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처벌하지 않는 살인... 이 죽음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회사에 괴물이 산다 13화]
[지난 이야기]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상사 때문에 괴롭다고 대성통곡하던 동생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출퇴근 기록이 찍힌 교통카드 내역을 언니의 이메일로 보내놓고서. 그것은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꼭 진실을 밝혀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언니 장향미(45) 씨는 동생의 죽음이 “동생의 문제만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언니의 긴 싸움이 시작됐다. 향미 씨는 동생이 떠나고 나서 세 달 동안 동생의 동료들을 만나면서, 동생의 과로자살은 회사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회사는 과로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향미 씨는 제일 먼저 증거보전신청을 하고 회사에 동생의 출퇴근 기록과 업무일지 등을 요구했다. 회사는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기록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증거보전신청 소송에서 향미 씨가 이기자, 그제야 기한 직전, 그것도 출근 기록이 아니라 동생의 컴퓨터 로그 기록(시스템 접속 기록)을 A4용지에 인쇄해서 보내왔다. 모두 966장이었다. ‘엿 먹으라’는 걸로밖에 읽히지 않았다. 컴퓨터 로그 기록으로는 출퇴근 시간을 파악할 수 없었다. 업무일지는 대부분 가린 채 제출했고, 면담 기록지와 야근식대와 같은 청구내역은 아예 제출하지 않았다.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다. 회사가 가해자인데, 증거를 모두 가해자가 가지고 있다. ‘순순히’ 줄 리가 없다. 그렇다 해도 회사의 태도는 예상보다 더 괘씸했다. 인터뷰 내내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던 향미 씨 목소리가 화가 난 듯 점점 커졌다. “정말 웃긴 게, (회사가) 출퇴근 시간을 기록할 의무가 없어요. 회사가 당당한 것도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이에요. 이 회사가 2016년에 근로감독을 받은 적이 있더라고요. 동생이 떠난 뒤에도 또 똑같은 문제가 있었고요. 세 번이나 고발당했는데 처벌받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노동법은 안 지켜도 되는 거예요.” 향미 씨는 2018년 4월 대책위와 함께 피켓시위를 시작했고, 기자회견을 열어 동생의 억울한 죽음과 과로자살 문제를 알렸다. “제가 정의감에 불타서가 아니라요, 동생이 너무 억울하게 죽었잖아요. (동생이) 왜 죽었는지 꼭 밝혀야 제가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과로자살이라는 말이 언론에 나오고, 대책위와 매일같이 회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자, 회사는 그제야 동생의 과로죽음을 인정했다. 피켓을 든 지 네 달 만에, 동생이 떠난 지 반년이 지난 2018년 7월에야 회사는 공식사과를 했다. ‘면피용’ 사과조차 하지 않는 회사가 많다는 걸 알지만, 회사의 공식사과는 별 의미가 없었다. 대표는 ‘재발방지’ 같은 단어를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사과문을 읽었다. 방송에서 보던 모습, 확신에 차서 리더십을 보여주고 싶어하던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네 달 동안 피켓시위를 하며 사과를 요구했지만, 막상 대표의 공식사과에도 향미 씨는 무덤덤했다. “그런다고 동생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공식사과가 있은 후 다섯 달이 지난 2018년 12월, 산재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신청을 위한 자료를 유가족이 직접 모아야 했다. 피해자, 혹은 피해자의 가족이 산재 피해 증거를 수집하는 일은 쉽지 않다. 2007년에 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 때문이다. 산재법에 따르면 증명책임은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는 노동자에게 있다. 그러나 업무와 관련된 증거자료는 사용자에게 있다. 2013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걸 사용자가 입증하도록 한국의 산재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사는 ‘영업비밀’을 이유로 자료들을 제출하지 않았고, 향미 씨는 회사 건물 안에 들어가는 것조차 거절당했다. 동생의 유품을 받을 때도 직원들이 아무도 없는 휴일에, 건물 바깥에서 건네받아야 했다. 정보는 차단돼 있었고 접근조차 어려웠다. 증거를 직접 수집해 과로죽음을 입증해야 하는 건 가족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가족들이 속상해할까봐 피해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들, 죽을 만큼 힘들어하고 괴로워했던 일들을 남은 가족들은 들어야 했다. 듣고 싶어도 못 듣는 경우도 많았다. 증언을 해주는 사람이 없는 경우다. 증언 대신 비난이 더 많았다. 다른 과로자살 사건에서는, 입증책임 때문에 산재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입증책임은 “말도 안 되는 잔인한 원칙”이지만 향미 씨는 증거를 모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생의 죽음은 묻힐 것이었다. 그 과정은 “엄청난 2차가해”라고, 향미 씨는 인터뷰 도중 거듭 얘기했다. “산재 신청하려고 하면 ‘돈 때문에 한다’고 (욕해요). 