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우리학교 비거닝
지난 21년 봄, 필자가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 숲나학교의 아이들은 10박 11일동안 제주도 탐방을 떠났다. ‘구럼비야, 보고싶다!’ 라는 주제로 떠난 만큼 역사, 생태, 환경 등 사회 모든 방면을 두루 살펴봐야 했다. 기나긴 여정의 중반, 우리는 제주돌핀센터에서 환경운동단체인 ‘핫핑크 돌핀스’를 만났다. 그들과 함께 인간의 손으로 파괴한 제주의 자연환경을 목격하고, 기후 위기와 해양 환경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 시청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무분별한 소비와 식습관이 어떤 문제를 초래하는지 똑똑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웬 걸!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의 밥상에는 ‘제주 은갈치 구이’가 자태를 풍기며 당당하게 올라가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이게 말이 되냐!”며 분개했다. 아이들은 갈치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밥만 먹는 맨밥 투쟁을 통해 배움을 행동으로 실천하겠다고 학교에 당당히 선포했다.  탐방을 한자로 풀면 찾을 탐(探)자에 찾을 방(訪)자를 쓴다. 어느 곳에 들리거나 다녀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무언가 찾아야 탐방은 비로소 완성된다. 아이들은 지구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고 나를 살리기 위한 방법을 제주도에서 찾았고, 그것은 바로 ‘살림 식단’이었다.  변화는 손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아이들의 요청을 받은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공론화하여 가정별로 방학 기간에 <씨스피라시>, <카우스피라시>, <더 게임 체인저스>을 시청하고, 식단 전환의 시급함과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해 토의한 후, 가정마다 의견서를 에세이 형태로 제출받아 취합했다. 그리고 학생들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체적인 교사연수와 함께 비건 식단을 실천했고, 그 과정에서 단체 급식으로 비건 식단이 진행될 시 일어나는 문제점에 대해 긴 논의를 거쳤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 학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학교급식 전면 비건화’라는 변화를 이루어냈다.  지속성이 없는 변화는 곧 무의미한 것이나 다름없다. 혁정취신(革鼎就新)이라고 했는가. 학교는 곧바로 주방의 동물성 식재료와 조미료를 폐기처분했고, 비건요리가 가능한 먹거리 선생님을 채용하여 다채로운 식단의 비건 급식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초기에는 동물성 식단이 주던 느낌을 유사하게 제공했고, 점차 자연 식물식에 가까운 형태로 식단을 변화시켜나갔다. 또한 영양분 섭취와 성장과 관련해 가정에서 가지고 있던 우려를 사전 에세이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부모교육 프로그램으로 자연식물식 전문가인 이의철 교수를 초빙해 간담회를 열었다. 이어 환경과 동물권, 건강이라고 하는 세 부분에서 심화하여 학습할 수 있도록 <에코살림>이라는 정규 수업을 개설하고, 비건 도서 전용 서가 마련, 환경과 관련된 학내 학생들의 NGO단체 설립 등을 통해 우리 학교의 비거닝은 그렇게 시작됐다.  매 학기가 끝나면 살림 식단에 대한 학생들의 피드백을 받았다. 초반에는 생각보다 육식 식단과 별반 차이가 없고, 집에서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내용이었다면 후반에는 자연식물식, ‘의’와 ‘주’에 대한 요구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해 만우절에는 <우리학교 비거닝>이라는 주제로 오픈 행사를 진행했는데, 처음 1년 동안 피드백지에 매우 불만족에 체크한(유일한) 아이는 비건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지만 살림식단을 통해 지금의 나의 몸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직접 나서 강연하기도 했다.  삶이 앎이고, 앎이 곧 삶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삶+앎)다운 사람이 되어간다. 학생들의 배움으로부터 시작된 이 변화는 자신이 가르치는 대로 실천하는 교사가 이끌어 가는 변화와 닿아 가정의 동참으로 든든한 힘을 얻었다. 배움과 실천이 함께하는 우리 배움 공동체의 변화는 학교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곧 사회로 뻗어나갔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통해 교육자, 혹은 어린이를 만나는 활동가가 있다면 몇 가지 사항을 제안한다. 첫째, 상시적인 환경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때 점수나 평가가 초점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문제의식과 목소리에 주목하는 환경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평가로 마무리되는 환경 교육이 아니라, 실천의 기회를 제공하고 실천이 지속되어 실제 삶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환경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이때 교사들은 학생들의 변화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변화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넷째, 가정과 학생들의 소통에 있어 비건 급식 도입의 찬반에 대한 단순한 설문조사가 아니라, 직접 배우고, 경험하고, 의견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숙의민주주의의 과정을 거친 가정의 참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배움이 급식 제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학교 밖에서도 학생과 가정의 식단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에 대한 교육이 마련되어야 한다.    뜬금없게도 명상에 대한 이야기로 끝마칠까 한다. 명상은 몸이 있는 곳과 혼이 있는 곳을 일치시키는 행위이다. 이것을 우리는 몰입이라고 하는데 사실 명상을 제일 잘하는, 일상이 명상인 존재는 바로 아이들이다. 선생님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입이 삐쭉 튀어나와도 뒤돌아서면 금방 다른 친구들과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논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몸과 혼이 정확히 일체된 존재이다. 어른들이 앞으로 어떻게 이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하며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마주칠 미래라고 이야기 할 동안, 정작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비인간과 오늘의 지구에 더 마음을 쓴다. 아이들의 혼은 지금 여기 이 지구별의 깊숙한 곳에 심겨있기에 살림식단은 모든 아이들에게 필요하고, 필수적이다.  
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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