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경쟁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향상될까?

202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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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생태계의 변화를 꿈꾸는 교육활동가

언제부터인가 ‘수학을 포기한 자’라는 의미의 ‘수포자’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영어를 포기한 자라는 ‘영포자’ 등의 단어가 공공연히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수학이나 영어 등을 포기한 학생들이 수업을 포기하고 의욕없이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이 우리 학교의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학생들을 수포자, 영포자로 만든 것이 다만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량 부족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모두가 다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하나의 정형화된 틀에 따라 운영되는 경쟁이라는 레이스를 달리게 해서 거기서 1등만을 칭찬하고 나머지는 열등자로 전락하게 만드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시험 위주의 경쟁교육에서 비롯된 참담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진: UnsplashFlorian Schmetz


경쟁교육으로 인한 우리 교육의 폐해

경쟁교육을 어학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뜻은 ‘명문대 입학과 시험 성적을 우선시하여 학생들 간의 경쟁을 유발하는 교육’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수십년간 이러한 경쟁교육을 해오고 있고, 이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데도 여전히 지금도 변함없이 경쟁교육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폐해에 대해서 정용교·백승대 영남대 교수는 2011년에 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경쟁교육은 학생들에게 위선적, 가식적 태도를 심어주며 그에 따라 학생들의 호전성도 증대된다. 나아가 폐쇄적,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심어준다. ··· 지구촌화와 세계화에 걸맞는 지식 구성력을 키우는데 실패하며, 대신 지식의 답습 수준에 머물게 하며 전국적 (혹은 세계적) 네트워킹에 따른 집단지성의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외톨이형을 키운다. 친구관계를 잘 맺지 못하고 고립적으로 살아가며 그런 과정에서 각종 게임에 빠지게 되고 또 거기에 과도하게 몰두한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의 말이 맞다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야만적인 국가다. 우리 교육은 우월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하는 핵심원리인 경쟁교육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야만적인 국가이다. 자살률 세계1위, 아동우울증 세계1위의 한국 청소년은 너무나 불행하게 산다. 근본적인 교육개혁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교육희망 2022.07.15)  

이렇게 경쟁교육으로 인한 폐해들이 심각하게 도출되고 있다고 한다면 이제 우리나라에서 자행되고 있는 경쟁교육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시험위주의 경쟁교육으로 1등이 되지 못해서 모두가 불행한 교육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경쟁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행복 시민을 만들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이에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사례를 영국 학생들의 향상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 평가 시스템에서 찾아 보고자 합니다. 


사진: Pixabay의 Hebi B.


학생들의 향상에 주목한 영국 교육

2019년 여름, 저는 영국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계신 김은영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서울시립대 수학과를 나오시고 학원에서도 수학을 가르쳤던 경험이 있던 선생님은 영국 분과 결혼을 하셔서 영국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받은 수학 학위가 있었기에 처음에는 보조교사로 영국 학교를 1년간 경험하셨고, 그 이후 영국 교사 양성 코스 대학원에 들어가 수학교사가 되어 영국의 공립과 사립학교에서 12년째 수학교사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김은영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바로 영국의 평가 시스템이었습니다. 이것에 대한 내용은 이 분의 책 ‘영국 교육은 무너지지 않았다’에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선 영국은 대학입시를 위한 내신성적을 매기지 않습니다. 대학입시를 위한 준비는 1~11학년까지의  초·중등 교육과정 그 이후에 대학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한 12~13학년의 대학준비학교인 Sixth Form College 과정에서 하게 되기에 1~11학년까지의  초·중등 교육과정에서는 대학 입시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교육과정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더 알고 싶다면 ‘중등교육과정에서 대학준비학교의 분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조). 시험을 위한 경쟁교육을 할 필요가 없는 교육과정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통지표에는 등수나 순위가 매겨지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 거지요. 영국 학교의 통지표의 가장 큰 목적은 학생들이 얼마나 노력을 해서 얼마만큼 능력이 향상되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은 다 다릅니다. 모든 아이들이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을 모두 잘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나라, 우리나라는 대학 입시를 위해 이 모든 과목을 다 잘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비싼 과외비와 엄청난 사교육비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 교육은 모든 학생들이 모든 과목을 다 잘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는 교육과정을 만들었습니다. 동일한 과목에서 각 학생의 개인의 차이를 인정한 것입니다.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만 칭찬받는 교육이 아니라 능력이 뛰어나지 않는 아이들도 열심히 노력해서 향상을 하게 되면 칭찬받는 교육 시스템입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의 향상 정도를 아주 체계적으로 관리합니다. 이것을 ‘Tracking(추적 관리)’이라고 합니다. 


