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윤석열의 정치는 시작도 없이 끝났다[윤석열을 감옥으]
“윤석열 대통령은 더 이상 대한민국 헌법 속의 대통령이 아니다.”(이화여자대학교 윤석열 퇴진 시국선언 12. 6.) 민주주의는 ‘말’에서 자란다. 때로는 말의 잔치가, 때로는 말의 전쟁이 되기도 하는 것. 말이 오고 가는 가운데 정치가 일어난다. 대화하고 교섭하고 주장하고 반박하고, 더 많은 국민들을 설득한 쪽이 명분을 갖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 그게 민주주의 정치의 기본이다. 윤석열은 처음부터 ‘말로 합시다’보다 ‘법대로 합시다’를 너무 좋아했다. ‘만사법통’이라 해야 할까. 모든 것은 법을 통해 해결하려 했다. 대화도 없고, 타협도 없다. 국민을 설득하는 정치는 사라지고, 상대를 수색하고 수사해서 죄인으로 만드는 단죄만 남았다. 내 편 아니면 다 ‘나쁜 편’. 어퍼컷 세리머니만 해도 터져나오는 박수와 환호에 취한 걸까. 벌거벗은 임금님을 향한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자신만 몰랐다. 자신에게 박수 치지 않는 사람은 다 ‘나쁜 편’이 됐다. 직언하는 사람에게는 책상을 치며 ‘격노’를 반복할 뿐. 검사 시절, “수사권을 가지고 보복하면 검사가 아니라 깡패”라고 장담하던 사람. 돌이켜 생각하면 그 말은, 언제든 자신은 깡패가 될 수도 있다는 협박이었을지 모른다. 법으로 골탕 먹이고, 법으로 잡아들이고, 법으로 길들이는 데 그는 전문가였다. 민중들에게도 ‘법’이라는 이름의 칼날을 휘둘렀다. ‘건폭’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한 건설노동자는 제 몸에 불을 당겨 저항하기도 했다. 일하다 다친 노동자들은 ‘나이롱 환자’로 취급했다. “엄정한 법 집행”으로 위장하고, 민중의 삶을 비참과 굴욕의 진창으로 처박았다. “심각한 직업병 고통에 신음하며 병들고 죽어가는 것에는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반도체 자본의 이윤몰이에 희생되어온 산재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하 근로복지공단에서 줄줄이 산재불승인의 고통을 당해왔다.”(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성명 12. 4.) 윤석열은 혐오의 뿌리에서 자라난 유해수목이다. 여성과 남성을, 기성세대와 젊은이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아치고, 혐오의 난장판 속에서 기생충처럼 정치적 잇속만 챙겼다. “여성과 장애인 혐오를 발판으로 집권한 윤석열 정권은 군대를 동원해 짓밟으려 했다. 혐오정치의 뒷배는 군사력과 경찰력 외에는 지지기반이 없음을 보여준다.”(3.8여성파업조직위원회 성명 12. 4.) 반면, 자기는 불법만 피해갈 수 있으면 뭐든 해도 된다고 우겼다. 국회가 의결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수십 번 걷어차면서도, 비판 목소리에는 ‘대통령의 법적 권한’이라는 설명밖에 하지 않았다. 법적 책임만 따져대는 통에 정치적 책임은 온데간데없었다. 이태원에서, 장마철 지하도 속에서, 참사 속에 국민들이 죽어나가도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대통령실 관저 경호에 동원된 경찰은 이태원에서 159명의 사람들이 스러져갈 때 이를 방치했고, 숨 쉬기도 어려울 만큼 더웠던 작년 여름 오송 지하차도에서 또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운 좋게도 그 거리에 있지 않았기에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숨을 쉴 수 없습니다.”(숙명여자대학교 학생 2626인 시국선언 12. 5.) 국민의 뜻은 궁금하지 않다. 야당의 주장도 듣고 싶지 않다. 오직 법률을 찾고 판례를 갖다 붙이는 데 몰두할 뿐. 법적 근거만 있으면 무조건 내가 맞다는 생각. 다양한 문장으로 변주됐지만, 결국 ‘법을 잘 아는 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아라’라는 말만 반복했다. 윤석열이 자나 깨나 외쳐온 ‘법대로’라도 잘 지켜졌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특히 자신과 가족에게 불리한 때는 그 잘난 ‘법’도 소용없었다. 수많은 혐의에도, 유독 그의 가족들만 수사를 피하고 처벌을 피했다. 부인 김건희 씨가 부정하게 받은 고가의 명품가방은, 가까운 사이에 “박절하게” 거절하지 못한 사소한 ‘파우치’로 둔갑했다. “김건희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침묵하고 수사를 방해하는 등 공정의 원칙을 훼손하였고, 채상병 사건에 대해 책임자들은 내버려두고 진실을 밝히려고 한 박정훈 대령을 기소하는 등 상식의 원칙을 훼손하였다.”(대한직업환경의학회 시국선언 12. 12.) “공정과 상식”을 돌림노래처럼 부르던 대통령에 의해, 공정은 붕괴됐고 상식은 괴사했다. 입만 열면 ‘법대로’를 외치던 대통령에 의해, 법률은 가장 큰 모욕을 당했다. 