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3주간 일곱번 ‘반성문’ 다시쓰기… 직장 내 괴롭힘 인정 [회사에 괴물이 산다 11화]
[지난 이야기] 보육교사 이정윤(가명)은 어린이집 원장에게 계속 사표를 쓰라고 강요당한다. 확인서라는 이름의, 사실상의 ‘반성문’도 강요당했다. 하나의 사건으로 3주간 일곱 번 다시 쓴 적도 있다. 이정윤의 정신건강은 극도로 나빠졌다. 스스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우울증으로 휴직을 요청했던 그에게 원장은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해고 사유는 크게 두 가지. ▲병가 기간이 끝나고도 출근하지 않고 무단결근을 했다는 것. 그리고 ▲적응장애와 우울증이 있어서 영유아를 돌보는 업무를 맡기기에 부적절하다는 것. 그런데 이유가 서로 충돌한다. 이정윤의 정신질병이 심각하지 않다고 간주해서 병가 연장을 반려해놓고, 또 동시에 그의 정신질병이 심각해서 보육 업무를 맡길 수 없다는 논리라니. “두 번째 그렇게 하고(자살충동) 나서 남편이 너무 슬퍼하는 걸 봤죠.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저는 반대로 생각해보지는 못했어요. 만약에 반대로 남편이 그렇게 죽어버렸다면…. 내가 너무 큰 상처를 준 거더라고요. 그럼 내가 마음을 한번 바꿔보자, 죽으려고 했던 그 에너지를 살려고 하는 용기로 한번 바꿔보자, 생각했어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조용히 죽는 길이 아니라 시끄럽게 사는 길을 택했다. ‘경기도 마을노무사’ 제도와 김요한 노무사(노무법인 노동을잇다)의 도움이 컸다. 함미영의 존재는 말할 것도 없다. 용기 내어 사실확인서를 써준 전 동료 교직원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을 수가 없다. 2023년 10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은 원장의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지속적인 퇴사 강요 중 부적절한 표현 ▲부당한 확인서·시말서 작성을 여러 차례 강요 ▲민감한 개인정보(노조 가입 사실)의 공표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했다. 과태료도 부과됐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과태료 부과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2019년 이후 접수된 3만 9316건 중, 과태료 부과는 고작 1.3%(501건)에 불과하다. 지난 14일 고용노동부가 밝힌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처리 결과 현황’에 따른 수치다. 산재도 승인됐다. 근로복지공단은 올해 2월 1일, 이정윤의 적응장애 등을 ‘업무상질병’으로 판정했다. 약 한 달 뒤인 3월 11일에는 부당해고도 인정됐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해고금지 기간인 산재요양 기간 중 발생한 해고”이므로 “위법하며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세 기관 모두 이정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어린이집 측은 세 가지 결정에 모두 불복했다. 직장 내 괴롭힘 과태료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거나, 부당해고 인정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는 등, 이의제기 절차에 들어갔다. 7월 5일 중앙노동위원회 날. 이정윤은 걱정이 컸다. 현장에서 원장을 만나면 어떡하나. 그 상황의 스트레스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물론 그날도 미리 진정제를 먹고, 공황발작에 대비해 응급약을 챙겼지만…. 심판위원들 앞에 이정윤이 자리했다. 그리고 바로 뒷자리에 남편이 앉았다. 혹시라도 이정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곧장 손을 뻗어 구할 수 있도록. 다행히 원장은 나오지 않았다. 이정윤은 미리 준비해간 한 장 반짜리 최후진술서를 직접 또박또박 읽었다. 눈물이 조금 나고 손이 약간 떨렸지만 참을 만했다. “‘힘들었던 일터로 왜 돌아가려 하느냐?’ 제가 요즘 받는 질문입니다. 제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타의에 의한, 그것도 부당함에 의한 퇴사로 제가 사랑했던 일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 현장으로 돌아가서 제가 사랑하는 일을 계속 할 것입니다. 가진 힘이 작다고 해서 포기하라고 강요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정윤 중앙노동위원회 최후진술 2024. 7. 5.) 판정 결과는 ‘초심유지’. 부당해고가 다시 한 번 인정됐다. 네 번째 승리다. 사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는 보육교사의 비율은 상당히 높다. 