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심사위원 매수해도… 숙대, 부정입학자들 취소 안했다[교수 엄마와 가짜 고대생]
‘음대 교수’는 드레스 대신 죄수복을 입었다. 곱슬곱슬 긴 머리도 하나로 대충 묶었다. 무대 앞 화려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난 7월 26일, 추○○ 안양대학교 음악과 교수(성악 전공)는 법원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추 씨의 최후진술은 그의 겉모습만큼 초라했다. “다시는 이런 일에 연루되지 않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음악계, 교육계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겠습니다.” 소위 ‘잘 나가던’ 음대 교수는 어쩌다 법정에 서서 업계를 떠나겠다는 선언을 한 걸까.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서는 3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추 교수는 2021년 5월경 한 ‘입시 브로커’와 손을 잡았다. ‘입시 브로커’ 역시 현직 교수인 윤○○ 국민대 성악과 조교수였다. 윤 교수는 2015년부터 서울 중구, 강남구, 서초구 등에 있는 음악 연습실을 빌려 불법적으로 성악 과외교습을 해왔다. 현행 학원법에 따르면, 대학에 소속된 교원은 학교의 학생이나 학교 입학을 위한 시험 준비생에게 지식ㆍ기술ㆍ예능을 교습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 윤 교수는 교수들에게 입시준비생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주로 대학 입시 심사위원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있는 교수들이 섭외됐다. 불법 성악과외 이름은 ‘마스터클래스’. 그들은 ‘마클’이라 줄여 불렀다. 윤 교수는 같은 해 5월 25일 ‘마클’ 학습자로 입시생 6명을 선정했다. 추 교수는 이들에게 성악 과외를 해주고, 수업마다 1인당 25만 원씩 받았다. 수업 한 번에 현금 150만 원을 챙길 수 있는 ‘고액 알바’. 추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1월까지 총 5885만 원의 현금을 챙겼다. 추 교수는 불법 과외를 넘어 심사위원으로서 부정입학에도 관여했다. 같은 해 12월, 추 교수는 윤 교수로부터 이런 연락을 받았다. “배진명(가명)을 숙대(숙명여자대학교)에 보내려 합니다. 숙대에 도움 되는 플러스알파가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배진명은 추 교수의 ‘마클’ 수업을 받은 학생이었다. 다음 달, 윤 교수의 청탁은 더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배진명이) 숙대가 돼야 하는데, 제가 부탁드려요.“ 실기시험 응시생은 학교에서 정해준 과제곡을 준비해 불러야 한다. 그때부터 추 교수는 온전히 배진명만을 위한 맞춤형 과외를 진행했다. 추 교수가 목소리만 듣고도 배진명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각인시키는 연습이었다. 그사이 추 교수는 숙명여대로부터 성악과 입시 외부 심사위원 요청을 받았다. 추 교수와 배 양의 은밀한 불법 과외는 2022년 1월 7일부터 14일까지 총 5번 이뤄졌다. 배 양은 실기시험 직전까지 하루 걸러 하루 꼴로 심사위원을 직접 만난 셈이다. 추 교수는 심사위원들이 써야 하는 ‘사실확인 및 서약서’를 거짓으로 작성했다. 추 교수는 “직계자녀, 친인척, 지인이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목소리 훈련만으로는 불안했던 걸까. 더 확실한 ‘마크’가 추 교수에게 넘어갔다. 숙명여대 실기시험 당일(2022년 1월 18일), 윤 교수는 배진명의 실기시험 평가 순번을 추 교수에게 전달했다. 덕분에 추 교수는 배진명의 목소리를 손쉽게 알아차렸다. 응시자가 133명이나 되는데도. 추 교수는 배진명에게 1등에 해당하는 최고점 93점을 부여했다. 배진명은 숙명여대 성악과에 최종 합격했다. 추 교수는 이듬해 숙명여대 입시에 또 관여했다. 이번에 합격시켜야 할(?) 입시생은 홍진명(가명). 홍 양을 상대로 한 불법과외는 2022년 9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총 6번 진행됐다. 추 교수와 윤 교수는 2023학년도 숙명여대 입시를 앞두고, 메신저로 이런 취지의 대화를 주고 받았다. 추 교수 : “중대, 숙대 같이 17일 하루, 작년과 같이 가요ㅋ. 애들(부정청탁 입시생) 이름이 똑같네요.ㅎ”윤 교수 : “홍진명을 잘 평가해주세요.”추 교수 : “ㅋㅋㅋ 같은 이름 다 잘되길요.” 지난해 1월 17일, 추 교수는 숙명여대 성악과 입시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번에도 입시생 홍진명의 목소리를 알아차렸다. 140명의 응시자 중 1등에 해당하는 최고점 90점을 그에게 부여했다. 홍진명도 숙명여대 성악과에 합격했다. 이들의 부정입학 스토리는 법원 판결로 모두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8월 28일 업무방해,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추 교수에게 징역 3년과 추징금 600만 원을 선고했다. “장차 예술계에서 재능을 꽃피우겠다는 희망과 열정을 가진 수많은 학생들과 이들을 뒷바라지 하는 학부모들로서는, 피고인의 이와 같은 각 범으로 인하여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돈과 인맥 없이는 대학교 입학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또한 예술가로서 제대로 성장해 나가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극도의 불신과 회의감, 깊은 좌절감과 허탈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1심 판결문 양형이유) 추 교수는 재판 과정에서 본인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1심 판결의 양형에 불복해 항소했다. 추 교수는 안양대학교에 사직서도 제출했다. 현직 교수가 불법과외를 한 것도 모자라, 심사위원으로서 부정하게 대학에 입학시켜준 사건. 그렇다면 1심 판결 이후 숙명여대는 어떤 조치를 했을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김준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시정)의 도움을 받아 숙명여대에 문의했다. ▲학부생 배진명, 홍진명을 대상으로 한 숙명여자대학교 입학취소처리심의위원회 구성 여부와 ▲숙명여자대학교 입학허가 취소 여부를 물었다. 숙명여대는 지난 9월 24일 아래와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우리대학은 이 사건과 관련된 입시자료 전부를 압수당한 상태로 사전에 관련 학생을 특정할 수 없었고, 학생 특정 및 사실 확인을 위해 검찰청 및 법원에 압수물 반환 청구를 한 바 있으나 불허된 상태입니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실확인 절차를 위한 1심 판결등본 송부 신청 진행 중이며, 판결등본 및 해당 자료를 수령하는 대로 관련 법령 및 규정에 따라 관련 위원회 개최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숙명여대는 아직도 ‘부정입학자’ 배진명과 홍진명의 입학허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추 교수의 1심 선고로부터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학교 당국은 판결문조차 보지 못했다. 심지어 셜록 기자도 어렵지 않게 입수한 판결문을.  사실 입학취소 결정에 법원 판결문이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2조의4는 ‘학칙으로 정하는 부정행위’가 있을 경우도 입학허가 취소 사유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 부정입학자 입학취소는 학교 당국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숙명여대는 학칙 제32조2(입학취소)에 “평가자와의 사전 접촉 등 부정한 방법으로 전형과정에 개입하여 공정한 학생 선발 업무를 방해한 경우” 입학취소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해놓았다. 실례로 서울대학교는 ‘가짜 스펙’을 이용해 치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한 이해슬(가명)의 입학허가를 취소한 바 있다.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이뤄진 조치다. 셜록은 ‘교수 엄마’의 권위를 이용해 부정하게 입시 스펙을 쌓은 이해슬의 사례를 세 편의 기사로 보도했다.(관련기사 : <논문도 봉사도 ‘대타’… 가짜 고대생, 서울대도 속였다>) 상식적으로 비교하자면, ‘가짜 스펙’을 입시에 활용한 것보다 심사위원을 매수한 것이 훨씬 무겁게 여겨진다. 그럼에도 숙명여대는 ‘부정입학자’들을 입학 취소하지 않았다. 지난해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을 때도, 올해 7월 검찰이 추 교수를 구속기소 했을 때도, 그리고 올해 8월 1심 판결이 나왔을 때도, 숙명여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교육부는 어떨까? 셜록은 지난 9월 교육부 사교육ㆍ입시비리대응 담당관에게 물었다.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확정되면, 그때는 저희도 대학 측에 공문 등을 공식적으로 보내서,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된 건지’ 또 ‘향후 어떻게 계획과 조치는 어떻게 할 건지’ 등을 제출하라고 해서 계속 (추후 조치를) 모니터링할 예정입니다.” 교육부 역시 아무것도 안 하는 중이다.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확정되면” “모니터링 할 예정”이라는 입장. 추 교수는 이미 재판에서 범죄 사실을 모두 인정해, 증인 한 명 부르지 않았다.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했고 실형 판결까지 나온 마당에 무슨 ‘사실관계 확정’을 기다린단 말인가. 그리고 그걸 전제로 약속한 조치가 기껏 모니터링이라니, 강 건너 불구경 수준의 태도다. 교육부의 이런 미온적인 태도는 낯설지가 않다. 셜록이 보도한 ‘가짜 고대생’ 사례에서도 똑같았다.(관련기사 : <고려대·교육부 수수방관… 여전히 빛나는 ‘가짜’ 졸업장>) 당시 장관이 “엄중한 관리·감독”을 약속했는데도, 교육부는 지난 5년 동안 부정입학자 이해슬의 고려대 입학취소 여부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 기자는 ‘입시 브로커’ 윤 교수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지난달 31일, 국민대학교를 직접 찾아갔다. 하지만 윤 교수를 만날 수 없었다. 당일 학교에서 만난 관계자는 “윤 교수는 이번 학기 수업이 없는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학과 행정실에도 문의했다. 행정실 관계자는 “학과 사이트에 나와 있는 윤 교수 이메일로 문의하라”고 안내했다. 기자는 지난 8일 윤 교수 이메일로 서면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후 학교 본부에 문의한 결과, 지난 6월 윤 교수를 직위해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정입학자’들 쪽에도 접촉을 시도했다. 소셜미디어 계정을 찾아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배진명은 2022년 2월 한 클래식 공연에 소프라노로 참여했다. 해당 공연을 주최한 공연기획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배진명의 프로필에는 “2022학년도 숙명여대 성악과 합격”이란 문구가 여전히 적혀 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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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없는 대통령의 말… “정치적 무책임 몸에 뱄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대통령실에서 약 140분간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견을 앞두고 회견 시간이나 분야·개수 등 제한 없이 모든 사안에 대해 답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에 앞서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이어진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26개의 질문을 받았다. 대통령실이 강조했던 것처럼 앞선 기자회견과 비교했을 때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질문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반전 없는 맹탕 회견’, ‘자충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2022년 6월 53%를 기록했던 지지율은 임기 절반 만에 17%(8일 기준)까지 하락했다. 