존중받아야 할 법은, 국민을 속이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교묘하고 신통한 ‘기술’쯤으로 전락했다. 정치를 할 줄 모르는 정치인. 그의 미래는 예견된 것이었다. 말로도 법으로도 안 통하니, 결국 ‘힘으로’ 하는 방법을 택했다.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그날 밤 일어난 일들을 국민들이 똑똑히 지켜봤다. 국회 운동장에는 헬기가 착륙하고,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에 나타났다. “대한국민이 자랑하던 입헌민주주의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위기에 처했다. (…) 비상계엄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요건과 절차를 갖추지 못하여 명백하게 위헌·위법이다.”(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촉구하는 헌법·행정법연구자 선언 12. 7.) 두려움도 잊고 모여든 시민들이 장갑차를 막아섰다. 계엄군을 밀어냈다. 군인들은 총, 시민들은 빈손. 하지만 정의 없는 총은 순수한 분노로 무장한 빈손 앞에서 뒷걸음질 쳤다.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아침을 지켰다. 윤석열이 꾼 독재의 단꿈은 새벽 이슬처럼 사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그에 따른 일련의 행위는 헌법과 민주주의,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위협이다. (…) 법치주의는 국민의 신뢰와 헌신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형사법 학자·연구자 시국선언 12. 12.) 45년 만에 역사의 무덤에서 부활한 비상계엄. 윤석열의 계엄 선포문에는 또 다시 ‘반국가세력’이란 말이 등장했다. ‘반국가세력’이란 단어가 가리키는 세력은, 사실 ‘반윤석열세력’이었다. “각하가 곧 국가다”라는 그 옛날의 일그러진 신앙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의 죄과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무엇보다도 (…) 자신에게 무조건적이고 자발적인 맹종을 하는 이들만을 국민으로 여기며, 다른 모든 국민들을 반국가세력, 종북세력으로 몰고 갔다는 것입니다.”(윤석열 탄핵 촉구 4대 종단 종교인 시국 기자회견문 12. 13.) 내란의 밤 이후 열흘. 시시각각 드러나는 그날의 진실은 국민들을 분노에 떨게 했다. 지난 7일 1차 윤석열 탄핵안 표결을 집단 보이콧한 국민의힘의 내란 동조 행위와, 지난 12일 일말의 반성도 없이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한 윤석열의 담화는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복지국가는 민주주의와 사회적 연대라는 두 기둥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계엄령을 통해 국민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박탈하고 공론장을 폐쇄하는 등 민주주의와 사회적 연대를 통째로 무너뜨리려고 하였다.”(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사회복지·사회정책·보건의료 학회 일동 시국선언 12. 8.) 윤석열의 내란행위는 정치가 아니다. 윤석열이 목 놓아 부르짖는, 대통령의 법적 권한에 따른 ‘통치행위’도 아니다. 폭력은 무엇으로 치장해도 그저 폭력일 뿐이다. 독재는 무엇으로 위장해도 그저 독재일 뿐이다. 민주공화국의 반국가세력은 다름 아닌 윤석열 자신이다. 윤석열의 정치는 한 번도 시작된 적이 없다. 언제나 정치로 ‘위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겨울 내란 사태는, ‘법대로’가 ‘힘으로’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힘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그의 가짜 정치는, 국민이라는 더 큰 힘에 의해 제압당했다. “우리는 국회 앞에 피어난 수많은 빛의 꽃들을 보았습니다. 자신만의 색깔과 모양을 지녔지만 다른 빛을 배제하지 않고 조화로움을 이루며 만들어낸 빛의 향연들을 보았습니다. (…) 전국에서 부처님들이 웃고 춤추고 노래하며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였습니다.”(윤석열 즉각 퇴진·탄핵 촉구 원불교 교무 기자회견문 12. 12.) 2024년 12월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윤석열의 정치는 시작도 없이 끝났다. 민주주의가 이겼다. 역사가 이겼다. 수많은 독재자가 집어삼키려 했지만 끝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이 나라의 유일한 주인인 국민이 이겼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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