그중 이정윤과 같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결국 인정받는 경우가 흔치 않을 뿐이다. 2021년 직장갑질119 등이 진행한 ‘2021 보육교사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71.5%(246명)가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가해자를 묻는 질문에는 78.0%(192명)가 ‘원장 등 어린이집 대표’라고 답했다.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61.4%(121명)가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라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의료적 진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어본 결과, 36.6%(126명)가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보육교사 해고 사건 경험이 많은 김요한 노무사는 이정윤이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갑갑하고 답답했다”고 말했다. 많은 현장에서 본 “상투적인 수법”이란 거다. “보육교사가 근로조건이나 법 위반 문제를 지적하면, (사용자가) 그 교사를 몰아내기 위해 쓰는 레퍼토리거든요. 교사들에게 ‘이 중에 누구랑 같이 일하기 싫은지 적어내라’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형성하는 건 아주 오래된 얘기예요.”(김요한 노무사 전화인터뷰 2024. 6. 25.) 김 노무사는 “재원은 다 공적으로 운영되는데, 운영은 (원장) 개인에게 위탁을 줘서 마음껏 사적 전횡을 휘두를 수 있게 한다”는 제도적 문제도 지적했다. 엄연히 ‘국공립’ 어린이집이지만 위탁운영자일 뿐인 원장 개인이 인사 등 너무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는 비판이다. “제가 살아 있는 건 사실 남편 덕분이에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우울증은 이정윤을 소파 하나만 한 세계에 가둬버렸다. 특히 집에서 어린이집이 가깝기 때문에, 혹시나 외출을 했다가 학부모나 동료교사나, 최악의 경우 원장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웠다. 뭘 잘못해서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남편은 생업도 미루고 늘 이정윤의 곁을 지켰다. 남편은 그를 달래서 차에 태우고, 공원으로 카페로 데리고 나갔다. 일부러 집에서 적당히 멀고, 사람도 그리 붐비지 않는 카페만 찾아 다녔다. 지난 6월 21일 기자가 이정윤을 만난 경기 용인시의 한 카페도 그런 곳이었다. 평일 낮 대형 카페의 2층은 역시 한적했다. 인터뷰 도중 이정윤의 눈길이 때때로 계단 쪽을 향했다. 누군가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릴 때였다. 그때마다 그는 목소리를 약간 낮추고, 올라오는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약속장소를 정할 때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만약에 카페에 갔는데 누구를 만나기라도 하면…. 저는 원장을 보거나 어떤 괴롭힘 상황에서만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비슷한 사람을 보거나 비슷한 상황이 되면 이게 이렇게(공황발작이) 딱 되더라고요.”(이정윤 전화 인터뷰 2024. 6. 15.) 지금도 이정윤은 시간마다 상황마다 다른 약들을 챙겨 먹어야 한다. 기자를 만난 날도 미리 진정제를 먹고 왔다. 인터뷰 중에 과거의 일을 떠올리면 그때의 고통이 다시 살아날까봐. “사실 공황장애라는 게 뭔지 잘 몰랐어요. 근데 겪어보니, 이게 제가 통제한다고 통제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괴롭힘과 상관없는 상황에서도 어떤 스위치가 탁 켜지면 그게(공황발작이) 딱 오더라고요. 굉장히 무섭더라고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아직도 고통은 그를 놔주지 않았다. 산재 요양기간은 10월까지 다시 연장된 상태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됐다. 산재도, 부당해고도 인정됐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과, 노동위원회가 이정윤이 당한 피해와 고통을 인정하고 그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어린이집의 복직 통보는 아직. 이제 남은 건 그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일뿐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뭘 걱정하는지도 잘 안다. 가끔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자고 하거나, 다른 직업을 찾아보자고 했던 이유도 다 이정윤의 ‘마음건강’을 가장 먼저 걱정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이정윤에게는 어린이집으로 꼭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 “결국 (어린이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내가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가긴 가야죠. 