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신부 해고’ 교구 회의록 입수 “바로 면직부터 내리자”[신부가 해고됐다 2화]
“안될 놈은 싹부터 잘라야 합니다.” 심기열 신부(34)의 아버지 심장욱(64) 씨가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교구는 언제부터 심기열을 ‘안될 놈’으로 생각했던 걸까. 총대리주교가 심 신부에게 “억압된 감정”이 있다고 판단했을 때부터? 정체 모를 ‘자문단’이 심 신부에게 ‘편집성 성격장애’가 있다고 진단했을 때부터? 아니면, 심 신부가 주임신부의 업무태만을 고발했을 때부터 시작된 걸까. 심기열은 2022년 4월 ‘휴양 결정’을 통보받았다. 교구는 자신들이 지정한 정신과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명령했다. 심 신부는 자신의 ‘멀쩡함’을 증명하기 위해 8개월간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교구에서 처음 지정한 의원보다 더 규모가 큰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검사와 진료를 받았다. 교구에서 주장하는 편집성 성격장애나, 치료가 필요한 정신과 질환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교구는 2022년 12월 그를 ‘면직’했다. 인사발령 공문에 면직 사유는 단 한 줄도 없었다. 심기열에게 따로 연락하는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소송을 걸어서 싸우는 것도 신앙인으로서 너무 부끄러워요. 주교님, 신부님들을 정말 어렵게 생각하고 존경했어요. 그런데 우리 아들 사건 터지면서 실망이 컸습니다. 사람들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마음의 위로를 받고 싶어서 신앙을 찾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안에서는… 실망이 너무 컸어요.” 심기열의 가족 모두가 천주교 신자다. 어머니 조성옥(64) 씨는 어렵게 신부가 된 아들이 갑자기 정신질환자로 낙인 찍혀 면직된 상황에서 수치심 따위는 이겨낼 수 있었다. 심기열은 2023년 2월 교구를 상대로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도대체 왜 자신이 사제복을 벗어야 하는지, 면직 사유라도 알고 싶었다. 소송 과정에서 심기열은 몰랐던, 면직 결정 과정 속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둘 드러났다. 면직 1년 전인 2021년 12월 22일 심기열 신부는 교구청에서 주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면담했다. A 성당의 주임신부인 ‘골프 신부’를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주임(신부)은 오전에 골프를 친다고 미사를 빠지거나 오후로 변경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주임신부가) 변하겠다고 이야기하고서 변하지 않았다.”(심기열 신부와 1차 만남 대화록, 2021. 12. 22.) 심 신부는 주임신부가 잦은 골프 약속으로 미사 일정을 변경했다고 주장했다. 심 신부는 기자에게 “사제관을 벗어나 외박을 하기도 하고, 주일(일요일)에도 당구 치러 본당을 비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매달 첫 목요일에 골프모임이 있어서 간 적이 있지만, 자주 가지는 않았다. 골프는 한 달에 4번 이상 가지 않았다.”(심기열 신부와 1차 만남 대화록, 2021. 12. 22.) 주임신부는 적어도 한 달에 네 번은 골프를 치러 나갔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날 면담 이후, 주임신부에게 내려진 조치는 없었다. 오히려 자문단은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이 있다고 판단했다. “자문단이 편집성 성격장애 진단을 내렸다는데, 어떻게 본인 없이 병 진단이 가능합니까?” 진찰은 없었고, 진단만 있었다. 교구는 자문단이 정신과 전문의, 심리전문가 등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문단 구성원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다. 심 신부는 진찰도 없이 자신을 정신질환자라고 진단한 ‘비밀’ 자문단이 정말 전문가가 맞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자문단의 명단은 그 활동을 위해서 비밀을 유지해야 하기에 밝힐 수 없다. 그리고 그 명단을 공개하면 심 신부와 부친이 그들을 괴롭힐 것 아닌가!”(참사회의 회의록, 2022. 11. 22.) 셜록은 심 신부의 휴양 결정에 근거가 된 자문단의 자문 내용 문서를 직접 확인했다. 역시 자문단 구성원의 이름이나 소속은 적혀 있지 않았다. 교구는 A4용지 반 장, 약 20줄에 불과한 이 문서 내용을 근거로,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 치료를 받으라’는 휴양 결정을 내렸다. 문서에는 심 신부가 “교회법과 규정을 따지는 것”을 지적하며, 이를 “정신병 수준”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어릴 때 가정으로부터” 시작됐을 거라고 추정했다. “정당화 시키기 위해 주교님과 면담, 교회법, 규정 등을 따짐.”“정신병 수준. 주교님 앞에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은 현실감 없는 것으로 현실 사회 적응이 어려움.”“이 정도 수준이면 어릴 때, 가정으로부터 원인이 시작될 확률 높음. 뿌리가 깊음.” (2022. 1. 6. 성직자국 자문단 자문 내용) 심 신부는 소송 과정에서 스스로 ‘신체감정신청’을 요청했다. 이미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검사와 진료를 받았지만, 정신의학과 전문의를 통해 편집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이 있는지 다시 감정을 받겠다고 한 것. 하지만 교구 측은 “감정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면직의 이유가 정신질환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사제인 원고(심기열)가 가톨릭교회의 핵심 교리인 ‘순명(順命)’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 면직처분을 하게 된 것입니다.”