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237번의 ‘진심’… 씁쓸함과 온기가 교차한 그날 대법원 [이시우, 향년 12세 6화]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로 살다보면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재판 있을 때마다 찾아와줘서 감사해요, 기자님.” 그러면 나는 “회사에서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준 덕분”이라며 겸손하게 답하는 식이었다. 일주일 전 대법원에 갔을 때는 김정빈(가명) 씨가 내 손을 맞잡고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자긍심보다 부끄러움이 먼저 느껴졌다. 정빈 씨 손을 잡고 “어머님께서 고생 많으셨다, 다음 재판에 또 오겠다”고 말할 뿐이었다. ‘이시우, 향년 12세’ 프로젝트는 제보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2월 계모와 친부의 학대와 방임으로 열두 살 시우가 숨을 거둔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사건’. 안타까운 죽음에 대중들은 분노했다.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다. 사건 발생 이후 약 반년 동안 무려 650여 건(네이버 기준)의 기사를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정치권도 움직였다. 국회는 사건 이후 반년 사이 4개의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런 관심이라면 이제라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안전한 울타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 내가 이시우 군 사건을 취재하기 시작한 때는, 시우의 1주기 기일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언론의 뜨거운 취재 열기도, 정치권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라는 시우의 친모 김정빈(가명) 씨의 말. 그의 곁에는 소수의 그 지인들만 남아 그를 지키고 있었다. 아직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도, 어딘가에서 학대받고 있을 또 다른 아이들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채로.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피해자는 영유아가 많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3년간(2020~2022년) 아동학대로 사망에 이른 아동 총 133명 중 102명이 영유아였다. 그에 반해 시우는 열두 살이었다. 이웃 주민,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그 고통을 털어놓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시우는 주변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고통을 감내했을지도 모른다. 내 주변에도 숨죽여 아파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도 세상에는 괜찮은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시우를 ‘계모로부터 학대당하다 사망한 안타까운 초등학생’이 아닌, ‘우리 사회에 아동권리의 경종을 울린 고마운 아이’로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도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정빈 씨를 만난 지난 1월 31일. 그의 곁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다섯 명의 시민들이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온라인 카페를 통해 맺은 인연이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서울고등법원 정문에 모여 피켓을 들었다. 시우 사진이 프린트된 판넬에는 ‘부디 가해자들에게 엄벌을 부탁드린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추위에 손끝이 붉어지도록 서 있던 이들은 한 시간가량 시위를 마치고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언 손을 녹였다.(관련기사 : ‘향년 12세’ 시우의 첫번째 기일… 엄마는 법원 앞에 있다) 그리고 이들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7월 11일에도 정빈 씨 곁을 지켰다. 그날 법정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빈 자리도 몇 군데 남지 않았고, 인파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였다.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지난해 이시우 군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으니 그만큼 기자들도 대법원의 판결에 관심을 가지리라 생각했다. 그들보다 기사를 잘 쓰고 싶다는 긴장감도 생겼다. 순간 법정에 환호성이 일었다.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9년간 법적 다툼을 이어오던 노동자들이 승리한 것. 이들은 부둥켜안고, 밝은 표정으로 법정을 나섰다. 그러자 썰물처럼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쓸려 나갔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사람들만 법정 안에 남았다. 정빈 씨는 방청석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다가 맨 앞 줄로 이동했다. 정빈 씨는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기도했다. 바라는 건 딱 하나. 가해자들이 다시 재판을 받게 하는 것. 앞선 항소심에서 계모에 대해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 친부에 대해 상습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열두 살의 나이에 고통스럽게 죽어간 시우 군을 떠올리면 천벌도 부족하다는 게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원심 판결 중 피고인 A(계모)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전향적인 판결이었다. 