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핵무기 활용을 결정하는 기술
국방 기술결정론 by 🍊산디 사막 언덕에서 보초를 서던 당신은 한 목동이 양을 몰고 반대편 언덕 위에 올라온 것을 발견합니다. 당신은 테러 조직이 종종 민간인 특히 어린 목동들을 정보원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목동은 몸을 돌리더니 당신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무어라 읊조립니다. 소년은 테러 조직에게 당신의 위치를 알리는 것일까요, 혹은 그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요? 당신의 총구는 목동을 겨누고 있습니다. 이 일화는 신미국안보센터(CNAS) 연구소장인 폴 샤레가 쓴 <새로운 전쟁>에 등장합니다. 이라크 전쟁 중 그가 직접 겪은 일이자, 그가 여전히 꾸고 있는 악몽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는 결국 총을 쏘지 않았고, 목동은 테러 조직의 정보원이 아니었습니다. 폴 샤레는 무고한 민간인의 삶이 자신의 총구 안에 들어왔던 그 순간 자신이 내릴 수 있었던 오판 가능성에 두려워하면서 전쟁터에서 AI의 자율적인 판단은 결코 완전할 수 없음을 역설합니다. 현장의 복잡성과 미묘한 맥락을 AI가 완전히 읽어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백악관은 지난 17일, 바이든과 시진핑이 핵무기 이용은 인간에 의해서 통제(control)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이 정권 교체를 앞두고 있는 만큼 이번 합의는 바이든과 시진핑의 마지막 대면 만남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합의가 추가 회담이나 조약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권 교체 전 세계 정세를 안정화하려는 듯한 바이든의 마지막 행보 속에서 그의 움직임은 의미심장합니다. 미래전은 어느덧 현대전이 되었고, 세계는 정보전을 넘어선 지능전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AI는 이미 전쟁에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인간과의 통신이 불가능하게 된 AI 드론이 ‘적’을 판단하여 살상했고, 팔레스타인 전쟁은 감시와 학살의 기술에 힘입어 더 큰 비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제 AI는 전쟁에서 인간의 의사결정을 보조할뿐 아니라 자율적 의사결정을 통해 공격 실행까지 수행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전쟁 행위자가 되었습니다. 군사적 긴장 상태에서 의사결정 오류는 전쟁과 같은 치명적인 결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군사적 의사결정이 ‘기계의 속도’로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둑의 수를 계산하는 AI처럼, AI의 자율적인 결정에 근거해 전쟁이 치러지는 상황을 상상해봅시다. 주식시장과 달리 전쟁에는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서킷 브레이커도 사이드카도 없습니다. 인류는 영문도 모른 채 세계 대전을 치르게 될지 모릅니다. 세계는 전쟁을 규율할 새로운 규칙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AI의 ‘결정’에 대한 인간의 ‘통제’는 특히나 중요한 기제입니다. 이번 합의에서 바이든과 시진핑은 핵무기 사용 여부에 대한 결정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The two leaders affirmed the need to maintain human control over the decision to use nuclear weapons). 이는 핵무기 사용을 인간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과 다릅니다. AI가 핵무기 사용을 ‘결정’했을 때, 인간이 그 결정을 중단하는 등의 ‘통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전쟁에서 인간의 역할은 AI의 결정을 ‘통제’하는 데 있습니다. AI에 대한 인간의 통제는 여러 방식으로 설계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지스함은 예상되는 위협의 유형에 따라 함장이 원하는 제어 방식을 선택하고 이를 구현합니다. 거대한 이지스함 전체가 함장의 군사 철학에 따라 구현되는 것이지요. 이지스함에서의 의사결정은 함장과 선원에 의해서 통제되며, 이지스함의 작동은 언제든지 하드웨어 장치에 의해 중단될 수 있습니다. 이지스함의 사례는 함선의 구성원이 기계의 특성을 어떤 철학에 근거하여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폴 샤레는 이를 ‘이지스 공동체’라고 지칭합니다. AI가 미래 경제, 군사력 경쟁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미중 양국의 군사력 경쟁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세계 질서의 균형추가 빠르게 흔들리는 지금, AI 군사 안보는 단순히 ‘효율적’인 살상 기술을 개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군사 공동체가 어떤 철학을 갖고 AI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도록 할 것인지 논의하고,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논의가 뒷받침 되지 않는 AI 국방 담론은 기술결정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읽어보기- 민-군 모두의 이중 용도 기술(2024-10-23)- 전쟁과 죽음의 기술(2023-10-30)- 자동화된 아파르트헤이트(2023-05-15)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
2
·
