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윤석열은 태종, 한동훈은 세종”… 더 읽기 힘들었다 [윤석열을 감옥으로 20화]
이 시국에 교보문고에서 <73년생 한동훈>(심규진, 새빛, 2023년)을 샀다. 비상계엄 사태 후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말을 바꾸고, 총리와의 위헌적 공동 국정운영 발표를 한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그후 ‘인간 한동훈’이 더 궁금해졌다. 고난은 서점에서부터 시작됐다. <73년생 한동훈>은 조국 전 의원이 쓴 <디케의 눈물>, 참여정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가 쓴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사이에 놓여 있었다. 표지에 ‘한동훈’이 새겨진 책을 사려니 괜히 주변 눈치가 보였다. 응원봉을 든 수만의 시민이 매일 밤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를 에워싼 채 “윤석열을 탄핵하라”, “국민의힘 해체하라”를 외치는 요즘 아닌가. 책을 집어들기 전 주변부터 살폈다. 보는 사람이 없는 틈에 <73년생 한동훈>을 들고, 재빨리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원이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불온서적이나 ‘19금 도서’를 사는 것도 아닌데, 자기검열이 저절로 작동하다니. 망설이다 무인계산대에서 직접 결제하는 방법을 택했다. 책을 가방에 넣고 용산역 인근 스타벅스로 향했다. 지난 11일의 일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카페의 넓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73년생 한동훈>을 올려놓자, 오른쪽에 앉은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눈빛이 이상했다. 나는 재빨리 제목이 보지 않게 책을 뒤집었다. 이번엔 옆자리 20대 여성의 눈이 책 뒷표지에 적힌 문구에 고정됐다. “2024년 한국 정치 빅뱅, 신개념 신세대 보수 한동훈이 온다!” 진퇴양난. 난 목에 두른 목도리로 풀어 책을 덮고, 음료를 주문하러 카운터로 갔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본격적으로 인간 한동훈을 탐구하는 시간. 서점에서의 난관, 옆 사람 눈빛에서 느껴진 난처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정한 난해함은 책에서 튀어나왔다. 저자 심규진 스페인 IE대학교 교수는 국민의힘 산하 여의도연구원 테이터랩 실장으로 일한 적 있다. 정치적 편향은 예상했으나, 윤석열-한동훈을 향한 찬양고무가 이 정도일 줄이야. 서두에 등장하는 ‘정치인 한동훈’에 대한 설명을 보자. “강남 8학군 출신이고, 경제적, 문화적, 지성적인 결핍 없이 유복한 환경에서 바른 가치관과 반듯한 매너를 체화한 듯 보이는 그의 배경은 분명한 강점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의 최고 아웃풋이라고 할 수 있는 지덕체를 갖췄다는 것이다.” 내용은 이렇게 이어진다. “요즘말로 풀어보자면, 비판적 지성과 젠틀한 인품, 세련된 스타일 모든 면에서 빠질 것이 없는 ‘엄친아’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좋게만 쓰면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 법. 계속 읽어야 하나? 일단 페이지를 더 넘겼다. 찬양에 더해 이번엔 한참이나 빗나간 예측이 독서 몰입을 방해했다. 이 책은 2023년 12월 20일 세상에 나왔다. 한국 정치가 워낙 다이내믹해 정국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만, 전문가라면 이걸 감안해 발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책이 나온 그 즈음, 윤석열-한동훈의 브로맨스는 이미 파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한동훈은 최고 권력인 대통령과의 두터운 브로맨스 서사, 1970년대생의 젊음, 이준석이 보여줬던 어떤 말싸움에도 지지 않는 민첩한 언변, 오세훈처럼 신사 같은 매너와 태도, 그리고 홍준표와 같은 확고한 이념적 선명성과 대야투쟁력을 모두 겸비하고 있다. 아마 그 자신도 누구보다 자신의 강점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동훈은 2024년 봄부터 ‘비윤계 핵심’으로 자리매김했고, 비상계엄 사태 후 홍준표 대구시장은 입만 열면‘한동훈 탈당’을 요구하고 있다. 발간 1년도 안 돼 책 내용이 ‘올드’해지고 말았다. 심규진 교수는 “세종은 과연 아버지 태종으로부터 안전하고 무탈하게 권력을 상속받은 것일까?”라고 물으며, 윤석열을 조선시대 태종, 한동훈을 세종에 비유하면서 권력의 속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심복은 물론이고 외척까지 ‘처단’한 태종의 결단과 덕에 세종이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성군이 됐다는 잘 알려진 이야기. 저자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사실상 보수진영의 적자, 윤석열의 후계자로 입지가 굳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동훈의 차기 집권은, 역사적인 전례를 찾아 보자면, 태종의 유훈을 물려받은 보수의 ‘세종시대’를 예감케 하기도 한다.” 