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내란사태에 묻혀선 안될… 반도체 기업의 ‘입틀막’ [열아홉, 간이 녹았다 7화]
앞서 작성했던 기사가 질긴 인연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11월 기자는 고소당했습니다. 명예훼손 및 허위 사실 유포 등의 혐의였습니다. 내란 사태로 많은 언론의 눈과 귀가 국회와 대통령실로 집중되는 시기에, 기자는 인천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입틀막’ 당해도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해야 할 일도 많았습니다. 11일 오전 11시 30분 인천 영종도에 있는 스태츠칩팩코리아 앞으로 약 30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맞은편에는 그 모습을 촬영하는 회사 관계자도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옆구리에 서류 봉투를 끼고 다니면서 기자들에게 접촉했습니다. 봉투 안에 담긴 건 사측의 입장문이었습니다. “회사명이 직간접적으로 노출되거나 사실과 다른 보도로 인해 당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드립니다.”(스태츠칩팩코리아 입장문 일부) 기자회견 이후에 입장을 밝힌 것도 아니고, 기자회견 시작과 동시에 ‘법적 조치’를 운운하는 입장문을 배포하는 회사라니. 기자회견을 시작도 하기 전에 ‘기사 쓰면 고소당할 줄 알아라’ 하고 엄포를 놓은 것과 다름 없습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를 상대로 ‘입틀막’ 하던 회사는 다른 언론사의 입까지 틀어막으려 했습니다. 회사의 ‘경고’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오늘(12일) 정오 기준 총 10군데 언론사에서 기자회견에 관한 보도를 했습니다. 그중 회사의 실명을 언급한 곳은 미디어오늘, 한겨레, 인천투데이 3곳이었습니다. 기자는 지난 9월부터 반도체 공장에 취업을 나간 직업계고 학생 선우(가명) 씨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그는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하고 약 1년 2개월 만에 간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생사의 문턱을 넘자, 산재 승인이라는 지난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열아홉이었습니다.(관련기사 :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 선우 씨는 반도체 후공정 업체인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4조 3교대 형태로 근무했습니다. 6일 출근하고 이틀 쉬는 식이었습니다. 6일 근무 중 하루 이상 연장 근무는 필수였습니다. 3년간 함께했던 담임 교사가 소개해준 일터는 이런 곳이었습니다. 그래도 선우 씨는 학교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자에게도, 학교에 대해 취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의사를 밝혔습니다. 사회에 나와 몸이 망가져도 학생들에게 교사는 여전히 애틋한 사람이고, 학교는 따뜻한 공간입니다.  선우 씨와 같은 학생들은 지금도 스태츠칩팩코리아로 출근합니다. 학교가 소개해준 곳이니 안전과 미래가 보장돼 있을 거라고 믿고, 돈을 많이 주니 나쁘지 않은 직장이라고 여깁니다. 실상도 그럴까요. 회사는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이곳에도 유해물질은 가득합니다. 선우 씨는 세정실에 들어가면 독한 화학물질 냄새가 났다고 기억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건 입술이 비칠 정도로 얇은 덴탈 마스크와 방진복이었습니다. 세척을 하다 보면 소주병을 코에 댄 것처럼 냄새가 심했고, 하루 한두 차례씩 세정실을 사용했습니다. 유기용제가 담긴 통에 손을 넣어 세척하다 보면 비닐장갑은 찢어져 피부가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손이 하얗게 일어나고, 피부 껍질이 벗겨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회사 측은 이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사후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진실보도를 한 기자를 고소까지 했습니다. 저희 아들이 겪은 일이 모두 가짜라고 말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이것은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라고 생각합니다.” 이날 기자회견을 위해 울산에서 인천까지 선우 씨의 부모님이 찾아왔습니다. 비록 기자회견이지만 선우 씨를 회사에 보낼 수 없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선우 씨는 지금도 언제 간을 재이식 받을지 모르는 불안을 평생 안고 산다며, “그 억울함과 우울감으로 힘들어 한다”고 전했습니다. 선우 씨는 클라이언트의 주문에 따라 제품을 바꿔가며 일했습니다. 그때마다 새로운 화학물질, 새로운 작업방식이 필요했고, 심지어 회사에 설비를 다시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매뉴얼이나 공정 교육은 없었고, 일을 던져주고 옆에 물어보면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선우 씨의 동료들은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하기도 했습니다. 주 단위로 바뀌는 화학제품에 회사가 ‘친환경 제품’이니 안전하다고 강조했지만, 확인할 길도 없습니다.  선우 씨는 역학조사를 진행한 연구원에게 추후 이메일을 보내 회사가 주장하는 내용에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역학조사에 선우 씨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산재 ‘불승인’을 통보받았습니다.