사과 없는 대통령의 말… “정치적 무책임 몸에 뱄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대통령실에서 약 140분간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견을 앞두고 회견 시간이나 분야·개수 등 제한 없이 모든 사안에 대해 답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에 앞서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이어진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26개의 질문을 받았다. 대통령실이 강조했던 것처럼 앞선 기자회견과 비교했을 때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질문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반전 없는 맹탕 회견’, ‘자충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2022년 6월 53%를 기록했던 지지율은 임기 절반 만에 17%(8일 기준)까지 하락했다. 지난 2년 반 대통령은 어떤 말을 했을까. 또 그의 말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6일 예술사회학 연구자인 이라영 문화평론가(이하 ‘이라영 작가’)를 만났다.  그는 <말을 부수는 말>,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타락한 저항>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그는 ‘권력의 말’을 해체하고 정확한 언어로 현실을 문제를 꼬집는 데 주목했다. “용산으로 대통령실 옮길 때 그랬잖아요. 제왕적 대통령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이전한다고. 그런 핑계를 댔는데 이후에 거부권을 얼마나 남발했어요? 군사독재 이후로 이보다 더 제왕적 대통령이 있었나 싶을 정도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통령실 이전을 공식화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앞세웠다. 그러나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 이유에서 ‘소통 미흡’은 3순위 안에 번번이 들었다. “이번 정부 들어서 소수자의 목소리는 완전히 묵살됐어요. 특히 참사 유가족들의 목소리요.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과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어서 정치가 실종됐다는 거죠.” 이라영 작가는 참사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권력의 성격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묵살(默殺)의 ‘살(殺)’이 살인(殺人)의 ‘살(殺)’과 같다”며, “묵살은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력의 행위이기도 한데, 이를 참사 유가족에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사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지적은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지난달 25일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마주하는 질문들’ 포럼에 참석한 최성용 성공회대 연구원(국제문화연구학과 박사 수료)은 이렇게 말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애도를 두고 ‘정치 편향적이다’라면서 분향소를 철거하거나 강제로 이전시킬 수 없죠. 우리가 어떤 리본을 하나 다는 것도 눈치를 봐야 되고, 리본 문구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고. 이거는 애도가 아니죠. 권력 행위죠.” 그는 “참사 대신 사고라 명명하고, 희생자의 영정 사진과 위패가 없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정부의 애도는 다분히 형식적이었고 그 내용이 텅 비어 있었다”며, “참사 피해자의 존재를 없애고 침묵시켰다”고 비판했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158명이 사망했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참사 74일 만에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 지자체, 소방 등 각 기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들의 부정확한 상황판단과 전파 지연, 협조 부실, 구호 조치 지연 등이 참사 원인이라고 밝혔다. 책임자들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으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만 유죄를 받았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관련자들은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권력자들이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말을 남용하면서 정치적 무책임이 몸에 밴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는 그냥 거대한 사법기관만 (남아) 있는 거죠. 사회 정의는 법적인 유무죄 안에 갇히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되면서, 윤리라는 세계가 없어져버렸어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면 참사가 발생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만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권력의 무책임으로 결국 시민들이 희생된다”며, 사회의 고통을 방치하는 권력자들에게 “정치적 책임의 회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는 또 있다. 지난달 1일 국군의 날에 열린 대규모 퍼레이드다. 그는 2년 연속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진행했다. 군은 이날 다양한 군 장비와 병력 등을 선보였다. “국군의 날이라고 퍼레이드를 하면서 정작 억울하게 죽은 군인에 대해서는 덮으려고 하고 밝히지도 않아요. 군 사기를 걱정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죠. 정부는 군 사기를 걱정하지 않아요. 권력의 안위를 걱정하는 거죠.” 윤 대통령은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했다. 그는 ‘선제 타격’, ‘압도적 전쟁 준비’, ‘확전 각오’ 등 전시 상황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강조했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권력이 결국 국민들에게 ‘집단적 불안’을 조장해 사회 부정의를 가렸다고 꼬집었다. “사회를 전시 분위기로 몰고 가면서 차별을 더 강화하고 있어요. ‘지금 전쟁 나게 생겼는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어디 있어?’ 하면서 (다른 문제들을) 사소화시키는 거죠.” 