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아동성추행 신부도 안 잘렸는데… ‘괘씸죄’가 더 큰가[신부가 해고됐다 3화]
지금부터 몇 사람의 신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들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먼저 A 신부는 2014년 자신이 근무하던 성당에서 만 9세 미성년 신자를 두 차례 추행했다. 미성년 신자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며, 성당 사제관으로 데려가 범행을 저질렀다. A 신부는 미성년 신자의 입을 막기 위해 간식이나 선물 등을 따로 챙겨주는 등 거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2021년 4월 법원은 A 신부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당시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A 신부에게 5년 정직 처분을 내렸다. 현재 A 신부는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상태다. 하지만 사제직은 유지되고 있다. 교구는 2026년 4월에 정직 처분이 종료되면 A 신부를 은퇴시키겠다고 밝혀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었다. 은퇴하는 경우, 사제 신분이 유지돼 사실상 명예퇴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5월 1일 대구신문 기사에 실린 내용이다. 다음은 “나도 여자 좋아해”라는 말로 유명한 B 신부 이야기다. 2023년 2월 21일 대구MBC가 보도한 내용. 2018년 9월 대구교구 산하 사회복지법인 대표 B 신부가 신입 여직원들을 성추행했다. B 신부는 법인 교육관 식당 옆자리에 앉은 20대 여직원의 신체를 만졌다. 해당 직원이 놀라서 밖으로 나가자, 다시 불러 양팔로 껴안고 술을 따라줬다. 또 다른 20대 여직원도 성추행했다. 그러면서 “나도 여자 좋아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B 신부는 지난해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다. 사건 보도 이후, 대구교구는 B 신부를 대기발령 처분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취재 결과, B 신부는 최근 한 공동사제관 관장으로 부임했다. ‘여성 도우미’를 데리고 술판을 벌였다는 논란을 일으킨 C 신부도 있다. 2019년 7월 10일 대구MBC는 대구교구에 속한 경산성당 주임신부가 경산시 한 노래방에서 여성 도우미 3명을 불러 술자리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2018년 해당 술자리 참석자는 인터뷰에서 “신부님이 아가씨 2명 끼고 돈 5만 원 붙이고 놀고 (하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C 신부는 “앉아서 있었을 뿐”이라 반론했다. 논란의 주임신부 역시 사제직을 잃지 않았다. 셜록은 C 신부가 다른 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것을 확인했다. 2016년 대구교구가 ‘대구희망원’을 운영하던 당시, 시설 내 생활인을 상대로 체벌, 폭행, 폭언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내부규정을 어긴 생활인을 길게는 47일까지 ‘심리안정실’에 불법으로 감금하기도 했다. 당시 총괄원장이던 D 신부는 2017년 7월 감금 혐의 등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당시 신부로서 두 번째 구속된 사례였다. D 신부는 항소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 역시 사제 신분을 빼앗기지 않았다. 대구교구는 D 신부가 구속되자 ‘안식년’ 처분을 내렸다. 김 신부가 풀려나자, 징계하지 않고 오히려 본당 주임으로 임명해 시민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2018년 1월 뉴스민의 보도다. 셜록이 확인한 결과, 현재 D 신부는 원로사목자로 활동 중이다. 지금까지 언급된 네 신부들의 공통점은 모두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이라는 점. 그리고 이들 중 단 한 명도 사제복을 벗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신부들을 그대로 두고, 이 사람에겐 ‘면직’ 처분이 내려졌다. 바로 심기열 신부(34)다. 면직은 사제에게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다시는 성직자로 살아갈 수 없는 최후의 형벌.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해고된다고 해도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신부는 면직되면 지구상 어디에서도 다시는 신부가 될 수 없다. 심 신부는 2022년 12월 면직 통보를 받았다. 그는 면직 1년 전, 자신의 주임신부를 업무태만으로 교구청에 고발했다. 주임신부가 최소 일주일에 한 번꼴로 자주 골프를 치러 다니고, 그 때문에 미사 일정을 변경하고, 사제관을 벗어나 외박을 하거나, 당구 약속으로 주일(일요일)에도 본당을 비우는 행동을 문제제기했다. 하지만 교구는 주임신부가 아니라 심 신부에게 ‘휴양’ 결정을 내렸다. 