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정부의 실패가 만들어낸 전세제도의 부작용과 출구전략

202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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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불로소득 없고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희년함께 토지정의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세제도의 득과 실

일시에 목돈을 맡기고 2년의 사용권한을 빌리는 전세제도는 한국과 어깨를 견주는 OECD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제도이다. 최근에는 전세제도가 대한민국 주거문제의 원흉으로 비난받고 있지만 전세제도가 지난 수십년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주거 유형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전세제도가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효용가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세제도의 대표적인 장점으로는 ‘월세에 비해 저렴한 주거비’와 ‘월세에서 자가로 가는 주거사다리 역할’이다. 실제로 한국은 OECD 선진국 중 가처분소득 대비 주거비 지출 비율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림 1>   OECD 국가별 가구소비 지출 대비 주거비 지출 비율

OECD 국가별 가구소비 지출 대비 주거비 지출 비율
출처 : OECD Affordable Housing Database, 2020

서구 선진국에서 보증금은 1-2개월치 월세 수준이기에 사실상 보증금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순월세다 보니 소득에서 20-30% 가량이 주거비 지출로 나간다. 하지만 한국은 일시에 목돈을 맡기는 전세가 임차 주거 유형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면서 주거비 지출 비율을 대폭 떨어뜨리는데 기여했다.

주거비 지출로 나가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에 월세 거주자보다 빠르게 저축을 늘려 목돈을 만들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했고 전세보증금은 내집마련의 종잣돈이 되어 월세주택에서 자가주택으로 가는 주거사다리의 중간 다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경제성장속도가 가파르던 1970-80년대 개발도상국 시절의 대한민국은 고성장,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임대인 역시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으로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은행에 넣어 쏠쏠한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가계금융이 발달하지 않았던 개발도상국 시절의 대한민국에서 전세제도는 가계금융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임차인의 주거안정과 내집마련의 종잣돈 역할을 하며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실익을 주었기에 서구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전세제도가 지금까지 존속될 수 있었다.

그랬던 전세제도가 지금은 대한민국 주택시장을 교란시키는 원흉이 되었다. 지난 문재인정부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주택가격 상승기에는 전세보증금이 갭투기의 종잣돈이 되어 주택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여 주택가격을 급등시켜 무주택서민들의 내집마련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주택가격 하락기인 현재 윤석열정부에서는 주택가격보다 전세가격이 더 높은 깡통전세는 무주택서민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전세사기의 토대가 되고 있다.

‘그때 그시절’에는 임차인에게 내집마련의 주거사다리가 되고, 주거비 지출을 낮추어 주었던 전세제도가 지금은 왜 악순환의 고리가 되었을까? 전세제도는 그대로이지만 전세제도를 둘러싼 배경과 조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전세제도가 특별한 부작용없이 장점을 발휘하던 상황에서 전세제도의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오는 상황으로 바뀌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세주택에 대해 정부가 지원을 강화하였기 때문이다.

정부의 전세 과잉보호가 만들어낸 시장 왜곡

전세주택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이다. 2008년 이전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던 주택가격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주택가격에 낀 거품이 붕괴하면서 주택가격은 하락하고 시세차익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주택을 매입하려던 가구는 대폭 줄고 임차로 머무르는 가구가 대폭 늘어나면서 전세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주택시장 침체기에 ‘전세대란’ 문제가 주요 주거이슈로 등장하면서 그전까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은행의 전세자금대출이 2008년에 도입되었고, 2013년 공공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보호해주기 위한 전세보증보험 상품을 출시하였다.

주택시장 침체기인 이명박, 박근혜정부 시절 무주택서민인 전세임차인을 보호하고 전세보증금 마련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전세자금대출과 전세보증보험은 문재인정부 시절에 대출규모와 보증보험 보호 한도를 대폭 늘리면서 사실상 전세주택은 목돈이 있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임차유형이 아니라 목돈이 없더라도 누구나 다 받을 수 있는 임차유형이 되었다.

주택가격의 80-90%까지 월세보다 대폭 저렴한 낮은 이율의 전세자금대출이 나오고 주택가격을 상회하는 전세보증금까지도 100% 전세보증보험으로 보호해주겠다고 하는데 전세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선택인 세상이 되고 말았다.

시중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을 취급하기 전인 2008년 이전에는 전세보증금은 부모의 지원을 받거나 자신의 저축을 통해 조달해야 했다.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올리고 싶어도 임차인이 전세보증금을 조달할 수 있는 여력의 한계가 뚜렷했기에 전세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상품이 출시된 이후 은행의 전세자금 대출금 전체에 정부가 보증을 서주면서 은행도 위험부담없이 전세자금대출을 남발했다.