권력자의 외면과 차별로 결국 ‘사과’가 사라진 세계가 도래했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단계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참사나 사고가 발생해도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여기에서 이상한 ‘말’이 탄생한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는데 사과를 해야 하는 자리에 섰어요. 그때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유감입니다’ 이렇게 말해요. 사과하기 싫으니까 에둘러서. 이게 그냥 공직자들의 언어가 돼버린 것 같아요.” 유감(遺憾)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이라영 작가는 권력자가 타인의 마음을 ‘섭섭’하게 만들어놓고, 자신이 도리어 유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문해력에 문제가 있는 건 다름 아닌 ‘권력 집단’이라고 말했다. “언어는 그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쓰면 그냥 그 사회에 그냥 굳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면 점점 사람들이 ‘유감입니다’를 사과의 언어로 이해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정말 우리 사회의 언어를 망치고, 문해력을 교란시키는 주범이 누구인가 하면 결국 ‘권력집단’이에요.” 교육부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 소수자’ 용어를 삭제하고,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노동자’를 ‘근로자’로 변경했다. 이에 당시 인권위는 “우리 사회의 인권 담론을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는 노동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근로자는 조금 더 사용자의 입장에서 수동성이 부각됩니다. 이를 굳이 바꾸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노동자의 주체성, 독립성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거죠.” 말을 바꾼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바꾸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이를 활용해 차별을 강화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권력 집단의 말은 보수적이다. 그들이 활용했던 말과 언어를 지속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사회적 소수자, 피해자 등은 자신의 상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끊임없이 찾는다. 기존의 문화에서는 너무 평범한 말이라고 해도, 차별이나 비하의 의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저는 권력의 위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 표현들을 경계해요. 예를 들면 젠더 ‘갈등’이라는 말을 하려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젠더들의 관계가 모두 평등해야 성립할 수 있어요.그런데 ‘젠더 권력’, ‘젠더 폭력’, ‘젠더 차별’ 이렇게 사용하는 게 더 정확한 상황에서, 뭉뚱그려 ‘젠더 갈등’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러면 말에 권력의 위치가 드러나지 않거든요. 지역 ‘갈등’도 그렇고요. 저는 권력이 행하는 차별과 폭력을 순화해주고 싶지 않아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세우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표명했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정부 아래 ‘여성혐오 범죄’가 어떻게 인정될 수 있겠냐고 탄식했다. 구조적 성차별 없다고 했으니 여성혐오는 검증될 수도, 인정될 수도 없다. 따라서 ‘여성혐오 범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잇달아 발생하는 교제폭력, 교제살인, 여성혐오 폭행 사건 등은 모두 개인화된다. 즉, 별난 가해자가 저지른 기행으로 둔갑되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 역시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17%라는 지지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윤석열 정부는 민심을 얻지 못했다. 탄핵론에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이라영 작가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정황이 이렇게 나와도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같은 분위기가 형성 안 되잖아요. 왜냐하면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이니까요. 이쪽을 끌어내리면 또 누구를 앉힐까. 잘 모르겠어요. 이게 사람들을 되게 절망적이고 무력한 시민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이라영 작가는 “정치가 고통을 외면하는 세상”에 돌파구는 결국 연대라고 강조했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쉽게 묻힐 수 있어도, 여럿이라면 권력에 견줄 ‘힘’을 만들 수 있다. “인간이 품은 모방 욕구는 아름다움을 복제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무엇을 복제할 것인가. 권력화된 아름다움인가 분배하는 아름다움인가. 아름다움과 선함에 대한 동경이 나 이외의 타자와 동등하게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결될 수는 없을까.” – <말을 부수는 말>(이라영, 한겨레출판, 2022) 중에서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1
·
민-군 모두의 이중 용도 기술 AI