(관련기사 : <술 때문에 19살 간이 녹았다? 당신들이 틀린 이유>) 선우 씨는 근무한 지 7~8개월째부터 몸 상태가 악화됐다고 느꼈습니다. 의심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화학물질이 다량 포함된 플럭스를 수동으로 직접 짰던 날. 그날따라 냄새도 심하고 색깔도 평소와 미묘하게 달랐던 날. 그때부터 극심한 피로가 느껴졌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옆에서 근무하던 동료 A 씨는 벽에 기대 졸고 있는 선우 씨를 깨우기도 했습니다. 선우 씨는 전날 잠을 못 자거나 게임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피로 때문에 퇴근하면 지쳐 쓰러지듯 잠들어도 잠은 좀처럼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A 씨는 2021년 4월부터 선우 씨를 깨웠다고 기억했습니다. 지난 7월 전북 전주시에 있는 한 페이퍼 공장에서 현장실습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회사는 이때 유독가스 누출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회사에서 노동자가 죽었는데도 회사 책임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왜 현장실습생들이 이렇게 불안전하고 위험한 일터를 마주해야 할까요. 선우 씨의 주치의가 “작업 환경이 의심된다”고 말한 일터에 여전히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당사는 당사에서 근무하였던 직원 김선우 씨의 건강 상태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입장을 말씀드립니다.”(스태츠칩팩코리아 입장문 일부) 회사는 ‘유감’을 표했습니다. 유감(遺憾)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습니다.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유감은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 느끼는 감정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사과할 때 쓰는 말이 아님에도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심지어 이러한 입장문은 선우 씨의 부모님에게는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입장문 2장을 프린트한 서류를 현장에 왔던 기자들에게 전할 뿐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저와 제 아들은 회사 측에 산업재해 피해에 대한 인정과 진심 어린 사과, 정당한 보상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향후 예방조치가 확실히 이루어질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우리의 요구는 단순히 보상을 넘어서, 아들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회사의 근로환경 개선을 촉구합니다.”(김선우 씨 아버님 발언 중) 이날도 선우 씨는 회사로부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고, 입장문조차 건네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회사는 선우 씨에 대한 2차가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음주습관’을 지적하다가 이후에는 ‘코로나 백신 부작용’을 이야기했습니다. “김선우 씨는 2021년 4월경 ‘위험한 음주상태’라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고, 2021년 11월경 코로나 19 백신 주사를 맞은 후부터 급격하게 몸이 악화된 후 2021년 12월 간 질환의 진단을 받았다는 점이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스태츠칩팩코리아가 게재를 요청한 정정보도문 일부)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언론중재위원회(이하 언중위)에 조정신청을 했습니다. 회사가 작성한 정정보도문을 게재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관련기사 : <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기자가 취재한 내용과 완전히 다른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게재할 수는 없었습니다. ‘반론’으로 입장을 싣겠다고 하자,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이를 거절하고 ‘정정’보도를 고집했습니다. 심지어는 기사의 노출을 막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조정은 불성립됐습니다. 지난달 28일의 일입니다. 반론 취재 당시 회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게 보도될 만한 일인가요?”, “왜 지금 갑자기 보도를 하려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회사에 손해가 생기면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와 같은 말이었습니다. 이들은 회사 이름이 실명으로 보도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배포한 그들의 입장문에도, ‘실명 보도’를 유의하라는 경고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회사가 이토록 언론의 입을 막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도 매년 수백 명의 직업계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이란 이름으로 이 회사로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곳이 안전한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또, 선우 씨가 아픈 뒤에 회사는 어떠한 대책을 마련하고 노력했는지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기자에게 고소로 대응했습니다. 