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점화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지난 21일 국민의 힘, 정부, 대통령실은 비공개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개정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당정협의회란 ‘여당’과 ‘정부’가 정책 수립 및 조정을 위해 협의하는 회의체입니다. 이는 국무총리, 여당대표,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참여하는 ‘고위당정협의회’와 부처 차관이나 실·국장급이 참여하는 ‘당정 간 정책조정위원회’로 구분됩니다.)
( 출처 : Pixabay)
최근의 집시법 개정 논의를 촉발시킨 사건은 지난 5월 19일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이하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1박 2일 집회로 볼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19일 광화문광장과 서울시청 일대의 세종대로에서 시위를 열었습니다. (세종대로는 2020년 사람숲길 공사를 하기 전까지 시간당 차량통행량이 약 3000대에 달할 정도인 넓이 100m 규모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길입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시위는 5월 1일 노동절에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가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분신한 사건을 추모하고, 노조를 탄압하는 정부와 경찰을 비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퇴근길 혼잡을 이유로 도로점거 시위/집회를 오후 5시까지만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주최측은 시위를 지속했는데요, 이 때 교통정체가 심각하게 빚어집니다. 또한 시위참가자 중 일부는 도심 노숙집회를 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거리를 점거한 노숙, 고성방가 및 노상방뇨, 음주와 흡연 문제로 주민신고가 잇따랐습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이 “용납하지 않겠다”며 “건설노조 불법시위에 엄정하게 대응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당정이 집시법 개정안을 내놓기에 이릅니다.
지난주에 재점화된 집시법 개정안과 당정의 협의내용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대립’된 입장을 보이고 있죠. 최근의 집시법 개정 논의에 대해선 [투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에서 구체적인 찬반 입장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컨텐츠에서는 그에 앞서 현 정부에서 집시법 개정 논의가 어떤 맥락으로 진행됐는지, 그동안 집시법에 대해 사법부는 어떤 판결을 내려왔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집시법? 그게 뭐야?
집시법이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로, 대한민국 국민의 적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고는 동시에, 이 권리가 공공질서와 조화를 이루도록 제정한 법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제 1조에서 집시법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이 법은 적법한 집회(集會) 및 시위(示威)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으로써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집시법 개정, 뭐가 문제길래?
현정부에서 집시법이 논의된 것은 비단 지난 주의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시위 때문만은 아닙니다. 지난 해부터 불거진 문제죠. 시작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근처 집회와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 근처 집회 때문이었습니다.
? 우선, 지난해 4월 집시법 개정안을 먼저 내놓은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더불어민주당은 2022년 4월부터 문재인 전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근처의 집회를 막기위해 집시법 개정안을 여러차례 발의한 바 있습니다. 작년 4월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근처에서 보수단체 및 유튜브 채널들이 고성과 욕설시위를 벌였기 때문입니다. 여러 개정안에는 현행 집시법상 규제대상이 아닌 '1인 시위' 또한 집시법의 규제 범위에 포함시키거나, 전직 대통령의 사저 앞 집회를 금지하거나, 혐오표현 등 혐오와 증오를 조장하는 발언을 규제하는 내용 등이 담겨있습니다. 현행 집시법 제11조에서는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장소를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등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전 대통령의 사저’는 포함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MBC 뉴스, 2022.06.17)
? 이후 국민의힘 역시 집시법 개정안을 내놓기에 이릅니다.
출처: 국민의힘 홈페이지
집회가 문 전대통령 사저에서만 문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윤석열 대통령의 서초동 자택 근처에서는 문 전대통령 사저 집회에 대한 맞불 집회가 열리기도 했고, 용산의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도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이에 소음과 교통혼잡의 문제가 생기기도 했죠. 이에 여당인 국민의힘의 집시법 개정안에는 ‘대통령 집무공간’ 주변 집회/시위 금지 조항이 신설됩니다. ‘전직 대통령의 사저’와 마찬가지로 현행 집시법 11조가 규정한 옥외집회 및 시위 금지장소에 ‘대통령 집무공간’은 해당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청와대에 집무공간과 관저가 합쳐져 있었기 때문에 이런 조항이 필요하지 않았으나, 윤대통령이 관저와 분리된 용산집무실을 마련하며 여당이 ‘대통령 집무실 주변’또한 집회/시위 금지구역에 포함하기로 한 것이죠.
이에 2022년 11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 반경 100m 이내를 집회 및 시위금지장소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합니다. 양당이 원하는 것을 하나씩 얻은 셈이죠. 상임위는 해당 개정안이 합의됐다는 이유로, 표결도 하지 않고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 하지만 사법부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법원은 경찰이 용산 대통령 집무실 100m이내 집회를 금지한 것에 대해 9차례나 위법결정을 내립니다. 대통령의 직책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듣는 일이며, 현행법상 관저에 대통령 집무실이 포함되지 않는다며 대통령 집무실 100m이내 집회 역시 허용하라고 한 것이죠. 헌법재판소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2022년 12월 헌재는 대통령 관저 인근 100m 안의 집회·시위를 일괄금지하는 집회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죠. 2024년 5월 31일까지 해당조항을 개정해야한다는 것 또한 덧붙였습니다. (한겨레, 2022.11.22)
위에서 적은 바와 같이 집시법은 지금까지 꾸준히 헌법재판소의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수차례 받은 바 있습니다.