그동안 피고인들에게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지 않아 ‘아동학대살해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죄’만 적용받았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아동학대살해죄 여부를 다시 다툴 수 있게 됐다. 대법원은 A가 “지속적이고 중한 학대행위가 다시 가해질 경우 피해아동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 내지 위험이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아동학대살해죄에서 살해의 확정적 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판'이 뒤집혔다.(관련기사 : “살해의 미필적 고의 있다” 대법원, 시우군 사건 ‘반전’) 그 순간 정빈 씨는 힘이 빠졌는지 허리를 반쯤 굽혔다. 손에 얼굴을 묻고는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달라고 쉬지 않고 1인시위를 해온 지난날이 떠올랐을까. 한 번 더 가해자에게 죄를 물을 수 있다는 안도감과 시우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와 한 발짝 떨어진 세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섯 걸음쯤 내디딘 정빈 씨는 나와 눈이 맞주쳤다. 붉어진 눈가에 눈물이 반짝였다. 여태 표정을 지우고 울음을 참아내던 정빈 씨가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참지 못한 감정들을 이제야 쏟아냈다. 그는 그날 법정을 찾아준 이들과 모두 포옹을 나눴다. 정빈 씨가 다가가 손만 잡아도, 어떤 이는 눈물을 훔쳤다. 뭉클했다. 다만 부끄러웠던 건 재판이 시작하기 전에 걸었던 기대 때문이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던 인파들. 그 틈에 나 말고도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대법원 선고를 취재하러 온 기자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빈 씨도 그런 기대를 했을까. 예상은 빗나갔다. 기자는 나뿐이었다. 사건 초기 반년간 650여 건의 기사가 쏟아진 것을 기억한다. 그에 반해 대법원 판결 이후 일주일간 발행된 기사는 세 건에 불과했다. 그중 하나는 내가 쓴 거다. 사건 초기 뜨거웠던 취재 열기는 금세 식어버리고 말았다.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 열 명 남짓한 이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날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판결이 나왔다. 이들이 만들어낸 값진 결과다. 대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간 2월 19일부터 7월 11일까지 총 237건의 진정서, 엄벌진정서, 엄벌탄원서가 접수됐다. “시우가 내 아들과 동갑”이라서, “우리 아이 같아서”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손을 맞잡은 이들을 ‘나’라도 지켜주고 싶었다. 사건 이후 약 18개월이 지났지만 가해자에 대한 형사 재판은 진행 중이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국가’에 책임을 묻는 소송 역시 진행 중이다. 겨울방학 기간을 제외하고 29일간 등교하지 않았던 시우. 시우는 겨울방학이 끝나고 약 일주일 뒤 사망했다. 하지만 학교와 교육청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관련기사 : 아이가 죽고 ‘죄인’이 된 엄마, 국가에도 책임 묻는다) 어느 날 갑자기 죽어서 돌아온 아이. 정빈 씨는 시우의 죽음 이후, 아이를 먼저 데려오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죄인이 된 엄마는 죽어서 시우 앞에 설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 ‘엄마가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기 위해 1인시위를 하고 법원을 찾아다닌다. 아이를 잃고 18개월이 지난 지금도 피 말리는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아동학대 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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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의 미필적 고의 있다” 대법원, 시우군 사건 ‘반전’ [이시우, 향년 12세 5화]
“원심 판결 중 피고인 계모 A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 11일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2심 법원에 돌려보냈다. 계모 A에게 적용되지 않았던 아동학대살해죄 인정 여부를 다시 다툴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다.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지난해 2월 발생했다. 계모와 친부의 학대로 열두 살 시우가 죽었다. 계모는 알루미늄 봉과 플라스틱 옷걸이 등으로 장기간에 걸쳐 아이의 온몸을 수차례 때렸다. 그리고 약 16시간 가량 커튼 끈으로 책상 의자에 결박해놓기도 했다. 그날 새벽 통증으로 잠 못 자고 신음하던 시우는 이튿날 숨졌다. 사망 당시 시우의 체중은 고작 29.5kg. 초등학교 6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었지만, 몸무게는 초등학교 2학년 남아 평균(31kg)에도 못 미쳤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여러 둔력 손상’이었다. 시우의 머리, 몸통, 팔, 다리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었다. 200회 넘는 학대 흔적이 아이 몸에 남았지만,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는 아동학대’살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가정생활의 기반이 무너지는 결과를 감내하면서까지 살인을 감행하였다고 볼 수 있으려면 그만큼 강렬한 범행 유발 동기가 존재하여야 한다. (…) 피고인(A)이 자신의 친자녀와 격리되어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을 돌보지 못하는 결과를 감수하면서 피해자(시우)를 살해할 만큼 피해자를 미워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인천지방법원 2023고합159 판결문) A가 시우를 죽여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았고, 시우의 사망 결과를 예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관련기사 : ‘향년 12세’ 시우의 첫번째 기일… 엄마는 법원 앞에 있다) 6개월 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살해 의도’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A는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형이 선고됐다. “살인죄조차 적용되지 않는 재판 결과가 너무 암담해요. 