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앞은 에스파, 뒤는 GD… “연말까지 인간트리 유지”[윤석열을 감옥으로]
국회의사당역 4번 출구를 빠져 나오자 K팝 세상이었다. 에스파의 ‘위플레쉬’가 귀를 때리고, 알록달록한 응원봉이 눈앞에서 춤을 췄다. 응원봉 모양과 빛깔은 제각각이지만, 구호는 동일했다. “윤석열 퇴진!”“국민의힘 해체!” 목소리의 주인공은 거의 20대 초중반 여성. 귀와 눈은 인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뇌에 전달했지만, 적응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오래된 정보로 가득한 내 40대 후반의 뇌는 에스파의 노래처럼 빠르지 않았다. 다른 세상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2002년 미선-효순 촛불집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 등 사안에 따라 촛불집회 분위기는 변했지만, 이번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걸그룹 에스파 곡에 맞춰 탄핵 구호를 외치는 세상이라니. 구호 타이밍과 박자 맞추기도 어려웠다. 분위기 파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집회 대열 끄트머리에선 지드래곤의 ‘삐딱하게’가 크게 울려퍼졌다. 이건 또 뭔가 싶었는데, 오히려 마음의 적응이 쉬워졌다. 에스파에 비하면 지드래곤은 ‘왕년의 가수’니까.  내란수괴 윤석열 탄핵이 불발된 이후, 새 주의 첫 월요일(9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선 어김없이 K팝이 큰일을 했다. 20대 여성이 주축이 된 집회 참석 시민들은 촛불보다 오래가고 바람에도 안 꺼지는 응원봉으로 무장했다. 여기에 더해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와이어 전구를 몸에 두른 ‘인간트리’도 등장했다. “지난 토요일(7일) 집회는 못 나왔는데, 뉴스로 보니까 너무 재밌어 보이더라구요. 저는 아이돌 응원봉이 없어서, 집에 있던 크리스마스 트리(전구)로 온몸을 감고 나왔어요. 어차피 연말이니까, 분위기 좋게 ‘인간트리’로 해보자고 했어요.” 대학생 고예림(23세) 씨는 나무처럼 두 팔을 펼쳐보였다. 머리부터 허리까지 감긴 작은 전구에서 알록달록한 빛이 점멸했다. 고 씨는 윤석열의 내란이 터진 지난 3일 밤, 인터넷 게임을 하고 있었다.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는데, 비상계엄 뉴스가 뜬 뒤로는 손에 아무것도 안 잡히더라구요. 저희는 계엄을 겪은 세대가 아닌데도, 뭔가 두려운 느낌이 들기도 했거든요.” 공포감은 같은 세대와 연결된 뒤부터 조금씩 사라졌다. “SNS(트위터, 현 X)에 들어가니까 사람들이 다들 놀라면서 분노하고 있더라구요. 모바일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도 민주주의 덕분인데, 이게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의견도 많았고. 나 혼자만 분노하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도 들고….” 많은 사람들처럼 고 씨 역시 SNS에서 함께 분노하고, 공감하고, 결국 집회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9일 집회에 함께 참석한 친구 추예지(22세) 씨 역시 트위터에서 만난 친구다. 추 씨 역시 온몸에 전구를 둘렀다. 20대 초반인 이들은 탄핵 집회에 또래 여성이 많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할까. “여초(여성들이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트위터 등에서 그동안 사회적 이슈가 많이 논의돼 왔거든요. 저희도 거기서 정보를 얻고 의견도 교환했구요.윤석열 씨는 지난 대선 때부터 여성혐오 분위기를 만들어냈잖아요. 여성가족부도 없앤다고 했고, 최근엔 또 여대 문제도 있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의 분노가 많이 쌓인 게 아닌가 싶어요.” 추예지 씨의 말이다. 여기에 고 씨가 “20대 남성들의 집회 참여가 지난주보다 늘어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두 사람의 촛불집회 참여는 지난 금요일에 이어 이날이 두 번째. 집회에 대한 거부감이나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SNS에서 봤을 때도 디게 즐겁고 재밌게 보였는데, 현장에 나오니까 더 신나요. 같이 노래 부르고 춤도 추니까요.”(고예림) 두 사람은 연말까지 ‘인간트리’ 콘셉트를 유지하기로 했다. 고 씨는 “대통령 탄핵이 될 때까지 계속 집회를 나올 예정”이라며 “우리는 될 때까지 싸울 것이기 때문에 시민이 무조건 이긴다, 탄핵은 올해 내에 마무리 될 것 같다”고 말했다. 9일 진행된 탄핵 촛불집회는 행진을 거쳐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를 포위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시민들은 당사를 향해 “국민의힘 해체하라”를 반복해 외쳤다. 집회는 오후 9시에 끝났다. 고 씨와 추 씨는 그제서야 늦은 저녁을 먹으러 현장을 떠났다. 몸에 두른 전구에서는 계속 반짝반짝 빛이 났다. 다시 멀리서부터 K팝이 울려 퍼졌다. 이번엔 로제의 ‘아파트’였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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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 철야 촛불 지킴이… 그들의 밤에 함께했습니다 [윤석열을 감옥으로 8화]
