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장애인노동권 보장이 가져올 노동의 미래

2023.05.31

1,005
4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이라는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인권활동가입니다.

“저도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뇌병변장애인인 동섭 씨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그는 오랫동안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일했다. 그때도 종일 열심히 일했지만 25만 원 정도밖에 못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장애인권익옹호활동을 하며 최저임금을 받는다. 그때는 본인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못 받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고 했다. 중증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최저임금법 적용제외조항을 근거로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사업장이 많다. 그가 최저임금을 못 받는 것은 정말 장애인인 그의 잘못일까? 아니면 제도적 문제일끼?

최저임금법 7조(최저임금의 적용제외) 제1호에서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취지는 생산성 여부가 기준이 아니다. 일하는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하는 보편적 권리다. 일하는 사람에게 최저임금이 보장돼야 최소한의 생존, 생활 안정이 되며, 노동할 맛(근로 고취)을 줄 수 있기에 보장하는 권리다. 장애인노동자도 최저임금을 받아야 생활이 안정되고 일할 맛이 나는 것은 똑같지 않겠는가.

한국에서 최저임금은 헌법에 명시된 헌법적 권리다. 헌법 32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ㆍ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실정법인 최저임금법에는 이를 명시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며, 장애인차별 인식을 확산시키는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은 장애인을 빈곤으로 이끈다. 국회에서 국회가 고용노동부와 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근로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노동자는 2019년 8,971명, 2020년 9,005명, 2021년 9,475명, 2022년 8월 말 기준 6,691명이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노동자들의 월 평균 임금은 2019년 38만 169원, 2020년 37만1790원, 2021년 37만461원, 2022년 8월 말 기준 37만 9622원이다. 최저임금 기준으로 보면 20% 수준 밖에 못 받는 셈이다. 이것으로 어떻게 생계가 가능하겠는가.

장애인노동자의 시민권 보장 

사람은 관계적 동물이다. 인정은 관계 속에서 확인된다. 인정을 권리의 언어로 표현하면 시민권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장애인은 고용조차 되지 않는다. 고용되더라도 최저임금도 못 받거나 장애인만 보호작업장에서 따로 고용(분리고용)된다. 세상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시민이며,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에 한정될 수 없다. 사회권적 시민권 없이 자유권적 시민권 보장만으로는 온전한 시민권을 누릴 수 없다. 장애인도 시민으로서 노동, 주거, 교육 등에 동일한 권리행사를 할 수 있을 때 온전한 시민권, 사회권적 시민권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동료 시민으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인정한다면 노동에 대한 동등한 헌법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최저임금도 보장해야 마땅하다. 장애인도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최저임금법에 명시된 장애인에 대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자”라는 표현은 장애인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를 불러온다. 장애인이 일하면 질이 나쁘다는 평가, 장애인은 일할 필요가 없단 편견을 조장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장애인고용을 꺼리게 하는 데도 일조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집단적으로 일하는 노동과정에 개개인에 대한 노동을 측정하는 일이 정말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아니, 과거와 달리 인터넷에 글과 영상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돈을 버는 세상에서 획일적인 생산성 측정이 현실적이고 시대에 맞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군사 무기를 만드는 노동이 돈을 많이 번다고 사회적 생산력이 과연 높다고 할 수 있을까. 기업주에게는 생산력이 높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무기라는 점에서 생산력을 하락시키는 노동은 아닌가. 이제 노동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이제 장애인이 노동함으로써 생산하는 다양성과 공존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평가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사회가 더불어 사는 삶,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라는 것을 장애인노동권 보장으로 보여줄 수 있다.