지난 2년 반 대통령은 어떤 말을 했을까. 또 그의 말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6일 예술사회학 연구자인 이라영 문화평론가(이하 ‘이라영 작가’)를 만났다.  그는 <말을 부수는 말>,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타락한 저항>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그는 ‘권력의 말’을 해체하고 정확한 언어로 현실을 문제를 꼬집는 데 주목했다. “용산으로 대통령실 옮길 때 그랬잖아요. 제왕적 대통령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이전한다고. 그런 핑계를 댔는데 이후에 거부권을 얼마나 남발했어요? 군사독재 이후로 이보다 더 제왕적 대통령이 있었나 싶을 정도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통령실 이전을 공식화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앞세웠다. 그러나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 이유에서 ‘소통 미흡’은 3순위 안에 번번이 들었다. “이번 정부 들어서 소수자의 목소리는 완전히 묵살됐어요. 특히 참사 유가족들의 목소리요.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과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어서 정치가 실종됐다는 거죠.” 이라영 작가는 참사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권력의 성격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묵살(默殺)의 ‘살(殺)’이 살인(殺人)의 ‘살(殺)’과 같다”며, “묵살은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력의 행위이기도 한데, 이를 참사 유가족에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사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지적은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지난달 25일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마주하는 질문들’ 포럼에 참석한 최성용 성공회대 연구원(국제문화연구학과 박사 수료)은 이렇게 말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애도를 두고 ‘정치 편향적이다’라면서 분향소를 철거하거나 강제로 이전시킬 수 없죠. 우리가 어떤 리본을 하나 다는 것도 눈치를 봐야 되고, 리본 문구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고. 이거는 애도가 아니죠. 권력 행위죠.” 그는 “참사 대신 사고라 명명하고, 희생자의 영정 사진과 위패가 없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정부의 애도는 다분히 형식적이었고 그 내용이 텅 비어 있었다”며, “참사 피해자의 존재를 없애고 침묵시켰다”고 비판했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158명이 사망했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참사 74일 만에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 지자체, 소방 등 각 기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들의 부정확한 상황판단과 전파 지연, 협조 부실, 구호 조치 지연 등이 참사 원인이라고 밝혔다. 책임자들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으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만 유죄를 받았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관련자들은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권력자들이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말을 남용하면서 정치적 무책임이 몸에 밴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는 그냥 거대한 사법기관만 (남아) 있는 거죠. 사회 정의는 법적인 유무죄 안에 갇히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되면서, 윤리라는 세계가 없어져버렸어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면 참사가 발생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만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권력의 무책임으로 결국 시민들이 희생된다”며, 사회의 고통을 방치하는 권력자들에게 “정치적 책임의 회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는 또 있다. 지난달 1일 국군의 날에 열린 대규모 퍼레이드다. 그는 2년 연속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진행했다. 군은 이날 다양한 군 장비와 병력 등을 선보였다. “국군의 날이라고 퍼레이드를 하면서 정작 억울하게 죽은 군인에 대해서는 덮으려고 하고 밝히지도 않아요. 군 사기를 걱정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죠. 정부는 군 사기를 걱정하지 않아요. 권력의 안위를 걱정하는 거죠.” 윤 대통령은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했다. 그는 ‘선제 타격’, ‘압도적 전쟁 준비’, ‘확전 각오’ 등 전시 상황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강조했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권력이 결국 국민들에게 ‘집단적 불안’을 조장해 사회 부정의를 가렸다고 꼬집었다. “사회를 전시 분위기로 몰고 가면서 차별을 더 강화하고 있어요. ‘지금 전쟁 나게 생겼는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어디 있어?’ 하면서 (다른 문제들을) 사소화시키는 거죠.” 권력자의 외면과 차별로 결국 ‘사과’가 사라진 세계가 도래했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단계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참사나 사고가 발생해도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여기에서 이상한 ‘말’이 탄생한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는데 사과를 해야 하는 자리에 섰어요. 그때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유감입니다’ 이렇게 말해요. 사과하기 싫으니까 에둘러서. 이게 그냥 공직자들의 언어가 돼버린 것 같아요.” 유감(遺憾)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이라영 작가는 권력자가 타인의 마음을 ‘섭섭’하게 만들어놓고, 자신이 도리어 유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문해력에 문제가 있는 건 다름 아닌 ‘권력 집단’이라고 말했다. “언어는 그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쓰면 그냥 그 사회에 그냥 굳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면 점점 사람들이 ‘유감입니다’를 사과의 언어로 이해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정말 우리 사회의 언어를 망치고, 문해력을 교란시키는 주범이 누구인가 하면 결국 ‘권력집단’이에요.” 교육부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 소수자’ 용어를 삭제하고,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노동자’를 ‘근로자’로 변경했다. 이에 당시 인권위는 “우리 사회의 인권 담론을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는 노동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근로자는 조금 더 사용자의 입장에서 수동성이 부각됩니다. 이를 굳이 바꾸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노동자의 주체성, 독립성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거죠.” 말을 바꾼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바꾸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이를 활용해 차별을 강화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권력 집단의 말은 보수적이다. 그들이 활용했던 말과 언어를 지속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사회적 소수자, 피해자 등은 자신의 상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끊임없이 찾는다. 기존의 문화에서는 너무 평범한 말이라고 해도, 차별이나 비하의 의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저는 권력의 위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 표현들을 경계해요. 예를 들면 젠더 ‘갈등’이라는 말을 하려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젠더들의 관계가 모두 평등해야 성립할 수 있어요.그런데 ‘젠더 권력’, ‘젠더 폭력’, ‘젠더 차별’ 이렇게 사용하는 게 더 정확한 상황에서, 뭉뚱그려 ‘젠더 갈등’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러면 말에 권력의 위치가 드러나지 않거든요. 지역 ‘갈등’도 그렇고요. 저는 권력이 행하는 차별과 폭력을 순화해주고 싶지 않아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세우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표명했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정부 아래 ‘여성혐오 범죄’가 어떻게 인정될 수 있겠냐고 탄식했다. 구조적 성차별 없다고 했으니 여성혐오는 검증될 수도, 인정될 수도 없다. 따라서 ‘여성혐오 범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잇달아 발생하는 교제폭력, 교제살인, 여성혐오 폭행 사건 등은 모두 개인화된다. 즉, 별난 가해자가 저지른 기행으로 둔갑되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 역시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17%라는 지지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윤석열 정부는 민심을 얻지 못했다. 탄핵론에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이라영 작가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정황이 이렇게 나와도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같은 분위기가 형성 안 되잖아요. 왜냐하면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이니까요. 이쪽을 끌어내리면 또 누구를 앉힐까. 잘 모르겠어요. 이게 사람들을 되게 절망적이고 무력한 시민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이라영 작가는 “정치가 고통을 외면하는 세상”에 돌파구는 결국 연대라고 강조했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쉽게 묻힐 수 있어도, 여럿이라면 권력에 견줄 ‘힘’을 만들 수 있다. “인간이 품은 모방 욕구는 아름다움을 복제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무엇을 복제할 것인가. 권력화된 아름다움인가 분배하는 아름다움인가. 아름다움과 선함에 대한 동경이 나 이외의 타자와 동등하게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결될 수는 없을까.” – <말을 부수는 말>(이라영, 한겨레출판, 2022) 중에서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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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테러리스트 취급” 케이블타이 진압, 인권위 진정