나중에 그런 걸(이직이나 퇴사) 하더라도, 내 첫 번째 발걸음은 내 원래 일터로 돌아가는 거여야 해요. 그렇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우리가 그게 어디든 집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결국엔 제가 (어린이집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예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어디서부터인가 언제부터인가 뭔가 잘못돼서 길이 어긋났다면 일단은 처음에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게 먼저다. 그런 다음 새로운 길로 갈지언정. 그게 바로 잘못돼 있던 모든 것들을 끝맺는 마지막이자, 동시에 새로운 것들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카페 앞마당에 들꽃들이 피어 있다. 꽃무리를 향해 이정윤의 눈길이 간다. 발길도 자연스레 그쪽을 향한다. 어느새 손길을 뻗어 조심스레 꽃을 만진다. “원래 꽃을 참 좋아해요.” 그의 아담한 손이 눈에 들어온다. 일터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동료들과 신뢰를 나누고, 가족들과 편안한 일상을 누리는 날은 언제쯤 올까. 그 손에 돌려받아야 할 것이 아직 많다. 지난달 1일 A 원장은 기자와 한 통화에서,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듣길 바란다며 “상처 받은 분들이 많은데 조용히 극복하고 지내려 하니 시끄러워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틀 뒤 C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이정윤이 원장과 부원장을 상대로 낸 공동감금과 공동강요 혐의 고소건이 ‘불송치’로 종결됐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이정윤 측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한 상태다. C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산재 승인 ▲부당해고 인정 등 세 가지 결정을 모두 반박했다. 우선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결정에 대해 “면피성 행정”이라 비판하고, “괴롭힘이라 할 만한 사안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개원 초기) 운영상 조금의 미숙함은 있을지언정 직장 내 괴롭힘은 있기 어려운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산재 판정 과정에서도 어린이집 측은 “(이정윤의 주장은) 대부분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거나 매우 과장된 것”(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 판정서 인용)이란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산재 승인에 대해 C 변호사는 “사용자(어린이집) 측에서 (부당함을) 다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주장했고, 부당해고 인정에 대해서는 “해고의 실질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되진 않으나 다만 절차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는 있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해당 어린이집의 ‘진짜 주인’인 광주시 측 생각은 어떨까. 광주시청 국공립어린이집 담당자는 지난 6월 28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어린이집과 이정윤) 양쪽에 자료를 다 요구해둔 상태”라며, “자료를 입수한 뒤 각각 면담을 통해서 방향을 검토할 것”이라 밝혔다. 해당 어린이집의 위탁 만료일은 오는 10월 31일로, 재위탁 심사를 앞두고 있다. 담당자는 “(위탁)계약 해지 사유라 판단되면 계약해지나 재계약 불가도 가능하지만, 어쨌든 그건 따져봐야 할 문제”라며, “(법적) 결정이나 판결을 기다리면서 확인하는 중”이라 답했다. <끝> 취재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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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당하고 우울증까지… 회사는 ‘해고’를 통보했다 [회사에 괴물이 산다 10화]