향후 민사 소송을 이어가겠다고도 예고했습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의 소송대리인은 법무법인 율촌 소속 변호사입니다. 율촌은 과거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 노동자 및 유가족 등과 대립한 적이 있습니다. 고 황유미 씨는 삼성반도체에서 1년 8개월 근무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유가족 등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때 근로복지공단이 소송대리인으로 내세운 법무법인이 바로 ‘율촌’이었습니다. “기자님, 고소 건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저희 때문에 그런 것 같아서 죄송해요.” 선우 씨 가족들은 기자를 만날 때마다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정작 그들은 그 누구로부터도 미안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지만. “교육청과 학교에도 바랍니다. 아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고통을 받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연락 한번 없었습니다. 취업률에만 신경 쓰지 마시고 실습생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모니터링을 통해 학생들이 안심하고 건강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김선우 씨 아버님 발언 중) 스태츠칩팩코리아의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사측 입장문 전문을 싣습니다. 당사는 당사에서 근무하였던 직원 김○○의 건강상태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입장을 말씀드립니다. 2. 그러나 김○○ 씨의 간 질환은 당사의 업무환경과 인과관계가 없고, 이는 근로복지공단의 면밀한 역학조사 결과 명확히 확인된 사실입니다. 역학조사는 수차례 진행되었고, 전문의 등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에 의해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3. 역학조사 당시, 김○○ 씨가 접촉하였던 세척 물질이 물(water)에 불과하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세척 물질로 물 대신 에탄올을 사용하였으나, 에탄올은 손 소독제 등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소독 물질에 불과하여 이 역시 간 질환과 관련이 없습니다. 4. 당사의 업무 환경은 대한산업보건협회의 작업환경측정 결과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특히 김○○ 씨가 근무했던 환경에서 간 질환을 유발하는 인자가 대부분 불검출되었고, 검출이 되었더라도 검출한계 미만 수준에 불과하였습니다. 5. 당사는 매월 2시간씩 법정 교육 및 매년 2회 MSDS 교육을 실시하여 직원들이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6. 당사의 동일한 공정이 운영된 약 20여년 간 김○○ 씨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질환이 발병한 전례가 없고, 김○○ 씨와 함께 근무하였던 100여 명의 직원에 대해서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질환이 발병한 적이 없습니다.(특히 김○○ 씨는 당사에 입사하여 질병휴직을 하기 전까지 1년 2개월 가량 근무하였는데 당사 직원 대다수가 김○○ 씨보다 훨씬 오랜 기간 근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에게서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질환이 발병한 사실이 없습니다.) 7. 당사는 직원들의 안전한 업무환경 조성을 우선 순위로 삼고 노력하여 왔습니다. 향후에도 안전한 업무환경에서 직원들이 근무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8. 사실이 위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명이 직간접적으로 노출되거나 사실과 다른 보도로 인해 당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
3
·
“마이스터고 붐” 밀어붙이는 정부… ‘다음 선우’ 없을까 [열아홉, 간이 녹았다 4화]
인천공항에서 차로 약 15분 떨어진 인천국제공항 물류단지. 잿빛 건물 틈으로 대형 화물차들이 바삐 움직였다. 5차로를 사이에 두고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공장들. 바로 그곳에 스태츠칩팩코리아가 있었다. 오후 2시를 넘기자 공장 정문에 택시 세 대가 멈춰 섰다. 스무 살 남짓한 젊은 노동자들이 여럿 내렸다. 이들은 부리나케 달려가 개찰구를 통과했다. 안쪽에도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앳된 얼굴이었다. 김선우(가명, 23) 씨도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에서 근무했다. 그는 2020년 10월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의 ‘1호’ 취업생이었다.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몸에 이상이 생겼다. 간이 녹아내렸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이식 수술을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 만 열아홉이었다.(관련기사 :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 “얘가 그냥 인문계(고등학교)를 갔으면… 대학을 갔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드는 거예요.” 