(신체감정신청 및 증인신청에 대한 교구 측 의견서) 순명이란, 명령에 복종함을 뜻한다. 즉 정신질환 때문이 아니라,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서’ 심 신부를 면직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말장난 같은 부분이 있다. 교구가 심 신부에게 내린 명령이 바로 ‘너는 정신질환이 있으니 치료를 받으라’는 거였다. 심 신부가 ‘나는 정신질환이 없다’며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그게 교구가 말하는 ‘불순명’이 됐다. 이것을 ‘정신질환이 아니라 불순명 때문에 면직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비판한다. “가톨릭에서 ‘순명’은 진리에 대한 순명을 의미합니다. 성서에 나온 개념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내부 규칙이자 관행이죠.교구, 수도회 소속 구성원은 자신이 몸 담은 조직 최고 책임자의 말에 무조건 따르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상관 없이 ‘순명’해야 합니다. 개인이 조직 최고 책임자의 명령을 거역할 힘이 없으니까, 쫒겨나지 않으려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거죠.” 만약 심 신부가 정신질환이 없음에도, 교구가 명령한 대로 교구가 지정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순명’했더라면 아무 문제 없었을까? 셜록은 대구대교구가 심 신부에 대한 인사조치를 논의한 ‘참사회의’ 회의록을 입수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교구가 ‘면직’이라는 결론을 이미 정해두고 그 명분을 찾고 방식을 논의한 정황이 있다. 무엇 무엇을 문제 삼고, 어떤 절차로 ‘조용히’ 처리할지 전략적으로 모의한 흔적. “심 신부의 정신과적인 문제와 별도로 심 신부가 교구장에게 불순명하는 점, 심 신부의 사목자로서 부적합한 점을 문제 삼아야 한다.”(참사회의 회의록, 2022. 11. 22.) 교구 스스로도 ‘정직을 거쳐 면직까지 가려면 근거를 대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러니 ‘(정직 없이) 바로 면직부터 내려야 한다’고 결정했다. “심 신부에 대해 정직의 벌이 마땅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면직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어차피 심 신부의 고소가 이어질 것이므로 정직보다는 바로 면직을 내리는 것이 낫다고 본다. 정직을 내렸다가 면직이 이루어지려면 그 절차상 근거를 대기가 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참사회의 회의록, 2022. 11. 22.) 면직 처분은 흔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대구대교구의 다른 징계 사례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아동성추행으로 징역 3년형 받은 신부, 여직원을 성추행한 신부, 노래방 여성 도우미와 술판을 벌인 신부도 모두 ‘정직’ 처분에 그쳤다. 이런 신부들을 모두 제치고, 심 신부는 ‘면직’됐다. 정말 심 신부의 잘못이 그들의 잘못보다 더 무거운 걸까. 어쩌면 심 신부가 ‘골프 신부’를 고발한 순간부터 답이 정해진 게임은 아니었을까. 취재 과정에서 교구 성직자국장은 기자에게 “(심 신부는) 한 번도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자체를 안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교구는 심 신부의 면직 사유가 ‘불순명’이라고 하지만, 진짜 이유는 교회법에도 없고, 대한민국 법에도 없는 ‘괘씸죄’는 아니었을까. 교구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허위사실도 면직 사유로 붙였다. 심 신부가 신분을 속였다는 것이다. “신학원 교수신부의 제보에 의하면, 심 신부는 현재 경북대학교 대학원에 자신의 신분을 사제가 아닌 부제로 소개하며 편입하여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 교구에 관련 보고도 없이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은 심 신부 스스로 사제직을 계속할 뜻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심기열 야고보 신부가 보인 처신과 태도에 있어서의 ‘교구사제로서의 부적합성’과 ‘교회법과 사제생활지침 관련 위반사항’, 2022. 12. 23.) 심 신부는 휴양 기간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 입학했다. 정신질환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심 신부의 대학원 입학원서에는 “직업 : 신부”, “직장 : 천주교 대구대교구’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심 신부는 종교역사를 연구해 지난 2월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구는 심 신부가 대학원에 간 것은 ‘스스로 사제직을 계속할 뜻이 없다는 것’이라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데 이어, 신분을 속였다는 ‘카더라’ 식 주장을 면직 사유로 덧붙였다. “교회법에 사제는 늘 공부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휴양 기간에 대학원에 입학했다고 면직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대학원 교수님들도 제게 ‘신부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2년간 이어진 소송전. 1·2심 재판부는 모두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종료’되는 것을 말한다.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종교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며 사건을 판단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도 지난 16일 각하 결정을 반복했다. “소송을 걸기까지 용기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소송 전에는 그냥 그런대로 살면 된다고, 억울하지만 성공해서 복수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저 같은 사람이 또 생길 수 있는 거잖아요.” 