케이블타이에 결박당한 청년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백륭(22) 씨 등 청년 4명은 29일 국방부와 대통령경호처, 용산경찰서에게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이들을 대리해 진정인으로 나섰다. 청년들은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서울 중구 인권위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건희(윤석열·김건희 부부)는 국민들의 명령으로 발의돼 국회가 가결시킨 법안 24가지를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중에는 자신들의 수사 개입 의혹, 비리 의혹, 주가조작 의혹 등을 밝혀낼 특검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국민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20대 청년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청년들은 지난 4일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구하기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찾았다. 이들은 국방부 후문을 통과하자마자 저지당했다. 바닥에 얼굴이 짓눌리고,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압박되기도 했다. 심지어 양손이 뒤로 꺾여 케이블타이에 묶였다. 한 여성은 진압 과정에서 옷이 벗겨져 속옷이 그대로 노출되기도 하고, 또 다른 여성은 다리에 멍이 들었다. 이들 역시 케이블타이로 손목이 묶인 상태로 용산경찰서로 끌려갔다.(관련기사 : <소총 멘 군인이 케이블타이로 결박… “계엄군 떠올라”>) 당시 국방부 후문은 서울경찰청 202경비단과 국방부 근무지원단 50군사경찰대 소속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케이블타이로 청년들의 손목을 결박한 건 군사경찰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제압이 이루어졌는가 하는 의문이다. 국방부는 “군사기지 내 인원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을 보호함에 있어 급박한 상황으로 판단, 초병이 휴대 중인 케이블타이를 사용하여 최소한의 범위에서 침입한 인원을 제압하였다”고 해명했다. “저희 대학생들은 총, 폭탄은 고사하고 작은 칼 하나 들고 가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구호 한마디 적힌 플래카드 한 장을 들고 맨몸으로 찾아갔습니다.” 대통령실 진입을 시도했던 청년은 총 4명. 맨몸의 청년들에게 각 서너 명의 병력들이 달라붙었다. 한쪽에는 소총을 메고, 검은 제복에 방탄 조끼를 입은 군인들이었다. 학생들이 현수막을 펼치거나 구호를 외친 것도 아니었다. 국방부 영내에 뛰어들었다는 이유로 아스팔트에 얼굴이 짓눌리고, 팔이 뒤로 꺾이고, 손목이 케이블타이에 묶였다. 최석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변호사는 “맨몸으로 들어가 아무 폭력행위도 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물리적으로 제압한 상황이 의문스럽다”며, 특히 “어떠한 장구로 사람들을 무조건 묶어도 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두 번째 문제는 ‘케이블타이’가 군사경찰장비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사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군사경찰장구가 명시돼 있다. 여기에는 수갑, 포승, 경찰봉, 전자충격기, 전자충격총, 방패, 헬멧 등 보호장구 및 고무탄총 등이 포함된다. 다만 케이블타이는 찾아볼 수 없다. 국방부는 “케이블타이는 군사경찰로서가 아닌 초병으로서 사용하였으며, 초병이 휴대하고 있는 세부장비는 작전보안상 공개할 수 없음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답변했다.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는 “수단이 과도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케이블타이는 일할 때 사용되는 것이지 상식적으로 사람한테 쓰이지는 않는다”며, “후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 병력의 수가 (청년들보다) 더 많았을 텐데, 상식적이지 않은 도구로 사람을 묶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002년 헌법재판소는 “과도한 계구(戒具)사용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反)하지 않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계구란 ‘피고인이나 죄인이 도주, 폭행, 소요 또는 자살을 할 우려가 있을 때에 이를 억제하기 위하여 쓰는 기구’를 통틀어 말한다. 지난 29일 인권위 기자회견에는, 당사자인 백륭 씨, 조서영 씨 등과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 5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대학생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한 국방부와 대통령경호처를 규탄한다”고 말했다. 백륭 씨는 “국회의원, 카이스트 졸업생, 의사는 ‘입틀막’ 하더니 면담을 요청하러 간 청년들은 케이블타이로 꽁꽁 묶어 테러리스트인 양 취급하는 게 너무나 분노스러웠다“면서, “누가 이 국가의 주인인지 다시 한 번 되새기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조서영 씨는 경찰서 유치장 내부에서 겪은 인권침해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대학생들이 유치장에 있을 때 가족들 면회 요구를 가로막히고, 부당연행에 항의하며 단식할 때 조롱당했다” 며, “국민으로서, 나라의 주인으로서 대통령에게 면담 요청을 하러 간 대학생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연행하고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고 분노했다. 피해 당사자의 발언 이후에 이들은 손목을 묶은 케이블타이를 가위로 끊어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약 20분 가량 이어진 기자회견이 끝나고, 백 씨는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한편, 이들은 지난 18일 대통령경호처와 군사경찰을 독직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또 용산경찰서를 상대로 폭행, 독직폭행,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에 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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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경호처의 ‘가방 뒤지기’… 인권위는 “우려” 의견 [우상의 정원]
기각 결정은 아쉽지만, 유의미한 의견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책임은 피하고 체면은 지키는 판단으로 이름값을 지켰다. 인권위는 지난달 30일, 대통령경호처와 국토교통부, 그리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의견을 밝혔다. 용산어린이정원 출입 시 이용객 소지품 검사를 최소한으로 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내부 기준을 마련하라는 것.  다만 인권위는 소지품 검사 자체가 인권침해나 차별행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지난해 8월, 용산어린이정원 측의 과도한 이용객 소지품 검사에 관해 진정을 넣은 결과다. 먼저, 위 영상부터 보자.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이하 용산시민회의)’ 대표가 용산어린이정원 측으로부터 소지품 검사를 당하는 영상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7월 13일과 22일 두 차례 용산어린이정원을 출입했다. 당시 김 대표는 보통의 이용객들처럼 엑스레이 보안 검색대를 아무 문제 없이 통과했다. 하지만 용산어린이정원 측은 김 대표의 가방 지퍼를 직접 열고, 소지품을 하나씩 살폈다. 서류 파일까지 꺼내 그 안에 들어 있는 문서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내용을 확인했다. 소지품 검사를 진행한 보안 검색대 직원의 목에는 “대통령실 경호부대” 신분증이 걸려 있었다. 상식을 벗어나는 수위 높은 ‘가방 뒤지기’는 1분 가까이 진행됐다. 김 대표와 함께 용산어린이정원을 출입한 용산 주민 5명 역시 똑같은 수위로 소지품 검사를 당했다.(관련기사 : <경찰은 왜 ‘윤석열 색칠놀이’ 제보자 뒤를 쫓아갔을까>) 김 대표와 용산 주민들은 “용산어린이정원 측의 보안 검색은 통상적인 검색 수준을 넘어서는 행위로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피해자들의 행복추구권,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셜록은 지난해 8월 25일, 이 사건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인권위 침해구제2위원회(이충상 위원장)는 진정 이후 약 1년 1개월 간의 검토 끝에 결과를 내놨다. 대통령경호처 처장, 국토교통부 장관, LH 사장을 상대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안 검색을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실시하고, 구체적인 내부 기준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LH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용산어린이정원을 포함한 용산 미군기지 반환부지에 대한 유지 관리 및 운영을 위탁받은 주체다. 또 “용산어린이정원은 대통령 경호구역”이라는 이유로 대통령경호처도 관여돼 있다. 인권위는 “대통령실 인접 구역 출입자에 대한 보안검색 등 경호활동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명백히 위해물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물품까지 검색하고 그 내용까지 확인하는 행위는 경호에 필요한 통상적인 보안 검색 수준을 넘어서 우려가 있다“고 봤다. 이어 인권위는 대통령경호처 등 기관들의 행위가 기본권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용산어린이정원의 보안 검색대 직원들이 진정인들이 보유한 문서의 내용까지 열람한 사실이 인정되는데, 육안으로 보더라도 단순 서류에 불과하여 위해물품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도 굳이 열람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이러한 검색 관행이 지속되는 경우 헌법 제17조에서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의 기본권이 과도하게 제한될 소지가 없지 않다.” 다만, 인권위는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진정 자체에 대해서는 ‘기각’을 결정했다. 인권위는 “용산어린이정원은 국가중요시설인 대통령실과 인접한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대통령경호법에 따른 경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피해자들을 상대로 한 보안 검색은 법률상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여전히 분단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안보적 특수성이 있고 국제적 테러의 증가 등도 무시할 수 없는 점, 최근 발생한 국회의원 등을 표적으로 하는 피습사건 등을 고려할 때 경호활동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 점” 등을 언급하며 기각 결정 사유를 설명했다. 피해 당사자인 용산 주민 김교영 씨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겉으로 봐도 위해성이나 규정에 위배될 만한 사안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방에서) 서류까지 (꺼내) 뒤져보는 건 말도 안 되는 조치“라면서, “그럼에도 인권위가 (인권침해 여부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린 건 아쉽다”고 말했다. 김은희 대표는 이번 인권위 결정을, 아쉬움 속에서도 다행스럽게 여겼다. “정부 기관이 국민들의 인권 또는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 조심해서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끔 시정해야한다고 (인권위가) 의견을 말한 거지 않겠습니까.