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독성” 인정됐지만… “인체 무해” 언론 보도 여전히 방치
2024년 9월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3년째 되는 달입니다. 2011년 9월, 보건당국은 원인 불명의 폐질환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13년이 흘렀지만 참사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지난 9월 20일, 피해자 41명이 13년만에 구제 급여 대상자로 선정되었고, 관련 재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디어 감시 매체 뉴스어디는 '가습기 살균제' 관련 보도를 살펴보다 놀라운 기사를 찾았습니다. "인체에 무해", "저독성 인정" 등의 문구가 담긴 가습기 살균제 홍보성 기사(기사형 광고)가 정정 없이 남아 있었습니다. 피해자에게 당시에 이 기사를 본 적 있는지, 지금 이 기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었습니다. 뉴스어디는 피해자와 함께 기사의 책임을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책임을 물었을까요? 언론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총 2편으로 된 기사의 1편을 먼저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눠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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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상대 흡입독성 실험한 것”…서울고법,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 성분 유해성 첫 인정
“영국 저독성 인증받은 항균제”, “인체 무해”⋯ 6개 매체 최소 10년간 홍보 기사 쏟아내
살균제 피해자가 수집한 기사 단서로 10여개 “가습기 인체 무해” 홍보 기사 방치 사실 확인
“가습기 살균제 안전하다” 홍보 기사 써 온 언론들, 법원 판결 뒤엔 정부∙가해 기업만 비판
지난 1월 11일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 제조사 SK케미칼, 유통사 애경산업 전직 대표가 항소심에서 금고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다. 재판부는 “어떠한 안전성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상품화 결정을 해 전 국민을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의 만성 흡입독성 실험이 행해진 사건”이라고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규정했다.
이로써 2018년 관계자들이 유죄를 선고받은 ‘옥시싹싹’을 포함해 피해를 야기한 모든 살균제 성분의 유해성이 법정에서 인정됐다. 참사가 알려진 지 13년 만이다.
지금도 검색되는 “살균제 인체 무해” 기사⋯94년부터 10년간 보도돼
가해 기업에 유죄를 선고한 판결 내용은 크게 보도됐지만, 최소 10년 동안 이 가습기 살균제를 홍보하는 기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언론은 없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부모이자 피해 당사자인 이은영 씨는 2015년부터 모아온 ‘살균제 홍보’ 기사를 <뉴스어디>에 제공했다. 1994년, 2002년, 2004년, 2005년에 실린 기사 10여 개다. <뉴스어디>는 이를 단서로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더 찾았다. <뉴스어디>가 취재를 진행한 1월 말까지는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했던 것들이다. 아래는 해당 기사 목록.
<가습기용 살균제 선봬>(매일경제, 1994년 11월 15일, 이채열 기자)<가습기 살균제 첫 개발>(한겨레, 1994년 11월 28일)<신상품/ 가습기 세균⋅곰팡이⋅물때 제거>(서울신문, 2002년 10월 15일)<가습기 사흘에 한번 꼭 청소>(경향신문, 2004년 12월 1일, 문주영 기자)<가습기 사흘에 한번 꼭 청소>(교차로신문, 2004년 12월 7일)<애경, 가습기용 방향제 출시>(머니투데이, 2005년 10월 25일, 최정호 기자)<[새상품] 심리적 안정⋅피로 회복 효과도>(일간스포츠, 2005년 10월 26일)<애경 ‘라벤더 가습기메이트’>(파이낸셜뉴스, 2005년 10월 28일)<아이방 가습기 준비하셨나요>(중앙일보, 2005년 10월 28일, 염태정 기자)<애경 ‘가습기메이트 라벤더향’>(문화일보, 2005년 11월 5일)
살균제 개발 첫해인 1994년 매일경제는 “독성실험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라고 했다. 이후 “영국에서 저독성을 인정받은 항균제를 사용, 인체에 무해하다”(문화일보), “무해한 항균제를 사용한 것이 특징”(서울신문), “인체에 무해한 제품”(동아일보), “아로마테라피 효과와 비슷한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다”(파이낸셜뉴스), “이 제품은 아로마테라피 효과에 의한 심리적인 안정감과 정신적인 피로 회복 효과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머니투데이), “가습기 전용 살균제를 사용하는 것도 가습기를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것으로는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등이 있다”(경향신문)는 보도가 뒤를 이었다. 한겨레와 중앙일보는 가습기 메이트를 언급한 기사는 있지만 인체에 무해하다는 내용은 없었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기사 내용과 달리 ‘가습기메이트’ 제조사 SK케미칼, 유통사 애경산업은 제품 출시 전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았다. 제품 출시 후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서울대 수의대 보고서도 외면한 것으로 지난 1월 11일 재판에서 확인됐다.
