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Do It Together! 같이 고쳐볼까요?
여러분 혹시 DIT(Do It Together)란 말 들어보셨나요? DIY(Do It Yourself)는 들어봤는데 DIT는 처음이라고요? DIT는 두잇투게더! 여럿이 함께하자는 의미잖아요. DIY를 ‘여럿이 함께’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참여형 시공인 DIT는 장소에 관심 있던 사람들이나 장소와 관련된 커뮤니티, 시공 기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 등이 모여 진행해요. 참여자들에게 참여비를 받을 때도 있고, 지자체 등 지원이 결합하면 참여비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네요. 짧게는 하루, 보통은 2~4일 정도 진행하고요. 맞춤 수납장 제작이나 단열, 수리 등 필요한 작업을 정해 참여자들과 해당 부분을 시공해요. DIT는 윤주선 충남대학교 교수(건축학)가 제안하는 개념이에요. 개인이 완수하기 어려운 대규모 업무나 노동 강도가 높은 작업을 소수 전문가 지도하에 건물주, 건축가, 운영자, 시공인, 지역민 등 다수 참여자가 커뮤니티를 이뤄 작업을 완성하는 방식을 의미해요. 소비자에서 생산자로의 변화에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운동인 메이커 운동(기술 민주주의), 예술을 삶 속에 스며들게 하는 생활문화 운동(문화 민주주의)과 결을 같이 하고 있어요. 전문가만의 영역이었던 것을 문화이자 놀이로 가져와 함께 즐기며 공유하고 필요하면 노동을 분담하는 것이 목표죠. DIT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과는 달라요. 해비타트 운동은 봉사자들이 중심이 되어 건물을 고치거나 새로 지어주는 반면, DIT는 개인 공간이나 커뮤니티의 공간을 개·보수할 때 함께 협력하는 방식이거든요. 이웃끼리 일손을 빌려주며 서로를 돕던 ‘품앗이’ 전통을 연상시키죠.  낡은 건물 같이 고쳤더니 사람들이 모이네 지난해 1월 대전 유성구에서 ‘핸드메이드 어바니즘 국제포럼’이 열렸어요. ‘핸드메이드 어바니즘’을 우리말로 옮기자면 ‘직접 손으로 만드는 도시 혹은 도시 생활 양식’ 이런 느낌 정도겠죠?😊 포럼에는 ‘핸드메이드 어바니즘’ 주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도록 DIT 유경험자, 로컬 거점 공간 시공전문가, 오픈스페이스 기획자 등이 연사로 참여했어요. 기조 연사로 나온 일본의 스페이스R디자인의 요시하라 카츠미 대표는 사람들이 모여 직접 함께 공간을 고치는 것이 마을과 지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사례를 통해 소개해 주셨어요.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빈집과 낡은 건물, 방치된 공간이 문제였대요. 요시하라 대표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후쿠오카시 하카타구에 소재한 가족 부동산을 물려받았지만, 곧 경영난에 시달렸다고 하네요. 무려 건물(!)을 물려받았으니 좋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나 봐요. 당시에도 30년이 훌쩍 넘은 낡은 건물이었기에 손볼 곳도 많았고, 인기도 없었대요. 임대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문 앞에서 되돌아가는 일도 있었다고요. 그렇다고 건물을 허물고 신축하거나 리모델링 전문업체를 쓰자니 큰돈이 들고요. 그래서 요시하라 대표는 건물을 직접 개보수하기로 하고, 예술가 친구와 둘이 오래된 자재와 소품 등을 활용한 DIY(손수 제작)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요시하라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과거에서 현재로 시대를 이식하는 개념”이었죠. 건물을 함께 고칠 ‘동료’를 찾기 위해 요시하라 대표는 두 가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바로 ‘스터디’를 조직하고 ‘마르쉐(marché는 프랑스어로 시장이라는 의미)’를 연 것이죠. 