 형태로 근무했습니다. 6일 출근하고 이틀 쉬는 식이었습니다. 6일 근무 중 하루 이상 연장 근무는 필수였습니다. 3년간 함께했던 담임 교사가 소개해준 일터는 이런 곳이었습니다.
그래도 선우 씨는 학교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자에게도, 학교에 대해 취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의사를 밝혔습니다. 사회에 나와 몸이 망가져도 학생들에게 교사는 여전히 애틋한 사람이고, 학교는 따뜻한 공간입니다.
선우 씨와 같은 학생들은 지금도 스태츠칩팩코리아로 출근합니다. 학교가 소개해준 곳이니 안전과 미래가 보장돼 있을 거라고 믿고, 돈을 많이 주니 나쁘지 않은 직장이라고 여깁니다.
실상도 그럴까요. 회사는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이곳에도 유해물질은 가득합니다.
선우 씨는 세정실에 들어가면 독한 화학물질 냄새가 났다고 기억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건 입술이 비칠 정도로 얇은 덴탈 마스크와 방진복이었습니다. 세척을 하다 보면 소주병을 코에 댄 것처럼 냄새가 심했고, 하루 한두 차례씩 세정실을 사용했습니다.
유기용제가 담긴 통에 손을 넣어 세척하다 보면 비닐장갑은 찢어져 피부가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손이 하얗게 일어나고, 피부 껍질이 벗겨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회사 측은 이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사후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진실보도를 한 기자를 고소까지 했습니다. 저희 아들이 겪은 일이 모두 가짜라고 말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이것은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라고 생각합니다.”
이날 기자회견을 위해 울산에서 인천까지 선우 씨의 부모님이 찾아왔습니다. 비록 기자회견이지만 선우 씨를 회사에 보낼 수 없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선우 씨는 지금도 언제 간을 재이식 받을지 모르는 불안을 평생 안고 산다며, “그 억울함과 우울감으로 힘들어 한다”고 전했습니다.
선우 씨는 클라이언트의 주문에 따라 제품을 바꿔가며 일했습니다. 그때마다 새로운 화학물질, 새로운 작업방식이 필요했고, 심지어 회사에 설비를 다시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매뉴얼이나 공정 교육은 없었고, 일을 던져주고 옆에 물어보면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선우 씨의 동료들은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하기도 했습니다. 주 단위로 바뀌는 화학제품에 회사가 ‘친환경 제품’이니 안전하다고 강조했지만, 확인할 길도 없습니다.
선우 씨는 역학조사를 진행한 연구원에게 추후 이메일을 보내 회사가 주장하는 내용에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역학조사에 선우 씨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산재 ‘불승인’을 통보받았습니다.(관련기사 : <술 때문에 19살 간이 녹았다? 당신들이 틀린 이유>)
선우 씨는 근무한 지 7~8개월째부터 몸 상태가 악화됐다고 느꼈습니다. 의심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화학물질이 다량 포함된 플럭스를 수동으로 직접 짰던 날. 그날따라 냄새도 심하고 색깔도 평소와 미묘하게 달랐던 날. 그때부터 극심한 피로가 느껴졌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옆에서 근무하던 동료 A 씨는 벽에 기대 졸고 있는 선우 씨를 깨우기도 했습니다. 선우 씨는 전날 잠을 못 자거나 게임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피로 때문에 퇴근하면 지쳐 쓰러지듯 잠들어도 잠은 좀처럼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A 씨는 2021년 4월부터 선우 씨를 깨웠다고 기억했습니다.
지난 7월 전북 전주시에 있는 한 페이퍼 공장에서 현장실습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회사는 이때 유독가스 누출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회사에서 노동자가 죽었는데도 회사 책임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왜 현장실습생들이 이렇게 불안전하고 위험한 일터를 마주해야 할까요. 선우 씨의 주치의가 “작업 환경이 의심된다”고 말한 일터에 여전히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당사는 당사에서 근무하였던 직원 김선우 씨의 건강 상태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입장을 말씀드립니다.”(스태츠칩팩코리아 입장문 일부)
회사는 ‘유감’을 표했습니다. 유감(遺憾)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습니다.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유감은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 느끼는 감정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사과할 때 쓰는 말이 아님에도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심지어 이러한 입장문은 선우 씨의 부모님에게는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입장문 2장을 프린트한 서류를 현장에 왔던 기자들에게 전할 뿐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저와 제 아들은 회사 측에 산업재해 피해에 대한 인정과 진심 어린 사과, 정당한 보상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향후 예방조치가 확실히 이루어질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우리의 요구는 단순히 보상을 넘어서, 아들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회사의 근로환경 개선을 촉구합니다.”(김선우 씨 아버님 발언 중)
이날도 선우 씨는 회사로부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고, 입장문조차 건네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회사는 선우 씨에 대한 2차가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음주습관’을 지적하다가 이후에는 ‘코로나 백신 부작용’을 이야기했습니다.
