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인권위마저… 아무도 ‘해고’ 신부에게 답하지 않았다[신부가 해고됐다 4화]
심기열(34, 야고보) 신부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고 있다. 도와주는 이 하나 없는 외로운 길이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제가 강에 뛰어들면 다 괜찮아질까요? 그동안 생각했던 사회 정의와 다른 모습입니다. 다들 너무 비겁해요. 누구 하나 도움을 안 줬습니다.” 심 신부는 2022년 12월 26일자로 면직됐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같은 해 4월부터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며 휴양 명령을 내렸다. 심 신부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고, 누군지 밝힐 수도 없다는 비밀(?) ‘자문단’의 판단이었다. 심 신부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종합병원,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어디에서도 교구가 주장하는 정신질환이나, 치료가 필요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심 신부의 노력에도, 교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면직 사유도 알려주지 않고 심 신부를 ‘해고’했다. 신학생 10년, 사제 생활 4년. 신의 아들이 되기 위해 14년간 걸어온 여정은 허무하게 종지부를 찍었다.(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대구교구 안에서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어서, 다른 지역 교구에 제 사정을 말해봤지만 ‘타 교구 일에 간섭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천주교 내부에서 그 누구도 심 신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심 신부는 2023년 2월 법원에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암담했다. 1심, 2심 재판부 모두 사건을 ‘각하’했다. 종교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취지였다. “일반 국민으로서의 권리의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실체적인 심리・판단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종교단체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 심 신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달 1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했다. 자신이 교구 안에서 괴롭힘과 인권침해 행위를 당했다고 말이다. “(정신과 전문의 소견, 심리상담센터 검사 결과) 아무런 정신질환 병명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제가 거짓말하는 것으로 꾸며서 계속해서 정신질환 치료를 강요당했습니다.” 12일 만에 ‘초고속’으로 인권위의 회신이 왔다. ’각하’ 결정이었다. 인권위는 단 여섯 줄로 각하 이유를 설명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및 사인(私人)에 의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 위원회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법 제30조 제1항과 제2항에는 ‘조사대상’을 구분하고 있다. ‘인권침해 행위’는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 공직유관단체, 구금・보호시설 등에서 당한 경우에 조사한다는 게 제1항. 천주교 대구대교구처럼 단체, 재단, 사인 간의 ‘차별 행위’를 조사한다는 게 제2항의 요지다. 인권위는 국가기관에서 당한 피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1항을 비껴가고, 차별 행위가 아니라 인권침해 행위라는 이유로 제2항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국내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인권 이슈에, 매우 엄격하게, 일을 안 하는 방향으로만 의사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인권위의 결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인권위에 부족한 건 법령과 규정이 아니라, 인권침해 피해자를 돕겠다는 의지”라며, “인권위가 스스로 자신들의 존재의 이유를 부정한 것”이라고 봤다. “권한과 법적 근거를 다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건, 인권침해 피해자가 어떤 곤궁한 처지에 놓여 있는가, 어떻게 그 고통과 연대할 수 있는가, 고민하는 태도입니다.” 오 사무국장이 인권위의 이번 결정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권위는 ‘국가인권위원회 법 제30조 제1항과 제2항’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의견을 표명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2014년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CCTV 사찰 사건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2014년 4월부터 2개월간 원정 숙소의 CCTV 자료를 받아, 소속 선수들의 사생활을 감시해 논란이 됐다. ‘불법 사찰’ 논란이 커지자 인권위는 조사에 착수했다. 2015년 인권위는 해당 사안을 ‘인권침해’라 판단하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롯데 자이언츠 CCTV 사건도 인권위가 조사에 나서지 않을 ‘명분’은 있었다. 