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민들 편으로 보이진 않지만, 일정 정도 국민들의 분위기와 눈치를 보고 이런 의견을 (표명)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김은희 대표는 지난해 8월, 이른바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사람이다. 셜록은 김 대표와, 그와 함께 동행한 용산 주민 5명이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사실을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 <‘윤석열 색칠놀이’ 제보자들, 용산정원 출입금지 당했다>) ‘대통령 부부 우상화’ 논란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후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시민이 최소 23명이 추가로 더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관련기사 : <최소 23명 더 있다… 용산어린이정원 ‘블랙리스트’>) 이들 모두 용산어린이정원 토양오염 문제 등 그동안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을 비판해온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출입금지를 당한 시민들은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 무효 확인’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오는 17일에도 서울행정법원에서 공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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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 교육감 후보, 모두 ‘이것’만은 약속하십시오[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13화]
새로운 서울시교육감을 뽑는 보궐선거 본투표가 5일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 윤호상·정근식·조전혁·최보선 네 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민주진보 단일후보” 정근식 후보와 “중도보수 단일후보” 조전혁 후보가 양강 구도로 맞붙는 모양새다. 정 후보는 ‘역사왜곡 심판’을 내걸었고, 조 후보는 ‘서울교육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이 외에도 취약계층과 특수학급 지원 강화, 교권 보호, 아이 돌봄 등 교육 현안에 관한 여러 정책들을 공약했다. 네 명 중 누구든, 진보-보수 어느 쪽이든, 새로운 서울시교육감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사학비리를 고발한 우촌초등학교(서울 돈암동 소재) 공익제보자들의 일상을 되찾아주는 일이다. 먼저, 우촌초 공익제보자 ‘전원 복직’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은 2019년 5월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했다. 이후 학교 측은, 온갖 사유를 갖다붙여 이들을 징계하고 학교에서 쫓아냈다. 복직에 성공한 제보자는 이양기(58) 전 교감이 유일하다. 그것도 무려 2년 8개월 간의 법정 투쟁 끝에 얻은 결과였다. 겨우 학교로 돌아갔지만, 교무실에 책상도 내주지 않는 등 학교 측의 괴롭힘과 엉터리 징계를 겪어야 했다. 나머지 공익제보자들은 5년째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최은석 전 교장, 교직원 유현주, 박선유 등 공익제보자들은 당장 생계를 이어가는 것부터 문제였다. 학교에서 쫓겨난 지 3년이 지나면서, 서울시교육청에서 지급하는 구조금도 끊긴 상태다. 최은석 전 교장은 광주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다가, 최근 경기 부천시에 새로운 기간제 일자리를 구했다. 유현주, 박선유 씨는 교직원 경력이 단절됐다. 유현주 씨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박선유 씨는 물류센터와 마트를 오가며 ‘투잡’을 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학교 측의 ‘보복소송’ 취하다.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은 학교 재단인 일광학원과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으로부터 약 20건이 넘는 ‘보복성’ 고소·고발과 소송에 시달렸다. 수사기관과 법원에 수시로 불려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일상은 휘청거렸다. 당시 행정실장 직무대리였던 유현주(46) 씨 사례가 가장 심각하다. 유 씨 혼자서 약 14건의 고소·고발과 소송을 당했다. 사건이 병합·분리되거나 일부만 불송치 처분을 받는 등 복잡한 사건 진행 방식 때문에, 정확히 몇 건인지 스스로 셀 수 없을 지경이다. 심지어 유 씨는 ‘집’을 빼앗길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2021년 일광학원은 유현주 씨가 허위 공익신고를 했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유현주 씨 집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했다. 소송은 약 3년 만에 유현주 씨 승소로 끝났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관도 보복소송의 대상이 됐다. 일광학원은 서울시교육청의 잘못된 감사로 인해 스마트스쿨 사업 계약 취소 비용으로 6억 원을 지출했다며, 감사관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결과는 일광학원의 패소. 또한 일광학원은 공익제보자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감사관을 위증죄로 고소했지만, 사건은 역시 무혐의로 종결됐다. 일광학원과 이규태 회장은 자신들의 잘못을 보도한 언론에 대해서도 ‘보복소송’을 일삼았다. 이규태 회장은 지난 4월 셜록 기자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불송치(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일광학원은 셜록을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위자료 명목으로 3000만 원을 청구했다. 셜록은 서울시교육감 본투표가 이뤄지는 16일, 재판에 출석한다.(관련기사 : <일광학원 소송 첫 재판,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지난 8월 ‘우촌초 정상화’를 위한 큰 걸림돌 하나가 사라졌다. 서울시교육청은 일광학원이 제기한 ‘임원취임승인취소’ 소송 2심에서 승소했다. 4년 만에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동안 일광학원 이사회는 회의가 실제로 열리지 않았음에도 회의록을 허위 작성했고, 이사가 아닌 사람이 회의록에 대리 서명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왔다. 서울시교육청은 이사회 임원 선임도, 그들이 내린 결정도 전부 무효라고 봤다. 서울시교육청은 승소 판결 이후, 일광학원 이사회 전체에 대한 임시이사 파견을 준비 중이다. 임시이사들은 2~4년간 학교법인 이사회를 운영하며 학교 정상화를 추진하게 된다. 그동안 일광학원은 서울시교육청과 ‘임원취임승인취소’ 행정소송 진행을 핑계로 2021년부터 서울시교육청의 감사를 거부해왔다.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서울 강동구갑)에서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16일부터 3일간 우촌초 종합감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4년 만에 실시되는 감사다. 우촌초는 2021년 5월 교비로 고급 리조트 ‘아난티(Ananti)’ 회원권을 구매했다. 가격은 1억 9000만 원. 학교 측은 교직원들에게 이용 공지를 하지도 않았고 이에 대한 감사도 거부했다. 이처럼 지난 3년간 추가로 진행된 비위 의심 행위는 없는지 샅샅이 살펴야 한다. 4년 만에 진행되는 종합감사를 시작으로, 우촌초 정상화에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할 때다. 그 첫 번째 목적지는 당연히 공익제보자 전원 복직과 ‘보복소송’ 취하다. 이건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정의와 불의의 문제일 뿐이다. 서울시교육청이 5년간 인생을 걸고 싸워온 공익제보자들에게 ‘회복의 길’을 열어줄 차례다. 그것은 우촌초 공익제보자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미래의 공익제보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누구나 두려움 없이 공익을 위한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공정과 상식의 편에서 공익제보자들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언젠가 좋은 시절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이양기)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은 ‘그날’만을 기다린다. 5년 전처럼, 다시 교문을 지나 출근하는 날. 더 이상 소송을 당할 일도 없고, 경찰서로 법원으로 불려다닐 걱정도 없는 평범한 일상을 손꼽아 기다린다. 서울시교육감 후보들에게 묻는다.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에게 약속하겠느냐고. 그들이 5년 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가장 먼저 그들의 일상을 되찾아주겠느냐고.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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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혈세 낭비 ‘공짜유학’ 검사, 셜록이 또 신고했다 [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
한 달을 기다려도, 법무부는 끝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새로운 ‘표절 검사’를 상대로 훈련비 환수와 징계가 이뤄졌는지를. 그래서 다시 한번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직접 나섰다. 셜록은 11일, 국외훈련 연구논문을 표절한 걸로 의심되는 최우혁 검사(사법연수원 40기)를 부패행위 및 공익침해행위로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에 신고했다. 또 한번 검사 국외훈련비 환수 사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이미 셜록은 ‘논문 표절’을 이유로 검사 국외훈련비를 환수한 최초의 사례를 만들어낸 바 있다. 지난 2022년 셜록은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84건(2019~2021년 발행)에서 표절 논문 5건을 확인했다. 5명의 전·현직 ‘표절 검사’를 권익위에 직접 신고해, 국외훈련비 일부 환수를 이끌어냈다.(관련기사 : <[해결] 표절 검사 5명 훈련비 환수… 셜록이 만든 ‘최초’>) 최근 셜록은 2022~2023년 발행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47건을 추가로 살폈고, 그 중 표절 의심 논문 1건을 또 발견했다. 국민의 혈세로 국외훈련비 약 5200만 원을 지원받고, 선배 검사의 연구논문을 표절한 걸로 의심되는 최우혁 검사의 논문이다. 최 검사가 작성한 연구논문 <네덜란드 검찰 조직과 기능에 대한 연구>의 표절률은 51%다. 셜록이 한 문장 한 문장 대조해가며 직접 확인한 결과다. 총 56쪽 중 33쪽에서 표절 정황이 발견됐다. 표절 대상이 된 저작물은 2013년 네덜란드 대학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온 선배 검사의 논문이다. 최 검사가 1년간 네덜란드에 머무는 데 지원된 국외훈련비는 약 5243만 원이다. 국외훈련 기간 동안 급여도 지급받았다.(관련기사 : <‘또 찾았다’ 혈세 5천만원 받고 선배 논문 표절한 검사>) 셜록은 지난 2022년부터 21편의 기사를 통해 ‘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지난해 6월 개정된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 제18조(비용의 지급 등)에 따르면, “연구보고서의 내용이 부여된 훈련과제와 관련이 없거나 다른 연구보고서·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 해당하면 법무부 장관은 국외훈련비 일부를 환수할 수 있다. 해당 규정이 개정된 것도 셜록의 보도 이후 일어난 변화다. 2023년 법무부 결산자료에 따르면, 법무부는 국외훈련 논문심사에 필요한 ‘기관전용 표절검사서비스’를 1400만 원 주고 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최우혁 검사에 대한 국외훈련비 환수 여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환수 여부를 공개할 경우 “관련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대상자의 사생활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우혁 검사에 대한 부패행위 및 공익침해행위 신고를 접수한 셜록은, 앞으로 권익위의 조사와 처분 상황을 계속 쫓을 예정이다. 아울러 법무부가 ‘표절 검사’를 대상으로 환수와 징계를 자체적으로 이행해 나가는지도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한편, 셜록은 또 다른 ‘표절 검사’들을 찾기 위한 정보공개 소송도 이어가고 있다. 1심 법원은 지난 3월, 국외훈련 검사들의 학위 취득 현황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와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정보에 대한 공개 청구는 기각했다. 셜록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최근 항소했다. 항소심 첫 번째 기일은 11월 20일로 잡혔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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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홍빈 구조비만… 외교부 “몽블랑 조난, 소송 안해” [대한민국 '생존비' 청구소]