지난 8일 밤 10시가 가까워진 시간.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국회 앞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정문으로 향하자 가장 먼저 들린 건 시민들의 목소리였다. 정문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김건희를 특검하라! 국힘당을 해체하라! 국회 앞을 지키는 시민들의 촛불은 밤새도록 계속됐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8일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국회 앞을 지키는 시민들과 밤을 지새웠다. 국회 앞에 밤새 촛불을 켜는 시민들이 있다고 제보한 사람은 김승유 변호사였다. 부산에 사무실을 둔 그는, 지난 금요일 서울로 향했다. 주말에 열린 범국민 촛불 대행진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에서 발생하는 갈등 상황을 조정하는 일을 도맡았다. 김승유 변호사 역시 노란 조끼를 입고 지난 7일 범국민 촛불 대행진에 참석했다. 집회가 마무리되면서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갔지만, 여전히 국회 앞에 시민들이 있었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일곱 개의 국회 출입문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이들은 윤석열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국회를 빠져나가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막아섰다. 밤을 새워 국회 출입문 앞을 지켰다. “제가 어제(7일) 국회 앞 지키는 분들과 이야기해봤거든요. 그런데 어디 단체에서 온 것도 아니고, 개인이 자발적으로 남아 계시더라고요. 특히 10대, 20대 여성분들이요.” 기자는 8일 국회 1번 출입문 옆 돗자리를 깔고 앉은 이들에게 다가갔다. 여덟 명이 둘러 앉아 담요를 덮고 있었다. 두꺼운 패딩 안으로 한기가 파고들었다. 열여섯 개 눈동자에 경계심이 가득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기자님이시면 명함 한 장 주시겠어요?” 하필이면 지갑에 남아 있는 명함도 없었던 날. 경계심을 풀기 위해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췄다. 스마트폰으로 ‘셜록’을 검색해 보시고는 신원이 보증(?)됐는지, 경계가 조금 누그러진 분위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기자에게 돗자리 방석을 건네주었다. 이들도 모두 오늘 처음 만났다. 처음 보는 외부인을 반길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스팔트 위, 천막 하나 없이 돗자리와 담요로 버티는 사람들은 외부에 완전히 노출돼 있다. 그러다 보니 동의 없이 촬영을 당하기도 하고, ‘해코지’를 당하기도 한다. 특히 하루 전날에는 “후문을 지키던 ‘할아버지’가 젊은 남성에게 맞는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보안관’은 자연스레, 현장을 가장 오래 지킨 강아무개(43) 씨가 도맡았다. 그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표한 지난 3일, 강원 원주시에서 부리나케 달려왔다. 15만 원이 넘는 택시비쯤은 상관없었다. 강 씨는 국회로 들어오려고 했던 장갑차를 막아섰다. 머리 위로 헬기가 지나갔다. 총을 멘 군인들이 국회로 진입했다. 머리털이 쭈뼛 서고 다리가 덜덜 떨렸다.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6일째 같은 옷을 입는다. 강 씨는 밤새 국회 앞을 지키다가 오전 5시 반이 지나면 종로에 있는 사우나로 향한다. 여의도 근방 사우나는 물가가 비싼 탓이다. 그곳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면 무인 세탁소를 향한다. 입고 온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돌린다. 그리고 다시 국회로 돌아온다. 기자가 만난 강 씨의 목소리는 꼭 감기 걸린 사람처럼 목이 쉬어 있었다. 매일같이 목 터져라 “윤석열 탄핵”을 외친 탓이다. 수면 부족과 한밤의 칼바람으로 결국 몸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는 지난 7일 감기에 걸렸다. 그럼에도 매일 집회 현장에 나온다. 며칠 전에는 걱정하는 엄마의 전화도 받았다. 선두에 나서지 말라는 말이었다. “저는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자꾸 찾아요. 그러면 어떡해. 그냥 가는 거예요.” 그는 잠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오전 2시쯤 되면 국회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손에는 무전기를 챙긴다. 이것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한 용품이다. 순찰 시간이다. 걸어서 약 40분이 소요된다. 