저자는 윤석열(태종)의 담금질을 견뎌야 한동훈(세종)이 더 좋은 정치인으로 거듭난다고 주장하는 듯한데, 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의 현실은 정반대다. 윤석열은 가족을 처단하긴커녕 “아내 한 명 지키려다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심규진 교수는 ‘리더십이란 스킨십, 배신을 당하지 않는 윤’이란 챕터에서 윤석열을 이렇게 평가한다. “윤석열의 인간미는 넉넉한 낙천성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시 9수를 해도 낙천적이었고 친구들 술자리며 결혼식 함잽이까지 다 챙겼다는 일화들은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좋은 교육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난 사람 특유의 ‘안정감’을 나타내는 것 같다.” 아직 ‘어, 이게 뭐지?’ 반문하기는 이르다. 내용은 이렇게 이어진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사람, 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을 미워할 수 없는 한국적 정서도 무시할 수 없다. 시장통을 다니면서 유세를 하던 윤의 시장 먹방을 보면서 뭔지 모르게 힐링되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말이다.” 책에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아울러 윤석열이 가지고 있는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요리 만드는 걸 즐기는 디테일한 감수성과 센스다. 보통 꼰대를 면치 못하는 구태 정치인들은 가부장적 사고에 젖어 있고 군대식 위계 질서에 익숙해 시대 트렌드를 못 따라간다.” 이쯤 왔으면 그만 책을 덮는 게 좋지만 진도를 좀 더 나갔다. 내란수괴 윤석열 때문에 한국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 지금, 결국 책에서 이런 내용까지 보고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는 미국 순방 당시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영어 연설을 했을 때였다. 윤 대통령의 정확한 딕션과 화통한 발성은 대중적 관심과 호감을 증대하는 매우 큰 요소이다. 평소 영어 콤플렉스, 미국 콤플렉스가 심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드디어 노인 대통령이 아닌 큰 국제 무대에서 당당하게 기죽지 않게 멋진 연설을 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국뽕’이 찬 것은 당연한 일이다.” <73년생 한동훈>을 어느 정도 읽고 스페인에 있는 저자 심규진 교수에게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심 교수는 페이스북에 ‘광기의 시대’ 등의 글을 올리며 윤석열 탄핵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다. 윤석열-한동훈의 브로맨스는 오래전에 깨졌듯이, 심 교수의 한동훈 찬양도 오래 안 갈 듯하다. 심 교수는 윤석열 탄핵을 찬성한다는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을 비판하는 글을 11일 페이스북에 올리며 이런 말도 했다. “사실상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한 군중의 광기가 흘러 넘치는 이 시점에 여론재판식의 탄핵몰이에 찬성하는 것은 정치적 원칙, 도의 그리고 정치적 신뢰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점..”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는 윤석열 탄핵 찬성 의사를 밝혔다. 국회의 14일 대통령 탄핵안 표결 이후, 태종과 세종으로 비견된 윤석열-한동훈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정치가 유독 다이내믹한 한국이니 예측이 쉽지 않다. 하지만 <73년생 한동훈>을 쓴 심규진 교수라면, 단순하고 간단하며 아주 거친 예측을 해버릴 것만 같다. 틀리든 맞든, 내용에 깊이가 있든 없든 말이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
탄핵송 고소당한 가수 백자, ‘탄핵캐럴’로 돌아오다[윤석열을 감옥으로]
대통령 풍자 탄핵송을 만들었다가 고소를 당한 가수는 ‘탄핵 캐롤’을 들고 화려하게 돌아왔다. 11일 오후 2시,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용산역에서 가수 백자를 만났다. 백자는 앞으로는 백팩을, 뒤로는 기타 가방을 메고 등장했다. “오늘(11일) 저녁에 춘천 거두사거리에서 비상시국대회가 있거든요. 거기서 또 노래를 불러야 해서.” 가수 백자(본명 백재길, 52세)는 1999년부터 현재까지 민중가요 노래패 ‘우리나라’의 멤버이자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탄핵송 “탄핵이 필요한 거죠”를 부르다, 이제는 탄핵 캐럴 “탄핵이 답이다”를 외치고 있는 가수 백자. ‘탄핵이 답이다.'(탄핵이 다비다) 가수 백자가 캐럴 ‘펠리스 나비다드(Feliz navidad)’를 ‘탄핵이 다비다’로 개사해 만든 노래다. 윤석열의 비상계엄령 선포 다음 날인 12월 4일, 백자가 국회 앞 촛불문화제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알려졌다. 이제는 전국 각지의 촛불집회에서 ‘탄핵이 다비다’가 울려퍼지고 있다. “계엄 다음 날 촛불문화제에서 ‘탄핵이 다비다’를 불렀는데, 현장 반응이 좋더라고요. 현장에서 젊은 여성들이 많이 나왔고 그분들이 촬영을 정말 많이 해갔어요.” 