교구는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 즉 ‘편집성 성격장애’가 있다고 몰아갔다. 심 신부를 직접 만나본 적도 없고, 명단조차 공개되지 않은 의문의 ‘자문단’이 내린 결정이었다. 심 신부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없음을 증명하며 싸워야 했다. 그 시간이 무려 8개월. 그는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심리상담센터 등에서 거듭 검사와 진료를 받았지만, 교구가 주장하는 정신질환이나 치료가 필요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교구는 심 신부가 ‘시키는 대로’ 지정된 정신과의원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지 않았다며, 이를 ‘불순명’이라 간주해 면직했다. 순명(順命)은 명령에 복종함을 뜻한다.(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심 신부는 2023년 2월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교구의 내부 문건과 교구 관계자의 법정 증언 녹취록 등이 확인됐다. 교구 성직자국장은 법원에서, 이른바 ‘골프신부’를 고발한 심 신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임신부에 대한 고발 내용을, 아주 부정적인 고발 내용으로 일관했고, 아주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보통 젊은 보좌신부가 주교님과 본당 신부, 또 교회 관계자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일반적이진 않거든요.”(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 대구고등법원 증인신문 중, 2024. 9. 25.) 성직자국장은 23년간 교구에서 사제 생활을 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경험한 면직 처분은 세 건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나는 여자 문제가 있는 사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돈 문제, 마지막 하나는 심기열 신부 사례였다. 성직자국장의 증언처럼, 면직 처분은 쉽게 내려지지 않는다. 기사 서두에 나열한 것처럼, 아동성추행 범죄를 저질러 3년간 감옥살이를 한 A 신부도, 산하 법인 여직원을 성추행해 재판에 넘겨진 B 신부도, 여성 도우미와 함께 술판을 벌였다는 C 신부도, 감금 혐의와 인권침해로 법정구속된 D 신부도 사제직을 유지했다. 아동성추행이라니. 교구는 사제의 자격은커녕 인간의 자격마저 의심되는 신부도 너그럽게(?) 품어줬다. 다른 신부들 역시 면직 처분을 받지 않았다. 대구대교구의 면직 기준이 무엇인지, 교구 성직자국장에게 물었다. “인간은 나약하니까 잘못을 저지를 수 있잖아요.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다시 사제로 살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참사회의를 거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거죠.” 성직자국장은 “사제직을 포기할 정도가 아닌 경우 자숙 기간을 갖게 하고 다시 기회를 준다”며, “면직은 다시 사제로 살기에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를 경우에 내려진다”고 설명했다. “심 신부에 대해 정직의 벌이 마땅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면직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어차피 심 신부의 고소가 이어질 것이므로 정직보다는 바로 면직을 내리는 것이 낫다고 본다. 정직을 내렸다가 면직이 이루어지려면 그 절차상 근거를 대기가 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참사회의 회의록, 2022. 11. 22.) 대구교구는 사제의 인사를 논의하는 참사회의에서 심 신부의 ‘면직’을 전략적으로 모의했다. ‘면직’이라는 결론을 이미 정해두고, 무엇 무엇을 문제 삼고 어떤 절차로 처리할지 그 명분을 찾고 방식을 논의한 정황이 있다.(관련기사 : <‘신부 해고’ 교구 회의록 입수 “바로 면직부터 내리자”>) 몇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취재 과정에서 교구 성직자국장은 기자에게 “(심 신부는) 한 번도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자체를 안 했다”고 말한 바 있다. 혹시 교구가 밝히지 못한 면직 처분의 진짜 이유가 ‘괘씸죄’는 아니었을까. 한 사람의 인격을 짓밟고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신부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왜 심 신부에게는 돌아가지 않았을까. 과연 심 신부에게 그들보다 “치명적인 잘못”이 있다고 봐야 하는 걸까. 