[지난 이야기] 보육교사 이정윤(가명)은 어린이집 원장에게 초과근무 문제 등 ‘바른말’을 했다가 미운털이 박힌다. 원장은 그가 ‘불편하다’며 계속 퇴사를 강요한다. 전 교사들에게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이정윤을 압박하기도 했다. ‘퇴사를 결정짓지 않으면 퇴근 못한다’고 잡아둔 날도 있었다. 이정윤은 공황발작이 시작됐다. 예전에 이정윤이 일하던 어린이집 원장은 그를 위해 추천서를 써줬다. 추천서 속에서 이정윤은 “밝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할 줄 알고”, “부모님과 소통할 때에도 배려와 공감의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하며, “유아의 개인적 발달과 어린이집 교육방향에 맞는 해결책을 모색”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이 일하기 불편한 사람’, ‘장점이 없는 사람’, ‘동료들도 모두 싫어하는 사람’이란 비난을 듣고 있다. 이 극단적인 온도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022년 2월 말, 원장은 보직 변경을 통보했다. 담임교사에서 보조교사로. 이정윤은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고 그 사실을 원장에게 알렸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에 이정윤은 깜짝 놀랐다. 이정윤이 노조에 가입했다고, 원장이 지역 어린이집 원장단체 회장에게 알렸다는 거다. 이정윤은 한 달 전 보육교사 노조에 가입했다. 계속된 퇴사 압박을 혼자 버텨내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 개인정보보호법은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 등을 민감정보로 규정하고, 정보주체 동의 없이 이를 처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도 있다. 보조교사 생활은 한 달간 이어졌다. 그리고 3월 말 이정윤은 다시 담임교사가 됐다.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원장과 합의했기 때문이다. 저를 향해 많은 교사들이 말했습니다. “어린이집은 원장이 사장이다. 직원을 자르는 것은 사장 마음이다.” “어린이집 교사가 노조 가입이라니, 빨갱이다.” “선생님(이정윤) 때문에 다른 교사들이 불편하다.” 어느새 저는 어린이집에 있어서는 안 될 ‘악의 축’이 돼 있었습니다.(이정윤 중앙노동위원회 최후진술 2024. 7. 5.) 2022년 8월 22일, 원장이 이정윤과 또 다른 동료교사 한 사람을 교무실로 불렀다. 이번에는 사표가 아니라 경위서를 쓰라는 지시였다. 두 사람은 6월에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두 달이 넘게 지나서 경위서를 쓰라고 한 거였다. 다음 날 이정윤은 경위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2주쯤 더 지난 9월 6일. 원장은 다시 이정윤을 불러 문서 한 장을 내밀었다. ‘확인서’라는 제목의 문서. 이미 경위서를 썼던 그 일, 약 3개월 전 말다툼에 관한 거였다. 이미 원장이 문구를 써둔 확인서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원장과 부원장은 서명을 하지 않으면 교무실에서 나갈 수 없다며 강요했다. 고함을 치고 책상을 두드리는 태도에 이정윤은 공포를 느꼈고, 결국 마지못해 서명을 했다. “이걸 받지 못하고는 선생님들 나갈 수가 없어요. 이 자리에서. 아니, 선생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쓰셔야 된다고요! 이거는 쓰실 수밖에 없어요.”(부원장 B 대화 녹취록 2022. 9. 6.)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경위서를 다시 써오라는 지시. 이번엔 ‘확인서’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정윤은 그날 확인서를 제출했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 다시 써야 했다. 원장과 부원장은 고쳐 써야 할 곳, 삭제해야 할 곳을 직접 ‘첨삭’했다. 다시, 다시, 다시. 제출과 반려를 매일 반복했다. 8월 23일, 9월 6일, 9월 7일, 9월 8일, 9월 13일, 9월 14일, 무려 6차에 걸쳐 확인서(경위서)를 제출했다. 원장이 미리 문구를 써둔 확인서에 서명도 했으니, 하나의 사건으로 모두 일곱 번의 확인서를 제출한 셈이다. 원장이 요구한 건 경위서도 확인서도 아닌, 사실상 ‘반성문’과 다름없었다. ‘반성문 다시 쓰기’는 그 뒤에 또 있었다. 9월 16일, 이정윤이 돌보던 아이가 콧등이 쓸리는 일이 있었다. 연고를 바르고 나니 아이의 코는 이상 없는 상태로 돌아왔다. 부모에게도 알렸지만 괜찮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런데 사흘 뒤에 문제가 생겼다. 원장이 이정윤을 불러 호통을 치고, 이번에도 확인서를 쓰라고 지시했다. 역시나 계속해서 반려되고, 계속해서 다시 써야 했다. 9월 20일, 9월 21일, 9월 23일, 9월 27일, 10월 5일. 5차에 걸쳐 확인서를 다시 써서 제출했다. 같은 일은 다음 달에 또 일어났다. 11월 4일 원장은 이정윤을 불러 ‘시말서’를 쓰게 했다. 이번에는 하루 전 현장학습에서 짜증을 내며 “아이 씨”라고 상스러운 말을 했다는 게 이유. 이정윤은 그런 말은 안 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원장과 부원장은 ‘동료교사들이 들었다’며 이정윤을 몰아세웠다. 그날 이정윤은 1차 시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원장은, 원장 본인이 직접 문구를 쓴 시말서를 이정윤에게 내밀며, 서명하라고 했다. 