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 경연에 등장한 비건식🥗 근데 이제 사시미를 곁들인…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3
공기가 긴 여름 내내 머금던 물기를 털어냈는지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습니다. 눈에 띄게 쾌청해진 하늘에 바뀐 계절을 실감하다가도 다시 일상을 지낼 때는 그 흐름을 매 순간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달라진 바람과 온도에 둘러싸여 살지만, 오히려 늘 함께하기에 변화를 금방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는 듯해요. 우리 몸을 감싸는 옷차림, 낮과 밤의 길이처럼 일상을 구성하는 꽤 큰 요소가 휙휙 바뀌었는데도요.
이번 기사들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본인과 먼 이야기라고 여겼을 주제도 사실은 모두가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느끼며 읽게 되는 기사들입니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상속세 문제를 다룹니다. 일부만 해당하는 주제 같지만, 사실 사회 불평등 구조를 모양 짓는다는 데에서 모두가 연결된 문제죠. 두 번째 기사인 자영업 리포트에서는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중 23.5%를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이 처한 문제상황을 살필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비건 지향인이 쓴 <흑백요리사> 리뷰인데요. 비건 요리를 향한 시선을, 더 나아가서는 비건과 연결된 여러 사안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여름이 가긴 가는 거냐며 해가 갈수록 심하게 불평해 대는데, 결국 가을이 오긴 왔습니다.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거나 해결책이 요원해 보이는 문제도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하긴 할 텐데요. 기사 속 주제가 나중에 어떤 모습일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상상해 보며 기사를 읽어볼까요? 이거야말로 꺼진 뉴스에 불씨를 다시 지피는 방법이니까요.☺️
1. 사건과 구조: 물려받을 재산, 있습니까? 다가온 ‘대상속의 시대’
"정액으로 정해져 있는 공제액 일부를 상향 조정하는 것은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 가능한 일이다. (중략) 문제는 이를 위한 명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상속세는 중산층이 내면 부당한 세금’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는다는 것이다." ✍🏻 김동인 기자, <시사IN>
ⓒ시사IN 조남진
상속세를 다루는 기사는 차고 넘칩니다. 대부분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와 비교하고, 상속세 인하가 필요한 이유를 설득하죠. 인하론의 대표적인 근거로는 아파트값 인상으로 상속세 부과 대상이 대폭 늘었다는 점이 제시됩니다. 겨우 집 한 채 가진 ‘중산층’이 ‘부자들의 전유물인 상속세’를 내는 건 이상하다는 거죠. 정치권도 이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는데요. 예컨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상속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세금이 중산층을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기사는 보편적인 문법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는 기사겠죠. 이번에 소개하는 <시사IN> 기사가 그렇습니다. 김동인 기자는 묻습니다. 정말로 현재 상속세 부과 대상들을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는가? 사실 ‘서울 아파트’ 값으로 여겨지는 ‘10억 원’ 이상 순자산 가구는 전체 가구의 10.3% 수준입니다. 정치권이 말하는 중산층은, 실제로는 중산층이 아닌 상류층에 가까운 집단인 거죠. 더 나아가 기사는 양극화의 관점에서 상속세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상속받는 이들과 상속받을 게 없는 이들 사이에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의 ‘중산층세’ 프레임부터 양극화 문제까지. 기사의 홍수 속에서 ‘한 끗 다른 관점’을 찾아 헤매는 독자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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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재·기획: "오늘 맥주 한병 팔았다"…서울대생 아지트 '녹두호프'의 몰락 [창간기획, 자영업 리포트]
"그가 폐업도 하기 어려운 이유다. 게다가 폐업은 공짜가 아니다. “건물주에게 폐업 얘기를 꺼냈더니 가게를 원상 복구하고 나가라더군. 주변에 물어보니 최소한 800만원은 나갈 거래. 그 돈이 어디 있어?”" ✍🏻 박진석, 조현숙, 하준호, 전민구, 김현동 기자, <중앙일보>
ⓒ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성공하면 대박, 망하면 쪽박인 자영업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서민 갑부에 나오는 자영업자 성공 신화를 자주 보았기 때문일까요? 자영업자의 실패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 조용한 몰락을 중앙일보 창간기획 <2024 자영업 리포트>가 주목합니다. 기사는 자영업자 51명을 찾아가 각자가 처한 어려움을 먼저 듣습니다. 하루 매출이 맥주 한 병에 불과한 가게, 배달 플랫폼 수수료에 분노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과잉 경쟁에 밀려난 원조 스터디 카페의 이야기에 자영업자의 현실이 낱낱이 담겨있습니다.