심 신부 사례와 같이, 국가기관에 의한 피해도 아니고 차별행위도 아니라는 이유를 댈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당시 인권위는 의견 표명을 결정했다. 인권위가 종교단체를 상대로 권고를 내린 사례도 여럿이다. 일례로, 2022년 인권위는 한 불교 종단이 음력 2월 초하루에 여성의 사찰 입장을 제한하는 관행을 ‘성차별’이라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 해당 종단은 ‘전통’이라 주장했지만, 인권위는 “여성을 부정한 존재로 보아 입장을 제한하는 것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 남녀평등 이념을 실현하려는 헌법적 가치에 어긋나는 조치”라고 보고, 관행을 개선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만약 인권위가 (그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더라도, 의견 표명은 유의미한 일입니다.” 명숙 인권위바로잡기공동행동 활동가는 “사건 조사도 안 하고 진정 내용만 보고 조사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바로 각하한 것으로 보인다”며, “인권위가 일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면직은 사제에게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면직된 신부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다시는 신부가 될 수 없다. 면직 처분은 자주 내려지지 않는다. 심 신부와 같은 대구대교구의 징계 사례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동성추행 범죄를 저질러 감옥살이를 한 신부도, 산하 법인 여직원을 성추행한 신부도, 여성 도우미와 함께 술판을 벌였다는 신부도, 감금 혐의와 인권침해로 법정구속된 신부도 면직되지 않고 사제직을 유지했다. 심 신부는 면직 1년 전, 자신의 주임신부를 교구청에 고발한 적이 있다. 주임신부가 최소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골프를 치러 다니고, 그 때문에 미사 일정을 변경하는 등 행동을 문제제기했다. ‘아동성추행’ 신부에게도 내려지지 않은 면직 처분이 심 신부에게만 내려진 이유를, ‘괘씸죄’가 아닐까 의심하는 이유다.(관련기사 : <아동성추행 신부도 안 잘렸는데… ‘괘씸죄’가 더 큰가>) 하지만 교구에도, 대한민국 법에도, 국가 인권기구에도 그의 억울함을 말할 길은 없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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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성추행 신부도 안 잘렸는데… ‘괘씸죄’가 더 큰가[신부가 해고됐다 3화]
지금부터 몇 사람의 신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들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먼저 A 신부는 2014년 자신이 근무하던 성당에서 만 9세 미성년 신자를 두 차례 추행했다. 미성년 신자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며, 성당 사제관으로 데려가 범행을 저질렀다. A 신부는 미성년 신자의 입을 막기 위해 간식이나 선물 등을 따로 챙겨주는 등 거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2021년 4월 법원은 A 신부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당시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A 신부에게 5년 정직 처분을 내렸다. 현재 A 신부는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상태다. 하지만 사제직은 유지되고 있다. 교구는 2026년 4월에 정직 처분이 종료되면 A 신부를 은퇴시키겠다고 밝혀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었다. 은퇴하는 경우, 사제 신분이 유지돼 사실상 명예퇴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5월 1일 대구신문 기사에 실린 내용이다. 다음은 “나도 여자 좋아해”라는 말로 유명한 B 신부 이야기다. 2023년 2월 21일 대구MBC가 보도한 내용. 2018년 9월 대구교구 산하 사회복지법인 대표 B 신부가 신입 여직원들을 성추행했다. B 신부는 법인 교육관 식당 옆자리에 앉은 20대 여직원의 신체를 만졌다. 해당 직원이 놀라서 밖으로 나가자, 다시 불러 양팔로 껴안고 술을 따라줬다. 또 다른 20대 여직원도 성추행했다. 그러면서 “나도 여자 좋아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B 신부는 지난해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다. 사건 보도 이후, 대구교구는 B 신부를 대기발령 처분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취재 결과, B 신부는 최근 한 공동사제관 관장으로 부임했다. ‘여성 도우미’를 데리고 술판을 벌였다는 논란을 일으킨 C 신부도 있다. 2019년 7월 10일 대구MBC는 대구교구에 속한 경산성당 주임신부가 경산시 한 노래방에서 여성 도우미 3명을 불러 술자리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2018년 해당 술자리 참석자는 인터뷰에서 “신부님이 아가씨 2명 끼고 돈 5만 원 붙이고 놀고 (하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C 신부는 “앉아서 있었을 뿐”이라 반론했다. 논란의 주임신부 역시 사제직을 잃지 않았다. 셜록은 C 신부가 다른 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것을 확인했다. 2016년 대구교구가 ‘대구희망원’을 운영하던 당시, 시설 내 생활인을 상대로 체벌, 폭행, 폭언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내부규정을 어긴 생활인을 길게는 47일까지 ‘심리안정실’에 불법으로 감금하기도 했다. 