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Do It Together! 같이 고쳐볼까요?
여러분 혹시 DIT(Do It Together)란 말 들어보셨나요? DIY(Do It Yourself)는 들어봤는데 DIT는 처음이라고요? DIT는 두잇투게더! 여럿이 함께하자는 의미잖아요. DIY를 ‘여럿이 함께’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참여형 시공인 DIT는 장소에 관심 있던 사람들이나 장소와 관련된 커뮤니티, 시공 기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 등이 모여 진행해요. 참여자들에게 참여비를 받을 때도 있고, 지자체 등 지원이 결합하면 참여비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네요. 짧게는 하루, 보통은 2~4일 정도 진행하고요. 맞춤 수납장 제작이나 단열, 수리 등 필요한 작업을 정해 참여자들과 해당 부분을 시공해요. DIT는 윤주선 충남대학교 교수(건축학)가 제안하는 개념이에요. 개인이 완수하기 어려운 대규모 업무나 노동 강도가 높은 작업을 소수 전문가 지도하에 건물주, 건축가, 운영자, 시공인, 지역민 등 다수 참여자가 커뮤니티를 이뤄 작업을 완성하는 방식을 의미해요. 소비자에서 생산자로의 변화에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운동인 메이커 운동(기술 민주주의), 예술을 삶 속에 스며들게 하는 생활문화 운동(문화 민주주의)과 결을 같이 하고 있어요. 전문가만의 영역이었던 것을 문화이자 놀이로 가져와 함께 즐기며 공유하고 필요하면 노동을 분담하는 것이 목표죠. DIT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과는 달라요. 해비타트 운동은 봉사자들이 중심이 되어 건물을 고치거나 새로 지어주는 반면, DIT는 개인 공간이나 커뮤니티의 공간을 개·보수할 때 함께 협력하는 방식이거든요. 이웃끼리 일손을 빌려주며 서로를 돕던 ‘품앗이’ 전통을 연상시키죠.  낡은 건물 같이 고쳤더니 사람들이 모이네 지난해 1월 대전 유성구에서 ‘핸드메이드 어바니즘 국제포럼’이 열렸어요. ‘핸드메이드 어바니즘’을 우리말로 옮기자면 ‘직접 손으로 만드는 도시 혹은 도시 생활 양식’ 이런 느낌 정도겠죠?😊 포럼에는 ‘핸드메이드 어바니즘’ 주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도록 DIT 유경험자, 로컬 거점 공간 시공전문가, 오픈스페이스 기획자 등이 연사로 참여했어요. 기조 연사로 나온 일본의 스페이스R디자인의 요시하라 카츠미 대표는 사람들이 모여 직접 함께 공간을 고치는 것이 마을과 지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사례를 통해 소개해 주셨어요.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빈집과 낡은 건물, 방치된 공간이 문제였대요. 요시하라 대표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후쿠오카시 하카타구에 소재한 가족 부동산을 물려받았지만, 곧 경영난에 시달렸다고 하네요. 무려 건물(!)을 물려받았으니 좋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나 봐요. 당시에도 30년이 훌쩍 넘은 낡은 건물이었기에 손볼 곳도 많았고, 인기도 없었대요. 임대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문 앞에서 되돌아가는 일도 있었다고요. 그렇다고 건물을 허물고 신축하거나 리모델링 전문업체를 쓰자니 큰돈이 들고요. 그래서 요시하라 대표는 건물을 직접 개보수하기로 하고, 예술가 친구와 둘이 오래된 자재와 소품 등을 활용한 DIY(손수 제작)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요시하라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과거에서 현재로 시대를 이식하는 개념”이었죠. 건물을 함께 고칠 ‘동료’를 찾기 위해 요시하라 대표는 두 가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바로 ‘스터디’를 조직하고 ‘마르쉐(marché는 프랑스어로 시장이라는 의미)’를 연 것이죠. 스터디에서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멋진 공간들을 체험하는 일을 반복했대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래된 건물도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요. 스터디를 만들고, 작업 과정을 담은 사진전을 열고, 고쳐지고 있는 건물을 볼 수 있도록 문을 개방하니, 점차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모였대요. 참여자들과 마을 주민이 파티를 열고, 건물 개보수 과정에 대해 함께 얘기하며 느슨하면서도 우호적인 관계들도 만들어졌고요. 시간은 비록 좀 걸렸지만, 여러 사람의 땀과 손이 묻은 작업을 통해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건물이 탄생했죠. 당연히 임대도 들어왔고요. 문화적으로도 부동산적 가치로 보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어낸 것이에요. 요시하라 대표는 이러한 방식이 지역에 필요한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며 “새로운 건물을 만드는 것은 문화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건물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문화를 응원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어요. 현재 요시하라 대표는 일본 23개 지역에서 활동가들과 함께 ‘디아이와이(DIY) 리노베이션 위크’를 만들어 연대하며 활동하고 있어요.  빈집이 있는데, 사람들 좀 불러볼까? 부산 ‘이바구 캠프’로 유명한 ㈜공유를위한 창조는 2019년 부산에서 거제로 자리를 옮겼어요. 