장애인노동권 보장은 우리 사회에 노동에 대한 개념,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함으로써 노동자가 생산성의 노예가 되는 일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협력하는 것을 경험으로써 노동자들이 다양성에 대한 생각, 다름과 존중, 공존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일터가 곧 교육의 장이 된다. 또한 비장애인 중심적인 일터를 장애인편의시설을 들여옴으로써 일터가 변한다. 경사로가 생기고 엘리베이터가 생긴다. 다른 방식의 소통에 대해 배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장애인에게 좋은 것은 모두에게 좋다는 것은 지하철 승강기의 설치로 모두가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장애인 노동권 보장은 개별장애인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장애인노동자 당사자는 성취감만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정받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장애인노동권 보장 투쟁은 인정투쟁이기도 하다. 실제 필자가 만난 장애인 노동자는 “노동함으로써 사회의 일원임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노동을 통해 사회의 배제에서 벗어난 느낌을 즐겁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세상에 대한 시야가 생겼다”고 했다. 장애인에게도 인구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노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사람이라는데 동의한다면, 장애인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의 노동을 존중해야 한다. 상품 몇 개 더 생산하는 비장애인의 노동만 가치있다고 편협하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물질 생산만이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장애인의 노동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서로의 삶과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야말로 가치있는 사회가 아닌가.

 

염전노예, 노동능력에 대한 거짓이데올로기

2014년 신안 앞바다에서 많은 지적 장애인들이 임금도 거의 못 받고 노예처럼 부려 먹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9년이 넘었다. 이 사건은 노동능력이란 말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착취적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정말로 장애인에게 노동능력이 없었다면 비장애인 사업주가 지적장애인을 노예처럼 부리며 일을 시키겠는가. 생산성이 저하될 텐데 말이다. 염전노예 사건은 장애인은 노동할 능력이 없거나 낮다는 사회적 편견과 달리 노동능력이 있기에 착취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최저임금법 7조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은 삭제되어야 한다. 누구라도 쉽게 장애인을 차별하고 착취하는 인식을 갖게 하고 염전노예사건과 같은 비극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최저임금적용제외 조항을 없애자고 시민사회가 요구한 지 20년이 지났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최저임금법 7조는 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장애인차별을 공고하게 하고, 장애인노동을 평가절하하며, 최저임금 적용제외 절차를 이용하는 보호작업장 같은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분리고용사업장을 유지시키는 문제점이 있다. 이제는 장애인차별 조항을 없앨 때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맹성규의원안, 정의당 이은주 의원안이 발의된 상태다. 올해는 반드시 최저임금법을 개정하자.

그리고 중증장애인도 일할 수 있는 공공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올해 5월 1일 중증장애인권리중심일자리 지원법이 발의됐다. 공공부문이 장애인 공공일자리를 마련해야 민간분야까지 확산될 수 있다. 최저임금을 주고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함께 갈 때 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의 포문을 열 수 있다. 2023년은 장애인노동자도 동등한 시민으로서 헌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해로 만들어야 한다. 

공유하기

이슈

장애인 권리

구독자 267명

민주주의 사회의 주체가 권리와 책임을 지니는 모든 시민이라면, 장애인 또한 그러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은 처한 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장애가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다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할 때 그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수자만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장애인의 시민권이 실질적으로 보장 될 수 있도록 논의를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언급하신 최저임금법은 한국의 법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져서 장애인은 구조적 차별을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장애인 최저임금 차별을 철폐하자는 주장도 꽤나 오랜 시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매해 최저임금 논의에선 '노동계'와 '재계' 같은 뻔한 대립구도 속에서 비장애인들만의 최저임금이 결정됩니다. 올해 최저임금 논의를 비롯해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 차별적 최저임금법을 해결하자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길 바랍니다.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최저'경계를 적어 놓은 건데 그 기준에도 충족하지 못한 임금을 주면서 일을 시키는 건 정말 너무한 거 같아요. 장애의 스펙트럼도 다양하고 일자리 형태 근무 조건도 다 다른데 생산성이 낮다고 보는 건 글에서 적었듯 편견인 것 같습니다. 기본권인데 왜 보장하라고 요구해야하는 걸까요ㅜㅜ 기본권인데 ㅠㅜ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닌 장애인에 의한 것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