심 신부가 자신이 몸 담았던 교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심 신부는 2심 재판부의 각하 소식을 듣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판결로 교구는 또 마음에 안 드는 신부를 정신질환자로 몰아가거나, 면직을 시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오히려 자신들의 판단에 잘못이 없었다고 더 당당하게 살지 않을까요. 교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은, 그럼 저는, 이제 어디 가서 말할 수 있는 건가요.” 김근수 소장 역시 심 신부가 어디에서도 자신의 문제를 구제받기 어려운 처치일 거라고 설명했다. 사제로서도 시민으로서도, 종교 안팎 어디에도 심 신부는 하소연할 곳이 없다. “교회 법원 구성원들이 전부 교구장에게 순명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교회법원에서 다퉈도 (심 신부 측) 승산은 기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사회법은 종교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소송을 각하하기 때문에, 심 신부는 하소연 할 데가 사실상 없는 거죠.” 지난 8일 대구대교구의 공식 입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총대리주교는 “재판(소송) 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성직자국장의 설명을 교구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심기열과 A 성당에서 함께 생활했던 주임신부에게, 골프 약속 등으로 업무에 태만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해당 신부는 “심 신부에게 부담을 줄 만큼 (골프나 당구 등을) 한 적이 없다”며 “미사 일정은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그 신부(심기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 않다”며, “종교 내부 사안이라서 기자님도 접근을 조심하셔야 한다, 그 사람(심기열) 말은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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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신부가 해고됐다 1화]
그는 짐가방을 꺼내놨다. 무언가 하얀 속지로 정성스럽게 싸여 있었다. 거기서 꺼내든 곱게 개어진 옷 한 벌. 검은 사제복이었다. 목덜미 라벨에는 ‘심기열’ 이름 세 글자가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심기열(34)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제였다. 그는 더 이상 사제복을 입을 수 없다. 교구는 심기열에게 명확한 근거 없이 정신질환이 있다고 판단했다. 면직 통보를 할 때는 한마디 설명도 없었다. 심기열은 하루 아침에 사제직을 빼앗겼다. 사제로 보낸 4년의 시간을 고이 접어, 검은 사제복과 함께 가방 속에 보관해야 했다. 그는 2022년 3월 업무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총대리주교. “심기열 신부가 어떤 억압된 감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감정을 해소시킬 수 있도록 전문 심리상담가의 상담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2022. 3. 15.) 심 신부에게 정신과적 문제가 의심된다는 말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교구는 ‘자문단’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대구대교구 홈페이지상 조직도에는 없지만, 정신과 의사와 심리전문가로 구성된 대주교 인가 조직이라고 덧붙였다. “자문단이 편집성 성격장애 진단을 내렸다는데, 어떻게 본인 없이 병 진단이 가능합니까?” 심 신부는 교구청을 찾아갔다. 당사자 면담도 없이 편집성 성격장애가 의심된다고 판단한 자문단의 명단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교구는 정신과 진료를 권하는 것 말고는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다. 자문단은 무급으로 자문을 주는 조직이기 때문에, 이름을 밝히기 부담스럽다고 했다. 교구는 한 발 물러섰다. 당장 정신과적 치료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문제가 생기면 그때 조치하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하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교구는 일방적인 ‘조치’를 결정했다. “2022년 4월 8일부로 신부님의 ‘휴양’이 결정되었습니다.” 심 신부에게 휴양 결정이 내려졌다. 휴양은 질병, 사고 등으로 요양이 필요한 신부에게 내려지는 결정이다. 대구대교구 사제생활지침서에 따르면, 휴양을 원하는 사제는 총대리와 상의하고 교구장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휴양 기간은 의사의 소견에 따라 정해진다. 하지만 심 신부 본인의 신청도 없이, 의사의 진단도 없이 내려진 일방적 통지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심기열은 그 배경에 A 성당 주임신부와의 갈등이 영향을 줬을 거라고 짐작했다. “A 성당 주임신부는 외박, 외출이 잦고 본당에 잘 없었습니다. 매달 첫째 주 수요일, 목요일은 골프를 치러 가서 미사 일정을 항상 바꿔야 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미사가 없으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토요일에 나타났습니다. 주일(일요일)에도 당구 치러 간다고 본당을 비우곤 했습니다.” 휴양 통보가 있기 약 5개월 전인 2021년 12월, 심 신부는 A 성당 주임신부를 ‘업무태만’으로 교구에 고발한 바 있다. 