둥지를 튼 장승포는 원도심이면서 5분이면 바다에 갈 수 있는 도심형 어촌마을이었죠. ㈜공유를위한창조는 동네에 오래된 가옥을 회사의 첫 보금자리로 삼고, DIT 방식으로 그곳을 보수하기로 했습니다! ㈜공유를위한창조는 소셜미디어 등으로 함께 공사를 진행할 사람들을 공개 모집했어요. DIT는 보통 설계 및 시공 역량이 있는 기획자가 참여자들을 모집해 함께 공간을 재구성하는데요, 참여 자격은….관심과 체력일까요?💪 이렇게 모인 참여자들과 함께 거제 장승포 빈집 옥상에 인조 잔디를 깔고 바닥 데크를 설치했고, 아웃도어를 주제로 하는 ‘밗’이 완성되었대요. ‘밗’은 바다와 강 그리고 산을 하나로 모은 단어로, 아웃도어 가게이자 커뮤니티 라운지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재밌는 건 조용하던 동네에 청년들이 드나들자, 주변의 건물주들이 먼저 찾아왔다는 겁니다. 100년 된 적산가옥을 월 10만원에 임대하겠다거나 시세보다 저렴하게 주택을 매각하겠다면서요. 여러 우여곡절이 있기도 했지만 벌써 거제에만 4곳을 DIT로 개·보수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해요. DIT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거제 주민이 반, 다른 지역에서 관심을 가지고 온 사람들 반 정도라네요. 박은진 대표는 “공간을 직접 구성하는 작업에 참여하면 성취감과 애착이 생겨나요. 그 지역에 정주하지 않더라도 ‘내가 만든 곳’을 이따금 찾고 계속 관심을 두는 관계 인구가 되는 것이죠. DIT 방식으로 사람들의 땀과 이야기가 입혀지면 ‘공간(space)'이 ‘장소(place)'가 됩니다”라고 말해요. 전화 통화 중에 박 대표로부터 이 말을 들었는데, 머리에 느낌표가 딱(!) 숨이 헉(!)하고 멈출 정도로 마음에 들어왔어요. 그동안 공간과 장소라는 용어에 대해 차이를 두지 않고 사용했었거든요. 포털에 검색해 보니 오~래전에 이-푸 투안이라는 지리학자가 이 차이를 구분해서 설명했더라구요. 참고로 박은진 대표는 거제 이곳저곳을 장비 들고 다니며 뚝딱뚝딱 고치다 보니 자연스레 동네 ‘홍반장’으로 등극하셨다고 해요. 이웃 가게 데크가 부서졌으면 가서 고쳐드리고, 주민센터에 망가진 운동기구가 있으면 가서 고쳐드리고요. 거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니까요.😁 ‘핸드메이드 어바니즘’ 국제포럼을 기획하고 진행한 DIT 전문 기획 기업 ㈜스튜디오우당탕탕 채아람 대표는 “DIT는 지역 및 관계 주민, 외지인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팀을 이루어 공간을 함께 만드는 작업이면서 교육을 기반으로 한 지역 재생 방법”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DIT 과정에서 생겨나는 무형의 결과물 때문이죠. 작은 부분이더라도 공간에 대한 기획부터 직접 시공에 참여한 분들은 그곳에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예요. 2박 3일 함께 먹고 일하며 맺어지는 관계들도 있고요. 지역민이라면 커뮤니티와 공간에 좀 더 밀접하게 연결되고,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이라면 해당 지역에 애착이 생기는 ‘관계 주민’이 되는 거죠. 마을재생과 도시재생의 필수인 ‘관계’와 ‘커뮤니티’의 씨앗이 자리 잡는 거예요. “서울과 다른 지역에 4층짜리 건물이 있다고 쳐요. 인건비며 자재비며, 건물 고치는데 평당 비용은 비슷할 거예요. 그런데 서울과 지역에 있는 건물을 똑같이 리노베이션 했다고 부동산 가격이 같아지나요? 그렇지 않죠. 이제 부동산 개발로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역은 더이상 신축 혹은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할 수 없어요. 전국에 방치된 공간들을 주민이 재생할 수 있도록 공공에서 역할을 해야 해요” DIT를 처음 제안한 윤주선 교수는 마을과 지역 재생의 방법론으로 DIT를 강조해요. 전국적으로 140만호가 넘는 빈집을 공적 자금으로 다 수리하려 한다면 천문학적 돈이 들 거예요. 그래서 윤 교수는 DIT를 통해 빈집 혹은 낡은 건물을 보수하는 것을 좀 더 활성화하자고 말해요. DIT를 통해 사람들이 오가고 그 공간에 애정과 이야기를 덧입혀 마을과 지역에 숨을 불어넣자는 거죠. DIT가 그저 여럿이 하는 집수리가 아닌 문화와 환경, 관계성과 부동산적 가치를 담고 있다면서요. 자, 보세요. 요즘 창고형 카페가 유행한다고 하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비슷한 느낌의 건물이나 인테리어가 들어오잖아요. DIT라면 해당 공간과 지역에 대한 역사와 맥락을 이해하고 공간에 필요한 자재와 재활용, 재사용할 수 있는 소품들을 활용해 시공하게 되겠죠. 공간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애정을 담아 고치고 시공하면 ‘하나이면서 유일한’ 결과물이 나오게 되잖아요. 시공과정에서 지역의 특색이 담긴 재료나 이야기가 담긴 재활용품, 폐자재 등을 수리해 활용하니 지역 내 자원순환에도 도움이 되구요.  윤 교수는 일단 뭔가 고치고 수리할 수 있는 문화가 확산되려면 공공의 장소가 필요하다고 말해요. 미국 포틀랜드와 일본 나가노현의 리빌딩센터처럼 주민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해 목재나 천 등을 다루고, 버려지는 가구나 소품을 수리, 전시하는 공유 공간이 생겨나야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공간들이야말로 지역의 특색을 담은 자원순환의 출발점이자, 지역 활성화를 위한 지역 커뮤니티의 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집에서 무언가를 직접 고쳐본적이 있으신가요? DIT는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공간 수리가 가능하고 운영자의 취향과 필요 사항을 반영할 수 있어요. DIT를 통해 해당 공간과 지역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함께 작업한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결실일 테고요. 