맞아요. 산재는 생존이 걸린 문제거든요. 그런데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사실 명예예요. 지금도 사람들은, 누가 자살했다고 하면 ‘나약해서 죽었다’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아는데, 가족의 죽음을 모욕적으로 얘기하는 걸 들으면 너무 큰 상처가 돼요. ‘그렇게 될 때까지 가족들은 왜 몰랐냐’는 것도 상처죠. 가족들한테 말 안 하면 모를 수 있어요. 과로자살은 구조적인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예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요.” 향미 씨는 “운이 좋아” 다른 유가족에 비해 덜 어렵게 증거를 모을 수 있다고 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출퇴근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교통카드 내역을 향미 씨 이메일로 보내뒀다. 또 퇴근 후에 집에서 일하느라 동생의 노트북에 업무 관련 기록이 남아 있던 덕에, 산재신청에 필요한 자료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퇴사한 동료 서른 명이 증언을 해줬고, 대책위가 크게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경우에도 ‘운이 좋다’는 말을 쓸 수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향미 씨는 산재 신청을 할 수 있었고, 승인도 받을 수 있었다. “어려움을 뚫고” 산재 신청을 해도 승인률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운이 좋았다. 2022년 경찰청 자살 통계를 보면,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자살한 사람은 1년에 404명으로 전체 자살사건의 3%다. 그 중에서 재해보상을 신청한 사람은 36%, 신청한 사람 중 산재 승인을 받는 것은 52%뿐이다. 전문가들은 업무상 문제로 자살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경찰청 통계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향미 씨도 경찰 조사 과정에서 동생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렇게 은폐되는 과로자살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산재 신청 이후 승인되기까지는 10개월이 걸렸다. 긴 시간이었지만, 끝내 승인됐다는 결과가 중요했다. 과로와 직장 내 괴롭힘의 증거들이 적지 않았고, 회사도 공식사과를 한 뒤였다. 무엇보다 과로자살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었고, 대책위와 연대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었다. 동생이 떠난 뒤 산재 신청을 하면서 향미 씨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도록 일하는지, 일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이하 유가족모임)에 함께하면서, 유가족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가까이서 지켜봤다. 유가족모임은 과로죽음 유가족들이 산재법을 공부하고 심리치료 등을 함께하면서 2017년 만들어졌다. 유가족들의 산재 신청 과정을 지원할 뿐 아니라, 과로죽음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동생이 일했던 2년 반의 시간을 쫓다 보니, 동생을 죽인 건 회사였고 그 뒤에는 법과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과로죽음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들이 바뀌지 않는 한 회사는 바뀔 리가 없고, 이 죽음은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향미 씨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한노보연)과, 한국, 일본, 대만 세 나라의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만든 KWA(Karoshi Watch in Asia) 네트워크 모임에 참여하면서, ANROEV(아시아산재및환경피해자권리네트워크)에도 참가해 과로사 문제를 공유하고 알리는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을 하면서 일본에는 ‘과로사 방지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1988년 ‘과로사 110번 전국네트워크’가 상담전화 110번을 개통해 유가족 상담을 시작하면서 과로사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이후 30년 가까이 지난 2014년 ‘과로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과로사 방지법)이 제정됐다. 법이 생겼다고 일본에서 과로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로사와 과로자살을 법률로 정의 내리고 과로사 방지대책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자, 과로죽음이 개인의 문제라는 국민들의 인식도 바뀌어갔다. 한국에는 과로사에 대한 정의가 없고, 따라서 관련 통계도 없다. 일 때문에 죽었다는 걸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입증을 한다 해도 산재 승인을 받기까지 기간이 너무 길었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제도들도 그대로였고, 동생의 죽음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회사 대표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그 덕분에 노동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포괄임금제로 계약하고 임금을 체불하는 등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게 드러났다. 