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수능] 존버 : 의대 진학의 법칙
목차
들어가며
본론
성적이 높지 않아도, 기다리면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
부자 부모를 찾습니다
고졸이라는 낙인, 독일에선 없다
나가며
들어가며
“2025학년도 수능에는 전년도보다 1만 8,082명 많은 52만 2,670명이 지원했다. 재학생은 전년 대비 1만 4,131명 증가한 34만 777명(65.2%)이었고, 졸업생은 2,042명 늘어난 16만 1,784명(31.0%)이었다. 검정고시 등 기타 지원자는 1,909명 증가해 2만 109명(3.8%)을 기록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오늘(14일) 진행됐다. 많은 전문가가 수험생이 늘어난 것의 이유로 의대 증원을 꼽고 있다. 이에 따라 의대를 진학하고자 하는 N수생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1년에 한 번 치루는 시험에 의해 나머지 인생에 지나치게 많은 영향을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 입시에 대한 사람들의 언어는 다양하다. 혹자는 정직•끈기•성실 등의 지표가 대학이라고 주장한다. 그 사람이 얼마나 정직하게 공부했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끈기가 있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한지. 필자는 대학을 위해 재수를 했고, 현역 때 붙은 대학에 입학했다. 여전히, 재수를 했던 1년을, 엄마는 안타까워하고 있다. 여긴 반전이 있는데, 이것은 독자와 나만의 비밀이다🤫. 실은 현역 때, 그 정도 성적이 되지 않았는데 운이 좋게 붙었다. 마치 컵에 큰 돌멩이로 가득 채워도 ‘다 차 있다’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재수 기간 1년간, 필자는 그 빈 곳에 모래를 채워 진정한 ‘다 차 있음’을 만들었다. 열심히 공부했던 재수가 끝나고 엄마에게 친구의 3수 소식을 전했다. 돌아오는 엄마의 말은 “재수할 때보다 더 놀았나 보다”. 그날 대판 싸웠다.
수능 성적이 사람 전체를 판단하는 사회가 ‘괴상’하지 않은가? 대학을 졸업한 지 몇십 년이 지나고 여전히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사회가 ‘기괴’하지 않은가?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든 국민이 동의할 터. 정권을 잡는 사람마다 뜯어고치는 입시 제도. 그렇다면 우리와 멀-리 떨어진 독일은 어떨까.
성적이 높지 않아도, 기다리면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
최근 의대 정원과 관련하여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종종 나오는 말이 있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대거 의사 되면… 의료 사고가 많아지면 어떡해? 내 몸은 누가 책임져!” 그렇다면 본질적인 물음은 다음과 같다. 의사는 똑똑해야 하는가? 이어지는 물음은 다음과 같다. 얼마큼 똑똑해야 하는가? 상위 0.01%?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의대생들의 과제량과 공부량이 많다고들 하지만, 필자와 같은 비의대생들은 아무리 들어도 ‘아 많구나’ 정도로 받아들일 뿐이다. 수능이 똑똑함의 지표가 되는가? 그것도 아니다. 물론 지성이 영향이 있겠으나 그것만이 지표가 될 수는 없다. 예로부터 의사에 대한 선호도는 ‘전문직 선호’ ‘높은 연봉’ 등에서 나왔기에 천재•영재와는 거리가 있기도 하다.
