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기자단 소송 막 내렸다… “법원의 정치적 판결”[검찰과 법원 : 그들만의 리그]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이하 서울고검) 1층. 검찰청 기자실이 바로 이곳에 있다.
기자실은 출입증을 찍어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기자는 서울고검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는 담당자에게 기자실 사용을 위한 출입증 발급을 요청했다. 담당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출입 등록이 되지 않은 ‘비법조 기자’들은 기자실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번엔 기자실 내부에 있는 상주하는 서울고검 관계자를 찾아갔다. 관계자는 ‘이상한 해법’을 알려줬다.
“고검은 권한이 없으니 법조기자단 간사에게 물어보세요.”
관계자는 기자 손에 빨간색 쪽지 한 장을 쥐여줬다. 쪽지에는 법조기자단 간사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참으로 희한했다. 공공기관 기자실에 들어가겠다는데, 사조직에 불과한 법조기자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니. 공공시설 출입 여부를 법적 권한이 없는 사조직이 사실상 결정하고 있었다. 지난 2021년 4월 20일의 일이다.
출입처와 기자단. 그로부터 약 3년이 흘러도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공보 시스템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동안 취재를 하면서 여러 공공기관에서 같은 말을 숱하게 들었다.
“출입기자가 아니면 자료를 드릴 수 없습니다.“
법원, 경찰청, 중앙행정기관 모두 예외는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답변을 한 곳은 대통령실이었다. 출입기자단 현황(매체별 명수) 등을 묻는 정보공개 청구에, 지난 2월 대통령비서실은 이렇게 답변했다.
“국가안전보장 등에 관한 사항에 해당하여, 공개 시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습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이 몇 명인지 공개하는 게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수 있다니.
출입기자단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폐쇄적인 공보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하루이틀 있어온 게 아니다. 셜록은 이 같은 ‘카르텔’에 균열을 내고자 법적 돌파구를 택했다.
첫 번째 타깃은 법조기자단. 법원과 검찰이 법조기자단에 속하지 않는 기자들에게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을 하지 않는 합리적 이유가 존재하는지 소송으로 따져보자는 취지였다. 미디어오늘, 뉴스타파와 함께 힘을 합쳤다.
미디어오늘은 세 언론사를 대표해 서울고법을(이하 미오 소송), 셜록과 뉴스타파는 서울고검을 상대로(이하 셜록 소송) 각각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거부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2021년 3월 31일 제기했다.
약 3년 8개월 만에 소송전의 막이 내렸다. 하지만 바라던 결과는 아니다. 대법원은 지난 19일 셜록과 뉴스타파의 상고를 기각했다. 최종 패소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미디어언론위원회 소속으로 소송을 대리한 최용문 변호사(법무법인 예율)는 허탈함을 표했다.
“대법원이 판결을 간단하게 하기 위해서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심리불속행 판결을 하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판결문에 이유도 기재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판결문에 써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사유를 알지 못하지만, 대법원이 2심 판단을 정당하게 봤겠거니 (짐작)해야 합니다.”
소송 과정에서 희망이 없었던 건 아니다. 셜록과 뉴스타파는 1심에서 서울고검을 상대로 이겼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서울고검은 별다른 이유 없이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대상을 법조기자단에 가입된 언론사 소속 기자들로 한정함으로써 그들에게만 사실상 특혜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도 1심에서 서울고법을 상대로 이겼다. 하지만 2심 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고 서울고법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대법원은 2022년 12월 원고 미디어오늘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미오 소송에서 2심이 굉장히 흥미로운 게, 피고가 서울고등법원장이었잖아요. 그런데 항소심 담당 법원이 서울고등법원이었어요. 법적으로 (재판부) 기피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서 이런 부분들을 주장하기는 어려웠지만, 아쉬움이 있습니다.”
셜록 소송의 항소심은 미오 소송의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진행됐다. 2심 재판부는 지난 6월 원고 셜록의 청구를 기각했다. 미오 소송과 똑같은 수순이었다.
“2심 재판부가 변론기일에 ‘피고(서울고검)가 출입증 발급 등을 거부하는 데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를 여러 차례 물었습니다. 거부 사유의 정당성을 법리적으로 다툰다면 우리가 이길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결국 항소심에선 서울고검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봤습니다.”
결국 출입처에 등록된 특정 언론사만 공보 혜택을 받는 게 정당하다는 사법부의 결론. 하지만 이 같은 행태를 과연 관행으로 여기고 넘어가도 되는 걸까.
출입처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언론이 ‘카르텔 형성’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출입기자단을 중심으로 한 ‘언론 길들이기’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끊임없이 논란이 돼왔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5월 있었던 ‘대통령의 저녁 초대’다.
