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왕이 남긴 건 번아웃이 아니라 Q저널리즘상!” [셜록 이야]
“사채왕 프로젝트는 제게 번아웃을 남겼죠.”
지난가을이었나. ‘사채왕’ 프로젝트를 돌아보며 조아영 기자가 남긴 말이었다. ‘T’인 조 기자의 성격상, 저 답변은 진심에 아주 가까울 것이다.
지난 2월 처음 제보를 접했을 때, 꼭 영화 같은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대출브로커 조직이 벌이는 금융사기 범죄를 다룬 영화 <원라인>도 떠올랐고, 금융사 직원 김재민 대리가 ‘사채왕’의 손발로 일하며 검은 돈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는 대목에선 <돈>이 떠올랐다. 김상욱이 정치권과 검찰에 줄을 대고 있다며 으스대는 데선 <범죄와의 전쟁>이 연상됐다.
2023년 서울 청구동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를 몰고 온 1500억 원대 불법대출 사건. 결국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문을 닫았다. 금융기관 하나를 망하게 한 천문학적 액수의 불법대출 사건 뒤에는, 이른바 ‘사채왕’으로 불리던 한 남자가 있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제보자에게 건네받은 2000여 개의 녹음파일과 문서 자료를 분석하고, 현장 취재와 피해자 인터뷰 등을 통해 청구동새마을금고를 개인금고처럼 주무르던 ‘사채왕’ 김상욱의 실체를 밝혔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다섯 명의 셜록 기자 모두가 하나의 프로젝트에 투입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약 두 달 동안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모두에게 참 고된 시간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상욱과 김재민의 통화 녹음파일만 약 900개. 범죄 ‘자백’에 가까운 그 파일들을 분석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진행될 수 없었다. 녹음파일을 모두 듣고 내용을 정리하는 건 정말 지루하고 힘든 작업이었다.
사기수법을 파악하고 그 규모를 확인하기 위해 발급받은 신탁원부만 약 200통. 상자 다섯 개를 채우고도 넘쳤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부동산 물건지를 직접 확인하고, 사기 피해자들을 설득해 입을 열게 하는 일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두 달 이상의 시간을 쏟아부은 끝에 ▲불법대출 수법을 낱낱이 밝힌 기사부터 ▲대출사기 피해자들의 기막힌 사연들 ▲김상욱의 공범 매수 방법 ▲김상욱 일당 3인방 각자의 역할과 실패한 ‘배신’ 이야기 ▲제보자의 입을 막기 위해 김상욱 일당이 벌인 사기극 ▲‘사기꾼’ 김상욱의 화려한(?) 과거까지 많은 이야기를 준비했다.
지난 4월 17일 첫 보도 이후 9월까지 20편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사이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감사원에 행정안전부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하고, 기자회견도 함께 진행했다. 이후 KBS와 MBC, 뉴스타파 등도 보도에 나섰다.
셜록이 ‘사채왕’ 김상욱 일당의 사기범죄 수법을 낱낱이 공개한 것은, 단순히 이야기의 재미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미래의 피해자들을 막기 위한 고민의 결과이기도 하다.
‘명의를 빌려줬으니 너희도 공범 아냐?’‘순수한 피해자는 아니잖아?’
피해자들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이들을 또 한 번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런 시각은 언뜻 냉정하고 객관적인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사기범죄’의 본질을 흐릴 뿐이다.
전국적 사기범죄를 기획하고 실행한 김상욱 일당과, 그의 손발이 된 금융기관 직원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고는, 빚 독촉장만 날리는 금융기관까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들만 인생의 낭떠러지로 내몰리는 것이 과연 옳은가.
김상욱 일당은 당연히(?)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사기꾼의 개인금고로 전락한 새마을금고 역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믿고 맡긴다”는 신탁(信託)이란 말이 무색하게, 범죄자 일당에게 자동문처럼 활짝 열려버린 무궁화신탁 역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무궁화신탁은 “마음먹고 범죄 저지른 사람 하나 잡는다는 게, 조직원 100명을 동원해도 못 잡는 게 범죄”라는 소리를 변명이랍시고 늘어놓았다. 새마을금고는 본인들은 오직 ‘채권자’일 뿐이라는 식으로, 대출사기 피해자들에게 부지런히 독촉장을 날렸다.
