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좌표 찍기? '인간 키세스' 훼손이 끝 아니다
‘인간 키세스’ 일러스트 작품을 훼손한 그림을 게시한 쓰레드(Threads) 이용자 A. 그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시민 수천 명의 목소리가 엄벌 촉구 탄원서로 모였다.
동시에 우려할 만한 일도 일어났다. 일러스트 훼손으로 비난을 받은 뒤 계정을 삭제한 A. 그런데 그로 추정되는 부계정이 돌연 쓰레드에 등장했다. 윤석열 체포영장이 집행된 15일 전후로, 쓰레드 이용자들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계정이 윤석열 체포에 대해 지지 의견을 밝힌 이용자들을 ‘좌표 찍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당 계정은 자영업을 운영하는 쓰레드 이용자들의 사업장 주소 등을 일방적으로 공개하고, “나중에 방문하기 위해 저장해뒀다”, “업보에 수긍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인간 키세스’ 일러스트 작품 훼손 피해자 장충만(활동명) 작가가 추진한 엄벌 촉구 탄원서가 16일 기준 약 2600장 모였다. 탄원서를 받기 시작한 지 6일 만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장충만 작가는 지난 9일, 윤석열 체포를 촉구하는 본인의 ‘인간 키세스’ 일러스트 작품을 훼손한 쓰레드 이용자 A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형사고소한 바 있다.
A는 장 작가의 일러스트 작품에 태극기와 빨간 경광봉을 그려넣으며, 마치 윤석열을 지지하고 탄핵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훼손된 그림과 함께 “이 포스터는 이제부터 우파 껍니다“라고 쓴 게시물을 쓰레드에 게시했다.(관련 기사 : <‘인간 키세스’ 일러스트 훼손하고 “이제 우파 꺼다”>)
장 작가는 지난 10일 ‘‘인간 키세스’ 일러스트 작품 훼손 및 도용 행위에 대한 엄벌 촉구 탄원 운동’을 온라인에서 받기 시작했다. 장 작가는 온라인 탄원서에 일러스트 작품 원본, 훼손된 작품, 그리고 컴퓨터로 일러스트 작품 원본을 그리는 과정을 녹화한 영상을 함께 첨부했다.
“부족함이 정말로 많습니다. 하지만 ‘함께’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놈들이 생각 없이 저지른 말과 행동조차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며 꼭 벌을 받아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려주겠습니다.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끝까지 ‘함께’ 싸워 이기겠습니다.“(‘엄벌 촉구 탄원 운동’ 탄원서 중)
장 작가는 시민들이 참여한 온라인 탄원서 약 2600장을 추후 수사기관에 제출할 예정이다.(관련기사 : <정의구현의 시작… ‘인간 키세스’ 훼손 게시자 고소>)
“엄벌 탄원서에 약 2600명이 참여해주셨는데, 한 분, 한 분이 어떤 분들일까 궁금하고 너무 감사합니다. 열심히 싸워야 할 것 같은데, 앞으로 뭘 더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크더라고요.(탄원서에 참여해주신 사람들이) 제 그림보다도 ‘인간 키세스’ 소녀들에 대한 지지와 고마움, 서로 힘을 합치는 진심으로 참여했다고 봐요. 저도 그 마음을 앞으로 잊지 않으면서 나아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장 작가는 16일 대전유성경찰서에 출석해 약 2시간 동안 고소인 조사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수사기관의 소극적 태도에 여전히 고민이 깊다.
“사실 경찰에서는 크게 수사 의지가 있어 보이진 않아요. 그나마 기사가 나왔다고 하니까 태도가 조금 달라지는 것 같긴 했는데요. 경찰이 ‘쓰레드가 해외 기업이어서 (이용자 A 특정이) 안 될 수도 있다’고 몇 번을 말씀하시더라고요.“
장 작가의 이런 고민은 이유가 있다. 또 다른 피해가 최근 쓰레드에서 확산되고 있기 때문.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취재 이후, 한동안 A의 쓰레드 계정은 아예 검색되지 않았다. 계정을 비공개 처리하거나 없앤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지난 15일경, A의 쓰레드 계정과 동일한 프로필을 쓰는 계정(이하 A2)이 등장했다. 시기는 윤석열 체포영장이 집행된 시점.
A2의 계정명은 영문 i와 숫자 1을 조합해 바코드를 떠올리게 했다. 쓰레드는 프로필에 표기된 이름과 계정명을 언제든 바꿀 수 있다. 계정명은 이렇게 아예 달라졌지만, 프로필에 표기된 이름(◯◯스님)은 A와 동일했다. “진짜 스님은 아니지만”으로 시작하는 계정 소개글에 각각 쓰인 내용도 거의 똑같았다.