총 일곱 개의 국회 출입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핀다. 철야 농성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일도 늘어난다. 4번 게이트에서 시비가 붙었다는 말에 달려가 보면, 이미 시비 건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가버린 뒤다. 그 말에 발걸음을 돌리면 반대편에 있는 7번 게이트에서 경찰과 싸움이 붙었다는 무전이 들린다. 그러면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달밤에 질주. ‘촛불 보안관’의 일이다. “(윤석열이) 탄핵되면 집으로 갈 건데, 점점 돈이 떨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게 더 장기전으로 가면 안 돼요.” 국회 주변에는 각종 차가 주차돼 있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주차한 줄로만 알았다. 아니었다. 시민들이 자신이 운전하는 버스, 화물차, 트럭, 자가용 등을 세워서 벽을 만들었다. 장갑차의 접근을 막기 위함이었다. 저마다 차를 끌고 와 국회 주변을 에워쌌다. 강 씨는 카키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시민 분이 준 선물이었다. 현장에 오래 있다 보니 그는 유명인사가 됐다. 지난 5일 동안 그는 아홉 군데 언론 인터뷰에 등장했다. 유튜브 채널은 셀 수도 없다. 하루는 찜질방에서 쪽잠을 자는데, 중년 여성이 그를 깨웠다. 처음 보는 얼굴에 어리둥절하게 눈을 껌뻑이자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집회 현장 안 가시고 여기 계세요? 같이 가요. 지금 안 가면 차 막혀요.” 세 시간도 채 못 잤다. 결국 오전 11시에 국회 정문에 도착했다. 아직 사람들이 채 모이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국회 앞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잠을 깼다. 아스팔트 위에서 한밤은 강추위를 견디는 시간이다. 둘러앉은 이들은 담요를 덮고 있다. 핫팩으로 무장도 했다. 그럼에도 발가락 감각은 무뎌졌다. 처음에 느껴지던 발가락이 깨질 듯한 통증도 시간이 지나자 둔감해졌다. 아침을 맞기 위해서는 긴 어둠을 견뎌야 하고, 봄을 맞기 위해서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 이들은 그런 마음으로 집회 현장에 나온다. 집에 있어도 잠에 들기 어렵다. 언제 또 비상계엄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일상을 보내고 있다.  “차라리 국회 앞에서 저랑 비슷한 생각하는 사람들 만나는 게 마음이 편해요. 집에 있어도 잠을 잘 못 자거든요. 비상계엄 터진 이후로는 계속 그랬던 것 같아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정치, 경제,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까지 뒤흔들었다. 배달을 전업으로 하는 남성 두 명은 여분의 피켓을 찾았다. 오토바이에 붙이고 다니고 싶다는 이유였다. 벌써 “윤석열 탄핵” 피켓을 붙이고 다니는 기사들도 있다고 전했다. “(윤석열 정권이) 딱 그런 것 같아요. 쓸모없는 사랑니. 뽑을 때 빨리 뽑아 버려야 돼, 더 썩기 전에. 안 그러면 아파요.” 이날 국회 앞을 지킨 대다수가 20대 여성. 이들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트위터(현 ‘X’)에 올라온 현장 소식 보고 왔어요.” 철야 농성에 참여한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 야심한 시각에도 사람이 현장에 있다는 소식에 ‘나도 뭐라도 해야지’, ‘움직이지 않으면 세상은 안 바뀐다’, ‘혼자 있으면 위험하니까’ 하는 생각으로 나왔다. 집회 현장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니 용기를 내고 동참하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수능 마치고 서울로 놀러온 재수생, 아르바이트 마치고 달려온 대학생, 일 마치고 막차 탄 직장인까지. 셜록이 이날 만난 약 20명의 여성들은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 사이였다. 특이한 건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박근혜 퇴진 집회에 참석 못한 미안함 때문이기도 하고, 어제 집회에 나온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기도 하고, 오늘 찬바람 맞을 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기도 했다. 이들은 ‘현생(현실의 삶)’을 이야기하며,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의 사정은 이해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의 ‘현생’에서는 윤석열 탄핵 집회가 중요했다고 입을 모았다. 7시간 뒤 봐야 하는 시험에서 한 번 정도는 미끄러져도 괜찮았고, 일하면서 조금 피곤해도 괜찮았다. 다만,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일은 괜찮지 않았다. 