온라인상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다. 유튜브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에도 올랐다. X(구 트위터)에선 영상 조회수가 907만 회를 넘어섰다. 누리꾼들은 탄핵 캐럴의 중독성과 개사 센스를 극찬했다. 탄핵이 답이다탄핵이 답이다탄핵이 답이다이러다간 나라 망한다 탄핵이 답이다탄핵이 답이다탄핵이 답이다우리 살길 탄핵이 답이다 윤석열 꺼져줘야 메리크리스마스김건희 벌받아야 메리크리스마스국힘당 해체해야 메리크리스마스지금 당장 탄핵해 (탄핵 캐럴 ‘탄핵이 답이다’ 가사 전문) “대전에서 (지난 8일 서광장 시위) 공연 끝나고 많이들 같이 사진 찍자고 오더라고요. 공연 끝나고 내려왔으니까 제가 ‘탄핵 캐롤’ 부른 가수라는 걸 알고 있는 거죠. 다들 그냥 (지나다닐 때는) 잘 몰라요.(웃음)” 노래 ‘탄핵이 답이다’는 어떻게 만들게 된 걸까. “박근혜 정부 시절에 민중가수 연영석 형이 ‘근혜는 아니다’라는 캐럴송을 만들었어요. 당시에 너무 재밌었거든요. 윤석열 정부 들어서고 첫 성탄절 때 ‘뭘 할까’ 고민하다가 먼저 ‘퇴진이 답이다’로 만들었어요. 그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작년에 ‘탄핵이 답이다’로 수정을 했죠.” 백자는 ‘촛불가수’로도 알려진 싱어송라이터다. 그는 윤석열이 대선주자로 언급되기 시작한 2020년부터 윤석열과 부인 김건희 씨를 풍자하는 노래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백자는 대통령 풍자 노래를 만들었다가 KTV(한국정책방송원)로부터 형사고소도 당했다.(관련기사 : “풍자 유튜버 고소? 명품백 받은 죄인부터 잡아가라”) 윤석열과 대통령실 직원, 그리고 대통령실 합창단 ‘따뜻한 손’이 가수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을 풍자한 영상을 만들었기 때문. 제목은 <대통령실이 부릅니다. ‘탄핵이 필요한 거죠~’>. 백자는 지난 8월 1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출석해 피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KTV를 통해서 저를 고소한 것도 일종의 ‘입틀막’을 한 거잖아요. 총을 들이대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민주주의를 완전히 훼손하는 일을 한 거죠. 이제는 온 국민들을 대상으로 고소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칼로… (입 막으려 했으니) 시민들이 (계엄을) 막아서 다행인 거지 안 막았으면 큰일 나는 거였습니다.” 윤석열은 지난 3일 오후 10시 30분경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오후 11시 5분경 경찰 병력이 투입돼 국회의사당 출입문이 폐쇄됐다. 백자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로 달려갔다. “노래 연습을 하고 집에 가려다가 계엄 소식을 알게 됐어요. 바로 아내랑 아들한테 전화하고. 국회로 모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바로 갔죠. 사실은 그런 생각을 했어요. 결국은 한국 민주주의는 피를 부르는 건가. 피를 원한다면 먼저 가서 흘려야 하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국회로) 갔습니다.” 백자의 고향은 전남 장흥군이다.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고향과 같다. <소년이 온다>를 쓴 한강처럼, 백자에게도 5.18 광주항쟁의 기억은 남다르다. “5.18 당시에 저를 제외하고 다른 형제들은 전부 광주에 있었어요. 저는 6남매 중에 막내(당시 9살)여서 부모님이랑 시골에서 살았거든요. 당시에 모든 소식이 다 차단됐잖아요. 아버지가 장흥에서 광주까지 걸어갔습니다. 차로 3시간이 넘는 거리를요. 자식들 살아 있나 본다고. 그런 민주화운동 영향을 어려서부터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내 삶에서 민주주의의 어떤 선험적 경험이 있는거죠.”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 이후 백자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거의 매일 촛불집회 현장으로 출근하고 있다. 지난 7일 윤석열 탄핵소추안 표결이 ‘불성립’된 날도, 그는 국회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날 탄핵(안) 통과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국민의힘이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완전히 내란범이 된 거죠. 다음 날 대전에 공연하러 갔는데, 젊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더라고요. 사실상 탄핵이 부결됐는데도, 패배감이 전혀 없더라고요. 청년들을 보면서 공연을 하면 에너지가 쫙 몰려오는 게 느껴집니다.” 탄핵 캐럴에 대한 정치권 반응도 뜨겁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일 국회 앞에서 동료 의원들과 함께 휴대전화 불빛을 흔들며 탄핵 캐럴 ‘탄핵이 답이다’를 불렀다. 서영교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중랑구갑)은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비상계엄 관련 현안질의)에서 탄핵 캐럴 ‘탄핵이 답이다’를 부르며 김선호 국방부 차관을 질타했다. 탄핵 캐럴 챌린지 영상도 등장했다. 젊은 여성 3명이 탄핵 캐럴 ‘탄핵이 답이다’에 맞춰 격정적인(!) 