스스로 수리와 시공 능력을 기르며 삶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큰 성취일 거예요. 그래서 채아람 대표는 DIT를 “다른 지역 사람들이 지역살이를 탐색할 기회이자 자신의 공간을 기획하고 수리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계기”라고 말해요. 스피커스를 읽고 난 뒤, 2025년이야말로 모두의 손으로 함께 변화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  ※ 이 콘텐츠는 뉴스레터 스피커스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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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살리는 마법, CWB를 아시나요?
영국 북부 맨체스터에서 차로 한 시간여 거리에 있는 인구 16만의 도시, 프레스턴을 아시나요? 산업혁명과 함께 번성했지만, 영국 제조업이 쇠퇴한 1970년대 이후 기업들이 프레스턴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높은 실업률, 영국 내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아동빈곤율 등 쇠락한 도시의 문제점들을 안게 되었죠. 도시 내 양극화도 심해져 부촌과 빈촌 거주자 간 기대수명이 15년 이상 차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국내 지자체장 중 프레스턴의 사례를 안 들어본 분이 없다네요.😁 영국의 소도시가 요즘 한국에서, 아니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이유,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프레스턴 모델’로 불리는 지역재생 프로그램의 성공 때문입니다. 프레스턴은 2011년부터 인구감소, 고령화, 도시 집중 및 지역 간 불평등, 지방소멸 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부유한 지역공동체 만들기’(Community Wealth Building, 이하 CWB)’*전략을 실행했습니다.  *부유한 지역공동체 만들기(Community Wealth Building, CWB) 지역사회 부(富)를 증대시키고 이를 다시 지역경제로 순환시키는 로컬 경제전략이에요. 원어를 직역한 ‘공동체자산구축’이라고도 불리는 이 전략은 ▲공정한 노동 ▲지역 금융 ▲토지와 자산의 공정한 이용 ▲진보적 조달 ▲포용적이고 민주적인 기업의 5가지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합니다. CWB는 공공기관, 대학, 병원 등 지역에 깊이 뿌리내린 ‘앵커’기관들의 조달을 통해 지역 소상공인의 참여를 확대합니다. 또한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의 설립을 지원해 지역 주도의 경제 활동을 촉진합니다. 이 모델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돌아가는 주택·부동산 정책도 포함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민주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역경제 선순환을 목표로 합니다. CWB는 2010년대부터 미국 클리블랜드와 영국 프레스턴 등에서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왔으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역경제 활성화 모델입니다.  CWB는 기존 자본을 활용해 지역의 부(富, wealth)를 증대시키고, 이를 다시 지역경제로 순환시켜 민주적으로 축적하는 전략입니다. 이는 지역순환경제의 한 방법론으로, 2004년 미국의 비영리기관인 ‘협의하는 민주주의’에서 개념을 정립했어요. CWB는 △지방정부 및 지역 대학, 병원 등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는 앵커 기관의 조달(물품 및 서비스 구매) 시장에 주민 참여를 증대하는 시민 중심 조달,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주민 주도 사업체 설립을 촉진하는 창업 정책, △약자를 보호하고 주민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주택·부동산 정책 등을 아우른 민주적 지역경제 선순환 모델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희망제작소에서 2024년 9월30일부터 나흘간 ‘2024 지속가능한 로컬경제전략 국제포럼’을 열어 프레스턴시 등의 CWB 적용 사례를 탐구하고 그 가능성을 살펴봤어요. 이 포럼에는 매슈 브라운 영국 프레스턴시 시의회 의장과 닐 매킨로이 미국 협력하는 민주주의 글로벌 리더가 참석했어요. 특히 매슈 브라운은 시의원 시절부터 프레스턴 모델을 이끌어 온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레스턴은 1990년대부터 글로벌 개발사들과 복합 쇼핑센터 등을 포함한 대규모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어요.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프로젝트는 무산되었고 투자자들은 떠나버렸죠. 설상가상으로 보수당이 집권한 중앙정부가 돈줄을 바짝 죄며 긴축재정을 선언하면서 프레스턴 시의회 보조금 중 약 2천만 파운드(약 349억원)가 삭감되었습니다. 기업들도, 재개발 계획도, 보조금도 사라지자 도시에는 실망감과 좌절감만이 남았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전개죠? 