한국인 등반가 두 명이 죽었다. 높이 4800m를 넘는 알프스산맥의 최고봉, 프랑스 몽블랑을 등반하다 조난당했다. 지난 10일의 일이다. 프랑스 샤모니 산악구조대(PGHM)는 구조 헬기를 띄워 이들 시신을 수습했다. 이틀 전(8일)엔 한국인 두 명으로 구성된 다른 등반팀을 헬기에 태워 구조하기도 했다. 이 사고를 보면, 떠오르는 소송이 있다. ‘김홍빈 원정대’의 구조비용 책임을 두고 대한민국 정부가 원정대에 제기한 소송. 고(故) 김홍빈 대장은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으로 유명하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 2021년 7월 19일, 김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중 마지막인 브로드피크(8047m) 등반을 성공한 후 하산하던 중 실종됐다. 하지만 약 10개월 뒤인 2022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정부는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대원 3명, 촬영감독 2명 총 6명(광주광역시산악연맹 포함)을 상대로 약 6800만 원의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걸었다. 최초의 기록을 만들고 하산하던 도중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든 헬기비용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김홍빈 대장을 살리지도 못한 실패한 구조작전 비용은, 생사의 고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원정대원들에게 고스란히 지워졌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불과 21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관련기사 : <‘산악영웅’ 잃은 원정대에 윤석열 정부는 소송을 걸었다>) 1심 법원은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했다. 하지만 정부는 1심 법원의 판결대로 약 3600만 원을 돌려받는 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구조비용 약 6800만 원을 전부 받아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7월 다시 항소했다. 최근 2심도 ‘김홍빈 원정대’의 완패로 끝났다. 지난 24일 2심 법원은 김홍빈 대장을 구조하는 데 든 비용 전체(약 6800만 원)를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원정대가 갚아야 한다고 봤다.(관련기사 : <김홍빈 구조비 소송 2심 완패… “7천만원 전액 갚아라”>) 그렇다면 이번 ‘몽블랑 조난 사고’에도 정부의 소송은 예고된 일인 걸까. 김홍빈 구조비용 청구 소송처럼. 기자는 지난 24일 외교부에 질의했다. 몽블랑 조난 사고에 대해서도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주프랑스대사관이 지난 27일 답변을 보내왔다. “모든 비용은 주재국 정부(프랑스)의 부담으로 구조작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외교부는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 없습니다.” 몽블랑 조난 사고에 대해서는 소송 계획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사실 이러한 외교부의 대응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김홍빈 원정대의 경우와 달리, 개인에게 구조비용 책임을 지우지 않으니까. 하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구조비 청구 소송 말고,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외교부가 직접 증명한 꼴이 아닌가. 왜 김홍빈 원정대의 경우에는 그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었을까. 기자가 만났던 재외국민 보호 분야의 전문가도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파키스탄 정부가 ‘구조헬기 띄운 비용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한국 정부는 (김홍빈 원정대에) 구상권 청구를 하고… 매우 지혜롭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 가장 훌륭한 모습은 외교력으로 해결해내는 것이죠. 휴머니티를 서로 공감하는 두 나라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문현철 호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김홍빈 대장이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지 3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구조비 책임을 원정대에게 돌리려는 정부의 소송은 지난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 소송의 끝은 언제가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김홍빈 대장에게 훈장을 주고 현충원에 그의 위패를 봉안한 대한민국. 그리고 김홍빈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들어간 비용 수천만 원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건 대한민국. 두 얼굴의 대한민국은 모순의 가면 뒤에 숨어 있다. 개인이 성취한 명예는 나눠 갖고, 비용의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하는 모순 말이다. 몽블랑 사고에서는 발휘될 수 있었던 지혜로운 외교적 해결이, 왜 김홍빈 원정대의 경우에는 이뤄지지 못했을까. “매우 지혜롭지 못한” 소송을 여기서 멈추는 것으로, 대한민국은 그 의문에 대답해야 한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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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검은물’ 사건 뭉개기… 셜록이 경찰을 고소했다 <블랙워터 게이트 5>
‘검은물’ 고발 사건에 경찰의 ‘검은 제안’이 등장했다. “사건 각하로 종결할 테니까, 저한테 다시 고발장을 주세요. 그래서 다시 (사건을) 시작하는 걸로 좀 하시면 어때요?(…) (경찰) 내부 점검에 걸려요. 제대로 정상적으로 수사가 완벽히 안 됐다고.”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서성민 변호사는 지난해 9월, 불량 상수도관 납품업체 임직원과 공무원 등 사이에 있었던 ‘검은 유착’을 밝히기 위해 형사고발에 나섰다. 사건을 담당한 수사기관은 강남경찰서. 하지만 담당 수사관은 9개월이나 지나 ‘고발 취하’를 유도했다. “다른 사람한테는 얘기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사건은 그의 말대로 각하 처리됐다. 그러나 검찰도 이 같은 처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검찰은 사건 재수사를 요청했다. 셜록과 서 변호사는 ‘고발 취하’를 유도하며 1년째 ‘사건 뭉개기’를 하고 있는 A 경위를 직무유기 혐의로 직접 고소했다. ‘검은물’ 사건의 시작은 시흥 은계지구였다. 경기 시흥시 은계 공공주택지구에서는 2018년 4월부터 수돗물에 이물질이 나온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조사 결과, 이물질의 정체는 상수도관 내부에 코팅된 플라스틱 계열의 물질(액상에폭시 등)이었다.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지난해 7월 은계지구 아파트 단지의 ‘검은물’ 사태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문제의 상수도관을 납품한 회사는 이미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업체였다. 공정위는 2020년 3월, 13개의 상수도관 업체가 사전에 담합해 서로 합의된 기준에 따라 이윤을 배분한 사실을 밝혀냈다. 문제의 상수도관 업체들이 사전에 납품기관에 부정한 청탁을 한 정황도 포착됐다.(관련기사 : <식당서 만나 ‘검은 약속’… 1300억 나눠먹은 그들의 수법>) 하지만 공정위의 발표 이후로도, 담합 업체와 공공기관 등 수요기관의 임직원 및 공무원들 중 아무도 부정청탁 문제로 법적 책임을 진 사람이 없었다. 더 이상의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고, 징계나 처벌로 이어지지도 않은 상황. 이에 셜록과 서 변호사는 상수도관 업체 임직원을 사기 혐의로, 그리고 이들의 부정한 청탁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공공기관 임직원 및 공무원들을 뇌물 혐의로 형사 고발했던 것이다.(관련기사 : <[액션] ‘검은물’에 숨은 검은 의혹… 셜록이 검찰에 고발>) 고발로부터 약 9개월이 지난 올해 6월 20일. 고발인 서성민 변호사는 강남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소속 수사관 A 경위의 전화를 받았다. A경위는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이 사건 (수사를) 계속 진행하기를 희망하냐“고 물었다. 서 변호사는 “(고발 사건을) 끝까지 가는 건 여지 없는 일이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A 경위는 “(수사가) 정상적으로 진행이 안 된다”면서, “사건을 각하로 종결할 테니 고발장을 다시 접수해줄 수 있냐“고 제안했다. “제가 이 사건을 큰 뜻을 품고 한번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인해 가지고 정상적으로 진행은 안 돼요. 그래서 정확히 말씀드릴게요. 이거를 일단은 다시 저한테 고발장을 한 번 더 주세요.” 약 9개월 동안 고발인 조사가 한 차례 진행됐을 뿐, 피고발인에 대한 조사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 와서 굳이 재고발을 해달라는 ‘수상한’ 제안. A 경위는 이유를 묻는 서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사 기일이 너무 장기화됐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경찰) 내부적으로 점검을 하거든요. (…) 변호사님, 진짜 내가 사정 좀 드릴게요. 이게 다른 생각이나 이런 건 아니고, 좀 도와주세요. 일단 도와주시고. 제가 오죽하면 이렇게 얘기하겠어요. 저도 너무 어이가 없고, 죄송하고….“ A 경위는 더 놀랄 만한 발언을 이어서 했다. “다른 것(사건)들도 다 (비슷한 방식으로) 정리를 하는데요. 변호사님한테 내가 솔직히 말씀드리니까, 다른 사람한테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믿고 얘기하는 겁니다. 내부 점검에 걸리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여러 고발인에게 고발 취하나 재고발 접수를 요청하고 있다는 자백에 가까운 고백.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은 더 놀라웠다. 이번에는 문제를 강남경찰서 전체로 확대시켰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수사관들도 그래요. 