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의 미필적 고의 있다” 대법원, 시우군 사건 ‘반전’ [이시우, 향년 12세 5화]
“원심 판결 중 피고인 계모 A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 11일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2심 법원에 돌려보냈다. 계모 A에게 적용되지 않았던 아동학대살해죄 인정 여부를 다시 다툴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다.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지난해 2월 발생했다. 계모와 친부의 학대로 열두 살 시우가 죽었다. 계모는 알루미늄 봉과 플라스틱 옷걸이 등으로 장기간에 걸쳐 아이의 온몸을 수차례 때렸다. 그리고 약 16시간 가량 커튼 끈으로 책상 의자에 결박해놓기도 했다.
그날 새벽 통증으로 잠 못 자고 신음하던 시우는 이튿날 숨졌다.
사망 당시 시우의 체중은 고작 29.5kg. 초등학교 6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었지만, 몸무게는 초등학교 2학년 남아 평균(31kg)에도 못 미쳤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여러 둔력 손상’이었다. 시우의 머리, 몸통, 팔, 다리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었다. 200회 넘는 학대 흔적이 아이 몸에 남았지만,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는 아동학대’살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가정생활의 기반이 무너지는 결과를 감내하면서까지 살인을 감행하였다고 볼 수 있으려면 그만큼 강렬한 범행 유발 동기가 존재하여야 한다. (…) 피고인(A)이 자신의 친자녀와 격리되어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을 돌보지 못하는 결과를 감수하면서 피해자(시우)를 살해할 만큼 피해자를 미워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인천지방법원 2023고합159 판결문)
A가 시우를 죽여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았고, 시우의 사망 결과를 예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관련기사 : ‘향년 12세’ 시우의 첫번째 기일… 엄마는 법원 앞에 있다)
6개월 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살해 의도’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A는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형이 선고됐다.
“살인죄조차 적용되지 않는 재판 결과가 너무 암담해요. 시우가 불쌍해서 자꾸 눈물이 나는 거예요.” (김정빈 씨, 지난 2월 2일 항소심 선고 후)
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매주 1인시위를 이어가던 김정빈 씨는 재판정을 나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가 바란 건 단 하나. 가해자들을 엄중 처벌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대법원 앞에서도 피켓을 들었다.
“재판장님, 이 세상 전부인 제 아들 이시우. 어디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제 아들은 제 인생의 유일한 이유이며 의미였고 희망이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제가 그 어떤 고통도 대신하고 싶습니다. 부디 가해자들에게 엄벌을 부탁드립니다.” (피켓 내용 일부)
그녀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반전은 대법원에서 일어났다.
대법원은 지난 11일 A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대법은 “쟁점 공소사실 중 살해의 미필적 고의에 관한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A에 대한 아동학대’살해’죄를 다시 다툴 여지가 있다는 것.
“학대행위가 지속·반복적으로 가하여진 경우 그로 인해 피해아동의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어 생활기능의 장애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 피해아동의 나이·발달정도나 취약해진 건간상태를 고려할 때 중한 학대행위를 다시 가할 경우 피해아동이 사망에 이를 위험이 있다고 인식 또는 예견 가능한 상황이었는지 (…) 범행 전후의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인에게 아동학대살해의 범의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 2024도2940 판결문)
아동의 경우 “골격이나 근육, 장기 등이 발달과정에 있어 손상에 취약하고, 심리적·인지적으로 미성숙하여 자신의 건강상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보호자에 의존적인” 특성이 있다. 대법원은 이러한 아동의 취약성을 고려하여 ‘미필적 고의’를 폭넓게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시우는 학대를 당할 무렵 일기장에 자살하겠다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기재한 바 있다. 이는 당시 시우가 “신체적·정신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A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폭력을 가했다. 플라스틱 옷걸이, 선반받침용 봉으로 아동의 팔과 엉덩이를 때릴 뿐만 아니라, 연필이나 가위, 젓가락, 컴퍼스로 아동의 다리와 몸통을 200회 넘게 긁거나 찔렀다.
특히 사망하기 하루 전 A는 시우가 제대로 걷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봤고, 심야에 통증으로 아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대로 방치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A가 “지속적이고 중한 학대행위가 다시 가해질 경우 피해아동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 내지 위험이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아동학대살해죄에서 살해의 확정적 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아동학대’치사’죄가 아닌 아동학대’살해’죄로 봐야 하지 않냐는 게 대법원 판결의 핵심.
“만약 이번에 대법원에서 (아동학대)살해죄가 무죄로 나왔으면 일부 아동학대 가해자한테는 꼼수가 될 수 있는 사례가 됐을 겁니다. 아이를 한 번에 죽이는 게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아이를 쇠약하게 만들었는데, 아이가 어느 날 죽는다면 살인의 고의를 피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줬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 있는 판결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법률자문을 맡은 김승유 변호사(흰여울 법률사무소)는 이번 판결이 “좋은 판례”가 될 거라고 말했다.
김정빈 씨는 대법원의 판결을 들은 뒤에야 참아왔던 눈물을 쏟았다. 이날 재판정에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과 국민아동학대근절협회 관계자들이 있었다.
정빈 씨는 열 명 남짓한 이들과 한 사람씩 포옹했다. 약 18개월가량 이어진 가해자들과의 법정 싸움에서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킨 이들이었다. 고마움과 미안함, 안도와 설움이 뒤섞인 현장. 정빈 씨는 시우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에게 다시 한 번 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정빈 씨는 이번 판결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다행’이 계모 A에 대한 죄를 다시 묻는 것이라면, ‘불행’은 친부 B에 관한 것이었다. 검찰의 공소 사실을 보면, 학대 행위와 정도 및 횟수의 차이만 있을 뿐 B도 아이의 죽음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는 상습아동학대 및 상습아동유기·방임 혐의만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제 다시 한번 파기환송심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들은 또 한 번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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