당시 총괄원장이던 D 신부는 2017년 7월 감금 혐의 등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당시 신부로서 두 번째 구속된 사례였다. D 신부는 항소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 역시 사제 신분을 빼앗기지 않았다. 대구교구는 D 신부가 구속되자 ‘안식년’ 처분을 내렸다. 김 신부가 풀려나자, 징계하지 않고 오히려 본당 주임으로 임명해 시민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2018년 1월 뉴스민의 보도다. 셜록이 확인한 결과, 현재 D 신부는 원로사목자로 활동 중이다. 지금까지 언급된 네 신부들의 공통점은 모두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이라는 점. 그리고 이들 중 단 한 명도 사제복을 벗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신부들을 그대로 두고, 이 사람에겐 ‘면직’ 처분이 내려졌다. 바로 심기열 신부(34)다. 면직은 사제에게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다시는 성직자로 살아갈 수 없는 최후의 형벌.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해고된다고 해도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신부는 면직되면 지구상 어디에서도 다시는 신부가 될 수 없다. 심 신부는 2022년 12월 면직 통보를 받았다. 그는 면직 1년 전, 자신의 주임신부를 업무태만으로 교구청에 고발했다. 주임신부가 최소 일주일에 한 번꼴로 자주 골프를 치러 다니고, 그 때문에 미사 일정을 변경하고, 사제관을 벗어나 외박을 하거나, 당구 약속으로 주일(일요일)에도 본당을 비우는 행동을 문제제기했다. 하지만 교구는 주임신부가 아니라 심 신부에게 ‘휴양’ 결정을 내렸다. 교구는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 즉 ‘편집성 성격장애’가 있다고 몰아갔다. 심 신부를 직접 만나본 적도 없고, 명단조차 공개되지 않은 의문의 ‘자문단’이 내린 결정이었다. 심 신부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없음을 증명하며 싸워야 했다. 그 시간이 무려 8개월. 그는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심리상담센터 등에서 거듭 검사와 진료를 받았지만, 교구가 주장하는 정신질환이나 치료가 필요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교구는 심 신부가 ‘시키는 대로’ 지정된 정신과의원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지 않았다며, 이를 ‘불순명’이라 간주해 면직했다. 순명(順命)은 명령에 복종함을 뜻한다.(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심 신부는 2023년 2월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교구의 내부 문건과 교구 관계자의 법정 증언 녹취록 등이 확인됐다. 교구 성직자국장은 법원에서, 이른바 ‘골프신부’를 고발한 심 신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임신부에 대한 고발 내용을, 아주 부정적인 고발 내용으로 일관했고, 아주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보통 젊은 보좌신부가 주교님과 본당 신부, 또 교회 관계자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일반적이진 않거든요.”(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 대구고등법원 증인신문 중, 2024. 9. 25.) 성직자국장은 23년간 교구에서 사제 생활을 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경험한 면직 처분은 세 건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나는 여자 문제가 있는 사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돈 문제, 마지막 하나는 심기열 신부 사례였다. 성직자국장의 증언처럼, 면직 처분은 쉽게 내려지지 않는다. 기사 서두에 나열한 것처럼, 아동성추행 범죄를 저질러 3년간 감옥살이를 한 A 신부도, 산하 법인 여직원을 성추행해 재판에 넘겨진 B 신부도, 여성 도우미와 함께 술판을 벌였다는 C 신부도, 감금 혐의와 인권침해로 법정구속된 D 신부도 사제직을 유지했다. 아동성추행이라니. 교구는 사제의 자격은커녕 인간의 자격마저 의심되는 신부도 너그럽게(?) 품어줬다. 다른 신부들 역시 면직 처분을 받지 않았다. 대구대교구의 면직 기준이 무엇인지, 교구 성직자국장에게 물었다. “인간은 나약하니까 잘못을 저지를 수 있잖아요.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다시 사제로 살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참사회의를 거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거죠.” 성직자국장은 “사제직을 포기할 정도가 아닌 경우 자숙 기간을 갖게 하고 다시 기회를 준다”며, “면직은 다시 사제로 살기에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를 경우에 내려진다”고 설명했다. “심 신부에 대해 정직의 벌이 마땅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면직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어차피 심 신부의 고소가 이어질 것이므로 정직보다는 바로 면직을 내리는 것이 낫다고 본다. 정직을 내렸다가 면직이 이루어지려면 그 절차상 근거를 대기가 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참사회의 회의록, 2022. 11. 22.) 대구교구는 사제의 인사를 논의하는 참사회의에서 심 신부의 ‘면직’을 전략적으로 모의했다. ‘면직’이라는 결론을 이미 정해두고, 무엇 무엇을 문제 삼고 어떤 절차로 처리할지 그 명분을 찾고 방식을 논의한 정황이 있다.