억울하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상스러운 말을) 안 했다는 걸 증명해보라”고 다그치고, “교회 다닌다며? 정말 양심이라는 게 있어?”라고 비아냥거렸다. 이번에도 역시 ‘서명하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다’고 윽박질렀다. “오늘 이거 지금 사인 안 하면 선생님(이정윤) 못 가.”“(서명)할 수 없으면 그냥 오늘 여기 계속 있는 거야. 집에 가지 말자, 우리.” (부원장 B 대화 녹취록 2022. 11. 4.) 실랑이는 약 두 시간이나 이어졌다. 날카로운 음성과 책상 두드리는 소리. 이정윤에게 또 공황발작이 시작됐다. 손발이 떨리고 꼬였다.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원장 : “그게 불미스러운 행동이 아니야? 어디다 대고서는 거짓말하고 있어?”이 : “거짓말 안 했습니다.”원장 : “어디다 대고 어거지 하고 있어!” (원장 A-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2. 11. 4.) 이정윤은 보육교사 노조의 지부장, 함미영에게 SOS를 쳤다. 함미영은 바로 어린이집으로 두 차례 전화를 걸었다. 그 뒤에야 이정윤은 교무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날 밤, 이정윤의 머릿속에 처음으로 ‘내가 죽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죽고 싶어서 죽는 게 아니에요. 그때는 아무 생각 안 들어요. 그저 너무 지치니까 이제 다 내려놓고 쉬고 싶다…. 제 존재를 계속 부정당했잖아요. 결국 ‘내가 사회 부적응자인가? 정말 내가 문제 있는 건가?’ 하면서 자신을 놓게 되더라고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반성문 다시 쓰기’가 또 시작됐다. 11월 11일 2차, 11월 21일 3차, 11월 25일 4차까지 제출했다. 2차부터는 시말서가 아니라 ‘확인서’로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대법원은 “시말서가 단순히 사건의 경위를 보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죄문 또는 반성문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업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9두6605 판결). 이정윤의 정신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도무지 잠을 자지 못하니, 일상을 버틸 수가 없었다. “사람이 잠을 너무 못 자니까 환청이 들리고 헛것이 보여요. 집 안에 있는데 웬 남자들이 서 있어요. 그림자가 보여요. 저희 집이 2층인데, 창문에 블라인드를 다 해놨거든요. 가끔 남편이 환기도 시키고 빛도 들어오게 한다고 블라인드를 걷으면, 제가 ‘여보, 저기(창 밖에) 원장이 서 있어!’ 그런 얘기를 자꾸 했어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2023년 3월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물류센터에서 새벽일을 하던 함미영이 ‘마지막 인사’ 메시지를 받은 바로 그날. 그날도 이정윤은 ‘내가 없어지면 다 끝난다’고 생각했다. 그즈음 충남 계룡시의 한 보육교사가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유가족은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정윤은 숨진 보육교사가 꼭 자기 같았다. 이정윤은 사선에 서 있었다. 한 발짝 차이로 삶과 죽음이 나뉜 그날 밤. 함미영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이정윤의 집으로 출동해 그의 안전을 확보했다. 살아서 견딜 수도, 죽어서 끝낼 수도 없는 고통. 결국 입원을 결정했다. 이정윤은 2023년 3월 6일부터 17일까지 12일간 녹색병원에 입원했다. 병명은 적응장애와 ‘상세불명 기원의’ 위장염 및 결장염. 온갖 검사를 다 해봤지만 신체적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정윤은 이른바 ‘반성문’ 사건으로 처음 죽음을 떠올린 2022년 11월부터 녹색병원으로 옮겨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때부터 담당의사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의사) 선생님이 저랑 상담을 하시더니, 제 남편하고 통화하고 싶대요. 나중에 들었더니, (의사가) 폐쇄병동(보호병동) (입원을 권하는) 얘기를 했대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입원해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약을 먹고 잠드는 일밖에 없었다. 죽음조차 떠올릴 수 없는 지독한 무기력. 이정윤은 ‘적응장애’를 진단받았다. “일상생활 기능장애 동반되어 업무 수행이 어려울 것으로 사료”된다는 소견이 붙었다. 이어 ‘중증의 우울에피소드’ 진단이 더해졌다. 진단서에 적힌 치료기간은 계속 길어졌다. 3월 초 병원에 입원하면서 처음으로 냈던 무급 병가(휴직)를 두 차례 연장해야 했다. “우울증에 걸리면 ‘뭘 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없거든요. 