지난 8일 대구대교구의 공식 입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총대리주교는 “재판(소송) 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성직자국장의 설명을 교구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심기열과 함께 생활했던 주임신부에게, 골프 약속 등으로 업무에 태만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해당 신부는 “심 신부에게 부담을 줄 만큼 (골프나 당구 등을) 한 적이 없다”며, “미사 일정은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그 신부(심기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 않다”며, “종교 내부 사안이라서 기자님도 접근을 조심하셔야 한다, 그 사람(심기열) 말은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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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해고’ 교구 회의록 입수 “바로 면직부터 내리자”[신부가 해고됐다 2화]
“안될 놈은 싹부터 잘라야 합니다.” 심기열 신부(34)의 아버지 심장욱(64) 씨가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교구는 언제부터 심기열을 ‘안될 놈’으로 생각했던 걸까. 총대리주교가 심 신부에게 “억압된 감정”이 있다고 판단했을 때부터? 정체 모를 ‘자문단’이 심 신부에게 ‘편집성 성격장애’가 있다고 진단했을 때부터? 아니면, 심 신부가 주임신부의 업무태만을 고발했을 때부터 시작된 걸까. 심기열은 2022년 4월 ‘휴양 결정’을 통보받았다. 교구는 자신들이 지정한 정신과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명령했다. 심 신부는 자신의 ‘멀쩡함’을 증명하기 위해 8개월간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교구에서 처음 지정한 의원보다 더 규모가 큰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검사와 진료를 받았다. 교구에서 주장하는 편집성 성격장애나, 치료가 필요한 정신과 질환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교구는 2022년 12월 그를 ‘면직’했다. 인사발령 공문에 면직 사유는 단 한 줄도 없었다. 심기열에게 따로 연락하는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소송을 걸어서 싸우는 것도 신앙인으로서 너무 부끄러워요. 주교님, 신부님들을 정말 어렵게 생각하고 존경했어요. 그런데 우리 아들 사건 터지면서 실망이 컸습니다. 사람들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마음의 위로를 받고 싶어서 신앙을 찾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안에서는… 실망이 너무 컸어요.” 심기열의 가족 모두가 천주교 신자다. 어머니 조성옥(64) 씨는 어렵게 신부가 된 아들이 갑자기 정신질환자로 낙인 찍혀 면직된 상황에서 수치심 따위는 이겨낼 수 있었다. 심기열은 2023년 2월 교구를 상대로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도대체 왜 자신이 사제복을 벗어야 하는지, 면직 사유라도 알고 싶었다. 소송 과정에서 심기열은 몰랐던, 면직 결정 과정 속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둘 드러났다. 면직 1년 전인 2021년 12월 22일 심기열 신부는 교구청에서 주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면담했다. A 성당의 주임신부인 ‘골프 신부’를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주임(신부)은 오전에 골프를 친다고 미사를 빠지거나 오후로 변경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주임신부가) 변하겠다고 이야기하고서 변하지 않았다.”(심기열 신부와 1차 만남 대화록, 2021. 12. 22.) 심 신부는 주임신부가 잦은 골프 약속으로 미사 일정을 변경했다고 주장했다. 심 신부는 기자에게 “사제관을 벗어나 외박을 하기도 하고, 주일(일요일)에도 당구 치러 본당을 비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매달 첫 목요일에 골프모임이 있어서 간 적이 있지만, 자주 가지는 않았다. 골프는 한 달에 4번 이상 가지 않았다.”(심기열 신부와 1차 만남 대화록, 2021. 12. 22.) 주임신부는 적어도 한 달에 네 번은 골프를 치러 나갔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날 면담 이후, 주임신부에게 내려진 조치는 없었다. 오히려 자문단은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이 있다고 판단했다. “자문단이 편집성 성격장애 진단을 내렸다는데, 어떻게 본인 없이 병 진단이 가능합니까?” 진찰은 없었고, 진단만 있었다. 교구는 자문단이 정신과 전문의, 심리전문가 등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문단 구성원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다. 심 신부는 진찰도 없이 자신을 정신질환자라고 진단한 ‘비밀’ 자문단이 정말 전문가가 맞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자문단의 명단은 그 활동을 위해서 비밀을 유지해야 하기에 밝힐 수 없다. 그리고 그 명단을 공개하면 심 신부와 부친이 그들을 괴롭힐 것 아닌가!”(참사회의 회의록, 2022. 11. 22.) 셜록은 심 신부의 휴양 결정에 근거가 된 자문단의 자문 내용 문서를 직접 확인했다. 