(관련기사 : <‘신부 해고’ 교구 회의록 입수 “바로 면직부터 내리자”>) 몇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취재 과정에서 교구 성직자국장은 기자에게 “(심 신부는) 한 번도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자체를 안 했다”고 말한 바 있다. 혹시 교구가 밝히지 못한 면직 처분의 진짜 이유가 ‘괘씸죄’는 아니었을까. 한 사람의 인격을 짓밟고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신부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왜 심 신부에게는 돌아가지 않았을까. 과연 심 신부에게 그들보다 “치명적인 잘못”이 있다고 봐야 하는 걸까. 지난 8일 대구대교구의 공식 입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총대리주교는 “재판(소송) 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성직자국장의 설명을 교구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심기열과 함께 생활했던 주임신부에게, 골프 약속 등으로 업무에 태만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해당 신부는 “심 신부에게 부담을 줄 만큼 (골프나 당구 등을) 한 적이 없다”며, “미사 일정은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그 신부(심기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 않다”며, “종교 내부 사안이라서 기자님도 접근을 조심하셔야 한다, 그 사람(심기열) 말은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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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신부가 해고됐다 1화]
그는 짐가방을 꺼내놨다. 무언가 하얀 속지로 정성스럽게 싸여 있었다. 거기서 꺼내든 곱게 개어진 옷 한 벌. 검은 사제복이었다. 목덜미 라벨에는 ‘심기열’ 이름 세 글자가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심기열(34)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제였다. 그는 더 이상 사제복을 입을 수 없다. 교구는 심기열에게 명확한 근거 없이 정신질환이 있다고 판단했다. 면직 통보를 할 때는 한마디 설명도 없었다. 심기열은 하루 아침에 사제직을 빼앗겼다. 사제로 보낸 4년의 시간을 고이 접어, 검은 사제복과 함께 가방 속에 보관해야 했다. 그는 2022년 3월 업무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총대리주교. “심기열 신부가 어떤 억압된 감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감정을 해소시킬 수 있도록 전문 심리상담가의 상담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2022. 3. 15.) 심 신부에게 정신과적 문제가 의심된다는 말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교구는 ‘자문단’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대구대교구 홈페이지상 조직도에는 없지만, 정신과 의사와 심리전문가로 구성된 대주교 인가 조직이라고 덧붙였다. “자문단이 편집성 성격장애 진단을 내렸다는데, 어떻게 본인 없이 병 진단이 가능합니까?” 심 신부는 교구청을 찾아갔다. 당사자 면담도 없이 편집성 성격장애가 의심된다고 판단한 자문단의 명단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교구는 정신과 진료를 권하는 것 말고는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다. 자문단은 무급으로 자문을 주는 조직이기 때문에, 이름을 밝히기 부담스럽다고 했다. 교구는 한 발 물러섰다. 당장 정신과적 치료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문제가 생기면 그때 조치하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하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교구는 일방적인 ‘조치’를 결정했다. “2022년 4월 8일부로 신부님의 ‘휴양’이 결정되었습니다.” 심 신부에게 휴양 결정이 내려졌다. 휴양은 질병, 사고 등으로 요양이 필요한 신부에게 내려지는 결정이다. 대구대교구 사제생활지침서에 따르면, 휴양을 원하는 사제는 총대리와 상의하고 교구장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휴양 기간은 의사의 소견에 따라 정해진다. 하지만 심 신부 본인의 신청도 없이, 의사의 진단도 없이 내려진 일방적 통지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심기열은 그 배경에 A 성당 주임신부와의 갈등이 영향을 줬을 거라고 짐작했다. “A 성당 주임신부는 외박, 외출이 잦고 본당에 잘 없었습니다. 매달 첫째 주 수요일, 목요일은 골프를 치러 가서 미사 일정을 항상 바꿔야 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미사가 없으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토요일에 나타났습니다. 주일(일요일)에도 당구 치러 간다고 본당을 비우곤 했습니다.” 휴양 통보가 있기 약 5개월 전인 2021년 12월, 심 신부는 A 성당 주임신부를 ‘업무태만’으로 교구에 고발한 바 있다. 이 문제로 심 신부는 주임신부와 함께 교구청 관계자들을 면담했다. “주임신부에 대한 고발 내용을, 아주 부정적인 고발 내용으로 일관했고, 아주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보통 젊은 보좌신부가 주교님과 본당 신부, 또 교회 관계자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일반적이진 않거든요.”(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 대구고등법원 증인신문 중, 2024. 