(‘위헌’과 ‘헌법불합치’의 차이
헌법재판소는 어떤 법률이 국가최고통치원리를 명문화시킨 헌법에 위배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합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리면, 해당 법률은 ‘무효’가 됩니다. 위헌결정과 동시에 해당 법률은 즉시 효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반면 헌법불합치는 위헌결정과 달리 즉시 법률이 무효화되지는 않습니다. 법률의 위헌성은 인정하지만, 즉각적인 법률 무효화에 따른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법의 유효성은 인정하는 것입니다. (시사오늘, 2019.04.18))
출처: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2009년 헌재는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할 수 없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한 집시법 제1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재의 판단 근거는 해당규정이 ‘침해의 최소성(입법목적을 실현하기에 적합한 여러 수단 중, 국민의 기본권을 가장 존중하고 최소로 침해하는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헌재결정례에 따르면 “집시법 제10조 본문은 야간옥외집회를 일반적ㆍ전면적으로 금지하여 합리적 사유도 없이 집회의 자유를 상당 부분 박탈하는 것이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된다고 선언할 필요가 있다.”는 보충의견도 있었습니다. 또한 헌재는 2010년 6월까지 보완 입법을 요구했고요. (한겨레, 2023.05.22)
이어서 2014년, 헌재는 집시법 23조(벌칙) 3호에 대해 ‘해가진 후부터 같은날 24시까지의 시위에 적용하는 한 위헌’이라고 한정위헌 결정했습니다. 자정까지는 야간집회를 허용하라는 뜻입니다. 헌재는 자정까지만 집회/시위의 자유를 인정해 오히려 집회/시위 자유를 제한한다는 지적에 대해 “국민의 주거 및 사생활의 평온, 우리나라 시위의 현황과 실정, 국민 일반의 가치관 내지 법감정 등을 고려해 입법자가 결정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회의 입법 영역으로 남겨뒀습니다. 그러나 국회가 보완 입법 요구에 응하지 않아 현재 집시법에는 야간집회에 관한 법률 규정이 사실상 없습니다. 그저 자정까지의 야간집회를 원칙적으로 허용할 뿐이죠. (한겨레, 2023.05.22)
자, 지금까지 집시법이 현 정부에서 어떤 맥락으로 개정의 흐름을 밟았는지, 사법부는 정당과 정부의 결정 속에서 어떤 식으로 기본권을 강조해왔는지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의 집시법 개정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전)대통령 지키기 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두 정당이 발의해온 여러 개정안이 비단 집회 및 시위의 금지장소를 넓히는 내용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정당한 개정인지, 그 필요성을 생각해볼 필요성은 있겠죠.
집시법 개정은 국민의 기본권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야입니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는 헌법에서 규정한 기본권 입니다. 이는 헌법 제21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천명하고 있죠. 그러나 헌법은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 또한 명시합니다. 헌법 제35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하고 있죠. 이처럼 집시법 개정은 정당간 입장 뿐만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이 결부되었다는 점에서 사법부와 정치권 간의 입장이 갈리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집시법 개정과 기본권 충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집시법 개정은 결국 기본권을 침해하는 결말을 낳을까요? 나아가 집시법 개정은 정말로 필요할까요? 댓글로 여러분의 의견을 가감없이 들려주세요!
?♀️ 지난주부터 재점화된 집시법 개정의 가장 최근 논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찬반입장과 찬반집단이 보다 명확히 정리되어 있으니, [투표]를 통해 여러분의 의견을 드러내주셔도 좋겠습니다!
코멘트
4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이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도록 하는 핵심 방법중 하나인 집회와 시위와 관련된 법적 맥락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사회의 정치의 후진성에 대해 많이들 말하지만(동의되지만..)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독재에서 민주화로 성공적으로 이행했고, 2016년 거대한 규모의 (비폭력) 촛불항쟁을 통해 대통령을 끌어내린데서 알 수 있듯이 한국사회는 비폭력 대중직접행동을 통해 민주주의 제도정치의 도입 및 정상화 등을 이룩해 온 '선진적인 민주국가'로서의 모습도 동시에 보여줍니다.(세계적으로 이런 케이스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제도정치 차원에서 선진적인 것이 아니라 시민직접행동 차원에서 선진적인 민주국가라는 의미입니다.
한국은 한국사회의 집회와 시위를 자랑스러워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더 규제하자는 주장은 그간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시민의 힘을 제약하고 싶은 의도를 담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리 감사합니다. 학교를 다닐 때에 이런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며 왜 헌법과 법률이 지금처럼 만들어졌는지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좋았을텐데. 가끔은 지금 정치를 하거나 국정을 운영하는 분들도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결국 어떤 가치를 중시하느냐에 따라 의견은 갈리는 것 같아요. 정답은 없는 것 같네요..! 좋은 정리 감사합니다 :)
다 읽고 투표도 하고 왔습니다. 거대양당이 하는 행위를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누구든 자신의 문제의식을 알릴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기초원칙입니다. 그럼에도 본인의 지지층 입맛에 맞춰서, 비판의 목소리는 듣지 않겠다는 의지로 헌법에 명시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무시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는 게 답답합니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 모든 법의 근간인 헌법을 무시하고 있다는 게 더욱 답답하게 만들고요.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시간, 장소와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게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않고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대법원에서는 집회, 시위로 인해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다소간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링크)을 내린바 있습니다. 집회, 시위의 자유를 축소하는 건 결국 표현의 자유 축소로 이어집니다. 표현의 자유 축소는 비판적 의견 게제의 축소로 이어지고, 자연스레 권력의 부당함을 이야기 하는 견제, 감시 세력의 입에 제갈을 물리는 도구로 변질될 겁니다. 비판의 목소리가 듣기 싫다고,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욕하는 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니 전직 대통령을 보호하겠다고 법안을 만드는 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셈입니다. '법조인'이라는 이들이 연이어 일삼는 헌법과 민주주의 파괴를 멈춰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