정치는 일상과 동떨어져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번 집회에서는 각자 응원봉을 들고 나온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팬덤 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해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을 통한 내성이 있다. 장시간 오래 서 있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응원봉을 흔드는 건 식은 죽 먹기다. 화장실을 가지 않는 요령도 꿰고 있다. “콘서트를 통해 단련”할 수 있었다. 철야 농성에 참여한 이들 손에도 응원봉이 들려 있었다. 잠이 쏟아질 때면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기자도 이들과 이야기 나누겠다고 두 시간을 책상다리 하고 앉아 있으니 고관절이 뻐근했다. 허리도 뻣뻣해졌다. 양쪽 바지 위에는 부착형 핫팩을 붙였지만 한기가 감돌았다. 서 있으면 춥고 다리가 아프고 앉아 있으면 온몸이 쑤셨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지하철 막차가 끊기면 지하철역 내부는 새카만 어둠이 깔린다. 가동이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핸드폰 손전등을 들고 내려갔다 올라오는 건 웬만한 담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깊은 9호선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다 보면 도중에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다음 선택지는 주유소 화장실이었다. 그러나 영업을 마치면 문을 닫는다. 결국 근처에 있는 호텔 화장실을 이용한다. 한때 호텔은 외부인의 화장실 출입을 제한하는 경고문을 달아두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이 트위터에 공유되면서 화력이 모였다. 호텔은 화장실을 재개방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여섯 시 반. 돗자리 위에 앉은 이들은 ‘탄핵송’을 부르며 응원봉을 흔들었다. 신호등을 건너오던 남자는 우리를 향해 손가락으로 욕을 했다. 이후에도 두 번을 오가며 주시했다. 대신 그보다 응원하고, 고마움을 전하는 시민들이 더 많이 찾아왔다. 이날 돗자리 옆에는 핫팩과 귤, 치킨, 피자, 커피, 유자차 등이 가득했다. 힘내라고 주먹을 불끈 쥐거나 고맙다며 인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둠이 밀려와도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국회 앞 반짝이는 시민들은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탄핵이 될 때까지 불을 밝히겠다고 다짐했다. “계속 여기 있다고. 지켜보고 있다고. 지치지 말고 우리가 또 한 번 바꿔보자, 그런 마음으로 나오게 돼요.”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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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없이 구속되면… 대통령의 ‘옥중지시’ 가능할까 [윤석열을 감옥으로]
윤석열의 내란에 수사기관들이 나서고 있다. 9일 오전 11시경,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윤 대통령의 체포 가능 여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능하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 비슷한 시각,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도 윤 대통령의 긴급체포 가능성에 대해 답했다. “긴급체포에 필요한 요건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장) 공수처와 경찰청 국수본은 현재 윤 대통령의 직권남용죄, 내란죄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도 윤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했다. 헌법상 예외 규정에 따라, 대통령은 내란죄 혐의가 인정되면 재직 중에도 기소될 수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은 지난 7일 국회에서 ‘표결 불성립’됐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의 집단 불참 때문.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고 구속부터 된다면, 국정 운영은 어떻게 되는 걸까. 헌법 제71조에선 대통령의 직무권한 대행에 대해 아래와 같이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 헌법에선 대통령이 구속될 경우를 법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구속은 ‘궐위’일까, ‘사고’일까. ‘궐위’는 한자 그대로 어떤 직위나 관직이 비는 걸 뜻한다. 통상 사망, 사임, 탄핵 결정으로 인한 파면 등 관직을 내려놓은 상황을 의미한다. 법조계는 대통령 구속의 경우 ‘사고’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탄핵이 안 된 이상 대통령직은 유지가 되니까요. 