문제는 A2가 윤석열 체포에 대해 지지 의견을 밝힌 쓰레드 이용자들을 ‘좌표 찍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자영업을 운영하는 이용자들을 상대로 사업장 주소 등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신상을 특정할 수 있는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B 씨는 15일 윤석열 체포 직후 공개된 대국민 담화 영상을 보고, 쓰레드에 비판 게시물을 올렸다. 이후 A2가 등장해 포털 사이트 구글에 올라온 B 씨의 사업장 정보를 캡처한 사진을 첨부해 댓글을 달았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아래 업체 정보 맞으실까요?ㅎㅎ”
첨부한 사진에선 B 씨의 사업장 이름, 주소, 리뷰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B 씨는 1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본인이 느낀 두려움에 대해 털어놓았다.
“저는 장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 사업장을 보호하는 게 우선입니다. 구글 같은 경우는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후기를 남길 수 있거든요. 만약에 A2가 뭔가를 조작해서 리뷰 내용을 올린다고 하면, 고스란히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일단 피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A2 계정을 차단해놓은 상황입니다.”
피해자는 또 있다. 이번에도 A2는 15일, 교습소를 운영하는 C 씨가 올린 게시글에 댓글을 달았다. 이때도 C 씨의 사업장 주소를 함께 첨부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교습소 위치가 아래가 맞으실까요?ㅠㅠSouth Korea, Gyeonggi-do, ◯◯◯…“
하지만 A2가 적은 주소는 C 씨의 사업장과 다른 주소였다. C 씨가 다른 곳이라고 설명하자, A2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C 씨의 사업장을 검색한 사진을 첨부해 다시 한 번 댓글을 달았다.
“아 여기인가 보네요! 참고하겠습니다 선생님 좋은하루 되세요^^”
첨부한 사진에선 C 씨의 사업장의 이름과 연락처 일부, 주소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아무래도 (윤석열 체포) 이슈가 있으니까 제 생각을 몇 번 (쓰레드에) 올렸어요. 저는 의도를 모르고 A2가 구글로 검색한 주소가 맞냐고 물어보길래, 그 위치가 아니라고 확인해줬거든요. 그랬더니 이번엔 네이버로 저희 사업장을 검색해서 ‘여기가 맞냐’고 또 댓글을 달더라고요.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고 느낌이 쎄해서 그제서야 알아보니까 나쁜 의도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 저희는 교습소다 보니까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거든요. 그래서 이번 주까지는 증거를 모아서 법적 대응을 해보려 합니다.“
A2는 자영업을 운영하는 쓰레드 이용자 D의 주소를 물은 이유를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나중에 꼭 방문하기 위해서 저장해두었습니다! 끝까지 색깔 잃지 마시고 그렇게 쌓은 업보에 지금처럼 수긍하시길!“
김남국 변호사(변시 1회,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는 1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특정인의 사업장 주소 등을 온라인에 의도를 갖고 공개하는 행동의 위법성에 대해 설명했다.
“쓰레드 계정 아이디하고 주소까지 공개되어서 피해자가 특정될 수 있다고 하면, 사실상 신상이 노출된 거잖아요. 거기에 다중이 보게끔 글을 올린 거면 협박이 될 수 있고, 업체에 대한 내용을 공개한 거면 업체에 대한 업무방해도 될 수 있는 거죠.얼마나 반복적이고 구체적으로 (신상을) 표현했는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동일인이 한 사람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좌표 찍기’를) 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스토킹처벌법으로도 처벌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김남국 변호사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A를 형사고소한 장충만 작가를 무료로 도와주고 있다.
셜록은 16일 A2에게 반론을 요구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셜록이 A2의 쓰레드 계정을 검색하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없다”는 안내만 나온다. 기자가 개인 계정을 이용해 검색해봐도, 똑같은 내용만 반복해서 안내되고 있다.
영문 i와 숫자 1로 바코드처럼 표기됐던 계정명 A2는 16일 오후 3시경 원래 계정명인 A로 다시 수정됐다. 같은 날 오후 8시께 이후, A는 아예 비공개 프로필로 돌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오후 11시20분경 윤석열 체포적부심사를 기각한 이후, A는 다시 비공개를 풀고 쓰레드에 게시글을 올리고 있다.
A2는 지난 14일경, 셜록 기사를 지칭하는 걸로 보이는 내용의 게시물을 쓰레드에 올려놓기도 했다. 1980년대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군이 화학무기 공격에 대비해 방독면을 쓰고 있는 사진을 함께 첨부했다.
“좌빨들 화력이 꽤나 매섭군요. 뉴스 기사까지 나왔던데 훈장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당분간 기도비닉 상태 유지하겠습니다.”
기도비닉(企圖秘匿)은 아군의 작전을 적이 모르게 준비해 실행한다는 뜻으로, 군대 용어다.
한편, 장 작가는 지난 15일 엄벌 탄원서를 작성해준 시민 약 2600명에게 보답하기 위한 새로운 일러스트 작품을 선보였다. 장 작가는 쉽게 흔들리던 촛불이 여러 시민들의 연대 끝에 꺼지지 않는 응원봉으로 성장하는 내용의 ’10컷 일러스트’를 그렸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