엄마 이하영(가명) 씨는 선우 씨가 아픈 게 꼭 엄마인 자기 탓 같았다.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한다던 선우 씨를 말리지 못한 것도, 울산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인천에서 일한다는 선우 씨를 붙잡지 못한 것도, 안색이 좋지 않았을 때 병원으로 바로 가지 못한 것도. 선우 씨는 2022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했다. 산재를 신청한 것. ‘일’을 하다가 아프게 됐단 걸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앞으로 들 치료비 걱정도 덜 수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은 1년 8개월 만에 산재 ‘불승인’ 결정을 통보했다. 그는 지난 8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서 산재 승인을 다시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솔직히 알리고 싶기도 한데, 학교에서도 안 들을 것 같아서요. 취업 담당 선생님 말고는 안 알렸어요. (…) 다른 분들은 뭐 없죠. 졸업하면 끝인데.” 선우 씨는 취업 담당 교사 외에는, 아파서 퇴사했다는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그는 “학교가 취업률을 더 신경 쓸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후배들을 거기(스태츠칩팩코리아)에 보내는 것 같더라고요.” 선우 씨가 졸업한 고등학교 홈페이지에는 졸업생 취업 현황이 공개돼 있다. 최근 5년간 90% 이상의 취업률을 자랑했다. 10월 집계된 취업 현황에 따르면 올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취업한 3학년 학생은 8명이다. 지난해에는 6명이 취업하고, 2명이 현장실습을 나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 회사는 전국 수많은 직업계 고등학교, 대학교와 산학협력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2021년에는 “전국 특성화고등학교 출신 학생 500명 이상 채용”을 홍보했다. 선우 씨는 마이스터고등학교를 다녔다. 정식 명칭은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로, 직업훈련을 통한 전문기술인 양성을 목표로 했다. 직업계고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3학년 2학기가 되면 학교와 협약을 맺은 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간다. 선우 씨도 2020년 10월 ‘실습생’으로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출근했다. 학교에서 교사의 소개로 구한 일자리. 검증된 회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이제 취업률 올리니까 그냥 아무 곳에 나가서, 선생님들은 이제 일일이 확인하지 않거든요. 근데 저희는 이제 중요하잖아요. 저희는 3년이 걸린 거니까. 그래서 학교에서는 이제 선별해서 갖다줬다고는 하는데 저희가 알아보면 아, 이거는 아닌 거 같은데, 싶은 회사가 많은 거죠.”(면접참여자 H, 김혜진 외 2인,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세계 진입 실태> 중) 현장실습생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병을 얻었다는 소식은 흔한 뉴스가 됐다. 올해만 해도, 지난 5월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설비실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황화수소 중독’을 의심했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삼성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 출신 이승환 씨 이야기도 화제가 됐다. 그는 2021년 10월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케이엠텍’에서 일했다. 케이엠텍은 삼성의 1차 하청 업체로 갤럭시 휴대전화 등을 조립하는 곳이다. 그는 이듬해 1월 영진전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정식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업무를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해 9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승환 씨는 이후 7차례 항암 치료를 받았다. 올해 3월에는 조혈모세포 이식수술도 받았다. 통증으로 잠 못 드는 날이 늘었고, 이식 후 염증반응으로 온몸이 까맣게 변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4월 산재를 신청했다. 산재보험법상, 업무와 질병간의 인과관계는 피해노동자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 케이엠텍은 회사 내부 자료를 승환 씨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선우 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산재 신청을 하기에 앞서 회사에 작업환경 관련 정보를 요청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자료를 주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내부 자료를 요청하라고 답했다.(관련기사 : <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현장실습생 F : “학교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교육은 딱히 잘 못 받았던 것 같아요.”현장실습생 D : “얘기해줬을 수도 있는데 기억 안 나요.”