이 문제로 심 신부는 주임신부와 함께 교구청 관계자들을 면담했다. “주임신부에 대한 고발 내용을, 아주 부정적인 고발 내용으로 일관했고, 아주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보통 젊은 보좌신부가 주교님과 본당 신부, 또 교회 관계자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일반적이진 않거든요.”(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 대구고등법원 증인신문 중, 2024. 9. 25.) 이후 교구청 총대리주교가 심 신부에게 “억압된 감정”이 있다며 “심리상담가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메일을 보낸 거였다. 교구는 심 신부가 고발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심 신부를 B 성당으로 인사이동 시켰다. 그리고 뒤이어 내려진 휴양명령. 사실상 징계 처분이었다. 교구는 휴양명령에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 신학대 입학 인성검사 당시에 보인 부정적 결과가 현재 악화됐다는 것. 교구는 당시 기준으로도 이미 14년 전인 2008년 진행된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지원생 인성검사’ 결과를 근거 삼았다. 당시 인성검사 결과에는 “지나치게 자신을 좋게 보이고자 하는 상태”라며, “유연성과 융통성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을 뿐, 정신질환의 가능성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심기열은 인성검사에서 B등급(정상범위)을 받아 정상적으로 신학교에 입학했다.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신학교 입학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구는 14년 전 인성검사에 들어 있던 몇 줄의 부정 평가를 근거로, 심 신부의 상태가 악화돼 거짓말을 하고 다른 구성원들과 갈등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신학교 입학 당시의 인성검사 결과에서 조금의 개선도 없이 더 심각해진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천주교 대구대교구 ‘휴양에 관련된 결정사항 통지’, 2022. 4. 4.) 두 번째 이유는 심 신부에게 더 모욕적이었다. 바로, 여성 신자와 ‘지나치게 접촉’했다는 것. B 성당 주임신부는 심 신부가 한 50대 여성 신자의 승용차를 자주 얻어 타는 등, ‘지나치게 접촉’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적인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져 있던 때였다. 심 신부는 성당 안에만 있는 게 갑갑해, 종종 가까운 카페를 찾아 혼자 시간을 보내곤 했다. B 성당에서 걸어서 20분가량 걸리는 곳이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주경희(가명, 당시 51세) 씨였다. 주 씨는 심 신부의 첫 부임지 성당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신자다. “심기열 신부님과 저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도 아니고요, 손끝 하나 댄 적 없습니다.”(주경희 증언,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2023. 10. 12.) B 성당 주임신부의 증언 말고 다른 증거는 없었다. 그러면서 교구는 심 신부에게 보낸 휴양명령 통지서에서, 두 사람을 ‘부적절한’ 관계로 몰아갔다. “너무 어이없었습니다. 신부 옷을 벗기려면 적어도 돈 문제가 있거나, 여자 문제가 있어야 해서 그런 프레임을 씌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구는 심 신부에게 휴양 기간 중 치료를 명령했다. 천주교 신자가 운영하는 C 정신과의원을 지정해, 그곳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분기별 치료 상황과 생활에 대한 보고서 제출도 요구했다. 심 신부는 억울했다. 자신에게 정신질환은 없다고 ‘증명’해야 했다. 심 신부는 교구에서 지정한 C 의원보다 규모가 큰 경북 포항시 소재 종합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2022년 4~5월 두 차례 심리검사를 받았다.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구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구에서 신뢰할 만한 전문가의 소견서’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정신질환이 없다는 검사 결과를 제출했는데, 교구는 계속 C 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어서 치료상황 보고서는 내지 않았지만, 미사 드리는 생활에 관한 보고서는 전부 제출했습니다.” 이후 교구는 심 신부에게 한 곳의 병원을 더 지정해줬다. 2022년 12월 20일까지 C 의원 또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중 한 곳에서 정신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심 신부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병원은 심 신부의 아토피 피부염 증상에 정신심리적 영향이 있다고 봤지만, 교구에서 말하는 ‘편집성 성격장애’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은 없었다. “제가 행복하기 위해 종교 안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이 행복한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괴롭힘을 당하면서 어느 순간 점점 지옥이 됐습니다.” 약 8개월에 걸친 ‘해명의 시간’은 심 신부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50대 여성 신자와 ‘지나치게 접촉’한 적이 없다고, 치료를 받아야 할 정신질환 같은 건 없다고 외롭게 싸운 시간이다. “제가 죽으면 이런 일이 다 끝날까, 생각했습니다. 누구 하나 도움을 안 주더라고요.” 교구는 심 신부의 처절한 해명마저 외면했다. 2022년 성탄절 다음 날인 12월 26일, 심기열 신부에 면직이 통보됐다. 