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5월이 다 가기 전에, 장애인 노동 정책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인터뷰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세 명의 인터뷰이를 만났습니다. 모두와 익명을 약속했기 때문에 임의로 A, B, C라고 지칭하여 글에 적습니다. A님은 장애인 노동자로 중간관리자를 맡고 있고, B님은 평사원으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C님은 근로지원인입니다.)
몇 년 전 일했던 직장이 장애인표준사업장이었는데, 근무하는 동안 장애인식 개선을 포함한 법정의무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업주가 무심코 내뱉는 차별적인 말을 들으면서 ‘천사 기업’이라고 적힌 장애인표준사업 인증 현판이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었죠. 사장님은 왜 장애인 인권에 관심 한 조각도 없으면서 굳이 장애인표준사업장을 운영하는 것인지 궁금했어요. 이유는 간단하더군요. 관련 지원 제도를 이용하면 경제적 부담이 줄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인터넷에 장애인표준사업장을 검색하면, 비용 지원 예산이 증가하며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몰린다는 기사가 줄줄이 보입니다.
'장애인 표준사업장' 세우면 지원금…내년 예산 23.2% 증대
A “장애인사업장은 안 망해요.”
“사업을 하려는데 장애인표준사업장으로 하겠다, 하면 자기 자본이 30%만 있으면 돼요. 나머지 건물 짓는 거, 설비 넣는 거 다 장애인 공단에서 해줬어요. 지금 제가 일하는 곳에도 설비에 잘 보면 장애인 공단에서 사줬다는 딱지가 붙어 있어요. 모르면 그냥 넘어가지만, 알면 다 보이죠. 남의 돈으로 사업하는 거예요.”
장애인의무고용제는 기업들이 고용 의무를 불이행하는 대신 벌금을 내고 넘어가는 일이 많아 실효가 없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반면 장애인 고용 기업에 지원을 해주는 장애인표준사업장 제도는 인기가 있는 편입니다. 그래프를 보면 매년 인증업체가 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적 성과만 봐서는 안 됩니다. 인터뷰이 A님은 ‘몸이 아파서 쉬는 동안에도 전화해서 안부는커녕 언제 출근하냐고’ 묻는 등 고용주가 직원들을 기계 부품 취급을 한다며 하소연했습니다. 사업주가 장애 인권 감수성이 전혀 없는 경우가 많다면, 현장에서는 정책의 존재 의미를 거스르는 여러 어려움이 발생할 것입니다. 제가 전 직장에서 느꼈던 것처럼 말이죠. 장애인 표준사업장이 많아지는 것은 성과로 보이지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받고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B “이제는 익숙해져가지고 일은 힘들어도 할 만해요. 나름대로 힘들면서도 좀 재미있고.”
“적응하는 게 문제인데, 많이들 적응을 못하더라고요. 여기가 공장이라서 여름에는 이제 기계가 다 돌아가잖아요. 그럼 막 시끄럽고 덥고, 일단 더우니까 사람들이 좀 힘들고 그러니까는 많이 좀 나가고 그러더라고요. 적응을 못 해서 나가는 사람들도 좀 있고 성격상 또 사람들하고 있던 일을 속에 꽝 담아두고 있다가 그걸 못 이겨서 나가는 사람도 있고 별사람 다 있어요.”
C “어떤 분한테는 좀 다가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그분 성격일 수도 있지만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도 않고, 무표정으로 반응이 없더라고요.. 근데 그래도 계속 인사를 했어요. 그러니까 어느 날 마음의 문을 열어주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니까. 다른 근로지원인분들도 처음엔 어렵겠지만 그냥 조금만 참고 다가오도록 기다려 주면 될 거 같아요. 상처받지 않고 그냥 기다려 주면 그쪽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오니까요.”
사람마다 성향과 상황이 다르다 보니 어렵게 느끼는 부분도 제각각일 것 같습니다. 중증장애인의 경우는 어떨까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는 ‘중증장애인 근로자가 담당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을 갖추었으나 장애로 인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위해 ‘근로지원인 서비스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근로지원인들은 매칭된 중증장애인이 업무를 위해 이동하거나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는 등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입니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근로지원인의 수가 많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중증장애인에게는 원활한 업무 수행을 지원하고, 근로지원인에게는 수당을 지급하여 1+1 고용 창출이 가능한 근로지원인 제도, 조사할수록 아쉬운 평이 많이 보였습니다.