현장실습생 C : “딱히 얘기해 준 게 없는 것 같아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 3단체, <특성화고 학생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과 노동세계진입연구> 중) 현장실습을 앞둔 학생들을 상대로 한 노동안전 교육은 여전히 미흡하다. 일터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현장실습생 B : “바닥 미끄러우니 유리 조심하고, 뜨거운 거 조심하고… 그 정도밖에 없어요.”현장실습생 A : “그냥 몸에 안 좋다는 것만. 그래서 토시랑 마스크 끼라고. 그거 할 때는 꼭 마스크 끼라고 하죠.”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 3단체, <특성화고 학생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과 노동세계진입연구> 중) 사회는 실습생에게 친절하지 않다. 선우 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위험하니까 조심하세요”라고 경고할 뿐이다.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뭐. (…) 아니, 그 새끼들 공장 나갔던 것들이 다 처돌아와. 몇 달 더 버티라니까. 아유, 우리 반이 바닥 찍을 것 같아. 니는 괜찮지? 사고 안 쳤지? 소희야, 버텨야 된다이?”(영화 <다음 소희> 대사 중) 일터에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퇴사는 쉽지 않다. 직업계고 3학년 학생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에 거의 의무적으로 참여한다. 법률상 의무는 없지만 관행처럼 굳어졌다. 심지어 현장실습 중 돌아오는 학생에게 징계를 내리는 경우도 있다. “당장 저희 학교만 해도, 업체에서 불합리한 일을 겪은 학생들을 보호해주기는커녕, 반성문을 쓰게 하고 징계를 주었습니다. 심지어 그 학생의 실습 기회는 가장 마지막에 주어졌습니다.”(김종하, 2017 인권논문 수상집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현실과 개선방향> 중) “선생님들은 현장실습 보냈다고 끝이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알아서 버티라고만 하고. 무책임해요. (실습 중에 학교로) 돌아오면 욕하고. (…) 선생님들이 안 좋아했어요. 실적이 떨어지니까.(면접참여자 D)”(김혜진 외 2인,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세계 진입 실태> 중) 왜 현장실습생들은 안전하지 않은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을까. 현장실습제도는 산업체 인력 공급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박정희 정부는 1973년 직업계고 학생들에 대해 재학 중 현장실습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강제했다. 이후 여러 정권을 거치며 실습 기간은 2개월에서 1년까지 늘어났다. 실습생의 인권침해 문제와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자, 2006년에 이르러 처음으로 제도에 제약이 생겼다. 수업 일수와 취업 보장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실습을 나갈 수 있게 된 것. 규제는 2년이 지나지 않아 풀렸다. 이명박 정부는 청년 취업난을 해소하기 위해 ‘고졸시대’의 포문을 열고자 했다. 그는 현장 중심 직업교육을 강조하며, 특성화고 취업률 목표를 60%로 잡았다. 취업률은 학교 평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때부터 학교의 취업률 경쟁은 시작됐다. 감사원은 2015년 고등학교 직업교육 활성화 분야에 관해 이렇게 지적했다. “일부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취업률을 높이고자 전공과 무관하거나 현장실습이 제한된 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거나 현장실습 협약과 배치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등 현장실습 제도 도입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감사결과보고서-산업인력 양성 교육실책 추진 실태(2015)> 중)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 뇌출혈 사고 이후, 2012년 울산 금영ETS 공장 지붕 붕괴 사망사고, 2014년 울산 신항만 공사 작업선 전복 사망사고, CJ제일제당 진천공장 사망사건, 2016년 성남 토다이 사망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2017년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사망사건, 제주 생수업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교육부는 2018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시도교육청 평가 기준에서 ‘직업계고 취업률’을 폐지한다는 대안이었다. 이어 조기취업 형태의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이 폐지되고,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만 허용됐다. 취업 시기 역시 3학년 2학기가 종료된 겨울방학부터 가능했다. 다만, ‘현장실습 선도기업’인 경우, 3학년 2학기 수업 중 3분의 2 이상을 이수하면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장실습 선도기업’은 현장실습을 운영하는 기업 중 교육청 심의를 통해 우수한 실습 여건을 갖추었다고 인정받은 기업이다. 