강남(경찰서)은. (고발인들에게) 부탁해가지고 다시 (고발장) 접수받아서, 기일을 다시 잡아서 (사건을 다시) 시작할 겁니다.” 강남경찰서 내 다른 수사관들도 자신과 같이 고발인들에게 ‘고발 취하’를 요청하고 있다는 폭로. A 경위는 고발 취하 날짜까지 정해줬다. “(함께 고발한) 진실탐사그룹 셜록한테도 협조를 (부탁)해주시고… 오늘 중으로 고발 취하장 있잖아요, 팩스로도 보내주셔도 돼요. (경찰 내부) 점검이 다음주라서….” 셜록과 서성민 변호사는 고발 취하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고발 취하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강남경찰서는 지난 6월 28일 ‘검은물’ 고발 사건을 각하 처분하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공정위의 조사 결과와 제재 사실을 근거로 한 고발이었음에도, “고발인의 추측만을 근거로” 고발했다는 어이없는 명분을 내세웠다. “고발인의 추측만을 근거로 본건 고발을 한 것으로 파악되기에 수사를 개시할 만한 구체적인 사유가 충분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불송치 통지서) 각하 처분 이후 서 변호사는 다시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A 경위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지난 8월 초부터 약 2주 동안 15번의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결국 A 경위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 사이, 오히려 검찰에서 사건을 다시 끄집어올렸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검사 선현숙)은 지난 8월 강남경찰서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강남경찰서로 넘어갔다. 경찰 내부 점검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고발인에게 고발 취하를 요청한 A 경위. 그의 입장은 무엇일까. 기자는 지난 4일 강남경찰서를 찾아 그를 직접 만났다. “기자가 오해하고 있는 생각대로였다면, 애초에 (고발인에게) 전화 안 했습니다. 당연히 전화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각하 쳐버리면 됩니다. 그게 더 깔끔해요. (…)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죠. 한번 (경찰 입장을) 역으로 생각해주십시오.“ 셜록과 서 변호사가 고발장을 접수한 게 지난해 9월. 그동안 수사는 얼마나 진행된 걸까. “(고발인을 통해) 자료 받은 걸로 공정위 쪽에 저희가 확인을 해봤고요, 그 상황에서 이제 각하를 한 거예요. (…) (고발장이 재접수되면) 실질적으로 (사건을) 거의 다시 시작할 거예요.” 경찰 수사관이 고발인에게 고발 취하와 재고발을 요청하는 게 상식적인 일일까. 경찰 출신 손병호 변호사(법무법인 현)는 단호하게 지적했다. “염치없는 요청입니다. (내부적으로) 장기사건 점검 때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하는 부탁이잖아요. (…) 그야말로 행정 편의주의적인, 수사관 개인의 편의를 위한 요청이잖아요. (…) 각하는, 수사할 만한 사건이 되지 않는다 판단해서 수사하지 않고 끝낸다는 개념입니다. (고발로부터) 9개월 정도 있다가 (사건을) 각하하는 건 상당히 잘못된 겁니다.” 기자는 강남경찰서의 반론을 듣고자 시도했다. 지난 20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강남서에 서면질의서를 넣었다. 전화 연결도 시도했다. 기자는 지난 19일부터 27일까지 A경위가 소속된 지능범죄수사팀 과장(언론대응 담당)에게 총 9차례 전화를 시도했다. 27일엔 지능범죄수사팀 소속 담당자를 통해 “과장님의 회신을 부탁드린다”는 메모도 남겼다. 하지만 전화 연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고발인 서성민 변호사는 A 경위의 행위가 시사하는 현재 경찰의 문제점을 이렇게 짚었다.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이 사라지면서, 경찰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수사를 끝내도 고발인은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수사하고 싶다는 둥 핑계를 대며 고발 취하를 유도하고, ‘(사건을) 불송치할 테니 재고발 해달라’는 제안까지 이른 것은 현재 경찰의 범죄수사가 총체적인 난국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셜록과 서 변호사는 30일 A 경위를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형사고소했다. 또 A 경위에 대한 수사관 기피(교체) 신청을 진행해 ‘검은물’ 고발 사건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끝까지 감시할 예정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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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도 미련도 없이… “제가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20화]
붉은색으로 염색한 풍성한 머리로 이마와 뒷목을 덮은 청년이 스타벅스에 나타난 건 늦은 오후였다. 검은색 뿔테 안경과 오른 손목의 은색 팔찌는 조명으로 더 반짝거렸다. “접니다, 기자님….” 키 180cm쯤 되는 호리호리한 청년은 내가 앉은 자리로 걸어와 고개를 숙였다. 검은색 셔츠 탓에 붉은색 머리카락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저 도영입니다. 강도영.” 그럴 리가. 내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가 씩 웃었다. 하얀 이가 도드라졌다. 3주 전에 가석방으로 출소한 사람 치고 너무 알록달록한 거 아닌가 싶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강도영(가명)과 체격이 너무 달랐다. “저 강도영 맞습니다. 편지로 살 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교도소에서 60kg 정도 뺐습니다.” 강 씨는 뇌출혈로 온몸이 마비된 아버지를 간병하다 사망에 이르게 한 존속살해 혐의로 2021년 8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그해 11월 프로젝트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를 통해 그의 사연을 자세히 보도했다.  간병노동과 영케어러(young carer)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떠올랐다.(관련기사 : <“쌀 사먹게 2만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 그때 법정에서 본 강 씨는 130kg의 거구였다. 대구교도소에서 면회했을 때도 인상은 비슷했다. 면회실 투명창 너머의 강 씨는 몸집이 크고, 얼굴은 둥글고, 표정은 어두웠다. 그를 직접 본 건 그 두 번이 전부였다. 지난 7월 30일 가석방으로 출소할 때까지 셜록은 그와 편지로만 소통했다. 지난 8월 20일, 대구 그랜드호텔 1층 스타벅스에 반쪽이 된 얼굴로 나타난 그를 알아보지 못한 건 당연했다. 무엇보다 ‘강도영 알아보기’를 방해한 건 내 가슴속 편견이었다. 존속살해 혐의로 복역 후 갓 출소한 가난한 청년은 머리 염색이나 액세서리를 하지 않을 테고, 웃음기 없는 위축된 얼굴이나 울분 가득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란 고정관념 말이다. 편견을 버린 뒤에야 ‘병든 아버지를 굶겨죽인 패륜아 사건’의 숨겨진 진실이 보였던 2021년 11월 그때처럼, 나는 내면의 생각부터 정리해야 했다. 살인범이란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야 하는 스물다섯 살 강도영과의 대화는 그 후에야 가능할 듯했다. 이렇게 다짐을 해도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저기… 편지로 이야기한 대로, 많은 사람이 도영 씨 근황을 궁금해 해요.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는 사람도 많구요.” 강 씨는 ‘패륜살인 가해자’로 언론에 처음 등장했다. 셜록의 보도로 그를 향한 여론은 동정과 연민으로 바뀌었다. 밥을 사고 싶다는 사람부터 복지 혜택을 알려주겠다는 사회복지 공무원까지, 강 씨의 안부를 묻는 독자의 문의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관심은 고맙지만, 기자님과 인터뷰를 끝으로 저는 세상에서 조용히 잊히고 싶습니다. 제가 잘난 일을 해서 관심 받은 것도 아니고….” 오래 생각한 일인 듯 강 씨의 낮은 목소리는 단호했다. 가석방으로 출소한 지 약 3주가 된 때, 강 씨는 친구 집에 머물고 있었다. 출소 후 주민등록을 마치자마자 그에게 날아온 건 돈을 갚으라는 독촉장이었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채무였다. 강 씨는 상속 포기 등 생소한 일을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다. “예전에 아버지랑 살던 집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거기서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사망하고 자신이 용의자로 체포된 현장, 그의 옛집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의 근황만이 아니라 정말로 누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는지, 그때의 이야기를 강 씨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인터뷰 장소와 날짜가 잡혔다. 9월 6일,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이 대구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다세대 주택이 빽빽한 골목 사이로 덥고 습한 바람이 불었다. 강 씨는 역시 ‘컬러풀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가 아버지와 함께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을 내고 살던 다세대 주택의 2층은 비어 있었다. 사건이 벌어진 그날부터 쭉 그랬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의 마당 한쪽 구석에서 저 혼자 높이 자란 엄나무의 이파리만 무성했다. “저 때문에 세입자가 안 들어오는 건가 싶어, 1층에 살던 주인집 할머니에게 죄송하네요. 아버지 쓰러지고 3개월 정도 됐을 때, 그 할머니가 10만 원도 빌려주셨는데….” 강 씨의 아버지는 2020년 9월 13일 뇌출혈로 쓰러졌다. 강 씨는 군 입대를 앞둔 21세 휴학생이었다. 갑자기 간병청년이 된 그에겐 돈이 없었다. 약 2000만 원에 이르는 아버지 치료비를 삼촌이 댔다. 아버지가 사망한 이듬해 5월까지, 월세·도시가스·전기요금·통신료 등 모든 게 밀렸다. 당시 강 씨는 집주인 할머니에게 10만 원을 빌렸다. 강 씨가 외부인에게 빌린 유일한 돈이다. 그의 삼촌도 더는 병원비를 댈 수 없게 된 2021년 4월 23일, 강 씨는 사지가 마비된 아버지를 퇴원시켜 집에서 간병했다. 약 보름 뒤인 5월 8일, 아버지는 안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 지경이 될 때까지 그는 왜 공공기관에 도움 요청을 하지 않았을까. “공적 도움을 아예 안 알아본 건 아니에요. 주민센터에 전화로 물었는데 ‘아버지 장해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그 진단서를 받으려면 사설 앰뷸런스 이용 등 최소한 10만 원 이상이 들더라구요. 그때 저는 쌀값 2만 원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 돈을….” 강 씨는 당시 친구들에게도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가장 후회하는 부분이에요. 친구들이 ‘왜 우리에게 말을 안 했느냐’고 저를 질책하더라구요. 제 성격 탓이에요. 저는 친구들에게 신세 지기 싫었고, 그게 타인에게 부담 주지 않는 배려라 여겼어요. 근데 친구들은 반대로 제 태도에 실망을 했더라구요.” 후회하는 만큼 강 씨는 출소 후 조금 달라졌다. 이제 그는 타인에게 어려움을 말하고, 필요할 땐 도움도 요청하곤 한다. 그의 친구는 출소 후 지낼 거처를 제공했고, 친구 부모님은 강 씨가 주민등록을 할 수 있도록 주소지를 제공했다. 강 씨는 ‘전태일과친구들’ 관계자와 함께 공공기관을 찾아 긴급생활지원금도 신청했다. 대구 수성구청은 강 씨에게 임시 거주지를 제공했고, 9월 현재 그는 그곳에 거주하고 있다. 곧 청년임대주택에 입주할 예정이다. 강 씨는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 건 이기적이고 나약한 태도가 아닌 시민의 권리라는 걸 배우고 있다. 교도소에서 편지로 소통할 때, 강 씨가 가장 자주 언급한 건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집”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즈음에 엄마와 헤어졌다. 