춤을 추면서 챌린지 영상으로 퍼져나갔다. 이재명 대표도 해당 영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산 정상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거나,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노래가 울려지는 등 탄핵 캐럴 챌린지 영상이 줄이어 나오고 있다. 백자는 2030 젊은 세대에 고마음을 표했다. “‘젊은 세대는 정치의식도 없고 엉망이다’ 그런 얘기를 그동안 정치권에서 얼마나 많이 이야기했습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죠. 저는 2030이 이번 계엄을 저지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백자는 윤석열을 향해 한마디를 남겼다. 풍자와 해학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다. “지은 죄만큼 벌을 다 받고, 감옥에서 거의 (평생) 살아라. 김건희도. (윤석열이) 정치 시작하면서 그토록 얘기했던 공정과 상식, 그게(윤석열이 감옥 가는 게) 가장 공정하고 가장 상식적인 일이니까. 본인이 그토록 바라던 국민대통합은 (계엄령 선포로 아이러니하게) 이뤄졌으니까.”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1
·
개성만점 수제 응원봉 행진, ‘탄핵의 밤’ 향한다[윤석열을 감옥으로]
이제는 촛불집회가 아니라 ‘응원봉 집회’로 불러야 한다고 했던가. 11일 오후 6시 국회 앞에서 ‘윤석열 탄핵 집회’가 열렸다. 이날도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어두운 밤하늘을 환하게 빛냈다. 세대통합, 남녀노소 불문하고 시민들은 가지각색의 응원봉을 들고 나왔다. 아이돌 팬클럽 응원봉부터 경광봉과 캐릭터 조명까지. 국회 앞으로 뛰쳐나온 이들의 사연이 각각 다르듯이, 응원봉은 각자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수제 응원봉’. 시민들은 직접 만든 개성 넘치는 응원봉을 들고, 거리를 활보했다. 조은아(36) 씨는 아이패드에 응원봉을 직접 그려서 들고 다녔다. 전두환의 얼굴을 바탕으로 놓고 윤석열 얼굴을 그려넣은 그림이었다. 윤 대통령 머리 위엔 수갑이 그려져 있었다. “응원봉이 없으니까 직접 그려본 겁니다. 국민의힘도 (당원들이) 많이 탈당하고 하니까 좀 부끄럽지 않을까요? 저희 지역구 국회의원이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인데요. 그분도 이렇게 (탄핵 찬성으로) 돌아선 걸 보니까, (국민의힘 국회의원) 많이들 (탄핵 찬성 쪽으로) 오실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희망 갖고 있습니다.” 피규어에 전구를 감싼 이색적인 응원봉도 거리를 빛냈다. 피규어는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인기 캐릭터 ‘아스카’. 수제 응원봉의 주인 최지현(24) 씨는 제작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집에 있는 가장 공격적인 피규어를 (골라서), 아이돌 응원봉을 가져오는 사람들한테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스카’는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혁명적인 여성이거든요.“ 무엇이 그렇게 최 씨를 화나게 만든 걸까. “(너무 많아서) 고를 수가 없는데…. 일단 부모님 두 분이 광주 출신이거든요. 광주(항쟁 당시의) 운동가들이 버젓이 살아 있는 지금 이 시대에, 그렇게 민주주의를 죽이려 하는 (내란) 행동이 너무 화가 났습니다.그리고 남녀 갈라치기를 이용해서 자기의 권위를 높이려고 하는 것도 짜증이 났습니다. (평일에) 일이 늦게 끝날 때는 새벽에 와서, 국회를 지키고 있는 10대, 20대 분들 간식 주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전통 등불도 등장했다. 박지선(29) 씨는 전통 문양의 등불에 LED촛불을 넣은 응원봉을 들고 돌아다녔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키트로 (등불을) 만들어서 탄핵 피켓을 연결한 거예요. 원래 문화재를 좋아해서 만든 건데요. 저는 응원봉이 없어서 그냥 가지고 나온 거예요. 발광력이 약해서 아무도 관심을….(웃음)” LED 촛불은 흐리게 빛났지만, 박 씨의 발언은 날카롭게 빛났다. “민주주의가 근본인 이 나라에서 너무 근본 없이 하는 그 (내란) 행동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역사의 잘못된 점을 반복하는 그 행위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그 행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국회로 나왔습니다.” 수제 응원봉과 기성 응원봉의 화합도 찾아볼 수 있었다. 원희(가명, 20대) 씨는 LED 줄조명을 감싸서 만든 수제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옆에 있던 친구 재희(가명, 20대)는 기성품인 LCK(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 응원봉을 흔들었다. “다이소에서 전구를 샀어요. 그래서 셀카봉에다가 전구를 감았어요. 다들 응원봉을 들고 나오는데, 저는 들 게 없어서 비슷한 거라도 차별화를 주고 싶어서요.“(원희)“계엄령의 무게를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에서 계엄을) 가볍게 여기는 듯해 국회로 나왔습니다.”(재희) 시민단체 쪽도 수제 응원봉을 선보였다.