보통은 도시가 황폐해지고 슬럼화되어가는 결말이지만, 프레스턴은 CWB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4년 만에 프레스턴의 지역 조달 지출이 5%에서 18.2%로, 랭커셔 지역의 조달 지출이 39%에서 79.2%로 증가했습니다. 지역 공급망이 강화되어 일자리가 늘어나고 취업률이 상승했으며, 실업률과 아동빈곤율은 감소했어요. 숫자로 보이는 성과 외에 주민들의 정신건강과 행복감이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이러한 사례를 공유하고 한국과 영국의 지역경제, 공동체, 중앙정부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대담이 마련되었습니다. 시민사회 운동가 출신이자 구청장으로 지역 행정 실무를 경험했던 박정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바쁜 일정에서도 흔쾌히 대담자로 참여했어요. 대담은 2024년 10월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희망제작소에서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대담의 주요 내용을 옮겨볼게요! “당연히 외부 투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대규모 자본 투자가 주거 문제나 임금 수준, 노동자와 아동 처우 등에서 지역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죠. 대체로 투자자들은 지역의 부를 추출해 가는 경향이 있어요. 프레스턴의 CWB 전략은 대규모 투자에만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경제의 균형을 새롭게 잡으려는 시도입니다. 이는 더 회복력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에 적절한 보호 장치가 있다면, 외부 투자가 들어왔을 때도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오랫동안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시의원으로 일하면서, 외부 대규모 자본을 유치해 지역 발전을 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무망함’(희망이나 가망이 없음)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네요. 그래서 구청장 선거 때도 그런 내용은 공약에 넣지 않았습니다. 자본 유치는 어렵고, 설사 성공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가 발생합니다. 자본은 공짜로 들어오지 않아요. 결국 주민의 삶의 질, 편의성, 지역순환경제, 전반적인 발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브라운 의장께 궁금한 점이 있어요, 프레스턴도 대규모 쇼핑센터 건설이 중단된 경험이 있고, 그 대안으로 CWB 전략을 구축했죠. 그런데 시 행정이나 정치권에서 지역순환경제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었나요? CWB는 기존의 대자본 투자 유치와는 다르고,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성과가 나타나는 정책을 추진한 동력이 궁금합니다.” “프레스턴은 1990년대 말부터 쇼핑센터 건설을 추진했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결국 2011년에 중단되었습니다. 실패하고 나니 보였던 것 같습니다. 지역의 명운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의 위험성을요. 그래서 지역 개발 전략을 다양화하자는 취지에서 CWB 전략을 추진하게 되었죠.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한 경험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모델이 뿌리내리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 효과는 분명합니다. 지역에 일자리가 늘어나고, 부가 창출되고, 불평등이 완화되는 등 지역의 회복력이 강화되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지역에 잠재적 수요를 확인했고, 이제는 주민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프레스턴의 CWB 전략은 생활임금 도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공공부문에서 먼저 최저임금보다 약 20% 높은 생활임금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대학이나 병원 등 지역의 ‘앵커’ 기관들에도 생활임금 지급을 권장했습니다. 프레스턴시는 랭커셔의 행정 수도(주도)로, 시청과 주 청사가 함께 있죠. 이 두 기관이 생활임금과 진보적 조달 정책의 선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대형 병원과 대학들도 이에 동참했고요. 조달 참여 기관들에 생활임금 기준 충족을 요구함으로써 이를 지역 전반으로 확산시킬 수 있었고, 민간 부문에도 장려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조달이었습니다. 대기업 중심의 조달 및 유통 모델이 지역 가치 창출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진보적 조달 정책’을 펼치며 지역 기반 조달을 위해 조달 문턱을 낮추고, 지역 기업의 참여를 독려했죠.” “프레스턴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호응했네요. 수용성도 높았고요. 대덕구도 그랬습니다. 대덕구는 지역화폐인 ‘대덕 e(이)로움’을 발행해 지역 내 경제 순환을 촉진하고자 했어요. 대덕구는 대전의 5개 구 중 사업장 가입자 평균 월 소득이 가장 높아요. 그런데 대덕구민 평균 월 소득은 3위(2018년 기준)에 머물렀어요. 