이후에도 사건·사고는 이어졌다. 2021년 여수 요트 선착장 실습생 사망사고, 2024년 전주 페이퍼 사망사고로 현장실습생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선도기업’이라는 꼼수로 여전히 ‘값싼 노동력’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2월 ‘현장실습 제도’를 ILO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도제 제도나 직업훈련 참여 최저 연령은 16세인 것으로 보이며 현장실습생은 노동에 진입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을 초과하고 있다”며 “실습생에 대한 안전과 훈련 감독 부재의 상황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현장실습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8월 중등직업교육 발전 방안을 내놓았다. ‘제2의 마이스터고 붐’을 조성하겠다며, 첨단산업 중심 마이스터고를 육성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은 정말 많은 유해화학물질이 집약적으로 사용되는 산업입니다. 새로운 공정과 새로운 물질이 끊임없이 사용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이윤추구 논리가 안전보다 늘 우선돼 왔습니다. (…) 10대의 몸은 성인의 몸보다 유해물질에 민감합니다. 따라서 10대 후반부터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을 정부가 적극 육성하는 게 걱정될 수밖에 없죠.”(이종란 노무사, 2024. 10. 23.) 이종란 노무사는 고 황유미 씨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근무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발병한 것이다. 유미 씨는 산재를 신청한 지 7년 만에 인정받았다. 이를 계기로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집단역학조사가 실시됐다. 이때 반도체 산업노동자들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김선우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반도체 후공정 업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그는 입사 1년 2개월 만에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질환으로 간 이식을 받았다. 산재 신청 결과는 불승인. 행정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지, 그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현장실습생으로 열아홉의 나이에 공장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2014년 CJ 현장실습생 김동준 군 사망사건을 소재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쓴 은유 작가는 책에 이렇게 썼다. “청소년 노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환경과 문화에서는 누구의 노동도 안전하지 못하다.” 오늘도 다음 소희, 다음 동준, 다음 선우가 공장으로 출근한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
1
·
술 때문에 19살 간이 녹았다? 당신들이 틀린 이유 [열아홉, 간이 녹았다 3화]
고등학교 3학년 김선우(가명) 씨는 반도체 공장으로 나갔다. 학교의 ‘1호 취업생’이었다. 반도체 후공정 업체인 스태츠칩팩코리아. 일터에는 화학물질이 가득했다. 그는 얇은 덴탈마스크와 방진복을 착용한 채 하루 9시간, 많게는 11시간 30분씩 작업장에 머물렀다. 24시간 가동되는 기계에 맞춰 생체리듬을 바꾸다 보면 밤낮이 바뀌기도 했다. 취업 14개월 만인 2021년 12월, 간이 녹아내렸다. 혼수상태에 빠졌다. 주치의는 ‘마지막 인사’를 하라며 가족들을 불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던 위독했던 상황. 겨우 만 열아홉이었다. 기적적으로 뇌사자의 간을 이식받았다. 몸 밖으로 나온 선우 씨의 간은 형체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오랜 잠에서 깨어났지만 더 큰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선우 씨는 2022년 9월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당시 김선우 씨의 음주 습관으로 인한 상병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상황입니다.”(스태츠칩팩코리아 측 의견서) 회사는 선우 씨의 음주 습관을 지적했다. 이들이 근거로 제시한 건 ‘특수건강검진표’. 결과지에는 “절주 또는 금주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적혀 있었다. “제가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상담을 받았는데요. 교수님이 ‘20대 초반이 술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이 정도로 간이 상하지 않는다고, 절대 안 상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근데 회사가 그 얘기(음주습관 지적)를 하니까 너무 어이가 없더라고요.”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정기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받는다. 선우 씨도 2021년 4월 특수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간 기능 검사, 빈혈 수치 등에서 이상 소견은 없었다. 다만, 음주력에 ‘주의’가 표기됐다. ‘일주일 1잔 하루 4잔’이라는 수치 때문. ‘주의’가 필요하다는 선우 씨의 음주 습관은 ‘1주 1회, 1회 소주 기준 0.5병’ 수준이었다.(관련기사 : <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결과지를 보면 혈청 지티피(ALT), 혈청 지오티(GOT), 감마지티피(γ-GTP) 모두 정상이어서 음주력은 있지만, 이로 인한 간에 영향은 없는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감마지피티는 음주로 인한 간 영향 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혈액검사 지표로, 이 수치가 정상이라는 것은 음주로 인한 간 영향은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송홍석 신천연합병원 내과 진료부장은, 선우 씨의 진료기록을 검토한 뒤 “알코올성 간질환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당시 간 기능 검사가 정상으로 나왔기 때문. 