근로지원인 제도 있는데…장애인들 “어렵게 취직해 놓고 퇴직 고민”
C님은 평생 전업주부로 생활하다가 지인을 통해 근로지원인 제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3일 동안 장애인고용공단에서 각종 교육을 받고, 담당 장애인을 배정받아 일을 시작했습니다. 공단에서 받은 교육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의견을 주셨습니다.
C “도움이 많이 됐죠. 네, 그 교육이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저 같은 경우는 장애인을 만나서 인간적으로 겪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좀 막연했거든요. 그런 여러 가지 성격 유형이라든가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해야 한다든가 그런 거를 가르쳐주셔서 그게 많이 도움이 됐어요.”
한편 이수 교육 시간이 늘어나면서 근로지원 인력이 줄고 고령화되는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10시간의 온라인 교육을 이수하면 근로지원인을 할 수 있었지만, 교육이 강화되면서 더 많은 시간 교육을 듣고 교육비도 직접 결제해야만 근로지원인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임금은 최저시급 수준이라서, 근로지원인력을 수급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C “아쉬운 점은.. 저희가 본래 계약을 하루 8시간 근무로 해요. 근데 이제 회사 측에서 일을 일찍 끝내줄 때가 있어요. 그러면 계약할 때 이야기했던 것보다 근무 시간이 적어져요. 그러다 보면 급여가 줄어들잖아요. 그거를 이제 보장 못 받는 게 그게 좀 아쉽더라고요.”
“최저 시급으로 알고 있어요. 거의 최저 시급이에요.”
기업에는 장애인 표준사업장 설립 시 자금 융자까지 지원해 주는 데 반해 중증장애인의 업무 수행을 돕는 근로지원인들의 임금은 다소 낮게 책정된 듯 합니다. 근로지원인은 장애인고용공단에 소속된 노동자로, 임금도 장애인고용공단에서 받습니다. 고용공단이 노동의 가치를 보상해 주어야 하죠. 기업이 장애인 고용에 몰리는 것처럼 근로지원인 제도에도 사람들을 불러 모을 장점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이들이 들려준 사례 중에는 곤란한 상황도 더러 있었습니다. 근로지원인은 중증장애인의 업무를 돕는 게 일이기 때문에 중증장애인이 출근하지 않으면 사업체에서 단독으로 근무는 불가능합니다. 원칙적으로 문제가 없는 상황이지만 가뜩이나 아쉬운 최저임금을 받는 입장에서는 급여가 더 줄어드는 일이 반갑지 않습니다.
C “한 달을 만근하면 연차 하루가 생겨요. 그건 제가 필요할 때 쓸 수 있어요. 매칭된 장애인과 상관없이요. 하지만 이제 장애인이 아프거나 결근 한다거나 그럴 때는 제가 못 나가는 거죠. 나가게 되면 부정 수급이죠.”
“이미 출근했는데 장애인이 못 나온다고 하면요? 그러면 이제 도로 들어와야 하죠.”
A “근로지원인 제도는 제가 볼 때는요, 장단점을 비교했을 때 5:5라고 봅니다. 중간관리자 일을 하다 보니까 그런 입장에서 말씀드릴게요. 장애인 근로자 한 명이 병가라든지 개인적인 볼일로 하루 쉬게 될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근로지원인은 담당 장애인이 쉬면 같이 쉬어야 해요. 그러면 회사 입장에서는 한 사람만 비는 게 아니고 두 사람이 없어지다 보니까 손이 부족해요. 근로지원인 제도 자체는 중증장애인을 서포트한다는 그런 취지인데, 현장에서는 실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담당 장애인을 서포트하는 게 아니고, 장애인도 일을 하고 있고 근로지원인도 일을 하고 있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C “본래 근로지원인은 보조 업무잖아요. 근데 저희 경우는 이제 같이, 옆에서 이렇게 서로 도와주고, 같이 하죠.”