시우가 불쌍해서 자꾸 눈물이 나는 거예요.” (김정빈 씨, 지난 2월 2일 항소심 선고 후) 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매주 1인시위를 이어가던 김정빈 씨는 재판정을 나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가 바란 건 단 하나. 가해자들을 엄중 처벌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대법원 앞에서도 피켓을 들었다. “재판장님, 이 세상 전부인 제 아들 이시우. 어디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제 아들은 제 인생의 유일한 이유이며 의미였고 희망이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제가 그 어떤 고통도 대신하고 싶습니다. 부디 가해자들에게 엄벌을 부탁드립니다.” (피켓 내용 일부) 그녀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반전은 대법원에서 일어났다. 대법원은 지난 11일 A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대법은 “쟁점 공소사실 중 살해의 미필적 고의에 관한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A에 대한 아동학대’살해’죄를 다시 다툴 여지가 있다는 것. “학대행위가 지속·반복적으로 가하여진 경우 그로 인해 피해아동의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어 생활기능의 장애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 피해아동의 나이·발달정도나 취약해진 건간상태를 고려할 때 중한 학대행위를 다시 가할 경우 피해아동이 사망에 이를 위험이 있다고 인식 또는 예견 가능한 상황이었는지 (…) 범행 전후의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인에게 아동학대살해의 범의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 2024도2940 판결문) 아동의 경우 “골격이나 근육, 장기 등이 발달과정에 있어 손상에 취약하고, 심리적·인지적으로 미성숙하여 자신의 건강상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보호자에 의존적인” 특성이 있다. 대법원은 이러한 아동의 취약성을 고려하여 ‘미필적 고의’를 폭넓게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시우는 학대를 당할 무렵 일기장에 자살하겠다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기재한 바 있다. 이는 당시 시우가 “신체적·정신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A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폭력을 가했다. 플라스틱 옷걸이, 선반받침용 봉으로 아동의 팔과 엉덩이를 때릴 뿐만 아니라, 연필이나 가위, 젓가락, 컴퍼스로 아동의 다리와 몸통을 200회 넘게 긁거나 찔렀다. 특히 사망하기 하루 전 A는 시우가 제대로 걷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봤고, 심야에 통증으로 아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대로 방치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A가 “지속적이고 중한 학대행위가 다시 가해질 경우 피해아동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 내지 위험이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아동학대살해죄에서 살해의 확정적 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아동학대’치사’죄가 아닌 아동학대’살해’죄로 봐야 하지 않냐는 게 대법원 판결의 핵심. “만약 이번에 대법원에서 (아동학대)살해죄가 무죄로 나왔으면 일부 아동학대 가해자한테는 꼼수가 될 수 있는 사례가 됐을 겁니다. 아이를 한 번에 죽이는 게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아이를 쇠약하게 만들었는데, 아이가 어느 날 죽는다면 살인의 고의를 피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줬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 있는 판결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법률자문을 맡은 김승유 변호사(흰여울 법률사무소)는 이번 판결이 “좋은 판례”가 될 거라고 말했다. 김정빈 씨는 대법원의 판결을 들은 뒤에야 참아왔던 눈물을 쏟았다. 이날 재판정에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과 국민아동학대근절협회 관계자들이 있었다. 정빈 씨는 열 명 남짓한 이들과 한 사람씩 포옹했다. 약 18개월가량 이어진 가해자들과의 법정 싸움에서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킨 이들이었다. 고마움과 미안함, 안도와 설움이 뒤섞인 현장. 정빈 씨는 시우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에게 다시 한 번 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정빈 씨는 이번 판결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다행’이 계모 A에 대한 죄를 다시 묻는 것이라면, ‘불행’은 친부 B에 관한 것이었다. 검찰의 공소 사실을 보면, 학대 행위와 정도 및 횟수의 차이만 있을 뿐 B도 아이의 죽음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는 상습아동학대 및 상습아동유기·방임 혐의만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제 다시 한번 파기환송심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들은 또 한 번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아동학대 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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