아무것도 안 해요. 살림도 안 하고 운동도 안 하고 밥도 안 먹고 소파에 누워만 있어요. 제 생활반경이 딱 거실 소파밖에 안 됐어요. 가끔 속에서 천불이 나면 아이스크림을 정말 미친 사람처럼 퍼먹는 거야. 다른 식사는 아예 안 하고, 먹는 건 딱 아이스크림 하나였어요.”(이정윤 전화 인터뷰 2024. 6. 15.) 세 번째 휴직 연장을 요청한 때가 2023년 7월 4일. 다시 한번 “중증의 우울에피소드”를 진단받은 날이었다. 하지만 원장은 휴직을 승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건을 붙였다. “녹색병원이 아닌 다른 종합병원에서 ‘취업치료가 어렵다’는 진단서를 발급해서 전달 주시면 (…)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원장 A 문자메시지 2023. 7. 5.) 당시 이정윤은 이미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상태였다. 그는 녹색병원도 종합병원이라며, 산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휴직처리 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더 이상 답변은 없었다. 그리고 같은 달 31일. 이정윤은 어린이집이 보낸 서류 한 장을 받아들었다. 해고통지서였다. 취재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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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라는데 왜 버텨”… ‘싫은 사람’ 설문 후 퇴사 강요 [회사에 괴물이 산다 9화]
띵똥-. 문자메시지 알림음이 울린다. ‘이 시간에 누구지?’ 그날 밤 함미영은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보육교사 노동조합의 ‘전’ 지부장. 잠시 어린이집 일을 쉬던 그는 이따금 물류센터에서 야간 알바를 했다. 3월 초, 이른 봄의 밤공기는 아직도 차가웠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창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 갑자기 울린 스마트폰 알림. 불길함이 확 끼쳤다. 이 시간에 오는 연락은 ‘한가한’ 일일 리가 없다. 바로 전화기를 꺼내들어 메시지를 읽었다.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다 내려놓고 싶습니다. … 안녕히 계세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보육교사 이정윤(48, 가명). 종종 함미영에게 어린이집에서 ‘당한’ 일들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던 사람. 메시지를 보고 함미영은 깜짝 놀랐다. 이정윤이 가끔 탄식처럼 내뱉던 ‘극단적인’ 말들이 떠올랐다. 설마. 함미영은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함미영은 바로 112를 눌렀다. 이정윤의 집으로 출동해달라 부탁했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밤하늘을 올려다 봤다. 눈을 뜬 채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경기 광주시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 이정윤의 일터다. 2019년 12월 개원한 이 어린이집에는 14명의 보육교사가 소속돼 있다(2024년 4월 기준). 이정윤과 같은 ‘개원멤버’들의 고생이 컸다. 개원 전 15일가량은 무보수로 일했다. 개원 업무와 어린이집 평가인증(평가제) 준비, ‘열린어린이집’ 준비까지 겹쳐 업무량은 살인적으로 늘었다. 어린이날 행사, 산타 행사, 물놀이 행사 등 어린이집 행사도 유난히 많았다. 법으로 정해진 하루 한 시간의 휴게시간을 제대로 못 쓰는 건 당연(?)했다. 대개는 저녁도 먹지 않고 야근을 했다. 밥 먹는 시간을 아껴서 조금이라도 더 일찍 집에 가려고. 하지만 너무 늦게까지 일이 이어지면, 사발면에 김밥을 먹으면서 일했다. 그도 아니면 일거리를 집에 가져가서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평일에 못다 한 일은 휴일에 나와서 끝내야 했다. 교사들은 지쳐갔다. 가족과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교사들끼리는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정작 원장 앞에서는 말 한마디 하기 어려웠다. 이정윤은 달랐다. 입바른 소리는 늘 그의 몫이었다. ‘업무량을 줄여달라, 초과근무 수당을 달라’ 요구하는 그를, 원장은 눈엣가시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원장님이 이정윤 교사를 심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일하는 동료교사들은 부당함에 대한 요구를 하는 이정윤 교사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원장님과의 갈등을 보면서 이정윤 교사를 피하게 되고 (…) 다른 교사들의 경우 원장의 부당함에 뒷담화를 할지언정 원장의 눈에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습니다.”