A “취지대로 하면은 회사에 도움 되는 거 하나도 없어요. 근로지원인들 빠지면 지금 생산되는 양의 20분의 1밖에 안 나올 거예요. 근로지원인 없으면 일 안 돌아갑니다.”
원칙대로라면 근로지원인은 별도로 업무를 할 수 없습니다만, 현장에서는 그게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단순 업무를 여러 사람이 협력하며 진행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같은 장소에 있을 뿐 각자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근로지원인이 주 업무를 맡고 중증장애인이 그 옆을 보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도가 거꾸로 가는 것을 넘어 산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되는데요. 물론 모든 사업장이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정책이 현장에서 어그러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많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제도 개선에 반영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장애인 노동 정책은 어떻게 변화하면 좋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함께 나눠주세요.
(끝으로 노동을 통해 얻는 긍정적인 경험에 대해 인터뷰이들에게 물었습니다.)
A “저는 장애인들이 좀 잘 됐으면 하는 거 그 바람뿐이에요. 저는 사람들 불러놓고 그래요. 나도 여러분들처럼 최저시급이다. 똑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좀 더 앞서서 일을 해야 하니까, 그 총대를 내가 메고 있을 뿐이다. 그 대신에 요렇게 요렇게 하자. 그러면 따라는 줘야 한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안 따라주면은 여러분들 완전히 여기 난장판 됩니다! 그러니까 예, 예. 그러더라고. 대답은 잘해요."
B “사람들하고 만나면서 대화도 많아졌고, 좀 성격이 밝아졌다고 할까요? 그전에 혼자 알바했을 때는 아무래도 좀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그래도 여기서는 과장님이나 옆에 언니들하고 얘기하게 하면서 그냥 흘러버리고 그래요.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오늘은 이랬구나~ 이러고서 내일부터 또 시작이구나~ 그렇게 하는 편이에요.”
C “제가 전업주부 하다가 처음으로 경제활동에 뛰어든 건데, 하다 보니까 좀 삶이 좀 활력이 있어서 좋고요. 손주, 손녀들한테 용돈 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거, ‘이렇게 나도 뭔가를 나도 할 수 있구나.’ 조금이라도 이렇게 나를 쓸 수 있다는 거, 그런 게 감사하더라고요."
코멘트
5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조금 더 알게 되네요.
사회적 약자에대한 지원은 사실 과하다싶게 시행되어도 수혜를 받는 쪽에서는 늘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제도상의 허점과 불법 이득을 취하는 자들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피하기 위해 이러한 제도마저 줄인다면 진짜 수혜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혜택은 너무나 줄어들겠지요. 진짜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서 사회적 약자들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실제 근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허점들이 상세하게 발견되어서 너무 좋네요! 이렇게 나중에라도 의견을 듣고 반영하여 개선된다면 희망적인 미래가 될 것 같아요. 조금 더 욕심 내어 생각해 본다면, 실행하기 전에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그 내용이 확실히 고려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게 당연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네요!
장애예술인 고용업체 운영 관련하여 일을 잠시 한 적이 있었는데요...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대부분이 표준사업장으로 지원금을 받으려 하거나, 좋은 의도로 운영하고 있더라도 고용공단 같은 곳에서 요구하는 성과 때문에 내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고요...특히 근로지원인들에 대한 보상이 여전히 장애인가정의 부담으로만 남아 있고 지원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로 보이더군요. 당사자들, 유관지원인들의 업무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적용하는 등 제도적 사각지대를 최대한 없애기 위해 여러 노력이 필요한데도 여전히 탁상공론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네요.
장애인 고용, 노동환경은 왜 나아지지 않을까 궁금증이 있었는데 글을 읽고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네요. 현실에 대한 이해 없이 이상만으로 정책을 만들면 문제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합니다. 적어주신 내용을 보면서 근로지원인 제도도 비슷한 문제에 봉착한것 같습니다. 실질적 노동자와 장애인 고용 촉진 양쪽 측면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면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서 역할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그 과정에선 당연히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어야 하고요. 제대로 된 대우와 지원도 있어야 합니다. 특히 당사자들이 지원의 효능을 느낄 수 있도록 사업장에 대한 직접 지원이 아니라 고용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야 하지 않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