역시 자문단 구성원의 이름이나 소속은 적혀 있지 않았다. 교구는 A4용지 반 장, 약 20줄에 불과한 이 문서 내용을 근거로,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 치료를 받으라’는 휴양 결정을 내렸다. 문서에는 심 신부가 “교회법과 규정을 따지는 것”을 지적하며, 이를 “정신병 수준”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어릴 때 가정으로부터” 시작됐을 거라고 추정했다. “정당화 시키기 위해 주교님과 면담, 교회법, 규정 등을 따짐.”“정신병 수준. 주교님 앞에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은 현실감 없는 것으로 현실 사회 적응이 어려움.”“이 정도 수준이면 어릴 때, 가정으로부터 원인이 시작될 확률 높음. 뿌리가 깊음.” (2022. 1. 6. 성직자국 자문단 자문 내용) 심 신부는 소송 과정에서 스스로 ‘신체감정신청’을 요청했다. 이미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검사와 진료를 받았지만, 정신의학과 전문의를 통해 편집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이 있는지 다시 감정을 받겠다고 한 것. 하지만 교구 측은 “감정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면직의 이유가 정신질환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사제인 원고(심기열)가 가톨릭교회의 핵심 교리인 ‘순명(順命)’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 면직처분을 하게 된 것입니다.”(신체감정신청 및 증인신청에 대한 교구 측 의견서) 순명이란, 명령에 복종함을 뜻한다. 즉 정신질환 때문이 아니라,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서’ 심 신부를 면직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말장난 같은 부분이 있다. 교구가 심 신부에게 내린 명령이 바로 ‘너는 정신질환이 있으니 치료를 받으라’는 거였다. 심 신부가 ‘나는 정신질환이 없다’며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그게 교구가 말하는 ‘불순명’이 됐다. 이것을 ‘정신질환이 아니라 불순명 때문에 면직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비판한다. “가톨릭에서 ‘순명’은 진리에 대한 순명을 의미합니다. 성서에 나온 개념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내부 규칙이자 관행이죠.교구, 수도회 소속 구성원은 자신이 몸 담은 조직 최고 책임자의 말에 무조건 따르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상관 없이 ‘순명’해야 합니다. 개인이 조직 최고 책임자의 명령을 거역할 힘이 없으니까, 쫒겨나지 않으려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거죠.” 만약 심 신부가 정신질환이 없음에도, 교구가 명령한 대로 교구가 지정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순명’했더라면 아무 문제 없었을까? 셜록은 대구대교구가 심 신부에 대한 인사조치를 논의한 ‘참사회의’ 회의록을 입수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교구가 ‘면직’이라는 결론을 이미 정해두고 그 명분을 찾고 방식을 논의한 정황이 있다. 무엇 무엇을 문제 삼고, 어떤 절차로 ‘조용히’ 처리할지 전략적으로 모의한 흔적. “심 신부의 정신과적인 문제와 별도로 심 신부가 교구장에게 불순명하는 점, 심 신부의 사목자로서 부적합한 점을 문제 삼아야 한다.”(참사회의 회의록, 2022. 11. 22.) 교구 스스로도 ‘정직을 거쳐 면직까지 가려면 근거를 대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러니 ‘(정직 없이) 바로 면직부터 내려야 한다’고 결정했다. “심 신부에 대해 정직의 벌이 마땅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면직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어차피 심 신부의 고소가 이어질 것이므로 정직보다는 바로 면직을 내리는 것이 낫다고 본다. 정직을 내렸다가 면직이 이루어지려면 그 절차상 근거를 대기가 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참사회의 회의록, 2022. 11. 22.) 면직 처분은 흔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대구대교구의 다른 징계 사례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아동성추행으로 징역 3년형 받은 신부, 여직원을 성추행한 신부, 노래방 여성 도우미와 술판을 벌인 신부도 모두 ‘정직’ 처분에 그쳤다. 이런 신부들을 모두 제치고, 심 신부는 ‘면직’됐다. 정말 심 신부의 잘못이 그들의 잘못보다 더 무거운 걸까. 어쩌면 심 신부가 ‘골프 신부’를 고발한 순간부터 답이 정해진 게임은 아니었을까. 취재 과정에서 교구 성직자국장은 기자에게 “(심 신부는) 한 번도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자체를 안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교구는 심 신부의 면직 사유가 ‘불순명’이라고 하지만, 진짜 이유는 교회법에도 없고, 대한민국 법에도 없는 ‘괘씸죄’는 아니었을까. 