보통 사고는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 이를 테면 하루이틀 너무 아파버렸다거나 그런 것도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사고로 봐서요, 형사 구금(구속)도 달리 볼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임자운 변호사)“우리나라에서 아직 대통령이 직무 수행 중에 구속된 사례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살펴보자면, 체포나 구속은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 놓여져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니까요, 그렇게 되면 사고로 볼 수 있을 듯합니다.”(서성민 변호사) 한 연구논문에선 헌법 제17조에서 말하는 ‘사고’를 “대통령이 재직하고 있지만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불가능한 모든 상태”로 봤다. “사고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예컨대, 국회의 탄핵소추의결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대통령권한행사 정지, 육체적 질병, 요양, 정신질환, 식물인간, 뇌사, 해외순방 중 연락두절, 마취를 요하는 의료검진, 수술, 시술 등등을 들 수 있다.”(박승호 <대통령 권한대행에 관한 몇 가지 쟁점> 아주법학, 2017년> 대통령의 구속을 사고로 본다고 할지라도, 한 가지 쟁점이 더 따라온다. 그렇다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임을 누가 판단해야 하는 걸까. 현행법에선 누가 판단권을 갖는지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있다. <수험기본서 헌법>(정회철, 2004년)에 따르면, 1차적으로는 대통령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만약 대통령이 의식불명이나 정신장애 등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대한 견해가 또 다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국무회의의 의결로 결정해야 한다는 견해와 ▲헌법재판소가 결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립된다. “헌법 71조 ‘사고’의 해석 문제인데, 형사 구금 상태를 ‘사고’로 볼 수 있는지는 결국 그 상황이 ‘직무수행할 수 없는 경우’인가로 판단될 거잖아요. 그 가부는 직무마다 달리 판단될 수도 있겠어요. 감옥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일도 있을 테니까요.”(임자운 변호사) 실례로 프랑스 헌법에선 정부의 요청에 따라 헌법위원회가 최종적으로 대통령직의 장애를 선언하게 된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대신 구속부터 된다면,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라는 판단에 따라 국무총리가 그 권한을 대행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한덕수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는다 할지라도 국정 혼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 총리 역시 내란 혐의로 고발을 당한 피의자이기 때문. 최악의 경우, 대통령의 ‘옥중지시’가 가능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행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 대통령의 경우는 아니지만, 실제로 ‘옥중지시’ 사례가 있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2011년 옥중에서 업무를 수행한 바 있다. 곽 당시 교육감은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를 매수한 혐의로 구속됐는데, 기소 전 구금상태에서 교육청 간부들로부터 옥중 업무보고를 받았다. 지방자치법 제124조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공소 제기된 후 구금상태에 있는 경우에는 부지사ㆍ부시장ㆍ부군수ㆍ부구청장이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구속됐을 때도, 기소 전까진 ‘옥중 업무’를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 박 구청장은,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된 이후에도 기소 이후 구치소에 수감된 139일 동안 급여를 받기도 했다. 그 금액만 1454만 원 상당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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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퇴진하라.