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이하 용산시민회의)’ 대표도 수제 응원봉을 들고 나왔다.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컵에 셀로판지를 넣고 손전등을 연결해 만들었다. “응원봉을 대략 40개 정도 만들었는데, 다 주변에 나눠줘서 몇 개 안 남았어요. (당장 현장에) 한 8개 정도 있어요. 이번주 토요일 촛불집회 전까지 90개 더 만들어야 해요.” 이날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국민의힘 당사 앞까지 함께 행진했다. 저마다의 손에 들린 가지각색의 응원봉이 오히려 조화로운 빛을 냈다. 오후 9시가 넘도록 많은 시민들이 집에 가지 않았다. 시민들이 꽉 찬 거리에선 가수 로제의 노래 ‘아파트’가 울려 퍼졌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2
·
“아이 500일 여행경비로…” 촛불집회 ‘키즈버스’ 뜬다 [윤석열을 감옥으로]
“우리 아이 500일 기념 여행비를 털어 버스를 빌렸습니다. 이 시국에 무슨 여행인가요. 같은 처지인 분들, 바람이라도 피하고, 기저귀라도 편하게 갈아봐요!” 윤석열 탄핵 촛불집회에 ‘키즈버스’가 나타난다. 집회에 참석한 영유아와 보호자를 위한 작은 ‘베이스캠프’가 한 시민의 선의로 생겨날 예정이다. 자신을 ‘16개월 지우맘’이라고 소개한 권순영(44) 씨. 그는 오는 14일 아이들과 함께 국회 앞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위해 사비로 45인승 버스를 빌렸다. 10일 직접 만든 포스터로 홍보도 하고, 단톡방을 만들어 함께할 사람들을 모았다. 11일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권 씨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Q. 지난 7일 국회 앞 촛불집회에 다녀오셨나요? “네. 그날 나갔어요. 아기랑 저랑 둘이 갔어요. 애기 아빠는 토요일 날 일을 하거든요. 한 5시 반쯤 도착했던 것 같아요. 집이 서대문인데 거의 2시간 걸려서 도착했어요. 지하철을 타고 당산역에 내려서 걸어갔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가지고 (국회까지 못 가더라도) 근처 어디라도 좀 가보려고 하다 보니까 5시 반쯤 도착해서, 9시쯤까지 있다가 집에 갔어요.” Q. 현장에 어머님처럼 혼자 아기를 데리고 나온 다른 어머님들도 계셨나요? “그때 그걸 살펴볼 여력은 안 됐는데, 제 눈에 띄지는 않더라고요. 어딘가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눈에는 안 띄었어요. 주변에 지나다니시는 분들은 저한테 ‘아기 추워서 어떡해요’ 이런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Q. 그때 상황을 좀 더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집에서 출발한 때부터 밖에서 한 6시간 있었어요. 근데 유아차를 일부러 안 가지고 나왔거든요. (집회 현장에 사람이 많으면) 못 움직일 것 같아가지고. 저는 ‘어딘가 기저귀 갈 곳 정도는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는데 갈 곳이 없었어요. 지하철역 화장실도 줄이 너무 길어가지고, 찾아가는 것도 일이고 줄 서는 것도 일이고. 아기 밥도 먹여야 되는데 사람이 많으니까 식사하는 곳에도 줄을 서 계시고, 카페에도 사람이 가득가득하고, 또 인터넷이 잘 안 돼서 어디 검색해서 가기도 어렵고 그런 어려움이 있었죠.” Q. 결국 기저귀도 못 가셨던 거예요? “다행히 그날 (기저귀가) 빵빵할 정도로 싸지는 않아서, 그냥 버텼어요. 추운데 옷 벗기기도 조금 그래가지고. 집에 가는 길에, 집 근처 지하철역은 좀 한산하니까 거기서 해결하고 집으로 갔죠. 저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을 거예요. (다음 주말에도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데) 도저히 그 상황을 다시 반복할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누가 (아기) 기저귀 갈 곳만 좀 마련해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키즈버스나 키즈천막 같은 것. 누가 (촛불집회) 주최 측에 문의해보라고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집회에는 아이들만 오는 게 아니잖아요. 어르신들도 많고 장애 있으신 분들도 많고 그런데, 아이들을 위한 천막만 마련해달라고 하면 좀 이상할 것 같은 거예요. 우리만 배려해달라는 느낌이 들어가지고. 그럼 (버스보다는) 천막이 좀 저렴하니까 직접 마련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건 또 아이 데리고 가는 엄마 입장에서, 설치하기가 여의치 않을 것 같았어요. 바닥도 깔아야 되고. 이런 생각 끝에 ‘그러면 그냥 버스가 제일 안전하고 편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 거죠.” Q. 그래서 사비를 들여서 버스를 대절해야겠다, 생각하신 거예요? “네. 그거 말고 방법이 없었어요. 모금을 해서 추진하기에는 당장 (돌아오는) 토요일이니까 시간이 그렇게 여유롭지도 않고, 또 혹시 호응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일이 복잡해지니까, 그냥 심플하게 ‘내가 하나 빌리고 필요한 사람들한테 같이 쓰자고 해야겠다’ 이 정도의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집회에 오지 못하는) 시민들이 커피 같은 것도 막 선결제 해주시잖아요. 