우리는 김상욱 일당의 거짓말에 속아서,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한 빚 수억 원을 뒤집어쓴 사람들을 직접 만났다. 어렵게 찾아낸 그들을, 더 어려운 설득을 거쳐 말문을 열게 했다.(관련기사 : <유흥주점 텐트에서 잠드는 아이… “사채왕이 망친 삶”>)
“저는 8억 7000이란 숫자를 그때 태어나서 처음 적어봤어요. 동그라미를 얼마나 많이 그렸는지, 아주 까마득하더라구요.”
한 사기 피해자의 말이다. 김상욱 일당의 대화를 듣다 보면, 1억 원이 무슨 구멍가게 거스름돈처럼 느껴졌다. 그놈들이 그렇게 하찮게 입에 올리는 그 돈은 누군가의 피눈물이었다.
김상욱과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 전종남, 무궁화신탁 대리 김재민은 모두 구속돼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사채왕’ 일당은 감방에서 셜록 기자 전원을 고소했다.(관련기사 : <사채왕이 아니라 ‘고소왕’이라 불러야겠습니다>)
셜록의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보도는 23일, 제2회 Q저널리즘상(심층기획 부문)을 받았다. 젊은 기자 130여 명으로 구성된 공부 모임인 ‘저널리즘클럽Q’가 만든 언론상. 셜록은 지난해 ‘로드킬 : 남겨진 안전모’ 보도로 수상한 데 이어 2년 연속 상을 받았다.
“특히 실명보도를 전제로 한 끈질긴 취재가 돋보였다. 한 심사위원은 “익명으로 처리될 법한 주제를 실명과 사진을 통해 보도한 용기 있는 기사였다”고 했다.”(지난 17일 Q저널리즘상 선정 보도자료 중)
김상욱 일당의 범죄 수익금은 현재까지 경찰 수사로 확인된 것만 약 100,000,000,000원, 천억 원이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한번 만져보기는커녕 손으로 적어보지도 못할 돈. 하지만 Q저널리즘상의 가치보다 빛날 순 없다.
이번 수상으로 셜록은, 우리가 매일같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것 같다.
‘기자의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셜록의 일은 무엇인가.’
0의 개수를 세는 것도 무의미한 ‘무한대’의 보람이 가슴에 번진다.
‘언론 같지 않은 일을 하면서, 가장 언론답게 일하는 언론.’
셜록이 듣고 싶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국외훈련 논문을 표절한 검사를 권익위에 고발하고,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간이 녹은 청년의 부모님과 함께 겨울 거리에 서고, 정신질환자로 몰려 해고당한 신부와 함께 교황청의 문을 두드리며 일한다.
Q저널리즘상은 셜록의 어제에 대한 인정이자, 오늘에 대한 신뢰이며, 내일에 대한 기대라 여기며, 그 뜻을 감사히 간직한다.
그리고 언제나 빼놓을 수 없는 것. ‘셜록의 친구’ 왓슨(유료독자)의 존재다. 왓슨들의 무한한 신뢰가 없었다면 기자 전원이 두 달의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결정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언컨대 ‘셜록 이놈들 후원금만 받아먹고 두 달 동안 새 기사는 안 쓰고 대체 뭐하고 있나’라고 항의한 분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셜록 지면이 조용한 걸 보니 뭔가 열심히 취재하고 있나보군’ 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고 지지해주신 분들 덕분에, “끈질긴 취재”로 “용기 있는 기사”를 쓸 수 있었다. 왓슨의 마음과 셜록의 땀으로 함께 이룬 결과다.
지난가을 ‘사채왕은 번아웃을 남겼다’며 탄식하던 조아영 기자. Q저널리즘상 선정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전향적(!)으로 입장을 급선회했다.
“사채왕이 남긴 건 번아웃이 아니라 Q저널리즘상!”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를 전자책으로 만들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직접 선보이는 전자책 시리즈, ‘셜록 뉴스북’ 첫 번째 이야기다.
길고 또 깊은 셜록의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투르지만 정성껏 준비했다. 여러 온라인서점에서 절찬리(?)에 독자 분들을 만나게 되길 고대하고 있다.
☞ 알라딘 http://aladin.kr/p/IRGZM☞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0255997☞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10758698☞ 리디 https://ridibooks.com/books/754043758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