자영업자는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최저임금이나 수수료 상한제 같은 큰 이슈부터 야간 돌봄 확대, 주차시설 설치 같은 생활 밀착형 요구까지 다양합니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주점 휘가로에서 일하는 김태수(62) 씨는 정부의 국군의 날(10월 1일) 임시공휴일 지정에 불만을 토합니다. 그는 “사람들은 휴일이 길어지면 밖으로 나가지만 절대 집 주변에서 소비하지 않는다. 자영업자만 죽어나는 선심성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죠. 단순히 기금 규모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25조 원 소상공인 종합대책’은 복잡한 현실을 해결하긴 역부족입니다.
고된 하루, 사람들은 타인의 노동으로 치유받아 다시 일어설 힘을 찾습니다. 직접 요리를 할 힘조차 없을 때, 돈을 내고 먹는 따뜻한 한 끼는 큰 위안이 됩니다. 우리의 일상과 연결된 자영업은 한국 경제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소득의 추락, 과잉 경쟁과 과잉 노동, 원가 급등과 부채 상승이 자영업자를 옥죄고 있죠. 정치권의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에 사회가 함께 공감하는 일이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요? 후속 보도까지 예정된 기획 첫 기사는 아래 링크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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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피니언: '흑백요리사'에 나온 혁명적 메뉴, 재료 알면 더 놀랄걸요
"대체육이나 비건 사시미와 같은 요리를 비판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고기에 길들여진 입맛을 거부하고 동물권, 환경 등을 이유로 채식을 지향하려는 이들에게는 '가짜 고기'는 간절할 것이다. 이렇게라도 동물을 덜 죽일 수 있다면 이야말로 밥상 혁명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비건 요리에 가짜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부당하다. 가짜가 아니라 진짜다." ✍🏻 이현우,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나야, 들기름”. 넷플릭스 화제작 <흑백요리사>를 아시나요? 시청하지 않더라도 SNS 피드에 뜨는 영상으로나마 프로그램을 접한 분들이 많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흑백요리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답게 화려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광활한 세트장과 식기구가 잘 갖춰진 조리대, 그리고 화려한 등장 효과에 놀라는 참가자 모습을 자주 비춥니다.
<흑백요리사>가 대형 스케일을 보여주는 또 다른 연출 방법은 동물을 전시하는 것입니다. 거대 수조를 심사위원 뒤로 옮겨 와 경연 주제를 발표하고, 수많은 동물을 앞에 나열해 놓고서 출연진들이 발 빠르게 그를 가져가 조리하도록 구성해 긴박함을 연출합니다. 제작진에게는 동물이 회차의 주제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소재가, 참가자에게는 요리의 재료이자 다음 경연 진출을 결정짓는 무기가 되는 것이죠. 이런 장면을 보면, 정말 많은 동물이 매 순간 살상된다는 사실이 온 살갗으로 느껴집니다.
시청자들에게는 이런 장면들이 어떻게 다가올까요? 조리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저 요리가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하다, 더 나아가서는 직접 먹어봐야겠다는 결심까지. 동물이 ‘음식’으로서 식생활의 기반이라는 의식이 더욱 견고해지지는 않을까요? ‘육식문화‘가 크게 기여하고 있는 식량부족과 기후위기는 인지하기 어려워지고요.
이런 <흑백요리사>에서 비건 음식이 등장했습니다. 프로그램에는 비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남정석 셰프가 출연하고, ‘셀럽의 셰프’라는 닉네임을 가진 요리사는 채소로 ‘비건 사시미’를 만듭니다. 다른 요리사들은 비건 사시미를 맛보고 싶다며 큰 관심을 보입니다. 시청자 반응도 비슷합니다. 비건 사시미를 궁금해하고, 시도해 보고 싶어 하는 평이 많습니다. 누군가의 죽음 없이도 재미를 이끌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이 흥미가 앞서 언급한 동물권과는 약간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심은 동물과의 유사성, 즉, ‘특정한 맛과 식감의 재현 가능성’에 쏠려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예를 들어, 비건 사시미를 맛봤을 때 사람들이 비트로 참치를 얼마나 훌륭히 ‘흉내’ 냈을지를 살핀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기사에서는 음식에 담긴 과정이 다르다면, 그 자체만으로 특정 요리의 모방이 아닌 독립적인 요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순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동물 소비가 없었다면 우리는 채소를 셀 수 없이 많은 형태로 재편집해 다양한 맛과 식감을 이미 즐기고 있었을 수도 있죠. 또한 가끔은 모순적인 방법으로라도 우리가 믿는 선과 공존을 실현할 수도 있는 법이고요. (실은 저는 이걸 모순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라도’ 실천하려는 행위로 바라보긴 합니다.) 독자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독자님의 확장된 감상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기사를 실어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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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남긴 편지
1.