그런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커피 선결제도 하고 이러는데 나는 내 애 데리고 가는데 버스 하나 빌릴 수 있지’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대단한 시민들이 많아가지고, 별로 망설이지 않고 결정했던 것 같아요 여행은 봄에 가면 되니까요.“ Q. 45인승 버스면 대절 비용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요. “하루 빌리는 데 70만 원이더라고요. 기사님이 추가비용은 안 받으신대요. 원래 기름 값이랑 기사님 식사비 이런 게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냥 기본비용만 받으시겠다고.” Q. 사비로 버스를 대절해서라도 이 집회에 꼭 나가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뭘까요? “다 비슷한 마음이셨을 텐데, 계엄이 선포된 날 너무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나라가 이렇게 망하려나 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라를 망하게 하려나 보다. 이게 무슨 일일까?’ 이런 생각 때문에 너무 마음이 어수선했어요. 근데 그날은 (바로 국회로 달려갈) 엄두를 못 냈어요. 토요일(7일) 날은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안) 표결하는 날이었잖아요. 일말의 희망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도 국민의힘 의원들 중에 어느 정도 멀쩡한 사람들은 시민들의 이 분노에 호응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러려면 한 명이라도 더 국회 앞으로 나가야 된다, 그런 생각에 미쳤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으로 ‘모르겠다, 일단 (아기를 꽁꽁) 싸서 나가보자’ 이런 생각이었죠.” Q. 카카오톡 ‘윤탄핵 촛불 참가한 영아 부모방’ 이것도 어머님이 만드신 거예요? “네. 저 혼자만 쓰려고 버스를 대절하는 건 아니니까.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해서 같이 사용하려고 큰 버스를 빌린 거거든요. ‘이런 게 있으니까 필요할 때 오세요, 용기 내서 우리 함께해요’라고 알려야 되잖아요. 그래서 알리게 됐고, 그 단톡방은 원래 집회 현장에서 버스 위치를 좀 안내해드리려고 만든 방이었습니다.” Q. 포스터도 어머님이 직접 만들어서 홍보하셨던 거예요? “네. 제가 그런 일을 하거든요.” Q. 14일에 아기와 함께 집회 현장에 나올 어머님들한테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집회에 나오고 싶어도 아이가 있으면 생각할 게 너무 많고, 준비할 게 너무 많아서 생각이 복잡해지는 거예요. 몸이 쉽게 무거워지는 거죠. 저한테도 그런 게(키즈버스가) 필요했고 다른 영유아 부모님들한테도 ‘이런 베이스캠프가 있으니까 용기 내서 가자, 그래서 지금 혼란스러운 정국을 국민들이 바로잡는 데 우리도 힘을 보태자, 함께하자’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어요. 다른 분들한테도 용기가 되는 버스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
1
·
국회 앞 철야 촛불 지킴이… 그들의 밤에 함께했습니다 [윤석열을 감옥으로 8화]
지난 8일 밤 10시가 가까워진 시간.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국회 앞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정문으로 향하자 가장 먼저 들린 건 시민들의 목소리였다. 정문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김건희를 특검하라! 국힘당을 해체하라! 국회 앞을 지키는 시민들의 촛불은 밤새도록 계속됐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8일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국회 앞을 지키는 시민들과 밤을 지새웠다. 국회 앞에 밤새 촛불을 켜는 시민들이 있다고 제보한 사람은 김승유 변호사였다. 부산에 사무실을 둔 그는, 지난 금요일 서울로 향했다. 주말에 열린 범국민 촛불 대행진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에서 발생하는 갈등 상황을 조정하는 일을 도맡았다. 김승유 변호사 역시 노란 조끼를 입고 지난 7일 범국민 촛불 대행진에 참석했다. 집회가 마무리되면서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갔지만, 여전히 국회 앞에 시민들이 있었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일곱 개의 국회 출입문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이들은 윤석열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국회를 빠져나가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막아섰다. 밤을 새워 국회 출입문 앞을 지켰다. “제가 어제(7일) 국회 앞 지키는 분들과 이야기해봤거든요. 그런데 어디 단체에서 온 것도 아니고, 개인이 자발적으로 남아 계시더라고요. 특히 10대, 20대 여성분들이요.” 기자는 8일 국회 1번 출입문 옆 돗자리를 깔고 앉은 이들에게 다가갔다. 여덟 명이 둘러 앉아 담요를 덮고 있었다. 두꺼운 패딩 안으로 한기가 파고들었다. 열여섯 개 눈동자에 경계심이 가득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기자님이시면 명함 한 장 주시겠어요?” 