이는 대덕구 소재 사업장 근로자들이 대덕구에서 돈을 벌어 다른 지역에서 소비하는, 소비 유출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대덕구는 자영업 비율이 높아요. 주민들에게 우리 지역에 돈을 써야 소상공인들이 살고, 우리가 산다고 직접 설명하고 다녔어요. 지역화폐 성공은 주민 참여에 달려 있죠. 그래서 명칭부터 공모전 통해 정했고, 소규모 모임도 많이 조직했어요. ‘통장 협의회’나 ‘주민 홍보단’ 등 소규모 모임을 통해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고요. CWB와 같은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에 지역 화폐가 디딤돌 역할을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정치인의 영향력은 공식적인 지위보다는 그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속한 영국 노동당은 지방 분권을 활성화하고자 하며, 지역에서 교육이나 주거 등과 관련해 자체 정책을 더 많이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형식적 분권이 아닌 실질적으로 지역의 힘을 강화하는 분권입니다. 저는 지자체들이 CWB와 같은 방법을 같이 실천할 때 지역의 자립과 힘이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국에서도 프레스턴의 CWB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느낍니다. 더욱이 한국의 여러 사례, 특히 지역화폐 도입이나 지역주민 중심의 에너지 프로젝트, 영암군처럼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창고를 복합문화센터로 탈바꿈시킨 사례 등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개별적 시도들이 지역 경제 전반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정책으로 발전해야 하겠죠.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와 지방의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사회 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지역의 내발적 발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어요. 지역 발전의 핵심 기반은 공동체 자치력이며,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하여 국회에서는 주민자치기본법, 공동체지원기본법, 사회적경제기본법 등을 논의하고 있죠. 또한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사람들의 구심점 역할을 할 플랫폼이 필요해요. 제가 대덕구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중간지원조직 개념의 주민자치회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행정 언어와 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 사이에는 간극이 있어 일종의 ‘통역’이 필요하죠. 플랫폼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어요. 플랫폼을 통해 주민과 행정이 만나고 소통하면, 양측의 협력이 훨씬 원활해집니다. 이러한 플랫폼에서 주민 자치력을 강화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의미를 지역에 전파할 수도 있고요. 플랫폼은 주민들이 모일 수 있도록 돕는 좋은 도구예요.” 아쉬운 사례가 있어요. 박정현 의원이 대덕구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도입한 지역화폐 정책은 좋은 성과를 냈었어요. 이에 고무된 대전시는 이 정책을 광역시 전체로 확대 적용했었지요. 그런데 중앙정부가 광역 단위에서만 지역화폐를 발행하도록 결정을 내린 거예요. 대덕구를 비롯한 기초지자체는 독자적인 지역화폐를 발행을 할 수 없고, 대전시와 같은 광역 단위 지역화폐만 사용 가능해진 것이죠.  지역화폐나 CWB 전략 모두 격차를 해소하고 부의 역외 유출을 막자는 것이 핵심이잖아요? 사실 대전 안에서도 원도심과 신도심 간 격차가 꽤 크대요. 신도심 인구가 원도심보다 12% 정도 많고, 점포 수도 약 6% 더 많아 소비 활동이 신도심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요. 대덕구는 원도심에 가까워, 구 차원의 지역화폐 발행을 통해 지역 내 자영업자들에게 경제가 순환되도록 했는데, 중앙정부의 결정으로 대전시 전체에 통용되는 지역화폐만 남게 된 거예요. 원도심 소상공인에게 지역의 부가 순환되는 지역 화폐의 이점이 사라져 버린 거죠. 정책의 원래 취지와 어긋나는 결정을 중앙정부가 잘 모르고 내려버린 것이죠.😣 새삼 지역 맞춤형 정책의 중요성과 중앙-지방 간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대담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함께 방한한 닐 맥킨로이 미국 싱크탱크 ‘협력하는 민주주의’의 CWB 글로벌 리더는 세계 곳곳의 CWB 사례를 연구하며 지역별 맞춤 전략을 고민하고 있어요. 맥킨로이는 CWB는 모두 똑같은 모습이 아니며 지역의 상황과 특색을 반영한 경제전략 모델로서 유효하다고 말합니다. ‘2024 지속가능한 로컬경제전략 국제포럼’에서 그는 “CWB를 구성하는 5개 기둥을 한꺼번에 도입하기보다는 지역에서 즉시 적용 가능한 것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변화의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어요. 지역의 현황을 면밀히 분석한 후 지역순환경제라는 큰 틀 안에서 적합한 전략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겠죠. 당연한 말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이번 대담은 알고 보면 오랜 인연 끝에 열린 행사입니다. 