이어 “음주가 원인이었으면 (진료기록상) ‘알코올성 간 질환’이라고 명시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을 녹일 수 있는 또 다른 원인에는 독성간염이 있다. 이는 한약, 양약, 건강기능식품 등과 같은 약제를 복용하다가 발생하는 간 기능 손상을 말한다. 동아대학교병원 입원기록에 따르면, 선우 씨는 과도하게 약물을 복용한 이력도 없었다. “어린 나이에 급성간염이 일어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는 점, 회사에 근무하고 1년이 지나 상기 질환이 발생한 시간적 선후 관계를 고려할 때 피재자(김선우)의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 질환은 작업장에서 노출된 미상의 세척 용제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됨.” 선우 씨 주치의는 사업장을 의심했다. 입사 및 업무 중 특수검진을 할 때 특이사항 없이 건강했던 점, 가족력도 없고, 바이러스 간염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점 등을 들어 외부 요인이 작용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라인에 있을 때는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기도 하거든요. 선우가 (2021년) 5월 말부터 의자에 앉아서 조는 걸 자주 봤어요. 제가 자주 깨워주기도 했는데, 그 뒤로 코피도 되게 자주 흘렸던 것 같고요.” 동료 이창민(가명) 씨는 선우 씨가 사경을 헤매고 있던 2022년 1월, 선우 씨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동일한 공정, 바로 옆 라인에서 근무했다. 선우 씨는 집에 돌아가면 쓰러지듯 잠들면서도, 내내 피로를 호소했다. 선우 씨는 반도체칩에 전자기판을 부착하는 칩 어태치(Chip Attach) 공정에 있었다. 4조 3교대 근무 형태. 6일 근무하고 이틀 쉬는 식이었다. 6일 중 하루 이상 연장 근무는 필수였다. 한 주에 약 51시간 30분을 일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한도인 ‘주 52시간’을 넘지 않게끔 맞춰진 시간이다. “역한 냄새. 약물이랑 아세톤 냄새가 나죠. 주유소보다는 조금 약한데, 맡으면 불쾌한 냄새예요. 퀴퀴한 냄새라고 해야 되나.” 선우 씨에게 주어진 건 방진복과 얇은 덴탈마스크, 천코팅장갑, 비닐장갑이었다. 입술 모양이 다 보이는 얇은 마스크를 뚫고 독한 냄새가 들어왔다. 기계에 묻은 화학물질을 씻어내다 보면 비닐 장갑이 찢어져 손이 젖기도 했다. 환경부가 운영하는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에는 사업장에서 다루는 화학물질 정보가 공개돼 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다루는 화학물질은 혼합물질을 포함해 모두 365가지. 이를 단일물질로 구분하면 111개에 달한다. 여기에는 구리, 주석, 은 등 간 독성을 유발하는 물질 26개도 포함된다. 회사는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반도체 공정 중 유해성이 낮은 후공정을 담당하고 있는 업체”라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작업환경측정 결과 측정대상 물질 유해인자 ‘불검출 또는 검출한계 미만’” 결과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작업환경측정 제도의 한계가 있다. 사업장에서 다루는 모든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이뤄지지 않고, 일부 요인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는 점. ‘작업환경측정 대상 유해인자’로 정해진 물질에 한해 노출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검사 대상이 된 화학물질은 111개 중 46개. 간 독성을 유발하는 물질 26개 중에서는 15개만 측정 대상이 됐다. 또한, 복합적으로 유해인자에 노출된 경우 신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의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선우 씨는 4조 3교대로 근무했다. 야간작업은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다. 동시에 다량의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에 노출돼 있었다. 야간작업, 또는 각각의 유해인자에 대한 개별 인과관계를 연구한 결과는 존재한다. 반면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자료는 부족하다. 그 때문에 업무상질병 여부를 판단할 때, 복합적인 유해인자가 질병에 미칠 영향을 보다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도 있다. “유해인자 노출기준은 해당 유해인자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평균 근로시간 이상으로 장시간 근무하는 경우나, 작업강도가 높거나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등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등에는 유해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대법원 2017년 11월 14일 선고, 2016두1066) 근로복지공단이 ‘불승인’ 결정을 통보한 것은 지난 5월. 산재 신청으로부터 약 1년 8개월이 지난 때였다. ▲직업환경연구원 조사 결과, 독성 간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물질의 노출이 없었다 ▲작업환경측정 결과에서 측정대상 물질 유해인자 불검출 또는 검출한계 미만이었다 ▲사업장 측 진술상, 동일공정 근무자 중 유사 증상 발병자 또는 검진 결과 이상소견자는 발생한 적 없다는 점들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다만 판정위원 중 한 사람은 “작업 중 간독성 물질은 일부 있”었다면서도, “독성이나 노출량을 고려할 때 상병을 유발할 수준은 아닐 것”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사업장) 조사하는 날 (연구원) 태도를 보고 마음의 준비는 했어요. 