민-군 모두의 이중 용도 기술 AI by 🎶소소 “군사 목적으로 AI를 활용하는 게 왜 문제인가요? 국방 기술력이 곧 국력이고 방위 산업은 수출 효자 산업인데 더 많이 투자해야죠.” 최근에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 질문을 듣는 순간, 깊은 불편함이 몰려왔습니다. 얼버무리듯 답을 했지만, 그 후로 마음 한구석이 계속 찜찜해 이렇게 레터를 빌려 다시 답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AI와 같은 첨단 기술은 군사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조종 신호가 끊겨도 자율 폭격이 가능한 AI 드론이,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이 개발한 AI 폭격기가 초고속으로 표적을 찾아내며 효율적으로 살상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흔히 AI 기술이 그 자체로 특정 용도에 국한되지 않는 '범용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군사 안보 분야는 다양한 AI의 활용 분야 중 하나일 뿐일까요? AI 기술은 범용 기술이지만 동시에 이중 용도 기술(Dual-Use Technology)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기술이 군사용으로 개발되어 민간으로 확산되거나, 그 반대의 경로를 거쳤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군사 통신용으로 개발된 ARPANET이 오늘날의 인터넷으로 발전했죠. 거의 모든 기술이 이중 사용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의도하지 않은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일반적인 영역과 "의도적인 오용"은 다릅니다. 미국 국방부는 이중 용도 기술을 상업적 용도와 군사적 용도로 모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이라 정의합니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는 생물학 분야의 연구 중 공중 보건, 개인 안전 또는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연구를 우려할 만한 이중 용도 연구(Dual-Use Research of Concern, DURC)로 분류하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별도 관리합니다. 예를 들면, 병원체나 물질의 해로운 독소를 증가시키거나, 병원체에 대한 면역이나 예방 접종 효과를 방해하는 등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 연구는 사전에 분류하여 관리합니다. 유럽연합은 이중용도 품목을 지정하여 수출, 운송, 중개, 기술 지원을 통제하고 추가적인 안전장치를 요구합니다. 대량살상무기 혹은 인권 침해와 관련된 품목도 통제 대상입니다. 핵확산금지조약, 화학 및 생물무기금지조약 등에 따른 조치이며, 국제 평화와 안보에 기여하고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 AI 행정명령에서는 “이중 용도 파운데이션 모델(Dual-use foundation model)”을 별도로 정의했습니다. 정의에 따르면 이 모델은 광범위한 대량의 데이터로 학습되고, 일반적으로 자체 감독을 사용하며, 최소 수백억 개의 파라미터를 포함하고, 광범위한 맥락에서 적용 가능하며, 안보, 국가 경제, 공중 보건, 안전 등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작업에 높은 수준의 성능을 발휘하거나 발휘할 수 있습니다. 모델의 위험성을 고려해 개발자는 상무부에 AI 안전 테스트 결과를 포함한 핵심 정보를 보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단한 규모의 AI가 아니더라도, AI 기술은 기존의 그 어떤 기술보다 자유롭게 민간과 군사 분야를 넘나들며 전쟁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은 AI가 현대 전쟁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AI는 드론 작전, 사이버 전쟁, 정보 분석 등 다양한 군사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실험실로 활용해 개발한 감시 기술을 세계 각국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AI의 군사적 활용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 AI를 전쟁에 투입하는 상황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AI는 언제든 무기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적절한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 더 읽어보기- 전쟁 기술 만들기를 거부하는 이들(2024-04-15)- 죽음의 기술과 효율성(2024-04-08)- 전쟁과 죽음의 기술(2023-10-30)- 자동화된 아파르트헤이트(2023-05-15)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
1
·
[연구원정] 기록되지 않은 여학생,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 운동의 역사를 찾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2018년즈음 일본군성노예제문제를 다루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자원활동을 했던 적 있습니다. 온라인 문서 사용이 익숙하지 않던 시절에 당시 활동가들이 손으로 쓴 성명서와 가위로 잘라 모아둔 언론 기사 모음을 스캔하는 작업이었죠. 그때 마주했던 한 주먹의 종이뭉치가 준 위로와 충격은 지금까지도 제가 활동가이자 연구자로 활동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자료였어요. 2000년 여성국제법정에 앞서 열린 2000년 학생법정 당시에 제가 만난 자료는 2000년에 열린 학생법정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와 준비자료습니다. 흔히 ‘2000년 법정’ 혹은 ‘2000년 여성국제법정’이라고 부르는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되어있죠. 이 법정의 전체 이름은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이에요. 2000년 12월 8일부터 12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아시아 10여 개국이 참가해 2001년 12월 3일과 4일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최종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에 앞서 여성 대학생들은 2000년 학생법정을 기획합니다. 1998년 8월에 기획에 들어가서 1999년 4월에 2000년 법정보다 먼저 학생들끼리 법정을 운영한 것이지요. 