교구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허위사실도 면직 사유로 붙였다. 심 신부가 신분을 속였다는 것이다. “신학원 교수신부의 제보에 의하면, 심 신부는 현재 경북대학교 대학원에 자신의 신분을 사제가 아닌 부제로 소개하며 편입하여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 교구에 관련 보고도 없이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은 심 신부 스스로 사제직을 계속할 뜻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심기열 야고보 신부가 보인 처신과 태도에 있어서의 ‘교구사제로서의 부적합성’과 ‘교회법과 사제생활지침 관련 위반사항’, 2022. 12. 23.) 심 신부는 휴양 기간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 입학했다. 정신질환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심 신부의 대학원 입학원서에는 “직업 : 신부”, “직장 : 천주교 대구대교구’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심 신부는 종교역사를 연구해 지난 2월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구는 심 신부가 대학원에 간 것은 ‘스스로 사제직을 계속할 뜻이 없다는 것’이라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데 이어, 신분을 속였다는 ‘카더라’ 식 주장을 면직 사유로 덧붙였다. “교회법에 사제는 늘 공부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휴양 기간에 대학원에 입학했다고 면직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대학원 교수님들도 제게 ‘신부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2년간 이어진 소송전. 1·2심 재판부는 모두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종료’되는 것을 말한다.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종교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며 사건을 판단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도 지난 16일 각하 결정을 반복했다. “소송을 걸기까지 용기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소송 전에는 그냥 그런대로 살면 된다고, 억울하지만 성공해서 복수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저 같은 사람이 또 생길 수 있는 거잖아요.” 심 신부가 자신이 몸 담았던 교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심 신부는 2심 재판부의 각하 소식을 듣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판결로 교구는 또 마음에 안 드는 신부를 정신질환자로 몰아가거나, 면직을 시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오히려 자신들의 판단에 잘못이 없었다고 더 당당하게 살지 않을까요. 교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은, 그럼 저는, 이제 어디 가서 말할 수 있는 건가요.” 김근수 소장 역시 심 신부가 어디에서도 자신의 문제를 구제받기 어려운 처치일 거라고 설명했다. 사제로서도 시민으로서도, 종교 안팎 어디에도 심 신부는 하소연할 곳이 없다. “교회 법원 구성원들이 전부 교구장에게 순명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교회법원에서 다퉈도 (심 신부 측) 승산은 기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사회법은 종교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소송을 각하하기 때문에, 심 신부는 하소연 할 데가 사실상 없는 거죠.” 지난 8일 대구대교구의 공식 입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총대리주교는 “재판(소송) 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성직자국장의 설명을 교구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심기열과 A 성당에서 함께 생활했던 주임신부에게, 골프 약속 등으로 업무에 태만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해당 신부는 “심 신부에게 부담을 줄 만큼 (골프나 당구 등을) 한 적이 없다”며 “미사 일정은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그 신부(심기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 않다”며, “종교 내부 사안이라서 기자님도 접근을 조심하셔야 한다, 그 사람(심기열) 말은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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