9. 25.) 이후 교구청 총대리주교가 심 신부에게 “억압된 감정”이 있다며 “심리상담가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메일을 보낸 거였다. 교구는 심 신부가 고발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심 신부를 B 성당으로 인사이동 시켰다. 그리고 뒤이어 내려진 휴양명령. 사실상 징계 처분이었다. 교구는 휴양명령에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 신학대 입학 인성검사 당시에 보인 부정적 결과가 현재 악화됐다는 것. 교구는 당시 기준으로도 이미 14년 전인 2008년 진행된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지원생 인성검사’ 결과를 근거 삼았다. 당시 인성검사 결과에는 “지나치게 자신을 좋게 보이고자 하는 상태”라며, “유연성과 융통성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을 뿐, 정신질환의 가능성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심기열은 인성검사에서 B등급(정상범위)을 받아 정상적으로 신학교에 입학했다.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신학교 입학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구는 14년 전 인성검사에 들어 있던 몇 줄의 부정 평가를 근거로, 심 신부의 상태가 악화돼 거짓말을 하고 다른 구성원들과 갈등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신학교 입학 당시의 인성검사 결과에서 조금의 개선도 없이 더 심각해진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천주교 대구대교구 ‘휴양에 관련된 결정사항 통지’, 2022. 4. 4.) 두 번째 이유는 심 신부에게 더 모욕적이었다. 바로, 여성 신자와 ‘지나치게 접촉’했다는 것. B 성당 주임신부는 심 신부가 한 50대 여성 신자의 승용차를 자주 얻어 타는 등, ‘지나치게 접촉’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적인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져 있던 때였다. 심 신부는 성당 안에만 있는 게 갑갑해, 종종 가까운 카페를 찾아 혼자 시간을 보내곤 했다. B 성당에서 걸어서 20분가량 걸리는 곳이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주경희(가명, 당시 51세) 씨였다. 주 씨는 심 신부의 첫 부임지 성당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신자다. “심기열 신부님과 저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도 아니고요, 손끝 하나 댄 적 없습니다.”(주경희 증언,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2023. 10. 12.) B 성당 주임신부의 증언 말고 다른 증거는 없었다. 그러면서 교구는 심 신부에게 보낸 휴양명령 통지서에서, 두 사람을 ‘부적절한’ 관계로 몰아갔다. “너무 어이없었습니다. 신부 옷을 벗기려면 적어도 돈 문제가 있거나, 여자 문제가 있어야 해서 그런 프레임을 씌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구는 심 신부에게 휴양 기간 중 치료를 명령했다. 천주교 신자가 운영하는 C 정신과의원을 지정해, 그곳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분기별 치료 상황과 생활에 대한 보고서 제출도 요구했다. 심 신부는 억울했다. 자신에게 정신질환은 없다고 ‘증명’해야 했다. 심 신부는 교구에서 지정한 C 의원보다 규모가 큰 경북 포항시 소재 종합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2022년 4~5월 두 차례 심리검사를 받았다.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구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구에서 신뢰할 만한 전문가의 소견서’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정신질환이 없다는 검사 결과를 제출했는데, 교구는 계속 C 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어서 치료상황 보고서는 내지 않았지만, 미사 드리는 생활에 관한 보고서는 전부 제출했습니다.” 이후 교구는 심 신부에게 한 곳의 병원을 더 지정해줬다. 2022년 12월 20일까지 C 의원 또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중 한 곳에서 정신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심 신부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병원은 심 신부의 아토피 피부염 증상에 정신심리적 영향이 있다고 봤지만, 교구에서 말하는 ‘편집성 성격장애’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은 없었다. “제가 행복하기 위해 종교 안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이 행복한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괴롭힘을 당하면서 어느 순간 점점 지옥이 됐습니다.” 약 8개월에 걸친 ‘해명의 시간’은 심 신부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50대 여성 신자와 ‘지나치게 접촉’한 적이 없다고, 치료를 받아야 할 정신질환 같은 건 없다고 외롭게 싸운 시간이다. “제가 죽으면 이런 일이 다 끝날까, 생각했습니다. 누구 하나 도움을 안 주더라고요.” 교구는 심 신부의 처절한 해명마저 외면했다. 2022년 성탄절 다음 날인 12월 26일, 심기열 신부에 면직이 통보됐다. 인사 발령 공지 어디에도 사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교구는 심 신부에게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심기열(야고보) 신부 / 계시는 곳 ‘휴양’ / 가시는 곳 ‘면직’ / 비고 12월 31일부” 일방적인 면직 통보 후 3일이 지난 12월 29일. 