이유지님(당시 22세, 경기대 영문과 4학년)과 민승해님(당시 24세), 정은정님이 각각 임시위원장과 준비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운영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홍익대학교, 명지대학교 등 국내 50여 대학 여학생 모임과 각 대학 총여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이 행사를 이끌어나가기 시작했죠. 2000년 여성국제법정 한국위원회를 담당했던 양미강님의 글을 보면 2000년 학생법정의 운영에 대한 이야기 조각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2000년 여성국제법정: 전쟁의 아시아를 여성과 식민주의 시각에서 불러내다, 경인문화사, 2021년 33~35쪽) 학생법정은 원래 전국 5개 대학에서 개최하려고 했지만 호응도가 매우 좋아 이화여대, 조선대, 부산대, 창원대, 동아대, 경희대, 해양대, 원광대, 서원대, 한신대, 전주대, 서울대까지 전국 11개 대학에서 각자 학생법정이나 문화제를 개최하는 것으로 확장됩니다. 릴레이 수요시위를 열기도 하고 각자 지역단체들과 연대해 독자적인 행사를 만들기도 했지요. 일본의 오비린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전쟁과 여성인권 캠프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글로컬 연대를 보여주는 장면이지요. 여학생이 만들고 이끌어간 운동의 역사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각 대학 총여학생회와 여성위원회는 여러 여성인권행사를 개최했고 일본군성노예제문제는 그 가운데 하나의 축이었습니다. 예컨대 1999년 10월 26일부터 2주간 이화여대 여성위원회는 성폭력 관련 행사를 진행했는데요. 이때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와 광주 민주화운동, 한국전쟁, 동티모르 사태 등 여성 성폭력 피해 사례를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 이화여대 여성위원회는 문제해결을 기원하며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강덕경님의 초상을 완성하는 행사를 진행했고 이 지문 초상을 2000년 모의 학생 법정에서 사용했습니다. 이렇듯, 2000년대 초반까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함께 전국여대생대표자협의회, 이화여대 여성위원회,홍익대학교 여성모임 ‘딴짓’등 이전부터 여학생 운동을 하고 있던 단위들은 적극적으로 운동을 도모합니다. 수요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기도 하고 각 대학의 총여학생회에 문제를 제기하며 2000년 학생법정을 홍보하기도 했지요. 일본군성노예제문제에 심각성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제 또래의 페미니스트들은 일본군’위안부’문제보다도 다른 문제들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당시 저는 어떤 외로움의 감각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기사를 읽다보니 시대를 거슬러 계속 청년 여성들이 이 운동에 결합하기도 하고 서로 끌고 밀면서 나아갔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료의 발견은 저에게 잔잔한 위로였습니다. 단절되어있다는 감각으로부터 벗어나 이들의 발자취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00년 학생법정, 90년대부터 이어진 여성운동의 감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 운동을 하고 있더군요. 운동의 지속성을 여기에서 찾았습니다. 여학생들은 누가 기록했나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운동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여학생들을 추적하는 연구는 아직 부재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운동에 개입했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이 문제를 각자의 자리에서 기억하고 고군분투하며 함께 하고 있더라고요. 누군가는 후원으로, 누군가는 교육으로, 누군가는 활동가로서요. 지난 주 수요일(2024년 10월 9일) 1669차 수요시위가 열렸습니다. 한 연대발언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위 발언문을 준비하며 걱정이 되어 엄마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엄마도 대학생 시절 수요시위 현장에 있었다고요. 시위에 참여했던 한 사람이 엄마가 되고, 그 사람의 아이가 다시 학생이 되어 수요시위에 나올때까지의 시간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시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일본군성노예제문제는 아무리 지우려는 사람들이 많아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오래된 만큼, 누군가는 낡고 오래된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래도 계속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운동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외롭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20대 여성들이 만들어낸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 운동을 역사화할 계획입니다. 2000년 학생법정은 저의 첫 시작이 될 거에요. 여학생들을 기사로 쓰지 않던 시대를 거슬러 그들이 손으로 남긴 메모, 오려붙인 종이들,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회의록들을 들춰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10년이 걸리던, 15년이 걸리던 이 운동에 참여했던 2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내고자 합니다. 제가 외롭지 않게 운동하고 싶어서라는 이기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연구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제 연구가 응원과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봅니다. 문제해결운동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이번 주에 1670차를 맞습니다. 길에서, 박물관에서 언젠가 독자 여러분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그 마음이 사람과 운동, 연구를 이어가는 힘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저는 다음 칼럼으로 돌아오겠습니다!
·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