그래도 처벌받지 않는다. 일하다 죽은 사람이 생기면 그때만 잠깐 안타까워할 뿐, 사람 죽이는 제도와 구조는 그대로다. “법에 걸려도 처벌받지 않잖아요. 그럼 그걸 누가 지켜요? 기업 입장에서는 (법을 어기는 게) 훨씬 유리한데. 그러니까 노동법은 그냥, 그냥 만들어진 법이지 진짜로 지키라고 만든 법은 아닌 거죠. 몇 년 전부터 과로사 방지법 제정한다고 하는데, 뭐 근로기준법이라도 잘 지키면 좋겠어요. 이거라도 지키면 과로가 왜 생기겠습니까?” 일본의 ‘과로사 110번 전국네트워크’라는 단체에서 시작된 과로사 금지법 제정 운동은, 실제로 그 결실을 맺기까지 30년 가까이 걸렸다. 거기에는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오랜 노력이 있다는 걸, 포기하지 않고 연대했기에 ‘결국’ 제정됐다는 걸 향미 씨는 안다. 향미 씨는 유가족모임과 함께 2021년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 과로사·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 동료, 친구를 위한 안내서>를 썼다. 산재 사망이 왜 생겨났는지를 밝히고 유가족을 위해 산재 과정과 필요한 자료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더는 과로죽음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유가족들의 바람을 담았다. 해외의 관련 서적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2019년 ANROEV 컨퍼런스에서 만난 대만직업안전보건연대의 황이링 씨에게 <과로지도(過勞之島)>를 선물로 받고, 그 자리에서 이 책을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향미 씨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업무 때문에 종종 번역을 해왔다. 책은 <과로의 섬 – 죽도록 일하는 사회의 위험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2021년 국내에 출간됐다. 향미 씨는 ‘옮긴이 후기’에서 책을 번역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다. 대만의 직장 과로 문제가 한국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거울에 비춘 것처럼 두 나라의 과로 문제는 소름 끼칠 만큼 똑같았다. (…) 한국과 꼭 닮은 대만의 과로사 실태를 다룬 책을 번역하면서 나는 한국 사회의 과로사 문제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싶었다.” 그는 한노보연 ‘업무 관련 정신질환 연구모임’ 회원으로 직장 내 정신건강 문제를 알리기 위해 활동했고, 지금도 유가족모임과 KWA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향미 씨는 동생의 죽음에 대해 표면적으로나마 회사의 사과를 받았고, 그 어렵다는 ‘업무관련 자살’로 산재 승인도 받았다. 어찌 보면 동생의 과로자살은 끝난 사건이고, 향미 씨가 유가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향미 씨와 부모님은 괜찮아지지 않았다. 동생의 억울한 죽음, 그 빈자리를 어떻게 해도 메울 수 없다는 공허와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뉴스에서 과로사, 과로자살 소식을 들을 때마다 향미 씨는 2018년으로 되돌아갔고, 그 고통이, 그 분노와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져 동생의 죽음을 또 겪는 것만 같았다. 동생의 과로자살이라는 사건이 마무리될 수 있으려면, 다시는 누군가가 일 때문에 죽는 일이 없어야만 할 것 같았다. 사실 향미 씨는 산재와 관련한 자료들을 다시 꺼내보는 것조차 힘들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런 향미 씨가 이렇게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KWA 모임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것. “제 동생이 그렇게 죽은 다음에도 똑같은 문제가 매년 반복이 되는 걸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제 경우만 해결이 된다고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에요. 똑같은 사건이 나오면, (동생이 세상을 떠난) 그때 그 시간으로 저도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유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지, 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저는 보이잖아요. 그게 다시 재생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저도 이걸 해결하고 싶은 거예요. 저도 그 시간을 상기하기 싫은데, 사회가 계속해서 상기시켜주는 거잖아요.” 향미 씨도 부모님도, 절대 ‘괜찮아지는 일은 아닌’ 일을 겪었다. 아마도 평생을 괜찮아졌다고, 또 해결됐다고 말할 수 없는 삶을 그냥저냥 살아가게 될 것 같다. 다만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그래서 과로자살이라는 소식을 어디에서도 듣지 않았으면 할 뿐이다. 그것이 과로죽음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바라는 가장 최소한의 해결이다. <끝> 취재 정윤영 르포작가 freakss@naver.com사진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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