하필이면 지갑에 남아 있는 명함도 없었던 날. 경계심을 풀기 위해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췄다. 스마트폰으로 ‘셜록’을 검색해 보시고는 신원이 보증(?)됐는지, 경계가 조금 누그러진 분위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기자에게 돗자리 방석을 건네주었다. 이들도 모두 오늘 처음 만났다. 처음 보는 외부인을 반길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스팔트 위, 천막 하나 없이 돗자리와 담요로 버티는 사람들은 외부에 완전히 노출돼 있다. 그러다 보니 동의 없이 촬영을 당하기도 하고, ‘해코지’를 당하기도 한다. 특히 하루 전날에는 “후문을 지키던 ‘할아버지’가 젊은 남성에게 맞는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보안관’은 자연스레, 현장을 가장 오래 지킨 강아무개(43) 씨가 도맡았다. 그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표한 지난 3일, 강원 원주시에서 부리나케 달려왔다. 15만 원이 넘는 택시비쯤은 상관없었다. 강 씨는 국회로 들어오려고 했던 장갑차를 막아섰다. 머리 위로 헬기가 지나갔다. 총을 멘 군인들이 국회로 진입했다. 머리털이 쭈뼛 서고 다리가 덜덜 떨렸다.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6일째 같은 옷을 입는다. 강 씨는 밤새 국회 앞을 지키다가 오전 5시 반이 지나면 종로에 있는 사우나로 향한다. 여의도 근방 사우나는 물가가 비싼 탓이다. 그곳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면 무인 세탁소를 향한다. 입고 온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돌린다. 그리고 다시 국회로 돌아온다. 기자가 만난 강 씨의 목소리는 꼭 감기 걸린 사람처럼 목이 쉬어 있었다. 매일같이 목 터져라 “윤석열 탄핵”을 외친 탓이다. 수면 부족과 한밤의 칼바람으로 결국 몸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는 지난 7일 감기에 걸렸다. 그럼에도 매일 집회 현장에 나온다. 며칠 전에는 걱정하는 엄마의 전화도 받았다. 선두에 나서지 말라는 말이었다. “저는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자꾸 찾아요. 그러면 어떡해. 그냥 가는 거예요.” 그는 잠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오전 2시쯤 되면 국회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손에는 무전기를 챙긴다. 이것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한 용품이다. 순찰 시간이다. 걸어서 약 40분이 소요된다. 총 일곱 개의 국회 출입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핀다. 철야 농성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일도 늘어난다. 4번 게이트에서 시비가 붙었다는 말에 달려가 보면, 이미 시비 건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가버린 뒤다. 그 말에 발걸음을 돌리면 반대편에 있는 7번 게이트에서 경찰과 싸움이 붙었다는 무전이 들린다. 그러면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달밤에 질주. ‘촛불 보안관’의 일이다. “(윤석열이) 탄핵되면 집으로 갈 건데, 점점 돈이 떨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게 더 장기전으로 가면 안 돼요.” 국회 주변에는 각종 차가 주차돼 있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주차한 줄로만 알았다. 아니었다. 시민들이 자신이 운전하는 버스, 화물차, 트럭, 자가용 등을 세워서 벽을 만들었다. 장갑차의 접근을 막기 위함이었다. 저마다 차를 끌고 와 국회 주변을 에워쌌다. 강 씨는 카키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시민 분이 준 선물이었다. 현장에 오래 있다 보니 그는 유명인사가 됐다. 지난 5일 동안 그는 아홉 군데 언론 인터뷰에 등장했다. 유튜브 채널은 셀 수도 없다. 하루는 찜질방에서 쪽잠을 자는데, 중년 여성이 그를 깨웠다. 처음 보는 얼굴에 어리둥절하게 눈을 껌뻑이자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집회 현장 안 가시고 여기 계세요? 같이 가요. 지금 안 가면 차 막혀요.” 세 시간도 채 못 잤다. 결국 오전 11시에 국회 정문에 도착했다. 아직 사람들이 채 모이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국회 앞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잠을 깼다. 아스팔트 위에서 한밤은 강추위를 견디는 시간이다. 둘러앉은 이들은 담요를 덮고 있다. 핫팩으로 무장도 했다. 그럼에도 발가락 감각은 무뎌졌다. 처음에 느껴지던 발가락이 깨질 듯한 통증도 시간이 지나자 둔감해졌다. 아침을 맞기 위해서는 긴 어둠을 견뎌야 하고, 봄을 맞기 위해서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 이들은 그런 마음으로 집회 현장에 나온다. 집에 있어도 잠에 들기 어렵다. 언제 또 비상계엄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일상을 보내고 있다.  “차라리 국회 앞에서 저랑 비슷한 생각하는 사람들 만나는 게 마음이 편해요. 집에 있어도 잠을 잘 못 자거든요. 