안녕하세요, 독자님. 레터를 쓸 때 제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건 독자님들 인데요. 이번 호를 쓰는 동안에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레터를 읽고 있는 당신은 왜 폴라리스를, 그리고 언론과 기사를 저버리지 않을까.” 사실 기사를 꾸준히 읽는다는 건 꽤 지난한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에서 ‘좋은 기사’를 찾고 읽길 멈추지 않는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2.
사실 저는 ‘절식’을 선언한 적이 있어요. 음식을 끊은 건 아니고, 기사를 잠시 끊었어요. 기자를 꿈 꾸는 사람이 기사를 안 읽는다니! 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때는 지면을 가득 채운 비극을 감당하는 게 버거웠던 것 같아요. 예컨대 상쾌하게 추석 명절을 보낸 후 신문을 들추면 ‘추석 일가족 참변’ 같은 헤드라인이 보이잖아요. 산재, 딥페이크, 이하전쟁, 선감학원… 매일 매일 슬픈 일이 벌어지는데, 세상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죠. ‘여야가 정쟁에 몰두하느라 개정안 입법이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또 누군가가 범죄 피해를 당했다.’ 이런 레퍼토리의 기사가 익숙해져 버린 시대니까요.
3.
물론 이제는 ‘절식’하지 않습니다. 대신 폴라리스 독자님들과 함께 읽을 기사를 찾아 헤매요. 비극을 외면하진 않겠다고 생각할 때, 한국 언론에 문제점이 차고 넘치는 줄 알면서도 냉소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 저는 최승자 시를 떠올려요. <20년 후에, 지芝에게>에서 시인은 어린아이인 지芝에게 말합니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화자는 자신이 몰락하는 21세기의 어느 날을 예감하면서도 20년 뒤 성인이 될 지芝의 빛나는 시작을 빌어주죠. ‘마침내 네가 이르게 될 모든 끝의// 시작을!’하고요.
최승자 시를 잘 알진 못하지만 <20년 후에, 지芝에게>가 최승자 시 중 무척 예외적인 시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극단의 자기부정’, ‘절망적 호소’ 같은 구절로 수식되는 시인이잖아요. 당장 <20년 후에, 지에게>에서 몇 장을 넘기면 이런 문장이 발견되죠.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겐 공포였다.”
단지 최승자의 시집에 비극이 가득하다는 이유로 - 그리고 그것이 세상의 진실이라는 이유로 - 저는 멋대로 그녀의 시집을 기사와 동일시 해버리곤 합니다. 그러고선 공포스러운 세상에서도 읽고 쓰길 멈추지 못하는 마음 가장자리에, 어른이 된 지芝가 살아갈 세상이 아름답길 바라는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주 자의적인 해석이지만요. 시의 마지막 연에 이를 때쯤이면 이런 마음이 송골송골 맺힙니다. ‘지금 어린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시대가 너무 가혹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어른인 나는 이 시대를 열심히 보고 기록해야겠다.’ 조금 거창한 마음이지요?
4.
시간이 흘러 또다시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옵니다. 어느새 제가 폴라리스에 합류한 지도 2년이 되어 가고요. 아마 지금 쓰는 글이 제 마지막 에디터레터가 될 것 같아요. 폴라리스를 떠나게 되었거든요. 그렇지만 폴라리스를 향한 애정과, 독자님들께 소개할 기사를 찾던 ‘거창한 마음’은 이 자리에 오래오래 남겨둘 생각이에요. 20년 후, 지芝가 살게 될 가을의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을 비는 마음 말이에요.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폴라리스의 항해도 기대해 주세요!
2024. 09. 30.에디터 만쥬🌰 드림
만든 사람들: 만쥬🌰, 해안🌊, 모래🏖️, 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