독일은 기다리면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 한국에는 ‘수능’이, 독일에는 ‘아비투어(Abitur)’가 존재한다. 아비투어는 독일 고등학교의 졸업시험으로, 전과목 논술시험이면서도 절대평가 등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아비투어를 통해, 대입 전 자신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대학 입학을 위해 줄세우기식으로 진행되는 수능과는 다르게, 자신의 현 상태를 파악하고 대학에서 수학이 가능한 본질적으로 측정하는 것이다. 수학능력검정시험과는 형태와 목적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도 ‘의학’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과다. 한국처럼, 독일 대학도 아비투어 성적을 반영한다. 다른 건 아비투어 반영 비율에 있다. 수능의 정시 제도는 수능의 점수를 100% 반영하여 대학에 입학한다. 반면 독일의 대학은 아비투어 성적을 20% 내외로 반영한다. 이외에 ‘대기 연한’과 내신 그리고 대학의 자체 선발이 반영된다. 대기 연한은 ‘얼마나 그 학생이 특정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했는지’이다. 첫 입시에서 떨어지더라도 다른 대학에 가지 않고 계속 그 대학 그 학과에 가고 싶은 학생들만을 위한, 대기 명단이 존재한다. 오래 기다린 학생들의 햇수를 반영하여 입학 학생들을 선발한다. 대체로 2년 정도 기다리면 대부분 선발된다고 한다(의대의 경우 선호도가 높아 일반 학과에 비해 길어질 수 있다). 대기 기간 동안 선수 과목들을 듣거나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대기 제도를 통해서 우리는, 독일이 ‘시험 성적’만으로 의과대 학생을 선발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은 ‘기다릴 정도로 의학을 공부하고 싶은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대학 입학 성적이 낮은 의사는 의료 사고를 더 많이 내는가? 의사는 똑똑해야 하는가? (현재 독일 내부에서 아비투어 반영 비율과 대기 연한 변경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부자 부모를 찾습니다
놀랍게도 독일의 무상 등록금은 ‘학생들의 운동’으로 얻어진 결과다. 사회보장이나 사회복지행정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 2009년 거리에 나온 학생들의 구호 “Reiche Eltern fur ALLE(모두를 위한 부자 부모님)”, “suche reiche Eltern(부자 부모님을 찾아요)”.
처음부터 대학 등록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인 - 아마 전 세계인들 - 이 생각하는 것처럼, 독일에서도 돈을 내고 교육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교육은 국민의 기본 권리다’라는 주장이 등장하며, 1970년 최초로 등록금 제도가 폐지되었다. 이후 35년간 무상 등록금이 이어졌지만, 대학의 재정 약화 등의 이유로 등록금 제도 부활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다시 거리로 나와 주장했다. “suche reiche Eltern” “부자 부모를 찾습니다” 전국 27만 명 이상의 대학생들이 모였다. 그들은 도로와 철도, 법원, 의회를 점거했으며 다니는 대학의 강의실도 점거했다.
다소 격한 시위가 벌어졌지만, 놀랍게도 시민들은 학생들의 편에 선다. 학교 본부와 교수들은 점거가 끝날 때까지 계속 강의하며 그들의 운동에 함께했다. 학생들의 부모와 시민들, 동네 주민들 등 기성세대들도 동참했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맘껏 공부할 수 있어야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기조 하에. 대학 교육을 청년들의 자기계발로 바라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국가의 인재 양성의 측면으로 바라본 결과였다. 청년이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한다면 자연스레 기성세대는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 그렇게 독일 전역은 청년들의 목소리로 물들었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시민들의 요구에 맞추어 ‘등록금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결국 2013년, 독일 대학 등록금 제도는 폐지되었다.
물론 여전히 교육복지의 측면에서 일부 금액을 지불한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기후동행카드의 충전 금액’과 같은 목적으로 사용된다. 흙수저 → 플라스틱수저 → 나무수저 → 철수저 → 동수저 → 은수저 → 금수저 → 다이아몬드수저 2010년대부터 대두된 수저 계급론은 ‘그’가 아닌 ‘그의 부모’를 판단한다. 부모가 자식을 얼마나 뒷받침해 줄 수 있느냐, 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현대판 신분제도. 필자는 이와 같은 담론에 실증을 느끼면서도, ‘나는 왜 “부자 부모를 찾습니다”의 피켓을 들고나간 독일의 학생들처럼 하지 못할까’ 부끄럽기도 하다.