“안전하다” 홍보 기사 써 온 과거엔 눈감나?⋯법원 판결 뒤엔 정부∙가해 기업만 비판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쓴 기사를 방치하던 언론들이 2024년 1월 11일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전 국민에 독성실험”을 한 것이라는 항소심 판결 내용을 앞다퉈 보도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10년 이상 가습기 살균제를 홍보하는 기사를 써왔다는 사실을 짚은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가습기 살균제가 “영국에서 저독성 인정받은 항균제를 사용, 인체에 무해하다”고 했던 문화일보는 <12년 지나서야…가습기 살균제 등 ‘비감염질환 대비 체계’ 준비>(2023년 9월 15일)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막을 체계 준비가 늦었다며 보건당국을 비판했다. 살균제를 “인체에 무해한 제품”이라고 소개하던 동아일보도 “기업들이 하루라도 빨리 배상·보상 방안에 합의해 피해자의 어려움을 덜어줘야 한다”고 했다.
가습기를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를 추천하는 기사를 쓴 경향신문은 “돈벌이에 눈이 멀어 소비자 안전은 뒷전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라며 가해 기업을 질타하는 사설을 썼다. “무해한 항균제를 사용한 게 가습기메이트 특징”이라던 서울신문은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막을 기관은 설립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국회를 비판했다.
살균제 피해자 “광고로 돈 벌더라도 위법 대리는 언론의 선택지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인체에 무해하다”는 기사가 여전히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살균제 피해자 이은영 씨는 “이런 것들(가습기 살균제 홍보 기사)이 계속 남아 피해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위법을 대리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 언론의 선택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 20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살균제 홍보’ 기사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론사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해 볼 생각은 없냐”고 묻자 이은영 씨는 “언론사가 그 기사가 남아있다는 걸 아직 모를까요?”라고 되물었다. 이 씨는 과거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기사 수정을 요청한 적 있었는데 “언론사가 ‘언론중재위에 신고하라’고 되레 큰소리를 친” 경험을 얘기했다. “기력이 없어 전화도 몇 분 못 하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이은영 씨가 정정보도를 신청하려 해도 쉽지는 않다. 언론중재위원회는 보도일로부터 6개월 이내 기사만 피해 구제 신청을 받는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등 자율 기구는 최대 90일 이내 보도만 심의하고, 대부분 경고에 그치고 언론에 주는 불이익도 없어 피해 회복 효과가 없다. 이 씨는 “(언론사가) 스스로 문제라고 인식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 이런 입장을 내면 좋은 선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이 씨 같은 피해자가 청구 가능 시일이 지난 보도에 대해 항의해 볼 방법은 없을까.
<뉴스어디>는 피해자를 대신해 가습기 살균제 홍보 기사에 정정보도 등을 요청할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습기 살균제의 마지막 홍보 기사가 나온 때는 2005년, 살균제 피해가 수면 위로 처음 드러난 때는 2011년이다. 보도 시점 등의 제한으로 언론중재위와 자율심의기구에 피해 구제 요청은 불가능했다. <뉴스어디>는 다른 방법을 활용했다. <경향, 20년 만에 ‘가습기 살균제’ 홍보 기사 정정⋯ ‘나 몰라라’ 언론도>에서 공개한다.
취재 박채린(rin@newswher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