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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切畏刀杖 모든 것은 폭력을 두려워한다
一切皆懼死 모든 것은 다 죽음을 두려워한다
以自量比較 자신의 마음에 견주어 보아
勿殺教他殺 죽이지 마라, 죽이게 하지도 마라
Sabbe tasanti daṇaḍassa sabbe bhāyanti maccuno
Attānaṃ upamaṃ katvā na haneyya na ghātaye
一切畏刀杖 모든 것은 폭력을 두려워한다
一切皆愛生 모든 것은 다 삶에 미련을 둔다
以自量比較 자신의 마음에 견주어 보아
勿殺教他殺 죽이지 마라, 죽이게 하지도 마라
Sabbe tasanti daṇaḍassa sabbesaṃ jīvitaṃ piyaṃ
Attānaṃ upamaṃ katvā na haneyya na ghātaye.
(『법구경法句經 Dhammapada』「도장품刀杖品 Daṇḍa-vag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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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動物權, Animal Right)이란 말 그대로 동물의 권리입니다. 그러면 무슨 권리인가? 감각을 가진 모든 동물이 인간에 있어서의 유용성과는 상관 없이 도덕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알기 쉽게 이야기하면 각각 개별 생명이 존중 받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지역을 막론하고 근대 이전부터 존재해 왔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를 새삼 왜 또 하느냐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구 중심의 근대와 그 이전부터 내려온 기독교 사상은 자연과 문명, 인간과 자연을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묘사하면서 인간이 자연을, 문명이 자연을 정복해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해왔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장 28절)
창세기의 이 구절은 초대 교부 중 한 명으로 영지주의(그노시즘)에 맞서 싸웠고 삼위일체 교리의 형성에 큰 영향을 준 리옹의 이레네우스(Ειρηναίος Λουγδούνου)가 『사도적 선포의 논증(Demonstratio apostolicae preaedicationis)』에서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든 것은 그리스도의 등장을 예견한 것이고 이는 인간이 신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며, 이것은 곧 인간이 신의 초월성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는 신의 모습과 닮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우리 인간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이 이후에 인간의 우월성이나 자연에 대한 정복 권리 같은 것을 비판한 신학자들도 계속 등장했지만 이들은 일단 세력을 얻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논리가 더 진전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성경도 텍스트이니까, 해석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그런 차원에서 기독교가 자연과 인간을 대립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충분히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자연 파괴에 아무 책임이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가톨릭도 개신교도, 전근대 사회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의 확산과 자연파괴의 정당화에 근거를 제시해주었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일부와 이에 반대하지 않은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을 생각하면 기독교에는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이런 배경에 대한 반성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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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권리, 생명의 평등에 대해서는 시대마다 지역마다 구구한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지면상 그런 이야기는 각설하기로 하고, 이야기를 대폭 줄여서 현대에 있어서 동물권 논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그 시작은 호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Albert David Singer, 1946~)가 쓴 『동물해방(Animal Liberation, 1975)』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피터 싱어의 주장의 시작은 우리가 흔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로 잘 알고 있는 공리주의입니다. 공리주의는 고통과 쾌락을 느끼는 모든 존재에게 평등한 이익이 갈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터 싱어는 공리주의 원칙을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도 확장한 것입니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차이가 고통을 덜 느낄 권리, 생명을 유지할 권리의 차이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물의 감정이 어떠한 것인지, 동물의 지성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우리는 추측을 할 뿐이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동물의 권리가 인간의 권리와 무조건 같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존 욕구와 고통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마음까지 다를까?’라는 점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피터 싱어는 이와 함께 종차별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어떤 존재가 특정한 종(種)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종에 따라 외양도 행동의 모습도 다 다릅니다. 하지만 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면 평등한 배려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존재가 종 때문에 이런 평등에서 배제되는 것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무엇이 다른지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합니다.
피터 싱어의 생각에 따르면 동물의 권리는 그들의 지능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끼리 지능 지수를 가지고 차별하는 것을 나쁘게 여기지요. 동물도 마찬가지 입니다. 동물의 지능이 인간보다 낮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물이 고통을 덜 느끼거나 생명에 대한 욕구가 인간보다 적은 것은 아닙니다. 피터 싱어는 이런 차원에서 육식을 배제하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사용하는 행위(대표적으로 동물실험)를 비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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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명의 중요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미국의 철학자 톰 레건(Tom Regan, 1938~2017)과 그의 저서 『동물권 옹호(The case of Animal rights, 1983)』입니다.
톰 레건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생명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서 끝이 나는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삶의 주체성이나 이성의 유무는 생명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영유아나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 지적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화를 냅니다. 그 이유는 생명을 가진 자에게 행해지는 폭력 그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지 거기에 이성이나 지능, 주체성 같은 것은 고려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가 비판하는 것은 결과를 중시하는 사상입니다. 예를 들면 동물 실험 같은 것입니다. 동물 실험이 비록 잔인한 면이 있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경제나 과학 뿐 아니라 윤리적인 결과까지)는 매우 크기 때문에 동물 실험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지요. 톰 리건은 이런 시각을 비판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그는 이런 예를 듭니다. 부자인 친척을 죽이고 그 재산을 챙겨서 사회에 기부를 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결과가 사회적으로 이롭다고 해도 우리가 그의 살인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죠. 톰 리건은 이런 점에서 피터 싱어가 취하고 있는 공리주의적 동물관에 한계가 있다고 비판합니다.