저는 가끔 강의를 나가요. 거기서 사귄 중학생친구에게 요즘 가장 불안한 게 뭔지 물었습니다. '친구랑 멀어질까봐 겁나요' 그런 것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쟁'이라고 답하더군요. 전쟁이 날 것 같다고. 그게 너무 무섭다고. 영상 뉴스보면 손발이 떨릴 때도 있다고. 어른들의 이념대립 이해관계 밥그릇 싸움에 아이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립니다. 비상계엄령으로 총든 군인과 탱크와 헬기가 길거리에 나타나기까지 했으니 앞으로 더욱 무서워하겠죠.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이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했는데, 거짓말한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군인이 먼저 국회를 점령하고, 비상계엄령이 계속 유지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길거리에 총 든 군인들이 서 있겠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더 이상 우리는 내 마음대로 뭘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이렇게 글을 적지도 못하고 친구들 몇 명 이상 만나면 감시 당하고 저도 sns에 글 올린 사람들도 다 잡혀갔겠죠. 상상만해도 끔찍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갈등을 민주적으로 조정하기로 약속했잖아요. 예산이고 뭐고 민주적인 장 안에서 설득해내야죠. 비상계엄령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대내외적 후폭풍을 감내할 정도로 엄청난 명분이었다는 생각이 저는 도무지 들지 않습니다. 뭐하러 피를 토하며 민주적인 절차와 장을 만든 건가요.   안 그래도 물가 올라서 힘든데 주식, 코인, 원화가치, 수출입, 여행금지국가 등등 경제에 끼칠 영향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군인이 배치 되고 탱크가 돌아다니고 헬기가 날아다니는 험악하기 그지없는 곳에서 공포에 떨 국민과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시민과 대치하고 물러나며 땅에 떨어질 군경의 위신, 국민의 안전 안보를 지킨다는 자부심, 신뢰, 이미지 훼손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언제든 올스탑될 수 있는 정치적 리스크를 진 후진국 이미지, 국격의 하락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국민들의 일상과 자산을 뒤흔들 계엄령을 과연 선포할 수 있었을까요? 국민들의 안보와 자유를 위협한 게 누구인가요? 국가의 경제, 외교, 국격을 말아먹은 게 누구인가요?   내 동생, 아빠, 아들이었을 군인과 시민이 대치하는 슬프고 아찔한 순간을 다시 만든 것만으로도… 계엄령 선포에 타격받을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경시한 책임만으로도 윤석열은 탄핵되기에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거창한 명분이 있든,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국민의 손과 발을 묶고 일상을 통제하는 비상계엄령은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하구나, 앞으로 계엄령 같은 일은 결코, 절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중한 책임을 묻기를 바랍니다.   그냥 믿고 흘러가는 대로 두기엔 아직 불안한 민주주의구나, 나도 내 시대에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구나 싶습니다.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윤석열은 퇴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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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을 대통령이라 부르는 것도 어제로 끝이다
‘김건희를 지키기 위해 나라를 버리는구나.’ 지난밤(3일) 비상계엄을 선언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텔레비전으로 보며, 맨 처음 든 생각이다. 부인 김건희 씨에 대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논란은 윤 대통령을 코너로 몰았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남용하며 막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명태균 씨가 개입된 여론조사 조작 의혹까지 터져나오며, 그렇지 않아도 레임덕 수준이던 지지율은 더 곤두박질쳤다. 화면 속 윤 대통령은 국회의 거듭된 탄핵소추안 발의와 예산안 처리 등이 계엄 선포의 이유라고 말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라고 호소했지만, 그 말을 믿을 국민이 몇이나 될까. 그저 우리 귀에는 ‘나라를 망치더라도 권력을 지키겠습니다’라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거부권으로 막을 수 없는 성난 여론. 아마도 국민 모두를 ‘입틀막’ 할 다음 카드로 선택한 것이 ‘계엄’ 아니었을까. 계엄. 그 두 글자를 들으면 국민들의 머릿속에 곧장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1980년 오월, 광주다. 군복을 입고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 곤봉으로 시민들을 내리치고, 쓰러진 시민들을 끌고 가는 장면. 그리고 쓰러진 주검 앞에서 가족들이 오열하는 장면….