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때문에 19살 간이 녹았다? 당신들이 틀린 이유 [열아홉, 간이 녹았다 3화]
고등학교 3학년 김선우(가명) 씨는 반도체 공장으로 나갔다. 학교의 ‘1호 취업생’이었다. 반도체 후공정 업체인 스태츠칩팩코리아. 일터에는 화학물질이 가득했다. 그는 얇은 덴탈마스크와 방진복을 착용한 채 하루 9시간, 많게는 11시간 30분씩 작업장에 머물렀다. 24시간 가동되는 기계에 맞춰 생체리듬을 바꾸다 보면 밤낮이 바뀌기도 했다.
취업 14개월 만인 2021년 12월, 간이 녹아내렸다. 혼수상태에 빠졌다. 주치의는 ‘마지막 인사’를 하라며 가족들을 불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던 위독했던 상황. 겨우 만 열아홉이었다. 기적적으로 뇌사자의 간을 이식받았다. 몸 밖으로 나온 선우 씨의 간은 형체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오랜 잠에서 깨어났지만 더 큰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선우 씨는 2022년 9월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당시 김선우 씨의 음주 습관으로 인한 상병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상황입니다.”(스태츠칩팩코리아 측 의견서)
회사는 선우 씨의 음주 습관을 지적했다. 이들이 근거로 제시한 건 ‘특수건강검진표’. 결과지에는 “절주 또는 금주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적혀 있었다.
“제가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상담을 받았는데요. 교수님이 ‘20대 초반이 술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이 정도로 간이 상하지 않는다고, 절대 안 상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근데 회사가 그 얘기(음주습관 지적)를 하니까 너무 어이가 없더라고요.”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정기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받는다. 선우 씨도 2021년 4월 특수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간 기능 검사, 빈혈 수치 등에서 이상 소견은 없었다.
다만, 음주력에 ‘주의’가 표기됐다. ‘일주일 1잔 하루 4잔’이라는 수치 때문. ‘주의’가 필요하다는 선우 씨의 음주 습관은 ‘1주 1회, 1회 소주 기준 0.5병’ 수준이었다.(관련기사 : <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결과지를 보면 혈청 지티피(ALT), 혈청 지오티(GOT), 감마지티피(γ-GTP) 모두 정상이어서 음주력은 있지만, 이로 인한 간에 영향은 없는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감마지피티는 음주로 인한 간 영향 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혈액검사 지표로, 이 수치가 정상이라는 것은 음주로 인한 간 영향은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송홍석 신천연합병원 내과 진료부장은, 선우 씨의 진료기록을 검토한 뒤 “알코올성 간질환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당시 간 기능 검사가 정상으로 나왔기 때문. 이어 “음주가 원인이었으면 (진료기록상) ‘알코올성 간 질환’이라고 명시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을 녹일 수 있는 또 다른 원인에는 독성간염이 있다. 이는 한약, 양약, 건강기능식품 등과 같은 약제를 복용하다가 발생하는 간 기능 손상을 말한다. 동아대학교병원 입원기록에 따르면, 선우 씨는 과도하게 약물을 복용한 이력도 없었다.
“어린 나이에 급성간염이 일어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는 점, 회사에 근무하고 1년이 지나 상기 질환이 발생한 시간적 선후 관계를 고려할 때 피재자(김선우)의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 질환은 작업장에서 노출된 미상의 세척 용제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됨.”
선우 씨 주치의는 사업장을 의심했다. 입사 및 업무 중 특수검진을 할 때 특이사항 없이 건강했던 점, 가족력도 없고, 바이러스 간염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점 등을 들어 외부 요인이 작용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라인에 있을 때는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기도 하거든요. 선우가 (2021년) 5월 말부터 의자에 앉아서 조는 걸 자주 봤어요. 제가 자주 깨워주기도 했는데, 그 뒤로 코피도 되게 자주 흘렸던 것 같고요.”
동료 이창민(가명) 씨는 선우 씨가 사경을 헤매고 있던 2022년 1월, 선우 씨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동일한 공정, 바로 옆 라인에서 근무했다. 선우 씨는 집에 돌아가면 쓰러지듯 잠들면서도, 내내 피로를 호소했다.
선우 씨는 반도체칩에 전자기판을 부착하는 칩 어태치(Chip Attach) 공정에 있었다. 4조 3교대 근무 형태. 6일 근무하고 이틀 쉬는 식이었다. 6일 중 하루 이상 연장 근무는 필수였다. 한 주에 약 51시간 30분을 일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한도인 ‘주 52시간’을 넘지 않게끔 맞춰진 시간이다.
“역한 냄새. 약물이랑 아세톤 냄새가 나죠. 주유소보다는 조금 약한데, 맡으면 불쾌한 냄새예요. 퀴퀴한 냄새라고 해야 되나.”
선우 씨에게 주어진 건 방진복과 얇은 덴탈마스크, 천코팅장갑, 비닐장갑이었다. 입술 모양이 다 보이는 얇은 마스크를 뚫고 독한 냄새가 들어왔다. 기계에 묻은 화학물질을 씻어내다 보면 비닐 장갑이 찢어져 손이 젖기도 했다.
환경부가 운영하는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에는 사업장에서 다루는 화학물질 정보가 공개돼 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다루는 화학물질은 혼합물질을 포함해 모두 365가지. 이를 단일물질로 구분하면 111개에 달한다. 여기에는 구리, 주석, 은 등 간 독성을 유발하는 물질 26개도 포함된다.
