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산, 저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커다란 바위산을 가루로 만드는 일’ 같다고 생각합니다. 바위산은 아주 커다랗기 때문에 동네 사람 누구나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커다란 바위산을 어찌해볼 생각을 품기는 쉽지 않습니다. 바위산을 혼자만의 힘으로 가루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그래서 사회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제 자리를 오래 지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바위산을 가루로 만들 수 있을까요?
바위산을 가루로 만들고 싶을 때 참고가 되는 관점 하나를 소개합니다. 그것은 바로 ‘문제를 먹기 좋게 잘라주는 것’입니다. 제가 속한 계단뿌셔클럽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이기도 합니다. 저희의 경험과 관점을 한 번 들어봐주시겠어요?
따뜻한 마음의 대규모 증발!
많은 사람이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따뜻한 마음이란 자신에게 직접적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통 규모의 따뜻한 마음으로는 바위산같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회 문제는 긴 시간과 노력을 요구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따뜻한 마음의 크기는 그렇게 긴 시간과 노력을 들일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서 따뜻한 마음은 지금도 증발하고 있습니다. 문제제에 관심이 있더라도 문제 해결 행위 대부분이 아주 부담스러운 것들 뿐입니다. 왠만한 크기의 마음 갖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우물쭈물 하다가 마음이 증발되면 잊어버립니다. 그런 적 없으세요? 뉴스 보다가 가슴 아픈 사연을 접하고 ‘심각한 문제로구만. 무언가 도움이 될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는데 며칠 지나고 까맣게 잊어버린 경험 말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바위산을 잘게 쪼개서 두 손에 잡히는 벽돌로 만들고, 이것을 동네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면 어떨까요? 바위산을 가루로 만드는 일에 나설 사람은 거의 없지만, 벽돌 하나 쯤 가루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바위산을 마주하면 따뜻한 마음이 증발하지만, 부담이 적은 벽돌을 보면 사람들의 마음은 행동으로 전환됩니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통 수박’은 잘 안 먹게 되지만, 깍뚝 썰기 해서 밀폐용기에 넣어 둔 수박은 손이 잘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문제를 먹기 좋게 잘라주기
계단뿌셔클럽이 해결하려는 문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동약자와 그 동행인이 어떤 장소에 방문하려고 할 때,‘방문 가능 여부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모바일 맵 서비스가 없다.”
저희는 식당, 카페, 병원, 편의점, 약국 등 주요 편의시설의 ‘방문 가능 여부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모조리 모으고 공개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저희가 불철주야 전국을 다니며 정보를 직접 모으는 것입니다. 펀딩을 유치해서 조사자를 고용하고 정보 수집을 지시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렇지만 직장인들로 구성된 계단뿌셔클럽은 시간도 돈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앱과 클럽 활동을 만들었습니다.
저희가 개발한 앱 ‘계단정복지도’는 두 개의 간단한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계단 정보(접근성 정보) 등록 기능과 조회 기능입니다. 출입구 사진, 계단 개수, 엘리베이터 유무 등을 등록하고 등록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1년 봄에 개발을 시작해 겨울에 웹 버전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장애인단체와 서비스 사용 FGI를 해보니, 연세 있는 분들은 앱이 꼭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2022년 가을 앱 베타버전, 올해 4월 앱 정식버전 출시를 완료했습니다.
앱만 만든다고 알아서 데이터가 모이지 않습니다. 주말 오후, 두시간 동안 2인 1조로 50곳의 정보를 수집하는 프로그램을 설계했습니다. 여러 커뮤니티에 홍보글을 올리고, 인스타그램 광고를 집행해 참가자를 모집했습니다. 모집할 때는 ‘주말에 산책하실 분’, ‘동네 친구 사귀고 싶은 분’, ‘느슨한 모임이 필요하신 분’을 찾았습니다. 그 꾀임에 기꺼이 넘어와주신 계단뿌셔클럽 멤버(참가자)는 누적 약 500명입니다. 500여 명이 주말에 저희를 만나러 기꺼이 나와주셨습니다.
계단정복지도 앱과 클럽 활동은 문제를 먹기 좋게 잘라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도구이자 결과입니다. 이동권 문제, 계단 정보 부족 문제에 관심이 있더라도 노트 한 권 들고 정보를 직접 모으러 다니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계뿌클이 만든 앱과 클럽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훨씬 쉽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 문제 해결의 주체는 계뿌클이 아닙니다. 2시간 걸으며 정보를 수집하는 멤버들이라는 점입니다. 계뿌클은 시민들이 문제해결을 할 때 쓰는 도구입니다.
어떤 바위산을 또 먹기 좋게 자를 수 있을까?
모든 사회 문제를 ‘먹기 좋게 잘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유사한 접근이 가능한 문제들이 꽤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접근 방식은 디지털 기술과 잘 어울립니다. 관심 있는 사회 문제가 있으신가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문제를 먹기 좋게 잘라서 따뜻한 마음들과 만나게 할 방법이 없는지 한 번 생각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방식이 두 가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경제성입니다. 적절한 도구가 없었다면 증발해버렸을 마음들을 발전원으로 삼기 때문에 경제적입니다. 둘째는 자율성입니다. 사람은 사람, 도구는 도구입니다. 사람이 도구화되는 것이 아니라 도구가 도구화되어, 사람이 공동체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안내합니다. 저는 이 경험이 행위자로 하여금 자부심을 느끼게끔 하며 자부심을 느끼는 까닭은 그가 문제 해결의 주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해결하고 싶은 그 문제를 먹기 좋게 잘라서 나누어줄 방법은 없을까요?
코멘트
6바위산을 가루로 만드는 비유.. 정말 적절하네요! 확 와 닿았습니다. 문제가 거기 그렇게 있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몰라 그냥 거기 그대로 두는데요. 풍화작용에 의해 저절로 사라지기를 기다리면서 말이죠. ㅠㅠ 바위산을 작게 쪼개는 방법이 저절로 만들어지진 않지만 디지털 기술이 잘 활용된다면 좋겠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사실 건장한 20대 남성이어도 계단을 오를 때 꽤 힘든 경우가 많은데, 아예 계단을 쓰지 못하시는 분들의 불편함은 얼마나 클지.. 계단뿌셔클럽이 제가 생각하는 기술 발전의 긍정적인 모습의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활동, 잘 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사람이 도구화되는 것이 아니라 도구가 도구화되어, 사람이 공동체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안내합니다. 저는 이 경험이 행위자로 하여금 자부심을 느끼게끔 하며 자부심을 느끼는 까닭은 그가 문제 해결의 주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에 매우 공감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작은 조각에서 시작하는 거군요! 더 가까이느껴지고 더 효과적으로 느껴집니다.
비교적 만만해 보인다는 말씀이 딱 맞네요!ㅎㅎ 여전히 너무나 어렵습니다만, 비교적 ! >.<
디지털 기술의 강점을 잘 보여준 사례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앞에 산적한 문제는 너무 크지만, 이걸 하나씩 나눠서 접근한다면 비교적 만만해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https://www.staircrusher.club/ 에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