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 '정상'을 향하여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4 가을이 깊어지면서, 하늘이 맑아졌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스치는 거리를 걷다가 금방 지나가버릴 이 계절이 아쉬워 슬퍼지곤 합니다. 올해도 어느덧 100일 남짓 남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빠르게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바쁘게 달려오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00일이란 시간은 여전히 의미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의미 있는 삶의 순간들 속에서 우리 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할 기사들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응급실 대란을 데이터 저널리즘으로 심도 있게 구현한 경향신문의 기사입니다. 조선일보의 기획은 거대 플랫폼 기업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고요. 마지막은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을 요구하는 정신의학과 전문의의 인터뷰입니다.  짧은 가을의 끝자락에서, 남은 100여 일 동안 우리 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에 대해 잠시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폴라리스는 그런 여정에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1. 사건과 구조 : '응급실 대란'을 기록하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면 환자들은 충북 청주에서 서울로, 강원 양구에서 강릉으로, 경남 함안에서 대구로 100km가 넘는 거리를 응급실을 찾아 이동했다. 겨우 응급실에 도착하더라도 수술에 불가해 큰 병원을 찾는 도중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 황경상·이수민·권정혁 기자, <경향신문>  ⓒ 경향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가짜뉴스입니다. 죽어 나가요? 어디에 죽어 나갑니까?" '방탄 총리'로 변신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대정부질문 중 한 말입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국민이 죽어 나간다는 야당의 지적이 가짜뉴스라고 맞받은 건데요. <경향신문>은 한덕수 총리의 '가짜뉴스' 발언을 '뉴스'로 반박했습니다. 의료 대란이 200일을 넘어선 가운데, 지난 2월 20일부터 지난달 24일까지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응급실 뺑뺑이' 사례 34건을 분석했습니다. 환자들이 응급실에 도착해 최초 처치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 이송 거절 평균 횟수,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한 사례 등을 지역별로 분석해 디지털 콘텐츠 소개했습니다. 환자 13명이 사망했고 이 중 3명은 10대 미만이었습니다. 이송 시간이나 거절 횟수가 알려지지 않은 사건은 계산에서 제외했는데도 그렇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주장을 두고 '가짜뉴스'라고 밀어붙이는 정치인을 마주할 때마다 시민들은 주장의 진위를 궁금해합니다. 누구 말이 맞는지 당장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고르고 취재하는 게 언론인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기사였습니다. 최선의 방법이 어떨 때는 데이터가 되고, 또 어떨 때는 최대한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되겠죠. 이번에 <경향신문>이 선택한 방법은 데이터였습니다. 많은 언론사가 응급실 르포를 택할 때, 데이터를 선택한 방식이 신선해 폴라리스 식구분들께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뉴스 보러 가기 🔥 2. 연재·기획 : EU, 유튜브·틱톡 알고리즘도 조준 "최근에는 거대 플랫폼이 필요에 따라 알고리즘을 조작한 사례도 확인됐다. 지난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학자들이 알고리즘과 정치 편향성의 상관관계를 연구할 때, 메타(페이스북 모회사)는 의도적으로 양질의 신문 기사를 알고리즘이 더 많이 제공하도록 해 연구 결과를 왜곡시킨 사실이 밝혀졌다." ✍🏻 이해인 기자, <조선일보> ⓒ 조선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저작권 침해부터 마약 거래, 딥페이크 성 착취까지. 전 세계는 범죄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구글·메타·아마존과 같은 거대 플랫폼은 각종 범죄의 온상으로 기능하고 있죠. 지금껏 플랫폼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 행위는 규제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의 <’범죄 방조자’ 거대 플랫폼> 시리즈는 거대 플랫폼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다룬 기획입니다.  거대 플랫폼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었습니다. 삶에 재미를 더해주기도 했죠.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플랫폼의 세계에 묶어두고, 알고리즘을 통해 그 지배력을 강화해 왔습니다. 알고리즘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끊이질 않습니다. 유튜브 등 대표적 플랫폼 기업의 추천 알고리즘은 ‘비공개’로 운영돼 왔는데요. 유튜브는 이용자의 영상 시청 이력, 시청 시간, 검색 기록 등을 바탕으로 여러 영상 콘텐츠를 추천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변수들을 어떻게 조합해서 추천이 이뤄지는지, 구체적 작동 원리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최근 국제사회는 알고리즘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초대형 플랫폼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는 행위도 규제하기 시작했는데요. 플랫폼에 불법·유해 콘텐츠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시작한 거죠. EU는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불법 약물 거래·혐오 발언 조장 등 불법 콘텐츠 확산에 알고리즘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플랫폼이 야기하는 사회적 문제를 짚음으로써 그들이 다해야 할 법적·사회적 책임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이제껏 플랫폼은 ‘무정부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한국 정부도 거대 플랫폼을 규제해야 한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배경입니다. 