일터에 나간 아버지는 늘 밤늦게 귀가했다. 캄캄한 유년의 빈집은 그의 내면에 트라우마로 남은 듯했다. 아버지가 쓰러진 후에도 그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준 것 역시 빈집이었다. “사람들은 아버지 대소변 치우는 게 힘들지 않았느냐고 묻는데, 그건 별 고통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아버지가 병원에 있던 4개월간 혼자 집에서 지낼 때 정말 막막하고 힘들었거든요. 아버지가 퇴원해 집에 돌아온 4월 23일, 저는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어요. 아, 이제 혼자가 아니구나… 아버지가 옆에 있구나….” 그 안도감은 또 다른 비극의 시발점이었다. 사실 강 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도시가스가 끊긴 집에선 끼니 해결도 어려웠다. 돈을 벌어야 했다. 당혹스런 일은 아버지 퇴원 바로 다음 날인 4월 24일 밤부터 벌어졌다. “편의점에서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온몸이 마비된 아버지를 어두운 집에 홀로 두고 일하러 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혼자 있으면 아버지도 나처럼 막막할 텐데, 혼자 있다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별 걱정이 다 들고 너무 불안했죠.” 이미 깊은 우울증을 앓던 그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일주일 뒤인 5월 1일 강 씨는 편의점 사장에게 해고 통보를 받았다. 강 씨는 “그날의 해고가 결정타였다”고 회고했다. “굉장히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였거든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알바를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일을 제대로 못하고, 그러다 해고당하고…. 제대로 되는 일도 없고, 나아질 희망도 없고, 노력을 한다고 내일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다 엉망이었죠. 편의점에서 해고당한 날 모든 게 끝장났구나 싶었어요. 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도 컸구요.” 바로 그날부터 강 씨는 아버지가 누워 있는 안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일주일 뒤 아버지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재판부는 강 씨의 방치를 고의에 의한 존속살인으로 판단했다. 약 3년 4개월이 지난 지금, 에둘러 가지 않고 강 씨에게 물었다. “재판부 판결대로, 아버지를 본인이 죽였다고 생각합니까?” 강 씨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하늘을 한 번 보고, 땅도 잠시 바라봤다. 작은 한숨도 뱉었다. “그게… (잠시 침묵) 제가 그런 거죠. 제가 아버지를 죽인 거죠.” 뜻밖이었다. 강 씨는 재판 과정에서 유기치사를 주장했었다. 근데 이제 와서 왜? “제가 아버지 누워 있는 방에 안 들어갔으니까요.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고…. 아버지를 죽일 목적으로 안 들어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안 들어가서 돌아가신 건 맞으니까….” 뭔가 애매한 말이었다. 강 씨의 이런 태도는 처음이 아니다. 사건이 벌어진 그때부터 모든 게 그랬다. 판결문에도 당시 상황이 담겼다. “피고인(강도영)이 피해자(아버지)의 사망을 의욕하고 적극적인 행위로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켰다고 보기는 어렵고, 피고인은 피해자를 사망하도록 놔두어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로도 피해자가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호소하면 물과 영양식을 호스에 주입하는 등 포기와 연민의 심정이 공존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대구지법 제11형사부 판결, 2021고합248) 여전히 그때의 심정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듯했다. 내가 따지듯 물었다. “그때 도영 씨가 안방에 들어갔으면 아버지가 생존했을 거 같아요?” “(한참 동안 침묵) 확답하긴 어렵네요. 아버지는 제 방치가 아니라 뇌출혈 합병증으로 돌아가셨을 수도 있긴 하죠. 퇴원할 때 의사도 ‘언제든 사망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요. 사망 원인은 누구도 알 수 없죠.” 부검 결과 아버지의 사인은 ‘영양실조에 따른 폐렴’이었다. 언뜻 강 씨의 방치에 따른 결과로 보이지만, 아버지는 병원에 있을 때부터 영양실조였다. 입원 당시에도 생명이 위중한 응급상황이 벌어졌다. 아버지의 사인과 사망 시점을 엄밀히 따져야 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판정하기 어려운 내면의 풍경, 즉 ‘강 씨가 아버지의 죽음을 의도했는지’ 여부만 쟁점이었다. 그에게 다시 물었다. “누구도 사인을 정확히 모르는데, 강도영 씨만 처벌받았잖아요! 그게 억울할 수도….” 강 씨가 내 말을 끊었다. “억울하지 않아요. 정말로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확실한 건 아니잖아요. 결국 확실한 사실로 남은 건, 제가 책임을 안 졌다는 거잖아요.” 세상에서 잊히고 싶다고 말하던 때처럼 강 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도의적인 책임에서 비롯된 감정일까? “누구를 탓하고 원망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결과가 달라질 일도 없잖아요. 그냥 제가 책임을 못 졌으니까… 아픈 아버지는 제 책임이었으니까요. 제가 방에 들어가지 않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강 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에게 벌어진 일을 “무슨 말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어떤 말을 해도 세상 사람들은 믿지 못할 것”이란 아쉬움도 밝혔다. 교도소에서 그때의 사건을 수없이 곱씹어 봐도 답을 딱히 내릴 수도 없었다. 생각할수록 마음만 괴로웠다. 결국 그는 “모든 건 내 책임”이라고 스스로 정리했다. 스물한 살 때 겪은 그 엄청난 일을 자기의 언어로 정리해서 설명하려면 아직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한 듯했다. “구치소, 교도소 감방 동료들에게 왜 구속됐는지 설명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거든요.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길 했는데, 다들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더라구요. 감방에 와서야 위로의 말을 처음 들어봤는데, 기분이 디게 묘하더라구요.” 셜록 보도 직후, 강 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에 시민 약 6000명이 서명했다.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강 씨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고, 김부겸 당시 국무총리가 복지 사각지대에 대해 사과했다. 강 씨는 역시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감방에서 TV 뉴스를 보는데, 제 이야기가 나오니까 얼떨떨 하면서도 힘을 얻는 계기가 됐죠. 모두가 나를 비난하고 나쁘게 볼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했구요.” 강 씨에게 “다시 아버지가 쓰러진 스물한 살 그때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 것 같느냐”는 다소 잔인한 질문을 던졌다. 수없이 생각했는지 막힘 없이 답이 나왔다. “아버지와 제가 같은 처지로 돌아간다면, 아버지를 퇴원시키지 않고 제가 멀리 도망갈 거 같아요. 그러면 아버지는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잖아요. 최소한 아버지는 살해 피해자, 저는 살인자는 되지는 않겠죠.” 아픈 부모를 병원에 두고 연락 끊어버리기. 벼랑 끝으로 몰린 가난한 누군가에겐 최악의 수가 곧 최선의 선택이란 걸, 강 씨는 교도소에서 배웠다. 그가 홀로 아버지를 돌볼 때 도움의 손을 내밀거나, 연락을 끊어버리라는, 최악이면서 최선인 길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강 씨는 학업을 이어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강 씨의 꿈은 힙합 뮤지션이다. 그는 구속 전부터 작사·작곡을 했다. 기존에 다니던 대학의 전공은 음악과 거리가 멀었다. 다시 수능을 보는 것까지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알바 등 일자리도 알아보는 중이다. 그는 자립의 중요성을 구속 기간 내내 생각했다. 가족이 없는 그는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공부도 해야 한다. 버거운 길을 앞둔 그에게 다시 물었다. “돕겠다는 사람이 많은데, 왜 다 거부하고 세상에서 잊히고 싶다는 겁니까?” 그가 말했다. “계속 간병살인 청년으로 불리면서 과거에 묶이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잖아요. 좋은 일도 아니고, 제가 잘한 것도 없잖아요. 좋은 음악인으로 성공해서 유명해지고 싶어요.” 인터뷰는 그가 살던 집 근처에서 끝났다. 우리는 어느 허름한 치킨집 앞에서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큰길 쪽으로, 강 씨는 그의 옛집 골목 쪽으로 향했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비는 내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봤다. 당장 재개발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누추한 동네의 골목길에서 강 씨 뒷모습만 유난히 알록달록하게 보였다. 카카오택시는 금방 도착했다. 서울행 KTX를 타러 동대구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 더는 강 씨를 간병살인 청년이라 부르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나에게 한 당부이기도 했다. 래퍼 강도영이 어떤 곡을 들고 세상으로 나올지 천천히 기다리기로 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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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찾았다’ 혈세 5천만원 받고 선배 논문 표절한 검사[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 20화]