(동료교직원 문원정(가명) 사실확인서 중) 그 사이 시청도 업무 과중과 초과근무 수당 미지급 문제를 알아차렸다. 2020년 6월 현장방문에서 문제가 지적됐고, 1년 뒤 지도점검에서 또 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그에 따라 2021년 7월 어린이집은 약 1년 전부터 누적된 초과근무 수당 미지급분 약 400만 원을 뒤늦게 지급해야 했다. 초과근무 기록조차 남기지 않은 개원 초기 수당은 포함되지 못했다. 원장의 ‘불편한 심기’가 누구를 향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다른 교사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메시지’였다. 어린이집의 공기는 묘하게 변해갔다. 동료들 역시 이정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일이 많아서 힘들다’는 불만은 어느새 ‘이정윤 하나 때문에 어린이집이 시끄러워진다’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이정윤은 ‘모두의 적’이 됐다. “열악한 업무환경에 대해 함께 불만을 이야기했던 교사들은 원장님이 제게 가하는 행위를 보며 입을 다물었고 방관자가 됐습니다. (…) 공포의 학습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나를 따돌린 적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원장 눈 밖에 날 사람과 가까이 했다간 자신도 낙인찍힐 것 같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압니다.”(이정윤 중앙노동위원회 최후진술 2024. 7. 5.) 어느 날부터 원장은 ‘퇴사’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편하게 계속 간다? 그러면 선생님(이정윤)하고 같이 못 갈 거고(고용할 수 없다는 뜻). 선생님에 대해서 뭐가 장점인지. 선생님이… 선생님이랑 같이 근무할 뭘 줘야 말이지? 어? 선생님이 뭘 잘했어요? 뭘 잘했어? 선생님이?”(원장 A 대화 녹취록 2020. 12. 16.) 사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건 2020년 12월이었다. 내년도 반 배정을 위한 교사 면담. 원장은 그에게 퇴사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불편하다, 장점을 알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어떤 핑계를 갖다 붙여도, 그저 ‘네가 마음에 안 드니까 눈치껏 알아서 나가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원장의 말은 이정윤의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정윤은 작은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매일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부터, 하루 종일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모두 기록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무능한 사람이 아니야,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걸 입증하고 싶었다. 그리고 원장과의 대화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원장의 퇴사 강요는 이때부터 약 14개월 동안, 녹음된 것만 해도 여덟 번이나 된다. 원장이 퇴사를 강요하면, 이정윤이 이유를 반문하며 항변하고, 마치 돌림노래처럼 반복됐다. 불 같은 압박, 아니면 얼음 같은 냉대였다. 이정윤은 ‘투명인간’이 됐다. 출퇴근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것은 물론, 업무 보고에도 원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매일 모멸감이 쌓여갔다. “싫다고 이제. 같이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그런데 왜 버티고 있냐고? 왜?” (원장 A 대화 녹취록 2021. 11. 30.) 한 해가 지나, 다시 연말. 2021년 12월 원장은 새로운 근거(?)를 내밀었다. 다른 교사들에게 ‘짝꿍교사(공동담임)를 같이 맡고 싶지 않은 사람’ 이름을 쓰라는 설문조사를 한 거다. 결과는 뻔했다. 원장은 설문조사 결과 이정윤의 이름이 나왔다며 또 퇴사를 요구했다. “이정윤 교사는 운영자인 원장님 입장에서는 불편한 교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원장님과 갈등이 생겨서 힘들어하는 이정윤 교사에게 몇몇 동료교사들이, 보육현장은 변하지 않으니 원장님 운영방침에 따르거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동료교직원 임은주(가명) 사실확인서 중) 무슨 ‘마피아게임’인가. 동료들의 손가락총에 따라 한 사람의 일자리를 뺏다니. 사실 해고할 명분이 확실하다면, 굳이 이정윤에게 사표를 쓰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다. 원장이 교사 설문조사 결과까지 들고 나온 건, 오히려 그만큼 해고의 명분이 없다는 반증이다. 