고졸이라는 낙인, 독일에선 없다
한국과 달리, 독일 고등학생들은 ‘대학’만을 바라보고 공부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후 1) 3년제 직업학교(전문대)에 진학하거나 2) 아비투어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3) 바로 직장을 찾는다. 한국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76.2%로 대부분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 반면 2000년 독일의 대학 진학률은 33.3%로, OECD 국가 중 대학 진학률이 낮은 국가였다. 2021년에는 대학 진학률이 55.8 OECD 평균(86%)과 떨어진 편에 속한다. 제조업 기반의 독일 경제를 위 현장의 기술직을 양성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더욱이 궁금증은 커진다. 독일 대학엔 등록금이 없다. 그리고 대학 입학 혹은 졸업에 얽매지도 않는다. 경제적 부담이 줄어 대학 입학이 수월해졌음에도, 대학에 입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임금 수준에 있다. 독일은 학력과 상관없이 개인이 습득한 기술에 의해 임금이 좌우된다. 3년제 직업학교(전문대) 졸업자와 대학 졸업자의 상대적 임금지수는 153과 158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115와 145로, 이는 OECD 평균인 122와 146보다 더 큰 차이를 보인다. 결과적으로 전문 기술에 대한 국가적 우대가 임금으로 이어졌고, 대학과 상관없이 스스로 진로를 찾는 것까지 나아간 것.
이명박 정부 시절 시작된 ‘직업계고 제도’는 어떻게 되었나.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독일은 중학교 때부터 직업 훈련 및 체험 - 일종의 인턴쉽 - 을 필수적으로 진행한다. 비슷한 목적으로 시행된 직업계고 제도는 2024년 지금 거의 방치된 수준이다. 2021년 기준 학력이 고졸 이하인 신입사원 연봉은 평균 2,363만 원이며 대졸은 3,031만 원으로, 약 700만 원의 차이가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대졸자들보다 먼저 입학하기에 호봉이 높아질수록 그 차이는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졸 이하 전체 직원의 평균 연봉은 3,400만 원이고 대졸은 4,500만 원으로, 1,000만 원 차이가 난다. 한국은 되려 그들에게 ‘고졸’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나가며
“저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펼쳐라” 2025학년도 수능의 필적확인란 문구다. 필자가 본 수능의 경우,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였다. 수능 당일 첫 과목인 국어 시험지를 받고, 필적확인란을 제일 먼저 확인했다. 눈물이 났다. 분노의 눈물이. 고등학교 3년 내내 읽고 싶은 책을 뒤로 하고 국어책에 조각난 소설을 읽은 결과는 ‘수능’이었다. 포항의 지진으로 인해 수능이 일주일 미뤄졌을 땐 절망밖에 없었다. ‘나의 해방이 일주일 멀어지다니!’ 그리고 해방을 앞두고 읽은 저 글귀. 큰 바다와 넓은 하늘을 가졌지만, 고등학교 내내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는 체육 시간이라 보지 못했다. 방학 때에도 학교 자습에 참여해 바다와는 이별한 지 오래였다. ‘수능 이후 나는 해방될 수 있을까? 줄에 묶인 코끼리처럼 줄이 풀려도 그 자리에 주저앉을까?’ 수능과는 전혀 관련 없는 생각들이 많아졌고, 그렇게 불수능에게 패배했다(실은 졌잘싸, 라고 생각한다. 아니, 졌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잘 싸웠다.).
독일의 교육제도를 봤지만 그렇다고 독일을 따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작금의 교육제도를 개정하라고 적극 요청하는 것도 아니다. 교육제도를 둘러싼 사회 환경 전반의 문제가 있음을 말하며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해 달라고 요청한다. 더 이상 대학 앞에 무너지는 학생이 없길 간절히 바란다. 얼마 전 대학에서 강의 중, 교수님의 말씀이 가슴에 남아있다. “여러분,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시라고. 지금의 제도는 이전에는 없었어요. 이것도 바뀐 거라니까. 그니까 또 바뀔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