박정현 의원이 시의원과 구청장 시절 지역경제와 공동체에 관한 여러 사례를 연구하던 중 프레스턴 사례가 눈에 띈 거예요. 지난해 봄, 그는 지방정부 단체장들의 모임에서 프레스턴 모델을 주제로 한 토론을 제안한 적이 있다고 해요. 그런데 정작 토론회 당일 박 의원은 코로나19 양성반응으로 참석하지 못했고요. 여하튼, 그 토론회를 계기로 희망제작소는 지난해 가을, 지자체장들과 함께 프레스턴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포럼은 대한민국을 가로지르며 전국적인 규모로 진행되었어요. 전남 영암군과 서울 국회의사당, 경기도의회 등에서 CWB 관련 포럼이 열렸고, 대전과 서울 성수동 등 사회연대경제 현장 방문 및 간담회가 있었거든요. 매슈 브라운 의장은 일정 중간에 병원에서 링거까지(...😥)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한국의 사례를 주의 깊게 관찰하며, 지역재생에 대한 아이디어와 생각들을 나눴답니다. 프레스턴 사례를 처음 접했을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조달 계약 시 공정한 고용조건을 갖췄는지 확인하는 부분이었어요. 보통 구매나 조달에서는 비용을 중요하게 보니 최저가 입찰이 많잖아요. 그런데 프레스턴은 조달 계약 시 직원과 고객이 연령과 성별, 인종과 종교 등으로 차별받지 않는지, 생활임금을 지급하고 있는지, 비용 절감만을 위해 무리한 인력 배치를 하지는 않는지 등을 살펴보더라고요. 조달을 통해 사회적 효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이죠. 계약 시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만 살짝 바꿔도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정책 입안자는 물론이고 우리에게도 필요한 가르침이지 않을까요? ※ 이 콘텐츠는 뉴스레터 스피커스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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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군들을 위한 시: 지역에 살으리랏다!
우리 사회에 스며든 인구감소 문제는 정말 심각하죠. 때로는 ‘0.72’라는 출산율이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정말 홀로서기조차 불가능한, 소멸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도시보다 인구와 인프라가 적은 지역에서는 이 바람이 더욱 매섭습니다. 저출생 문제에 대도시 쏠림 현상까지 중첩되었기 때문이죠.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난 10월 24일 열린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 분과세션 1 ‘기로에 선 지역, 위기를 기회로’에서는 인구감소 시대에서 한일 양국 지역 사례와 정책을 다뤘습니다. 관계인구, 지역순환경제, 시민참여 에너지 정책 등 양질의 일자리와 탄소중립 실현, 다양성을 포용하는 공동체가 탄탄한 삶터로서의 지역을 만들기 위한 도전과 사례들로 가득 찬 시간이었습니다.   ‘관계인구’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기조발제를 맡은 다나카 데루미 일본 시마네현립대 교수이자 <관계인구의 사회학> 저자는 “인구가 줄어들어도 지역은 재생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2016년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관계인구’는 ‘특정 지역에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관여하는 외부인’을 뜻합니다. 관광과 정주 사이에 있는 사람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나카 교수는 지역 주민들이 ‘정서적으로 고립’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알고 보니 우리에게도 익숙한 감정이었어요. ‘자녀들이 도시로 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요. 그런데 다나카 교수는 이것이 문제라고 말해요. 정서적 고립이면서 지역의 진정한 문제라고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남의 일처럼 여겼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다나카 교수는 외부인, 즉 외부에 있는 인재에 주목합니다. 외부인은 지역에 5가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하는데요, ①지역을 재발견하고 ②주민들의 자부심을 함양하고, ③새로운 지식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④지역 변화를 촉진하고, ⑤지역에 얽매임이 없기에 보다 자유롭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죠.  시마네 현 오난초 아스나 지구의 사례를 한번 볼까요? 이 600명 정도 규모의 작은 마을에는 지상에서 높이 20m에 있는 ‘천공의 역’이라 불리던 우즈이(宇都井)역이 있었습니다. 2018년 JR산코센이 영업 종료로 이 특별한 역이 폐허가 될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은 ‘이나카 일루미네이션’ 축제를 시작했습니다. ‘이나카’는 일본어로 시골이라는 뜻으로,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일루미네이션을 함께 즐기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손수 진행하는 작은 행사였지만, 연간 2천여명의 관광객이 찾는 축제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고령의 주민들은 행사 진행이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결국 행사를 폐지하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이때 주민들은 ‘관계인구’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관광객들은 축제를 구경하고 돌아가는 것에 그치지만, 관계인구는 축제의 준비부터 진행, 뒷정리까지 함께하기로 한 거예요! 