인사 발령 공지 어디에도 사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교구는 심 신부에게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심기열(야고보) 신부 / 계시는 곳 ‘휴양’ / 가시는 곳 ‘면직’ / 비고 12월 31일부” 일방적인 면직 통보 후 3일이 지난 12월 29일. 심 신부는 업무 시스템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로그인 버튼을 눌렀다. “사용자 정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기열은 20대를 전부 바쳐 얻은 사제직을 허무하게 잃었다.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대체 왜 면직이 됐는지. 심 신부는 지난해 2월 교구를 상대로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심 신부의 면직 사유가 드디어 밝혀졌다. ‘불순명(不順命)’. 교구에서 시키는 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면담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였다. 심 신부가 ‘교구에서 시키는 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은, 교구가 지정한 정신과 의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은 것, 그리고 치료상황을 보고하지 않은 것밖에 없었다. 그는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검사와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교구에서 요구하는 걸 지속적으로 행하지 않은 모습들이 지속되다 보니 사제직을 계속하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참사 위원회에서 판단한 것 같습니다.”(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 대구고등법원 증인신문 중 2024. 9. 25.) 성직자국장은 23년간 교구에서 사제 생활을 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경험한 면직 처분은 세 건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나는 여자 문제가 있는 사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돈 문제, 마지막 하나는 심기열 신부 사례였다. 그의 말처럼 대구대교구에서 면직 처분을 내린 것은 흔치 않았다. 교구 징계 사례를 살펴봤다. 아동성추행으로 징역 3년 형을 받은 신부가 있었다. 사제의 자격이 아니라 인간의 자격도 없는 범죄를 저지른 이 신부도, 면직이 아닌 ‘정직’ 처분에 그쳤다. 교구 산하 법인 여직원을 성추행한 신부도 면직되지 않았다. 노래방에서 여성 도우미를 불러 술판을 벌인 신부도 정직 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그는 정직이 끝나자 한 성당의 주임신부로 복귀했다. 이런 신부들을 모두 제치고, 심 신부는 ‘면직’됐다. 지난 8일 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에게 ‘면직 기준’을 물었다. “인간은 나약하니까 잘못을 저지를 수 있잖아요.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다시 사제로 살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참사회의를 거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거죠.” 성직자국장은 심기열 신부에 대해서는 “(심 신부는) 한 번도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자체를 안 했다”고 말했다. 심기열이 제기한 해고무효소송 결과가 나왔다. 지난 2월 8일 1심 재판부는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종료’되는 것을 말한다. 지난 16일 2심 재판부 역시 소송을 각하했다. 종교단체의 내부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는 취지다. “일반 국민으로서의 권리의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실체적인 심리・판단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종교단체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 법원은 자율권이란 명분 아래, 이 문제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있다. 그럼 종교단체 내부에서 누군가를 이유 없이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행위도 용인돼야 하는 걸까. 신의 뜻으로도, 인간의 법으로도 심기열을 구할 수 없다면, 그는 이제 누구에게 기도하고 무엇에 기대야 하는 걸까. “인권을 짓밟는 행위가 옳은 건가, 싶은 거죠. 인간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에 존엄하다고 하잖아요. 근데 정작 그 사람들은 존엄한 마음이 없습니다. 해볼 때까지 해봐야죠.” 지난 8일 대구대교구의 공식 입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총대리주교는 “재판(소송) 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성직자국장의 설명을 교구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심기열과 B 성당에서 함께 생활했던 주임신부에게 골프, 당구 약속 등으로 업무에 태만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해당 신부는 “심 신부에게 부담을 줄 만큼 (골프나 당구 등을) 한 적이 없다”며 “미사 일정은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그 신부(심기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 않다”며, “종교 내부 사안이라서 기자님도 접근을 조심하셔야 한다, 그 사람(심기열) 말은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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