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러도 도저히 지워지지 않을 끔찍한 악몽이었다. 지난밤 국회에도 군인들이 나타났다. 군복을 입고 총을 든 계엄군들. 땅에는 장갑차가 나타나고, 하늘에는 헬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회의원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를 위해 국회 본청에 모이는 동안, 밖에서는 계엄군과 시민들의 격렬한 대치가 이어졌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총.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살상 훈련을 받고 ‘작전’을 수행하러 온 군인이다. 윤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하며 ‘반국가세력’ 척결의 목표를 분명히 했다. 계엄군이 만약 눈앞의 시민들을 ‘반국가세력’으로 간주했다면.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더 심한 폭력을 썼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지만, 누군가 정신 나간 발포 명령이라도 내렸다면. 1980년 오월 그날처럼. 하지만 그런 두려움을 떨치고 국회 앞으로 달려나온 수만 명의 시민들이 있었다. 기적처럼 모이고, 태산처럼 맞섰다. 온몸을 던져 계엄군의 장갑차 앞을 막고, 무시무시한 총부리 앞에서 도리어 “부끄럽지 않느냐”고 호통을 쳤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는 순간에는 다 같이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불렀고, 새벽이 올 때까지 구호를 외치며 국회 앞을 지켰다. 오월 광주에는 광장을 지키고 도청을 지킨 시민군이 있었다. 44년이 지난 2024년 12월 3일 여의도의 밤에도, 국회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군들이 있었다. 지난밤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빚졌다. 세대가 바뀌어도 기억해야 할 존경의 마음을 그들의 이름 앞에 남긴다. 하룻밤 사이 대한민국은 40년도 넘는 세월을 거슬러 뒷걸음질 쳤다. 밤새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 국민들이 얼마나 많을까. 뜬눈으로 수십 년 같은 하룻밤을 보낸 사람들은 오늘(4일) 아침이 되자 또 일상을 위한 발걸음을 옮겼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시민들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묻어 있는 듯했다. 하룻밤 사이 놀람과 분노,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짧은 안도와 긴 불안으로 옮겨갔을 마음들. 착잡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도 모두 소리 없이 일터로 향했다. 어젯밤의 열정도, 오늘 아침의 냉정도 모두 이 나라를 지키는 힘이다. 정말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은 계엄군도 아니고, 권력을 위해 나라를 버리는 무도한 대통령도 아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정의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시민들이다. 이제 윤석열을 대통령이라 부르는 것도 끝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아니라 내란사범이다. 그의 이름 뒤에는 하야나 탄핵이 아니라, 체포와 처단이란 단어가 뒤따라야 한다. “대통령 계엄선포에 적극 지지하며 모든 당원은 대통령 지지선언으로 힘을 모아주십시요.” 지난밤 국민의힘 박중화 서울시의원의 메시지다. 계엄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내란 범죄를 찬동하고 찬양한 자들 모두, 역사의 심판이 아니라 법에 의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관련기사 : <박중화 서울시의원, 의원 단톡방에 “계엄 적극 지지”>) 혹자는 말한다. 하룻밤의 해프닝이라고.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계엄’을 활용했던 두 독재자, 박정희와 전두환. 그들이 이 나라에 남긴 정신적 오물을 극복하는 데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나. 아직도 그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아서, 저 윤석열 같은 괴물이 탄생한 것 아닌가. 어설픈 관용은 필연적으로 비극의 반복을 부를 뿐이다. 어젯밤 한순간에 과거로 퇴행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분주한 하루다. 나라 곳곳에서 성명서를 내고, 기자회견을 열고, 집회를 하는 시민들의 행동을, 언론이 일일이 다 전하기도 어려운 정도다. 그리고 차분히 일상을 지키며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반짝이는 연결이 지난밤의 어둠을 밀어내고 있다. 하룻밤 독재의 단꿈은 스스로 촛불이 된 시민들에 의해 산산이 깨졌다. 이제 시민의 아침이 밝았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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