지난해에는 시마네 현립대학 학생들을 포함한 60여명의 관계인구가 축제 전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뒷정리가 너무 힘들어 행사의 꽃(!)인 뒤풀이도 없었는데, 지난해에는 관계인구들과 즐거운 뒤풀이까지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이제 관계인구를 위해서라도 축제를 그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하셨다고요.😀  다나카 교수는 관계인구가 가져온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를 강조합니다. 바로 ‘지역 재생 주체의 형성’이죠. 외지에서 온 관계인구와 함께하며 지역 주민들이 정서적 고립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의 주체로 거듭난 것입니다. 관계인구의 구성원이 바뀌더라도 주민들의 주체성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지역 쇠퇴의 악순환이 지역 재생의 선순환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주민과 관계인구의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① 신안군: 햇빛과 바람, 그리고 연금 우리나라 지자체 중에 섬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곳, 알고 계세요? 바로 전라남도 신안군입니다. 인구 3만8천여명 규모의 신안군은 대한민국 전체 약 3천여개 섬 중 천여개 섬을 가지고 있대요. 또한 전국 최고 수준의 일조량을 자랑하는 지역이기도 하고요. 섬과 햇빛, 바람이라는 지형적 조건을 활용해 신안군은 태양광과 지주식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뭔가가 더 있습니다.😎 신안군은 2018년 10월 전국 최초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이 조례의 핵심은 태양광 발전을 통한 개발이익을 지역 주민과 공유하는 것입니다. 햇빛과 바람은 자연이 준 것이니까요.😀 구체적으로는 발전회사가 수익의 30%를 지역 주민들과 공유하면, 사업 인허가와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수익을 주민들과 나누는 제도가 바로 ‘햇빛연금’이에요. 2021년 첫 지급액 17억원을 시작으로 3년 만에 지급 총액이 100억원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햇빛연금은 지역화폐로 지급되기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네요. 나아가 신안군은 이 조례를 바탕으로 ‘햇빛아동연금’ 제도를 신설하고, 농협과 협력하여 관련 전용 상품도 개발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인구 고령화와 지방소멸 위기 고위험군에 포함된 신안군 인구가 햇빛연금 수혜 지역을 중심으로 소폭 증가했습니다. 2014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해, 2023년 9월까지 248명이 순증가했다고 합니다.  ② 영암군: 로컬상생과 수평적 경제로의 전환 인구 5만여명의 전라남도 영암군은 여느 지역처럼 지역소멸 문제로 고민하는 곳입니다. 영암군에는 ‘대불국가산단’이 있습니다. 1997년부터 가동한 대불산단은 현재 2만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재직하며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곳입니다. 하지만 재직자 절반 이상이 인근 남양과 목포시에 거주하고 있어요. 영암에서 돈을 벌어 다른 지역에서 돈을 쓰는 셈이죠. 농업 분야의 양극화도 심각합니다. 영암군 5만여명 중 1만2천여명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전체 농가 중 7%에 불과한 대규모 농가(5만 헥타르 이상)가 영암군 전체 농지 면적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 때문에 영암군은 지역의 부(富)를 증식하고, 지역공동체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지역소멸이 단순한 인구감소를 넘어 지역사회의 경제적·사회적 기반이 무너지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영암군은 ‘로컬 상생과 수평경제로의 전환’을 기조로 하는 지역순환경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협약을 맺고 계속 교류하고 있는 영국 프레스턴의 ‘부유한 지역공동체 만들기(Community Wealth Building: CWB, 공동체자산구축)’ 모델을 참고하여 ‘영암형 지역순환경제’ 정책을 펼치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 영암군은 사회적 가치가 있는 물품의 판매와 구매를 통한 일자리 창출, 사회적 가치 기반의 경제조직 설립 등을 추진하고 있어요. 또 지자체 자산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예산이잖아요? 예산을 지역경제 순환의 핵심 동력으로 활용하고자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예컨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에 우선권을 부여하거나, 영암 지역에 있는 자재와 인력을 활용하는 업체인 경우 다음번 계약 시 해당 사항을 반영하는 등의 방식이죠. 