톰 레건은 육식을 자제하고 동물실험이나 사냥을 금지해야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어떤 이로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 생명을 죽이는 것은 나쁜 일이라는 도덕적인 사실, 오로지 그것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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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의의 연장선상에 게리 로렌스 프랑시옹(Gary Lawrence Francione, 1954~)이라는 법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 나와 있는 동물 복지와 관련된 법과 제도는 모두 동물 착취를 못 벗어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런 제도 안에서는 동물에 대해서 이런 걸 하지 마라 저런 걸 하지 마라 아무리 말한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아 그러면 그거 빼고 다 하면 되겠구만!’이라는 생각 밖에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사람으로서의 동물(Animals as Persons, 2008)』에서 동물권에 대한 철학에 기반하여 “소유물로써의 동물의 위치”, “동물의 권리와 동물 복지의 차이”, “동물의 특성이나 지성 유무에 의한 차이는 없을 것”을 법에 고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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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동물권의 철학적 기반이라고 하면 피터 싱어의 공리주의와 톰 레건의 권리론, 두 가지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공리주의적 입장은 최대행복이나 평등이라는 공리주의 원칙을 동물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고통과 쾌락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 것을 종차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동물도 인간과 같은 고통, 쾌락, 삶의 욕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동물에게도 이와 관련되어 인간과 같은 평등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입장에 대해서는 동물을 괴롭지 않게 도살하는 것 같은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톰 레건의 입장은 윤리 교과서에서 ‘정언명령’이라고 나오기도 하는 칸트의 의무론의 연장이며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입니다. 칸트가 말한 ‘인격 존중의 의무’를 ‘생명 존중의 의무’로 바꾼 것입니다. 우리가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에 대해서 비판할 때 거기에 대해서 구구한 논의와 그래서는 안되는 여러 이유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냥 같은 ‘인간’이니까 하면 안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톰 레건의 입장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같은 ‘생명’이니까. 생명을 해치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생명을 해쳐서는 안되고 동물을 존중해야 하고 어쩌구 하는 순간, 우리는 그 이유에만 집중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톰 레건의 입장은 명확하고 명쾌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종의 이러한 선언에서 구체적인 방안이나 대책을 만들어 낼 수 있겠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 공리주의적 입장은 결과를 중시합니다.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 모든 생명에게 평등하게 이익이 돌아가는 게 명확하게 눈에 보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톰 레건의 권리론은 결과 보다는 행위에 주목합니다. 결과가 다소 더디다고 해도 우리가 생명 존중이라는 지고한 가치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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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게 들어가면 동물권에 대해서는 해야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동물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가 같은 것이라면, 동물과 인간이 똑같이 위험에 처했을 때 우리는 정말로 동물을 구하고 인간을 포기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겠냐는 반문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또 스페인의 투우나 일본의 포경 처럼 동물의 권리를 위해 전통과 문화를 폐지하라는 것이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육식이나 가죽옷 같은 것에 반대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동물실험을 통한 의학/의료기술의 발달보다 동물권이 더 중요하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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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 책
1) 피터 싱어 저, 김성한 역, 『동물 해방』, 연암서가, 2012
2) 피터 싱어, 엘리자베스 드 퐁트네, 보리스 시륄닉, 카린 루 마티뇽 저, 유정민 역, 『동물의 권리』, 이숲, 2014
3) 임종식, 『동물권 논쟁 - 피터 싱어·탐 레건 그리고 제3의 해법』, 경진출판, 2021
코멘트
6저의 경우에는 철학 공부할 때에는 공리주의를 지지하지 않게 되고, 칸트식 의무론도 완전히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런 규범적 원칙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 정도는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싱어와 레건의 논의를 읽어보면, 각기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레건보다는 싱어의 논의에 손을 들어주고 싶어지더라구요. '현실주의'적 관점이라고 느껴졌던 것 같아요.
두 논의의 경우 모두 철학적/이론적 논의와 현실에서의 실천의 간극이 아직 충분히 좁혀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철학적 관점의 논의들도 발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포스트 휴먼'과 '동물권'을 연결하는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현직 연구자가 아니다보니 듣기만 하고 읽어보지를 못했네요.
동물 권리 향상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물권 사상사(?)가 이런 흐름과 구도로 되어있었다니 매우 흥미롭습니다. 저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익숙해진 단어 ‘종차별’이 70년대에 등장한 말이었다니 놀랍네요. 공리주의와 권리론 모두 끄덕여집니다. 현재 제도는 어느정도 공리주의까지는 반영하고 있는 것 같네요(부족한 점도 많고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도 많겠지만요). ‘인간만 중요하고 동물은 중요하지 않아!’는 더이상 아니라는 데까지는 어느정도 많은
시민들의 공감이 도달하지 않았나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