모든 학생들의 향상을 추적하는 교육 시스템

‘Tracking(추적 관리)’에서는 각 학생들이 처음 가지고 있는 각 과목의 성적에서 학년별로 달성해야 하는 목표치인 평균적인 향상 점수, 즉 각 개인마다 다른 ‘타겟 점수(Target Grade)’를 부여합니다. 이 타겟 점수는 빅데이터로 만든 본인의 능력에 맞는 목표치로, 통계에 의해 주어집니다. 각 학생들이 노력을 하면 이 정도는 나와야 한다는 기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통지표에는 각 과목의 타겟 점수가 나오는데 그 향상 정도를 직관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아래와 같은 색깔로 표시를 합니다. 점수가 낮더라도 향상되어 녹색과 파란색이 되면 칭찬을 받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능력에 맞게 배우면서 칭찬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영국 학교는 수준별 수업을 진행합니다. 학생마다의 각각 다른 능력을 따라 각자의 수준에 맞는 학습이 교실에서 이루어집니다. 

*Progress(향상)

1-Exceeding Teacher Expectations(파란색)

2-Meeting Teacher Expectations(녹색)

3-Potentially underachieving(오렌지색)

4-Seriously underachieving(빨강색)

출처: 김은영 제공(※ 통지표 양식은 학급 및 학교별로 다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향상을 위한 보다 정확한 추적 관리를 위해서 영국은 2001년 비영리 교육재단 FFT(Fischer Family Trust)를 설립합니다. FFT에서는 학생들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학교가 향상 될 수 있도록 학교에 정확하고 통찰력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교육부의 전국 학생 데이터베이스(National Pupil Database)를 처리하고,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모든 학교에 데이터와 분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FFT에서 FFT Aspire이라는 학생 성취도 추적 및 평가 시스템을 개발합니다. Aspire는 "Assessment System for Pupil Progress, Individualized Review and Evaluation"의 약자로, 학생들의 학업 성과를 추적하고 평가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이 시스템은 영국 학교에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의 학업 성과를 측정하고 모니터링하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즉슨, 모여진 데이터를 분석하여 학생들에게 각자의 능력에 맞는 목표치(타겟 점수)를 제공합니다. 

출처: 김은영 제공

학교와 교사의 향상 정도를 평가하는 Value Added

앞서는 학생의 향상 정도를 평가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학교와 교사의 향상 정도를 평가하는 주목할 만한 시스템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영국의 교육 시스템에는 ‘Value Added(상대적인 향상도)’ 라는 학교의 성과를 측정하는 하나의 지표가  있습니다. Value Added는 학생들이 학교에 입학 전과 후의 학업 성취도 변화를 평가함으로써 학교의 가치를 판단합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얼마나 발전하고 성취하는지를 측정하여 학교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의 성적을 여러 단계에서 평가하고 비교하여 향상 정도를 파악하는데, 기초학력수준, 사회·경제적 배경 및 학생의 개인적인 요인 등을 고려하여 계산합니다. 예를 들면, 무료 급식을 받는 가정환경이 열악한 아이가 보통의 아이들보다 더 많은 향상을 보이면 그건 특별히 교사가 더 잘 가르쳤다는 의미가 되므로 Value added가 높아집니다. 