회사 설명만 듣고 ‘그렇군요’ 하고 넘어가고, 그걸 또 곧이곧대로 믿고. (저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래도 (판정위원) 만장일치로 불승인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진 못해서 충격 먹었어요. 전원(불승인)은 말이 안 되죠.”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데 있다. 대법원은 이를 고려해, ‘현재의 의학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규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직업 관련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 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7년 8월 29일 선고, 2015두3867) 선우 씨는 녹아버린 간 때문에 그 원인을 명확히 알아낼 길이 사라졌다. 대신 평생토록 약값과 치료비가 따라다닌다. 그는 2022년 5월 회사를 퇴직해야 했다.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떠넘겼다는 죄책감에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3년간 든 치료비와 약값만 약 2억 원. 평생 얼마나 더 들지는 알 수 없다. 앞서 선우 씨가 산재를 신청한 이유에는, 가족에게 짐 지운 돈 걱정을 줄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선우 씨는 지난 8월 행정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에 취소를 구하겠다는 취지다.  “기다리는 시간이 제일 힘들어요.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과정에서 희망고문이 제일 힘들죠. 그래도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서 이겨내 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요, 아직은….” 생사의 고비를 넘기자 산재 승인의 벽을 넘어야 했다. 무엇이 선우 씨의 간을 녹게 했는지 누구보다 알고 싶은 사람은, 바로 선우 씨 자신이다. 음주 습관이나 가족력, 약물 과복용은 원인은 아니었다. 작업장에 대한 의심은 있지만, 복합요인에 대한 연구는 미흡하다. 산재 불인정의 근거로 제시된 역학조사 결과나 작업측정보고서 역시 한계가 지적된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 번 더 고비를 넘겼다. 당시 주치의는 재이식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위중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간 이식을 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 다행히 약물로 위기는 넘겼다. 다만 앞으로 몇 번의 위기를 더 넘겨야 할지, 또 몇 번의 재이식을 받아야 할지, 아니 재이식을 받을 수는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법원(판례)에서는 산재보상보험법에서 말하는 업무와 질병 간의 상당인과관계는 ‘의학적’ 인과관계가 아니고,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규범적’ 인과관계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왔다. 그럼에도 (근로복지)공단은 협소한 의학적 판단기준으로 산재불승인을 남발하여온 것이다.”(이종란 노무사, 2024년 7월 ‘산재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산재보험 개선 과제 토론회’ 자료집 중)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스태츠칩팩코리아의 반론을 듣고자 지난 8월 19일부터 약 30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지난 8월 30일 기자는 인사팀 관계자, 안전팀 관계자, 임원급 관계자와 번갈아 소통했다.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판단에 이견이 없다”, “당시 사내 공지로 헌혈 활동을 권하는 등 선우 씨를 도우려고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보도로 인해) 회사에 피해가 발생하면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안전팀 관계자는 약 40분간 안전관리 방침에 대해 설명했지만, 이후 비보도를 요청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셜록의 보도 이후, 지난달 11일 내용증명을 보냈다. 앞선 보도에서 “허위사실을 포함하여 당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선우 씨에게 음주 때문에 질병이 발생한 것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없고, 본건 직원이 손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하는 용액도 역학조사 당시 ‘물’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작업환경측정 및 역학조사 결과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은 점, 매월 직원들을 상대로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점, 사내 유사한 병명이 발생한 적도 없는 점”을 강조했다. 끝으로 “당사의 명예를 침해하는 위법한 보도 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본건 기사를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