회사는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반도체 공정 중 유해성이 낮은 후공정을 담당하고 있는 업체”라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작업환경측정 결과 측정대상 물질 유해인자 ‘불검출 또는 검출한계 미만’” 결과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작업환경측정 제도의 한계가 있다. 사업장에서 다루는 모든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이뤄지지 않고, 일부 요인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는 점. ‘작업환경측정 대상 유해인자’로 정해진 물질에 한해 노출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검사 대상이 된 화학물질은 111개 중 46개. 간 독성을 유발하는 물질 26개 중에서는 15개만 측정 대상이 됐다.
또한, 복합적으로 유해인자에 노출된 경우 신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의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선우 씨는 4조 3교대로 근무했다. 야간작업은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다. 동시에 다량의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에 노출돼 있었다. 야간작업, 또는 각각의 유해인자에 대한 개별 인과관계를 연구한 결과는 존재한다. 반면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자료는 부족하다.
그 때문에 업무상질병 여부를 판단할 때, 복합적인 유해인자가 질병에 미칠 영향을 보다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도 있다.
“유해인자 노출기준은 해당 유해인자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평균 근로시간 이상으로 장시간 근무하는 경우나, 작업강도가 높거나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등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등에는 유해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대법원 2017년 11월 14일 선고, 2016두1066)
근로복지공단이 ‘불승인’ 결정을 통보한 것은 지난 5월. 산재 신청으로부터 약 1년 8개월이 지난 때였다.
▲직업환경연구원 조사 결과, 독성 간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물질의 노출이 없었다 ▲작업환경측정 결과에서 측정대상 물질 유해인자 불검출 또는 검출한계 미만이었다 ▲사업장 측 진술상, 동일공정 근무자 중 유사 증상 발병자 또는 검진 결과 이상소견자는 발생한 적 없다는 점들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다만 판정위원 중 한 사람은 “작업 중 간독성 물질은 일부 있”었다면서도, “독성이나 노출량을 고려할 때 상병을 유발할 수준은 아닐 것”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사업장) 조사하는 날 (연구원) 태도를 보고 마음의 준비는 했어요. 회사 설명만 듣고 ‘그렇군요’ 하고 넘어가고, 그걸 또 곧이곧대로 믿고. (저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래도 (판정위원) 만장일치로 불승인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진 못해서 충격 먹었어요. 전원(불승인)은 말이 안 되죠.”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데 있다. 대법원은 이를 고려해, ‘현재의 의학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규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직업 관련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 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7년 8월 29일 선고, 2015두3867)
선우 씨는 녹아버린 간 때문에 그 원인을 명확히 알아낼 길이 사라졌다. 대신 평생토록 약값과 치료비가 따라다닌다. 그는 2022년 5월 회사를 퇴직해야 했다.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떠넘겼다는 죄책감에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3년간 든 치료비와 약값만 약 2억 원. 평생 얼마나 더 들지는 알 수 없다. 앞서 선우 씨가 산재를 신청한 이유에는, 가족에게 짐 지운 돈 걱정을 줄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선우 씨는 지난 8월 행정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에 취소를 구하겠다는 취지다.
“기다리는 시간이 제일 힘들어요.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과정에서 희망고문이 제일 힘들죠. 그래도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서 이겨내 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요, 아직은….”
생사의 고비를 넘기자 산재 승인의 벽을 넘어야 했다. 무엇이 선우 씨의 간을 녹게 했는지 누구보다 알고 싶은 사람은, 바로 선우 씨 자신이다. 음주 습관이나 가족력, 약물 과복용은 원인은 아니었다. 작업장에 대한 의심은 있지만, 복합요인에 대한 연구는 미흡하다. 산재 불인정의 근거로 제시된 역학조사 결과나 작업측정보고서 역시 한계가 지적된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 번 더 고비를 넘겼다. 당시 주치의는 재이식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위중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간 이식을 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 다행히 약물로 위기는 넘겼다. 다만 앞으로 몇 번의 위기를 더 넘겨야 할지, 또 몇 번의 재이식을 받아야 할지, 아니 재이식을 받을 수는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법원(판례)에서는 산재보상보험법에서 말하는 업무와 질병 간의 상당인과관계는 ‘의학적’ 인과관계가 아니고,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규범적’ 인과관계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왔다. 그럼에도 (근로복지)공단은 협소한 의학적 판단기준으로 산재불승인을 남발하여온 것이다.”(이종란 노무사, 2024년 7월 ‘산재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산재보험 개선 과제 토론회’ 자료집 중)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스태츠칩팩코리아의 반론을 듣고자 지난 8월 19일부터 약 30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지난 8월 30일 기자는 인사팀 관계자, 안전팀 관계자, 임원급 관계자와 번갈아 소통했다.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판단에 이견이 없다”, “당시 사내 공지로 헌혈 활동을 권하는 등 선우 씨를 도우려고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보도로 인해) 회사에 피해가 발생하면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안전팀 관계자는 약 40분간 안전관리 방침에 대해 설명했지만, 이후 비보도를 요청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셜록의 보도 이후, 지난달 11일 내용증명을 보냈다. 앞선 보도에서 “허위사실을 포함하여 당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선우 씨에게 음주 때문에 질병이 발생한 것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없고, 본건 직원이 손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하는 용액도 역학조사 당시 ‘물’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작업환경측정 및 역학조사 결과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은 점, 매월 직원들을 상대로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점, 사내 유사한 병명이 발생한 적도 없는 점”을 강조했다.
끝으로 “당사의 명예를 침해하는 위법한 보도 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본건 기사를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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