플랫폼의 무분별한 성장 뒤, 감춰진 책임을 바로잡는 일을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디지털 공간을 더 안전하고 공정한 공간으로 재편하기 위한 움직임을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 3. 인터뷰 : "나를 사랑하자" 다짐 말라는 정신과 의사, 그 이유는 "무기력이 해결되면 다른 문제는 없었던 것처럼 치부되는데 사실 무기력이 나타났다는 건 '나 자신과의 관계'가 이미 훼손돼있다는 증거다. 한국은 굉장한 경쟁 사회라 무기력한 것도 싫지만 무기력하지 않게 돼 다시 경쟁을 하기도 싫은 것이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는 다시 무기력감이 올라올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치지만 때로는 질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는다. 경쟁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다는 걸 주목하지 않는다." ✍🏻 유지영, 이정민, <오마이뉴스> ⓒ 유노라이프 정신의학과의 문턱이 낮아져 갑니다. 자신의 증상과 의학적인 조치에 깊은 관심을 가진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저의 SNS 알고리즘에도 정신질환 당사자들의 자전적 이야기와, 전문의들의 콘텐츠가 자주 뜹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희망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 사회가 수많은 이에게 병을 유발하고 있단 생각에 씁쓸해집니다. 높아진 관심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이 묘하게 불쾌한데요. 일종의 ‘강박관념’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꼭 낫고야 말겠다는, 혹은 나의 질환이나 특성도 분명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기능임을 확인받고 싶다는 욕구가 느껴져요. ADHD로 사례를 들자면, 주의가 산만한 특성이 원시시대에는 유리한 기능이었을 것이라며 위로하는 콘텐츠가 많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사람이 꼭 쓸모 있어야만 하나요? 정신과 전문의 설경인 씨의 ‘나를 사랑하자 다짐 말라’는 말은 이러한 시각을 향한 일침입니다. ‘비정상적’인 정신질환과 특성을 제거해 천편일률적인 ‘정상 상태’, ‘생산적 상태’로 조정시키는 것. 그것이 정신의학에 대한 관심의 목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사람이 좀 비생산적이고, 우울하고, 산만하고, 불안하고, 착각을 하고, 기분이 날뛰면 어떤가요? 정신질환에 대한 강박, 심지어는 나를 보듬어줘야만 한다는 강박 없이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설경인 씨의 요지입니다.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 그것을 위해 우리가 손보아야 할 것은 개인일까요, 사회일까요? 우리 관심의 궁극적 목적은 아픈 채로도 살아가는 것이어야 하며, 그를 위해 사회를 성찰하고 바꾸는 일을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  뉴스 보러 가기 🔥 에디터가 남긴 편지 정신과의 대목은 환절기입니다. 인간 뇌는 참 복잡하고 또 단순해서 계절이 바뀌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입니다. 이번 주 폴라리스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정신과 의사의 인터뷰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가을인지 초겨울인지 헷갈릴 정도로 급격히 변해버린 날씨에 읽어보기 좋은 인터뷰라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한평생 우울보다 불안이 더 큰 고민이었는데요. 예컨대 이런 겁니다. '내 기사에 악성 댓글이 달린다'라는 건조한 사실에 걱정이라는 살이 붙으면서 '난 좋은 기자가 될 수 없고 앞으로도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악성 댓글의 영향으로 커리어를 마감하겠지 아 인생아' 이런 결론으로 흘러갑니다. 누군가는 비웃을 테지만, 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걱정 인형’ 독자분들은 제 편지를 보면서 고개 끄덕이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런 걱정 인형들에게 도움이 될 기사를 발견해서 여러분께도 소개하고 싶어요. 에픽테토스가 "인간은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점 때문에 고통받는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벌어진 일 그 자체보다 이를 확대해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고통받는 듯 해요. 기사는 걱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 편향’이 자주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인지 편향’이란 불안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단서를 확대해 인지하고 긍정적인 단서는 무시하는 현상을 뜻해요. 이때 걱정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나도 모르게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을 순간순간 알아차려야 한대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해 아는 게 먼저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자세한 방법은 기사를 참고해 주세요. (걱정 인형들 필독입니다!) 내 마음의 문제뿐만 아니라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제대로 '인지'하는 데서 시작하는 듯합니다.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사망하는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정치인이 인지하는 일, 거대 플랫폼이 국민과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입안자들이 인지하는 일, 현대 사회에서 정신질환이 그리 특수한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언론은 우리 사회가 이를 인지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는 듯합니다. 내 마음의 근심과 걱정을 제대로 인지하는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저도 그래볼게요!)  2024. 10. 07.에디터 반달🌙 드림 만든 사람들: 반달🌙, 부기🐢, 푸릇🌿, 만쥬🌰  폴라리스 구독하기지난 폴라리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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