“김선우 씨는 2021년 4월경 ‘위험한 음주상태’라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고, 2021년 11월경 코로나 19 백신 주사를 맞은 후부터 급격하게 몸이 악화된 후 2021년 12월 간 질환의 진단을 받았다는 점이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스태츠칩팩코리아가 게재를 요청한 정정보도문 일부)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언론중재위원회(이하 언중위)에 조정신청을 했습니다. 회사가 작성한 정정보도문을 게재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관련기사 : <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기자가 취재한 내용과 완전히 다른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게재할 수는 없었습니다. ‘반론’으로 입장을 싣겠다고 하자,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이를 거절하고 ‘정정’보도를 고집했습니다. 심지어는 기사의 노출을 막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조정은 불성립됐습니다. 지난달 28일의 일입니다.
반론 취재 당시 회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게 보도될 만한 일인가요?”, “왜 지금 갑자기 보도를 하려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회사에 손해가 생기면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와 같은 말이었습니다.
이들은 회사 이름이 실명으로 보도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배포한 그들의 입장문에도, ‘실명 보도’를 유의하라는 경고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회사가 이토록 언론의 입을 막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도 매년 수백 명의 직업계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이란 이름으로 이 회사로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곳이 안전한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또, 선우 씨가 아픈 뒤에 회사는 어떠한 대책을 마련하고 노력했는지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기자에게 고소로 대응했습니다. 향후 민사 소송을 이어가겠다고도 예고했습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의 소송대리인은 법무법인 율촌 소속 변호사입니다. 율촌은 과거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 노동자 및 유가족 등과 대립한 적이 있습니다.
고 황유미 씨는 삼성반도체에서 1년 8개월 근무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유가족 등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때 근로복지공단이 소송대리인으로 내세운 법무법인이 바로 ‘율촌’이었습니다.
“기자님, 고소 건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저희 때문에 그런 것 같아서 죄송해요.”
선우 씨 가족들은 기자를 만날 때마다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정작 그들은 그 누구로부터도 미안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지만.
“교육청과 학교에도 바랍니다. 아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고통을 받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연락 한번 없었습니다. 취업률에만 신경 쓰지 마시고 실습생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모니터링을 통해 학생들이 안심하고 건강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김선우 씨 아버님 발언 중)
스태츠칩팩코리아의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사측 입장문 전문을 싣습니다.
당사는 당사에서 근무하였던 직원 김○○의 건강상태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입장을 말씀드립니다.
2. 그러나 김○○ 씨의 간 질환은 당사의 업무환경과 인과관계가 없고, 이는 근로복지공단의 면밀한 역학조사 결과 명확히 확인된 사실입니다. 역학조사는 수차례 진행되었고, 전문의 등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에 의해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3. 역학조사 당시, 김○○ 씨가 접촉하였던 세척 물질이 물(water)에 불과하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세척 물질로 물 대신 에탄올을 사용하였으나, 에탄올은 손 소독제 등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소독 물질에 불과하여 이 역시 간 질환과 관련이 없습니다.
4. 당사의 업무 환경은 대한산업보건협회의 작업환경측정 결과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특히 김○○ 씨가 근무했던 환경에서 간 질환을 유발하는 인자가 대부분 불검출되었고, 검출이 되었더라도 검출한계 미만 수준에 불과하였습니다.
5. 당사는 매월 2시간씩 법정 교육 및 매년 2회 MSDS 교육을 실시하여 직원들이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6. 당사의 동일한 공정이 운영된 약 20여년 간 김○○ 씨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질환이 발병한 전례가 없고, 김○○ 씨와 함께 근무하였던 100여 명의 직원에 대해서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질환이 발병한 적이 없습니다.(특히 김○○ 씨는 당사에 입사하여 질병휴직을 하기 전까지 1년 2개월 가량 근무하였는데 당사 직원 대다수가 김○○ 씨보다 훨씬 오랜 기간 근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에게서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질환이 발병한 사실이 없습니다.)
7. 당사는 직원들의 안전한 업무환경 조성을 우선 순위로 삼고 노력하여 왔습니다. 향후에도 안전한 업무환경에서 직원들이 근무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8. 사실이 위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명이 직간접적으로 노출되거나 사실과 다른 보도로 인해 당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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