나아가 공공조달시스템이나 ESG 관련해서 주변 시군과 광역 공공조달권도 함께 추진해 볼 예정이라고 해요.  ③ 부여군: 지역화폐로 순환경제 박차 인구 약 6만여명의 충청남도 부여군. 백제의 수도로 널리 알려진 역사도시라 꽤 친숙하실 텐데요. 부여 역시 다른 농촌 지자체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 이로 인한 소비 침체, 그리고 인근의 대전, 세종, 천안으로의 역외 유출과 같은 문제들이요. 특히 농업과 자영업 종사자 비중이 높은 부여군의 특성상, 인구도 돈도 바깥으로 나가니 남아있는 주민도 떠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 속에 있는 것이죠.😥  이러한 유출을 막고 지역 안에서 부(富)를 불리기 위해 부여군은 지역화폐 ‘굿뜨레페이’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여군의 인구가 6만명인데 굿뜨레페이 가입자는 7만5천명을 넘어섰어요. 이는 인근 지역 주민들도 부여의 지역화폐를 활발히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지역화폐가 실질적 효과를 내려면 골목상권, 소상공인 등 자영업자 쪽으로 돈이 흘러가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부여 굿뜨레페이는 부여군 내 가맹점 비율이 94%에 달하고, 사용액도 2020년에 47억에서 2023년에 56억원으로 골목상권에서 사용되는 비중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과 뒤에는 행정의 많은 노력이 숨어있습니다. 소상공인 매장 이용 시 최대 10%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신용카드와 겸용을 제한하는 한편, 독자적인 블록체인 시스템을 따로 개발·관리해 굿뜨레페이 가맹점 수수료는 0원이라고 합니다. 박정현 부여군수는 “지역화폐 없이 살아가기 불편한 지역으로 확 바꿨다”고 표현할 만큼 굿뜨레페이에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앞서 살펴본 사례들은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린 혁신적인 접근을 보여줍니다. 관계인구를 통한 일본의 지역 축제 활성화, 신안군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신재생에너지 사업과 이익 공유 모델, 영암군의 부유한 지역 공동체를 위한 수평적 경제로의 전환, 부여군의 지역화폐 활성화 등 각 지역의 노력이 의미 있는 결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규모 산업단지나 대기업 유치와 같은 기존 문법이 아닌,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잘 파악하고 활용한 맞춤형 정책이 새로운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더나은사회연구센터장은 지역 문제의 핵심을 “경제·사회적 불평등으로 시민들의 삶이 침해받고, 이러한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이고 복합적으로 목격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지역의 삶의 질 저하는 인구 유출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지역 쇠퇴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 느리지만, 천천히 지역의 자산과 가치를 늘리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래서 한겨레는 지역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다양한 지역 전환 사례를 발굴, 확산하기 위해 ‘지역 조사 및 평가’(가칭)를 기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국 226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환경, 보건복지, 경제와 사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량·정성적 조사를 진행하려 해요. 단순히 줄세우기식 순위 발표가 아니라 지역의 인구 규모와 인프라 등을 감안하고, 지역 특색에 맞춰 노력하고 성과를 보이는 곳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조사 항목에는 삶의 전환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과 고용 안정은 물론 사회연대경제 활성화까지 포괄한 경제, 삶의 튼튼한 안전선인 복지, 각자의 다양성을 포괄할 수 있는 사회 등 폭넓게 살펴볼 예정이라네요. 아마 2025년 상반기에 결과를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역의 공간적, 기능적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그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지역 정책의 핵심 과제입니다. 이날 토론에서 서재교 우리사회적경제연구소 소장은 주민들의 생활권, 정책 범위, 공공조달의 역할이라는 3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제안했어요. 지역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적절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할 텐데요. 특히 앵커 기관과 사회적경제, 지역순환경제 간의 상호작용과 경제적 승수효과를 면밀히 보고 지역과 중앙정부가 서로 협력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이 콘텐츠는 뉴스레터 스피커스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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