한마디만 해도 척 알아듣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런 학생들이 많은 학교가 입시 성적이 좋은 것은 사실 학교가 잘했다기보다는 원래 아이들이 우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사, 학교가 더 우수하다고 평가 받아야 합니다. 또한 이런 지표를 가지고 교육부에서 평가하기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도 그냥 버리고 가지 않고 모든 아이들의 학업을 향상시키는 것이 영국 학교의 목표가 됩니다. 이로 인해 아이들의 숨은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는 교육 현장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존중받는 교육으로

우리 아이들 모두는 존중받기에 마땅한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그들을 평가절하시키는 교육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교육 현장에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 수십년을 답습하고 있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철저히 반성하고 변화시켜 지금 우리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교육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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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 집착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능력 그 자체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사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이들은 경쟁하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움에 대한 것은 원초적인 본능에 가까운 것인데 우리가 경쟁이라는 틀에 배움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요. 아이들이 즐겁게 배움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기술의 발전을 적절하게 잘 사용한 사례네요. 정말 흥미로워요! 

전문성있는 한편의 논문이네요
교육은 참 복잡한 분야지만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큰 방향성이
생기는것 같습니다.

영국의 방식들이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한국 사회의 교육에서 영국의 방식을 반영하려면 무엇을 어디부터 바꾸어야 할까요? 경쟁을 부추기는 문화는 어디에서부터 발생하는 걸까요? 추상적인 메시지를 넘어 구체적인 방식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임소영 비회원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라는 것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나라 교육도 제발 야만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국의 사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장에서도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어떤 업무를 하고, 어떻게 커리어를 발전시킬지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교육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네요. 저는 본문에서 동일한 과목에서 각 학생의 개인의 차이를 인정한 것입니다. 라는 부분이 인상깊었는데요. 평가의 목표가 단순한 줄세우기가 아니라면 차이를 인정할수 밖에 없다 싶네요. 

인상적인 사례네요. 개별화된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도달할 수 았도록 하는 교육방식은 물론이고, 이를 다시 또 학교 및 교사 평가에 적용하여 최상위권 대학을 몇명이나 보냈냐가 아니라 개별 학생들을 얼만큼 성장시켰냐에 따라 평가를 한다는 것이 특히 놀랍습니다. 너무 이상적안 기획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미 사례가 존재한다니 저로선 매우 흥미롭네요.

다만 현재 한국 교육계에서 이와 같은 방향으로의 개혁이 가능할까 우려스럽습니다. 교육계 내부가 아니라 교육계 외부의 문제 때문입니다. 정치와 교육이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장기적인 교육 정책의 수립이 매우 어렵죠. 특히나 교육 정책은 장기적인 실험, 관찰, 개선이 중요한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향성이 통째로 수정되는 판이니 좋은 대안이 나와도 적용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과 정치가 분리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현재는 교사 노조 설립 제한, 정당 가입 제한 등의 반민주적 조치를 취해놓고는 교육과 정치가 분리를 위해서라고 주장하는데, 답답할 따름이네요. 

할렐루야 아멘 비회원

언제까지나 입시문제와 교육에 대한 방향제시만 하게될까요? 교육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적인 풍토와 사고의 전환이 없으면 근본적 문제해결은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국가 전체가 국민 전부가 사회에서 자기에게 맞는 일을 교육과정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고 역량을 키우며 성장하고 만족하고 행복하게 산다면 과다한 경쟁을 할 필요가 없겠죠. 상대적 박탈감과 비교의식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누구나가 다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보다는 경쟁에서 이겨서 남들이 선호하는 일들을 하기위해 전력질주를 합니다. 교육은 하나의 수단이 될 뿐입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은 교육 선진국까지는 아직 남아있는 길이 멀게 느껴집니다.

비회원

모든 아이들은 잘하는 것이 다르고 성취할수 있는 능력도 여러가지 이유로 다릅니다 그 다름을 인정하고 아이들의 능력에 맞게 향상시키는 영국의 교육이 많이 와 닿습니다 획일화된 교육에서 지쳐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새로운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김보균 비회원

경쟁안에서의 교육이 우리나라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선진국의 교육시스템을 부분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 생각합니다~ 학교와 교사 평가 시스템은 가정환경이 어려운 친구들과 학업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공교육 안에서 향상시켜 줄 수 있는 방안으로 좋겠다싶습니다

좋은 이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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