또 찾았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세금으로 ‘공짜 유학’을 다녀와, 연구논문을 표절한 걸로 의심되는 검사를 또 발견했다. 인천지방검찰청 소속 최우혁 검사(사법연수원 40기)다. 최 검사가 네덜란드로 국외훈련을 다녀와 작성한 연구논문 총 56쪽 중 33쪽에서 표절 정황이 발견됐다. 표절률은 51%. 표절 대상이 된 저작물은 2013년 네덜란드 대학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온 선배 검사의 논문이다. 최 검사가 1년간 네덜란드에 머무는 데 지원된 국외훈련비는 약 5243만 원이다. 지난 2022년 셜록은, 2019~2021년 발행된 검사 연구논문 84건의 표절 여부를 이미 한 차례 검증한 바 있다. 그중 표절 논문 5건을 발견해, 5명의 전·현직 검사 전원을 대상으로 국외훈련비 일부 환수까지 이끌어냈다. 논문 표절을 이유로 국외훈련비를 환수한 최초의 사례였다.(관련기사 : <[해결] 표절 검사 5명 훈련비 환수… 셜록이 만든 ‘최초’>) 지난달 셜록은 법무연수원 홈페이지(www.ioj.go.kr)에 공개된 2022~2023년 발행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47건을 추가로 살펴봤다. 우선 표절 심의 사이트 ‘카피킬러’를 통해 표절률을 조사하고, 이 중 표절 의심 논문 1건을 발견해 논문 내용을 한 문장 한 문장 직접 검증했다. 최우혁 검사는 2020년 12월 11일부터 다음 해 12월 10일까지 1년 동안 네덜란드 흐로닝언(Groningen)대학교로 국외훈련을 다녀왔다. 당시 최 검사는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 소속이었다. 최 검사는 국외훈련 이후 <네덜란드 검찰 조직과 기능에 대한 연구>라는 연구논문을 작성했다. 해당 논문은 2022년 법무연수원이 발간한 <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집(제37집)>에 실렸다. 최 검사가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저작물은 선배 검사가 작성한 국외훈련 연구논문이다. 이○○ 검사(사법연수원 36기)는 2012년 12월 30일부터 약 1년 동안 네덜란드 라이덴대학교로 국외훈련을 다녀왔다. 이 검사는 <네덜란드의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관계>라는 제목의 국외훈련 연구논문을 작성했다. 셜록이 두 논문을 비교한 결과, 최 검사의 논문 총 56쪽(목차, 참고문헌 제외) 중 33쪽에서 표절 정황이 발견됐다. 전체 문장 421개(논문 요약 포함, 주석 제외) 중 표절로 의심되는 문장이 216개. 표절률은 약 51%다. 문장 두 개 중 하나는 베낀 꼴이다. 최 검사는 논문의 첫 장에 등장하는 ‘논문 요약’부터 베낀 걸로 보인다. 논문 요약에서 최 검사가 새로 쓴 문단은 단 한 문장밖에 없다. 나머지 문단은 아예 이 검사 논문과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검사가 ‘협상처벌(trasactie)’, ‘제재명령(strafebeschikking)’으로 번역한 단어를, 최 검사는 각각 ‘형사협상’과 ‘과형명령’으로 바꾼 정도였다. 본문은 거의 ‘복사-붙여넣기’ 수준이다. 최 검사는 ‘Ⅱ.네덜란드 수사절차 개요’에선 1.범죄의 구분과 2.수사절차 부분을, ‘Ⅲ. 네덜란드 검찰의 조직과 구성’에선 1.검찰제도의 연혁 및 개관과 2.검찰의 조직을, ‘Ⅳ.네덜란드 검찰의 권한과 기능’에선 1. 검찰의권한과 의무와 2. 사법경찰관에 대한 지휘·감독을, 선배 검사 논문에서 거의 ‘통째로’ 가져다 썼다. 문장 순서와 내용 구성 등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다. 최 검사가 한 일은, 선배 검사가 쓴 논문에 새로운 내용 일부를 덧붙이는 정도다. ‘맺음말’까지 절반 이상을 이 검사의 논문에서 가져다 썼다. 참고문헌과, 각주도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동일했다. 최 검사는 참고문헌 목록에 이 검사의 연구논문 제목을 밝혔지만, 문장과 구성의 유사도를 살펴볼 때 단순 참고로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최 검사가 해당 논문을 쓰기 위해 네덜란드에 1년 동안 체류하면서 쓴 국외훈련비(체재비+학자금)는 약 5243만 원(21대 국회 기동민 의원실 제공 자료). 국외훈련 기간 동안 급여도 지급받았다. 최 검사는 왕복항공료로만 약 689만 원을 썼다. 2018년부터 2021년 사이 같은 대학으로 국외훈련을 떠난 검사 5명 중 가장 큰 금액이다. 평균(약 297만 원)의 두 배가 넘는다. 최 검사가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떠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 국외훈련 공무원은 배우자와 자녀 몫을 포함한 왕복항공료를 지원받는다. 지난해 6월 개정된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 제18조(비용의 지급 등)에 따르면, “연구보고서의 내용이 부여된 훈련과제와 관련이 없거나 다른 연구보고서·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 해당하면 법무부 장관은 국외훈련비 일부를 환수할 수 있다. 환수 범위는 최대 20%. 셜록 보도 이후 일어난 변화다. 셜록은 지난 2022년부터 19편의 기사를 통해 ‘표절 검사’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셜록은 검사 5명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직접 신고했고, 이들 전원은 지난 6월 국외훈련비 일부를 환수당했다. 법무부는 상세내역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환수 비용은 최대 3800만 원으로 예상된다. 법무부 장관도 ‘표절 검사’ 국외훈련비 환수 이행을 약속한 바 있다. 이탄희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2월 인사청문회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을 향해 ‘표절 검사’들에 대한 국외훈련비 환수 조치 계획에 대해 질의했다. 당시 박 장관은 “(국외훈련비) 일부를 회수하고 있다”면서, 아직 국외훈련비를 회수하지 않은 사례에 대해서도 환수 이행을 약속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최우혁 검사를 대상으로 한 국외훈련비 환수 여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관련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대상자의 사생활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지난달 26일 셜록의 질의에 답변한 내용이다. 당사자인 최우혁 검사의 입장은 어떨까. 지난 26일 최 검사와 연락이 닿았다. 최 검사는 “표절 논문을 쓴 걸 인정하냐” 묻는 기자의 질의에, “언론사를 직접 대응하지 못하는 (검찰) 내부 방침이 있다,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셜록은 최 검사 역시 권익위에 부패행위로 신고할 계획이다. 한편, 셜록은 또 다른 ‘표절 검사’들을 찾기 위한 정보공개 소송도 이어가고 있다. 1심 법원은 지난 3월, 국외훈련 검사들의 학위 취득 현황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와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정보에 대한 공개 청구는 기각했다.(관련기사 : <법원 “혈세로 유학가서 학위 딴 검사들 모두 공개하라”>) 셜록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최근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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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손실에도 뒷짐만… ‘검은물’ 담합 손놓은 기관들
감사원이 29일 ‘검은물’ 담합 사태 관련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에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기관은 4곳. 한국농어촌공사, 평택시, 충북개발공사, 경상북도개발공사(손해 비용 순)다. 이들 기관은 ‘검은물’ 담합 업체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라는 조달청의 안내에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로 인한 추정 손해 비용은 약 4억 2698만 원이다. 지난해 7월 경기 시흥시 주민들의 공익감사청구 이후 13개월 만에 나온 결과. 하지만 감사원은 후속조치로 각 기관에 ‘주의’ 조치를 내리는 데 그쳤다. 이로써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제기한 형사고발 사건의 수사 결과가 더 중요해졌다. 사건의 시작은 시흥 은계지구였다. 경기 시흥시 은계지구에서는 2018년 4월부터 수돗물에 검은색 이물질이 나온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입주 5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 조사 결과, 검출된 이물질은 상수도관 내부에 코팅된 플라스틱 계열의 물질(액상에폭시 등)로 드러났다. 문제의 상수도관을 납품한 회사는 이미 4년 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제재를 받은 업체였다. 공정위는 2020년 3월, 13개의 상수도관 업체가 사전에 담합해 서로 합의된 기준에 따라 이윤을 배분한 사실을 밝혀냈다. 업체들의 ‘검은 담합’으로 인해 검증되지 않은 상수도관이 각지에 공급된 것이다. 실제 담합 업체들은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물품(상수도관) 품질에 차이가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문제의 상수도관 업체들이 사전에 납품기관에 부정한 청탁을 한 정황도 포착됐다. 담합 업체 중 한 곳의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영업추진업체들은 수요기관을 통해 누가 입찰 참여사로 결정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거나, 적어도 자신들은 입찰 참여자에 포함되도록 수요기관에 영업을 하는 것입니다.”(공정위 의결서 2019입담1496 발췌) ‘검은물’ 피해로 고통받은 시흥시 주민들은 지난해 7월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접수했다. 담합 업체에 대한 마땅한 조치를 취하거나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LH 등 공공기관 ▲조달청 ▲시흥시 등 지자체 ▲공정거래위원회를 대상으로 조사를 요청했다. 감사원은 공익감사청구에 대해 일부 감사실시를 결정했다. 감사원이 감사를 결정한 사항은 ‘한국농어촌공사 등 6개 기관이 조달청으로부터 안내 공문을 받고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경위’였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서 그중 4개 기관(한국농어촌공사, 평택시, 충북개발공사, 경상북도개발공사)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문제를 확인했다. 조달청이 각 기관에 안내를 통보한 시점(2020년 9월)에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거나, 이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기관은 감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4개 기관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발생한 추정 손해 비용은 총 4억 2698만 원. 한국농어촌공사 약 3억 4167만 원, 평택시 약 4733만 원, 충북개발공사 약 3080만 원, 경상북도개발공사 약 717만 원이다. 감사원은 해당 기관들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유에 대해 “(각 기관별) 소송 담당자가 소송제기 업무를 소홀히 하거나 인사이동 시 사무인계·인수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관리자도 소송제기 업무의 지도·감독을 철저하지 않은 데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감사원은 문제가 된 4개 기관 소속 담당자 6명에게 각각 주의 조치만 내렸다. “(각 기관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라는 조달청의 안내 공문을 받고도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될 때까지 업무를 소홀히 하여 손해보전에 필요한 채권을 확보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소송제기 업무 등을 철저히 하고 관련자들에게는 주의를 촉구하시기 바랍니다.”(감사보고서 중) 공익감사청구 대표자인 서성민 변호사는 2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감사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2020년 3년 (공정위 발표 이후) 대대적인 언론보도를 통해 각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상수도관 업체들의 입찰 담합 사실 및 불량 상수도관 납품 가능성을 인지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수돗물 이물질 민원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않은 것은 위법 부당한 사무 처리입니다.감사원이 이 부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줄 것을 바랐지만, 미흡한 조사와 아쉬운 결과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길은 열려 있다. 셜록과 서성민 변호사가 직접 형사고발에 나섰기 때문. 셜록은 서 변호사와 함께 지난해 9월 LH 등 기관의 임직원 및 공무원들과, 불량 상수도관 납품업체 임직원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관련기사 : <[액션] ‘검은물’에 숨은 검은 의혹… 셜록이 검찰에 고발>) 사건을 담당한 강남경찰서는 올해 6월 28일 임직원 및 공무원들에 대해 각하 처분을 하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검찰청(검사 선현숙)은 지난달 12일 강남경찰서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서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과 강남경찰서의 수사에 대응하면서 앞으로 그 결과를 지켜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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