<그림 2> 전세자금대출 잔액 추이

자료 :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전세자금대출을 통해 전세보증금 마련이 수월해지면서 전세보증금은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저층주거지의 다세대주택, 오피스텔에서 전세보증금이 매매가격과 같거나 매매가격을 상회하는 주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임차인은 거주 주택의 경매를 통해 전세보증금을 회수해야 하기에 매매가격에 근접하거나 상회하는 주택은 거래가 되기 쉽지 않다. 하지만 2020년 전후로 거래된 신축 다세대주택의 대다수는 전세보증금이 매매가격과 같거나 상회하였다. 시장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공공기관이 주택가격의 100%까지 전세보증금을 보호해주는 전세보증보험에 기인한다. 

전세자금대출과 전세보증보험을 통해 무주택서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전세주택에 거주하는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꾀했던 정부의 선의는 결과적으로 주택가격을 폭등시키는 마중물을 지원하고 전세사기로 청년, 신혼부부들의 전재산을 잃게 만드는 지옥을 만들고 말았다. 문재인정부 시절,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유동성을 막고자 만든 각종 대출규제에도 불구하고 전세자금대출이라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어 전세자금대출로 부풀려진 전세보증금은 주택가격 폭등의 마중물이 되었으며, 주택가격 하락기에 들어서면서 깡통전세는 폭탄이 되어 무주택서민들의 재산을 강탈하는 전세사기의 토양이 되고 있다.

전세주택에 대한 정부의 어설프고, 대증적인 처방이 전세가격과 주택가격을 급등시켜 무주택서민들의 내집마련을 어렵게 만들고 전세사기에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전세보증보험의 90% 이상을 취급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발생한 대규모 손실 역시 국민들의 혈세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임대차시장 선진화를 위한 첫단추 : 전세 인센티브 축소

전세제도가 임차인의 주거를 안정시키는 획기적인 제도라면 주택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는 서구 선진국들이 한국의 전세제도를 왜 도입하지 않았겠는가? 선진국 중 어디도 모방하지 않는 이유는 그 나름의 한계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인위적으로 전세주택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여타 선진국처럼 한국에서도 전세주택의 비중은 줄어들고 월세 주택의 비중이 늘어나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림 3> 주택 점유 형태별 추이

자료 : 통계청 인구총조사

왜곡된 전세시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전세주택에 대한 정부의 과잉보호를 줄여야 한다.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정부의 보증한도와 전세보증보험에 대한 정부의 보호한도를 주택가격의 50-70% 수준으로 차츰 낮추어 가야 한다.

전세주택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줄어들면 그만큼 임차인들의 주거비 지출 부담은 늘어날 것이다. 임차인들의 늘어나는 주거비 부담은 월세에 대한 지원과 전세주택을 대체할 수 있는 지분공유형, 토지임대부 분양주택과 같은 중간형 주택 모델을 적극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월세 거주자는 ‘소작농’이라는 과도한 편견도 깰 필요가 있다. 자기자본도 전혀 없고 주택에 대한 운영관리 역량도 전혀 없이 수십, 수백채의 주택을 보유하며 시세차익을 얻기만을 기다리는 '악덕 지주'같은 한국형 임대사업자가 나타나는 원인은 집값과 비슷한 수준의 전세주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월세 중심으로 임대차시장이 재편되어야 운영관리 역량이 있는 임대사업자들이 양산될 수 있다.

전세제도의 부작용을 없애고 임대차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첫단추는 과도하게 전세주택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인센티브를 줄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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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237명

전세제도가 차츰 줄어들고 월세형 거주가 많아질 기회가 있었군요. 지금이라도 천천히 변화시켜나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세지원을 받아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거주형태를 바꿀 수 있도록 시간을 들여서요!

전세제도가 한국에만 있다고 들었는데요. 기존 제도가 변한게 아닌데 왜 문제가 발생했는지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좋은 정리 감사합니다!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만들어진 결과를 과도하게 변경하려고 했었는데, 그 시도가 오히려 악효과를 만든것이군요.
전세 지원이 늘면서 전세의 단점과 악영향이 더 발현되는 상황이 된 것이었군요. 분명 예전의 전세는, 내집마련 하기 어려운, 혹은 굳이 필요를 못 느끼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선택지였고, '불안'이라는 단어는 크게 없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나 궁금했었거든요. 잘 읽었습니다!
전세제도 자체에 대한 개편 논의가 이뤄졌으면 했는데 써주신 내용 덕분에 그간의 과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습니다. 월세-전세-매매의 전통적인 주거 사다리가 현재에도 유효한지 의문이 듭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집을 사는 일이 불가능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 의미에서 월세 중심의 임대차시장 재편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월세 세입자를 '소작농'이라고 표현하고, 불법이든 편법이든 가리지 않고 대출을 장려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갑니다... 기이한 방식으로 전세 제도를 유지시키는 전세 대출 정책부터 바꿔나가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