원장 : “(원을) 운영하는 건 나야! (…)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거지!”이정윤(이하 이) : “근데 제가 왜 퇴사해야 되는지 이유를 명확히 얘기 안 해주시는데….”원장 : “아이, 진짜 이 사람이!” (원장 A-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1. 12. 8.) 퇴사가 아니면 보직 변경을 선택하라고 했다. 보직 변경은 담임교사에서 보조교사로 ‘강등’되는 걸 뜻했다. 급여상 불이익을 보는 건 당연. 이정윤은 퇴사도 보직 변경도 원치 않는다는 뜻을 계속 밝혔다. 원장은 점점 언성을 높이고, 손으로 책상을 내려치기도 했다. “그때 너무 비참했거든요. 어떻게 내가 싫다고 사람들한테 그런 설문조사를 받을 수 있지?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저렇게 함부로 할 수 있지? 정말 매일매일이 지옥이었어요. 괴롭힘 당하고 (공황 발작이 나타나면) 약을 털어 먹어요. 그런데 그걸 또 다 토해요. 그러면 빨리 (구토를 멈추는) 다른 약을 또 먹고…. 아이들한테 그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혹시라도 옷을 버릴까봐 (출근할 때) 항상 여벌옷을 갖고 다녔어요. 토하면서 (용쓰다가) 소변이라도 나올까봐 속옷까지 다 챙겨서…. 정말 비참하다….”(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이정윤은 2021년 6월부터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불면증과 공황장애 증상 때문이었다. 처음 ‘정신과’를 찾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나 가는 곳 아냐? 왜 혼자 못 이겨내?’ 하는 편견이 있었다. 그 고통이 자신의 일이 되기 전까지는. 거듭된 퇴사 강요와 따돌림을 겪으면서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혼자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었다. 일터를 떠날 수도 없었다. 약을 먹으며 ‘지옥’ 같은 날들을 견디는 수밖에. 새해가 다가올수록 원장의 퇴사 압박은 강도를 더해갔다. 아마도 새 학년도가 시작되기 전에 이정윤을 정리(?)하고 그 자리에 새 교사를 채용하기 위함인 듯했다. “선생님(이정윤)이 운영자야? 어디 이야기를 하면 하나하나 듣는 게 아니고 하나하나 따져! (…) 항상 거기다 대고 꼬박꼬박 말대답 하고! 말대꾸 하고! 거기다가 꼬박꼬박 납득이 안 된다고 그러고! (…) 주임선생님. 들어와 봐요.”(원장 A 대화 녹취록 2021. 12. 30.) 원장은 동료교사까지 불러놓고 그 앞에서 계속 이정윤을 압박했다. 이정윤은 울음이 터졌다. “언제까지 그러실 건데요. 저 원장님 볼 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해요. 제가 (집에서) 잠이나 자는 줄 아세요? (…) 저는 저대로 살아야 되는데 어떡해요, 원장님. 도대체 뭘 얼마나 제가 잘못했다고. 하루아침에 지금 나가라는 거잖아요.”(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1. 12. 30.) 다음 날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2021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원장은 막 퇴근하려는 이정윤을 교무실에 앉혀놓고 또 한 번 퇴사를 강요했다. 책상을 두드리고 고함을 쳤다. 원장 : “선생님(이정윤)이 (의사)결정자야? 선생님이 원장이야! 왜 이렇게 버릇없어!” (…)이 : “제가 퇴사할 만한 어떤 중대한 잘못을….”원장 : “내가 얘기, 이 씨.” (원장 A-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1. 12. 31.) 압박이 계속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이정윤에게 ‘뭔가’가 느껴졌다. “저는 먼저 알아요. 딱 (공황발작) 증상이 올 때 전기처럼 뭔가 오는 느낌이 있어요. 저는 경련으로 먼저 오거든요. 손발이 이렇게 뒤틀린다고 해야 되나, 막 꼬여요. 제 의지하고 상관없이 손이 꼬이고 몸이 막 덜덜덜 떨리거든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또 울음이 터졌다. 공황 증상도 시작됐다. 이정윤은 퇴근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이 : “원장님 저… 가고 싶어요. 저 지금 토할 것 같다고요. 지금 숨이 안 쉬어진다구요. 그만하세요, 좀, 원장님.”원장 : “물 한잔 마시러 갔다 와.”이 :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원장님, 됐어요. 저 갈 거예요. (…) 저 퇴근하고 싶어요. 저 퇴근할거예요. 저, 지금, 지금….”원장 : “난 결정짓고 가야 되겠어!” (원장 A-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1. 12. 31.) 이정윤은 교무실을 뛰쳐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함께 바로 정신과 병원으로 향했다. 취재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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