스터디에서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멋진 공간들을 체험하는 일을 반복했대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래된 건물도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요. 스터디를 만들고, 작업 과정을 담은 사진전을 열고, 고쳐지고 있는 건물을 볼 수 있도록 문을 개방하니, 점차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모였대요. 참여자들과 마을 주민이 파티를 열고, 건물 개보수 과정에 대해 함께 얘기하며 느슨하면서도 우호적인 관계들도 만들어졌고요. 시간은 비록 좀 걸렸지만, 여러 사람의 땀과 손이 묻은 작업을 통해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건물이 탄생했죠. 당연히 임대도 들어왔고요. 문화적으로도 부동산적 가치로 보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어낸 것이에요. 요시하라 대표는 이러한 방식이 지역에 필요한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며 “새로운 건물을 만드는 것은 문화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건물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문화를 응원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어요. 현재 요시하라 대표는 일본 23개 지역에서 활동가들과 함께 ‘디아이와이(DIY) 리노베이션 위크’를 만들어 연대하며 활동하고 있어요.  빈집이 있는데, 사람들 좀 불러볼까? 부산 ‘이바구 캠프’로 유명한 ㈜공유를위한 창조는 2019년 부산에서 거제로 자리를 옮겼어요. 둥지를 튼 장승포는 원도심이면서 5분이면 바다에 갈 수 있는 도심형 어촌마을이었죠. ㈜공유를위한창조는 동네에 오래된 가옥을 회사의 첫 보금자리로 삼고, DIT 방식으로 그곳을 보수하기로 했습니다! ㈜공유를위한창조는 소셜미디어 등으로 함께 공사를 진행할 사람들을 공개 모집했어요. DIT는 보통 설계 및 시공 역량이 있는 기획자가 참여자들을 모집해 함께 공간을 재구성하는데요, 참여 자격은….관심과 체력일까요?💪 이렇게 모인 참여자들과 함께 거제 장승포 빈집 옥상에 인조 잔디를 깔고 바닥 데크를 설치했고, 아웃도어를 주제로 하는 ‘밗’이 완성되었대요. ‘밗’은 바다와 강 그리고 산을 하나로 모은 단어로, 아웃도어 가게이자 커뮤니티 라운지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재밌는 건 조용하던 동네에 청년들이 드나들자, 주변의 건물주들이 먼저 찾아왔다는 겁니다. 100년 된 적산가옥을 월 10만원에 임대하겠다거나 시세보다 저렴하게 주택을 매각하겠다면서요. 여러 우여곡절이 있기도 했지만 벌써 거제에만 4곳을 DIT로 개·보수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해요. DIT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거제 주민이 반, 다른 지역에서 관심을 가지고 온 사람들 반 정도라네요. 박은진 대표는 “공간을 직접 구성하는 작업에 참여하면 성취감과 애착이 생겨나요. 그 지역에 정주하지 않더라도 ‘내가 만든 곳’을 이따금 찾고 계속 관심을 두는 관계 인구가 되는 것이죠. DIT 방식으로 사람들의 땀과 이야기가 입혀지면 ‘공간(space)'이 ‘장소(place)'가 됩니다”라고 말해요. 전화 통화 중에 박 대표로부터 이 말을 들었는데, 머리에 느낌표가 딱(!) 숨이 헉(!)하고 멈출 정도로 마음에 들어왔어요. 그동안 공간과 장소라는 용어에 대해 차이를 두지 않고 사용했었거든요. 포털에 검색해 보니 오~래전에 이-푸 투안이라는 지리학자가 이 차이를 구분해서 설명했더라구요. 참고로 박은진 대표는 거제 이곳저곳을 장비 들고 다니며 뚝딱뚝딱 고치다 보니 자연스레 동네 ‘홍반장’으로 등극하셨다고 해요. 이웃 가게 데크가 부서졌으면 가서 고쳐드리고, 주민센터에 망가진 운동기구가 있으면 가서 고쳐드리고요. 거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니까요.😁 ‘핸드메이드 어바니즘’ 국제포럼을 기획하고 진행한 DIT 전문 기획 기업 ㈜스튜디오우당탕탕 채아람 대표는 “DIT는 지역 및 관계 주민, 외지인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팀을 이루어 공간을 함께 만드는 작업이면서 교육을 기반으로 한 지역 재생 방법”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DIT 과정에서 생겨나는 무형의 결과물 때문이죠. 