대통령실은 지난 5월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을 상대로 ‘김치찌개 만찬’을 열었다. 김치찌개, 계란말이에 더해 전국 각지를 대표하는 먹거리가 저녁 식사로 제공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흰 앞치마와 장갑을 착용하고 기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모습은 대통령실 홈페이지 사진으로 공개됐다.
윤 대통령은 기자들의 해외 연수 기회를 대폭 늘리겠다고 ‘선심 쓰듯’ 약속했고, 중요 현안 관련 질의응답은 오가지 않았다. “고기 좀 더 달라”는 기자들의 목소리를 전하거나, 대통령의 김치찌개 레시피를 소개하는 기사들이 지면을 장식했다.
달콤한 약속과 만찬으로 달래기만 하는 건 아니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출입기자단이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되는지 본때를 보여주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MBC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허한 사건.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MBC는 2022년 미국 뉴욕 순방 당시 윤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을 두고 비속어를 섞어 한 발언을 보도했는데, 그 이유로 대통령실로부터 취재 불이익을 받았다.
출입기자단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역술인 천공이 대통령 관저 선택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뉴스토마토 보도를 문제 삼았다. 대통령실은 출입기자단 자격을 뺐고, 명예훼손 혐의로 현직 기자를 형사 고발까지 했다.
기관은 출입기자단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면서 소수의 언론에게 특혜를 보장하기도 하고, 때론 그 특혜를 빼앗기도 하면서 언론을 길들인다. 대통령실이나 법조기자단이나 다르지 않다. 2023년 4월 민변은 성명을 발표했다. 폐쇄적인 법조기자단 출입처 제도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법원과 검찰이 법조기자단에 정보와 편의를 제공해주는 대신 이를 도구로 언론을 길들이는 행태.”
민변은 개선사항으로 ▲법조출입처제도의 법적·사회적 문제점을 인식할 것 ▲법령상 근거 없는, 기자단 외 언론사의 취재 제한을 중단할 것 ▲조직의 편의에 안주함이 없이 법언유착, 검언유착의 여지를 끊어내는 제도적 보완에 힘쓸 것을 지적했다.(관련기사 : <“언론 길들이기 그만” 민변, 법조기자단 개선 성명>)
법조기자단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됐다. 2022년 10월 당시 권인숙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은 “특정 기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건 (형평성에) 안 맞다”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검언유착’도 (법조기자단 운영에서) 나온 이야기이고, ‘특정 언론에서만 검찰발 단독 보도가 나왔다’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고 꼬집었다.
당시 조정훈 국회의원(시대전환, 비례대표)도 “검찰이 을과 을의 싸움을 부추긴다”며, “출입기자단이라는 권한 없는 단체에 (출입 여부 결정을) 맡김으로 인해서 검찰이 기자들 길들이기를 하는 게 아니냐”고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관련기사 : <“특혜와 차별” “기자 길들이기”… 국감 달군 법조기자단 문제>)
이미 국가기관도 법원과 검찰의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거부행위를 차별로 인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2022년 2월 17일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등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대우를 하지 않도록 관행이나 제도를 개선하라”는 의견을 서울고법과 서울고검에 밝혔다.(관련기사 : <“비출입기자단 차별 말아야“.. 인권위, 고법·고검에 의견 표명>)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언론사는 공공영역에서의 중요한 결정이나 사건 등을 취재하여 이를 보도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사가 자유롭게 취재원에 접근하여 취재하고 이를 보도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인권위 결정문 일부)
최 변호사는 이 같은 인권위 결정을 쫓지 못한 사법부의 판결에 아쉬움을 표했다.
“사법부가 그 권위에 맞게끔 법리로서 보여주면 됐을 텐데, 아쉽죠. 인권위에선 언급된 부분들에 대해서 법원이 법리로서 반박하지도 못했고, ‘사법권이 법원에 있으니 우리 마음대로 판단하겠다’ 그 정도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판단만 남았다.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거부행위가 헌법에 위배되는 행동이 맞는지, 그 판단이 헌법재판소의 손에 달렸다. 현재 헌법소원심판 청구는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심리 중이다.
장장 3년 8개월이 걸린 행정소송은 패소로 끝났지만,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바로 1심 법원의 전향적 판결이다. 최 변호사도 법조기자단 개방화 소송의 의미를 거기서 찾았다.
“판결문은 계속 국가 기록물로 남잖아요. 1심 판결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결과들이 나왔던 게 큰 소득이죠.행정법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이 저희 소송 2심, 3심을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실상 정치적 판단이 들어간 판결로 보고 있습니다.이 판결에 관여했던 판사들, 대법관들, 그리고 재판 연구관들이 로스쿨에서 행정법 강의를 한다면, 이 판결을 두고 우리 법원의 자랑스러운 판결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아마 양심상 답변을 잘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