비상계엄 터진 이후로는 계속 그랬던 것 같아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정치, 경제,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까지 뒤흔들었다. 배달을 전업으로 하는 남성 두 명은 여분의 피켓을 찾았다. 오토바이에 붙이고 다니고 싶다는 이유였다. 벌써 “윤석열 탄핵” 피켓을 붙이고 다니는 기사들도 있다고 전했다. “(윤석열 정권이) 딱 그런 것 같아요. 쓸모없는 사랑니. 뽑을 때 빨리 뽑아 버려야 돼, 더 썩기 전에. 안 그러면 아파요.” 이날 국회 앞을 지킨 대다수가 20대 여성. 이들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트위터(현 ‘X’)에 올라온 현장 소식 보고 왔어요.” 철야 농성에 참여한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 야심한 시각에도 사람이 현장에 있다는 소식에 ‘나도 뭐라도 해야지’, ‘움직이지 않으면 세상은 안 바뀐다’, ‘혼자 있으면 위험하니까’ 하는 생각으로 나왔다. 집회 현장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니 용기를 내고 동참하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수능 마치고 서울로 놀러온 재수생, 아르바이트 마치고 달려온 대학생, 일 마치고 막차 탄 직장인까지. 셜록이 이날 만난 약 20명의 여성들은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 사이였다. 특이한 건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박근혜 퇴진 집회에 참석 못한 미안함 때문이기도 하고, 어제 집회에 나온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기도 하고, 오늘 찬바람 맞을 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기도 했다. 이들은 ‘현생(현실의 삶)’을 이야기하며,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의 사정은 이해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의 ‘현생’에서는 윤석열 탄핵 집회가 중요했다고 입을 모았다. 7시간 뒤 봐야 하는 시험에서 한 번 정도는 미끄러져도 괜찮았고, 일하면서 조금 피곤해도 괜찮았다. 다만,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일은 괜찮지 않았다. 정치는 일상과 동떨어져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번 집회에서는 각자 응원봉을 들고 나온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팬덤 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해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을 통한 내성이 있다. 장시간 오래 서 있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응원봉을 흔드는 건 식은 죽 먹기다. 화장실을 가지 않는 요령도 꿰고 있다. “콘서트를 통해 단련”할 수 있었다. 철야 농성에 참여한 이들 손에도 응원봉이 들려 있었다. 잠이 쏟아질 때면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기자도 이들과 이야기 나누겠다고 두 시간을 책상다리 하고 앉아 있으니 고관절이 뻐근했다. 허리도 뻣뻣해졌다. 양쪽 바지 위에는 부착형 핫팩을 붙였지만 한기가 감돌았다. 서 있으면 춥고 다리가 아프고 앉아 있으면 온몸이 쑤셨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지하철 막차가 끊기면 지하철역 내부는 새카만 어둠이 깔린다. 가동이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핸드폰 손전등을 들고 내려갔다 올라오는 건 웬만한 담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깊은 9호선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다 보면 도중에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다음 선택지는 주유소 화장실이었다. 그러나 영업을 마치면 문을 닫는다. 결국 근처에 있는 호텔 화장실을 이용한다. 한때 호텔은 외부인의 화장실 출입을 제한하는 경고문을 달아두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이 트위터에 공유되면서 화력이 모였다. 호텔은 화장실을 재개방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여섯 시 반. 돗자리 위에 앉은 이들은 ‘탄핵송’을 부르며 응원봉을 흔들었다. 신호등을 건너오던 남자는 우리를 향해 손가락으로 욕을 했다. 이후에도 두 번을 오가며 주시했다. 대신 그보다 응원하고, 고마움을 전하는 시민들이 더 많이 찾아왔다. 이날 돗자리 옆에는 핫팩과 귤, 치킨, 피자, 커피, 유자차 등이 가득했다. 힘내라고 주먹을 불끈 쥐거나 고맙다며 인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둠이 밀려와도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국회 앞 반짝이는 시민들은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탄핵이 될 때까지 불을 밝히겠다고 다짐했다. “계속 여기 있다고. 지켜보고 있다고. 지치지 말고 우리가 또 한 번 바꿔보자, 그런 마음으로 나오게 돼요.”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