작은 부분이더라도 공간에 대한 기획부터 직접 시공에 참여한 분들은 그곳에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예요. 2박 3일 함께 먹고 일하며 맺어지는 관계들도 있고요. 지역민이라면 커뮤니티와 공간에 좀 더 밀접하게 연결되고,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이라면 해당 지역에 애착이 생기는 ‘관계 주민’이 되는 거죠. 마을재생과 도시재생의 필수인 ‘관계’와 ‘커뮤니티’의 씨앗이 자리 잡는 거예요. “서울과 다른 지역에 4층짜리 건물이 있다고 쳐요. 인건비며 자재비며, 건물 고치는데 평당 비용은 비슷할 거예요. 그런데 서울과 지역에 있는 건물을 똑같이 리노베이션 했다고 부동산 가격이 같아지나요? 그렇지 않죠. 이제 부동산 개발로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역은 더이상 신축 혹은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할 수 없어요. 전국에 방치된 공간들을 주민이 재생할 수 있도록 공공에서 역할을 해야 해요” DIT를 처음 제안한 윤주선 교수는 마을과 지역 재생의 방법론으로 DIT를 강조해요. 전국적으로 140만호가 넘는 빈집을 공적 자금으로 다 수리하려 한다면 천문학적 돈이 들 거예요. 그래서 윤 교수는 DIT를 통해 빈집 혹은 낡은 건물을 보수하는 것을 좀 더 활성화하자고 말해요. DIT를 통해 사람들이 오가고 그 공간에 애정과 이야기를 덧입혀 마을과 지역에 숨을 불어넣자는 거죠. DIT가 그저 여럿이 하는 집수리가 아닌 문화와 환경, 관계성과 부동산적 가치를 담고 있다면서요. 자, 보세요. 요즘 창고형 카페가 유행한다고 하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비슷한 느낌의 건물이나 인테리어가 들어오잖아요. DIT라면 해당 공간과 지역에 대한 역사와 맥락을 이해하고 공간에 필요한 자재와 재활용, 재사용할 수 있는 소품들을 활용해 시공하게 되겠죠. 공간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애정을 담아 고치고 시공하면 ‘하나이면서 유일한’ 결과물이 나오게 되잖아요. 시공과정에서 지역의 특색이 담긴 재료나 이야기가 담긴 재활용품, 폐자재 등을 수리해 활용하니 지역 내 자원순환에도 도움이 되구요.  윤 교수는 일단 뭔가 고치고 수리할 수 있는 문화가 확산되려면 공공의 장소가 필요하다고 말해요. 미국 포틀랜드와 일본 나가노현의 리빌딩센터처럼 주민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해 목재나 천 등을 다루고, 버려지는 가구나 소품을 수리, 전시하는 공유 공간이 생겨나야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공간들이야말로 지역의 특색을 담은 자원순환의 출발점이자, 지역 활성화를 위한 지역 커뮤니티의 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집에서 무언가를 직접 고쳐본적이 있으신가요? DIT는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공간 수리가 가능하고 운영자의 취향과 필요 사항을 반영할 수 있어요. DIT를 통해 해당 공간과 지역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함께 작업한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결실일 테고요. 스스로 수리와 시공 능력을 기르며 삶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큰 성취일 거예요. 그래서 채아람 대표는 DIT를 “다른 지역 사람들이 지역살이를 탐색할 기회이자 자신의 공간을 기획하고 수리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계기”라고 말해요. 스피커스를 읽고 난 뒤, 2025년이야말로 모두의 손으로 함께 변화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  ※ 이 콘텐츠는 뉴스레터 스피커스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