심 신부는 업무 시스템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로그인 버튼을 눌렀다. “사용자 정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기열은 20대를 전부 바쳐 얻은 사제직을 허무하게 잃었다.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대체 왜 면직이 됐는지. 심 신부는 지난해 2월 교구를 상대로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심 신부의 면직 사유가 드디어 밝혀졌다. ‘불순명(不順命)’. 교구에서 시키는 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면담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였다. 심 신부가 ‘교구에서 시키는 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은, 교구가 지정한 정신과 의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은 것, 그리고 치료상황을 보고하지 않은 것밖에 없었다. 그는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검사와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교구에서 요구하는 걸 지속적으로 행하지 않은 모습들이 지속되다 보니 사제직을 계속하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참사 위원회에서 판단한 것 같습니다.”(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 대구고등법원 증인신문 중 2024. 9. 25.) 성직자국장은 23년간 교구에서 사제 생활을 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경험한 면직 처분은 세 건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나는 여자 문제가 있는 사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돈 문제, 마지막 하나는 심기열 신부 사례였다. 그의 말처럼 대구대교구에서 면직 처분을 내린 것은 흔치 않았다. 교구 징계 사례를 살펴봤다. 아동성추행으로 징역 3년 형을 받은 신부가 있었다. 사제의 자격이 아니라 인간의 자격도 없는 범죄를 저지른 이 신부도, 면직이 아닌 ‘정직’ 처분에 그쳤다. 교구 산하 법인 여직원을 성추행한 신부도 면직되지 않았다. 노래방에서 여성 도우미를 불러 술판을 벌인 신부도 정직 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그는 정직이 끝나자 한 성당의 주임신부로 복귀했다. 이런 신부들을 모두 제치고, 심 신부는 ‘면직’됐다. 지난 8일 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에게 ‘면직 기준’을 물었다. “인간은 나약하니까 잘못을 저지를 수 있잖아요.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다시 사제로 살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참사회의를 거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거죠.” 성직자국장은 심기열 신부에 대해서는 “(심 신부는) 한 번도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자체를 안 했다”고 말했다. 심기열이 제기한 해고무효소송 결과가 나왔다. 지난 2월 8일 1심 재판부는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종료’되는 것을 말한다. 지난 16일 2심 재판부 역시 소송을 각하했다. 종교단체의 내부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는 취지다. “일반 국민으로서의 권리의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실체적인 심리・판단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종교단체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 법원은 자율권이란 명분 아래, 이 문제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있다. 그럼 종교단체 내부에서 누군가를 이유 없이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행위도 용인돼야 하는 걸까. 신의 뜻으로도, 인간의 법으로도 심기열을 구할 수 없다면, 그는 이제 누구에게 기도하고 무엇에 기대야 하는 걸까. “인권을 짓밟는 행위가 옳은 건가, 싶은 거죠. 인간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에 존엄하다고 하잖아요. 근데 정작 그 사람들은 존엄한 마음이 없습니다. 해볼 때까지 해봐야죠.” 지난 8일 대구대교구의 공식 입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총대리주교는 “재판(소송) 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성직자국장의 설명을 교구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심기열과 B 성당에서 함께 생활했던 주임신부에게 골프, 당구 약속 등으로 업무에 태만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해당 신부는 “심 신부에게 부담을 줄 만큼 (골프나 당구 등을) 한 적이 없다”며 “미사 일정은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그 신부(심기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 않다”며, “종교 내부 사안이라서 기자님도 접근을 조심하셔야 한다, 그 사람(심기열) 말은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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