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후 민주당 내부의 행보가 우려스럽다.박지현씨가 민주당의 비대위원장이 되면서 여성 할당제와 ‘페미니즘’을 들고 왔기 때문이다.박지현 씨는 권좌에서 내려 왔지만, 박지현 씨가 들고 온 페미니즘은 여전히 '개딸'들에게 지지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페미니즘 정책은 엘리트 여성을 위로 올려 보내기 위한 장치임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들은 과거의 여성차별에 대한 보상으로 여성할당제를 시행해야된다고 한다.하지만,여성할당제는 여성에 대한 교육,능력 개발 등이 아닌 무조건적인 기회 제공에 해당한다.자본주의 경쟁사회인 현시대에 우리 사회는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무조건적인 결과의 평등만을 보장하는 것이다.이 시점에서, 페미니즘과 여성할당제를 내세우는 것은 보수에게 몰린 20대의 표를 몰아주는 일 밖에 되지 않는다.
또,서울시는 2009년부터 ‘여행(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여성전용주차공간 의무화를 실시했다.이후 여성전용주차공간은 여성우선주차장으로 명칭이 변경됐다.여성우선주차장은 페미니스트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은 제도이다. 하지만,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은 여성우선주차장을 두고 반대했다.누리꾼들은 “여성들이 스스로 약자를 자처하는건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닌 것 같다”, “여성을 장애인으로 분류하는 듯하다”, “남성은 행복하지 않아도 되는군” ,“내가 여자라면 자존심 상하겠다” ,“자동차야 그렇다쳐도 자전거 주차도 제대로 못해서 전용이 만들어진걸까요? ”, “이정도면 배려가 아니라 무시”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렇듯 페미니스트들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여성우대정책은 공정성에 부합하지도 않으며,평등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오히려 역차별이라는 인식을 심어 성평등에 위해를 끼치고 있다.
내 나이 또래 남성들이 그렇듯, 그 누구보다 성평등을 존중하는 세대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여성이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20대남성들은 남존여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세대이고, 무한경쟁에서 여성에게 밀리는 세대이기 때문이다.(적어도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성역할 고정관념도 없는 이대남에게 성 인지 감수성이라는 어려운말을 들이밀어 그들에게 '여혐주의자'라는 누명을 씌운다면 반작용이 일게 뻔했다.
앞세대가 여성에게 갖고 있는 부채의식을 고스란히 20대 남성에게 투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특권을 누리던 시절과 다르다. 모든 비용을 더치페이하고, 결혼 이후 업주부로 살 수도 있는 이대남에게,페미니즘은 그저 '남성혐오'일 뿐이다."
굳이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꺼내지 않아도 성평등 사회를 이룰 수 있다.지난 대선의 결과는 성평등에 대한 '반동'이 아니라 페미니즘에 대한 ‘반작용’이다.우리가 아는 그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우상이 되어 버렸다.평범한 여성이라도 페미니즘이라는 명제를 비판하면 '자칭' 페미니스트들에게 조리돌림당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우리는 남성과 여성의 편가르기 게임에서 빠져나와,진짜 타겟을 재확인해야 한다.진보를 자처한다면, 남성과 여성으로 갈려져 박터지게 싸우고 있는 대중을 하나로 묶어내,자본으로 사회를 후리는 재벌, 그 재벌과 이해관계를 유착해온 세력과 싸워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후 국제사회가 러시아 제재를 강화하면서 원자재값이 폭등했다고 한다.이로 인해 노동자,서민들의 생계는 더욱 팍팍해졌지만,국내외 기업들은 폭익을 취했다.전쟁으로 희생당하는 이들은 노동자,서민인데 전쟁으로 이윤을 취하는 이들은 재벌들인 셈이다.
이런데도 민주당은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윤석열 정부의 실정이 뻔히 보이는데도 이재명 당대표의 사법리스크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국민들이 민주당에게 170석에 가까운 의석을 준 것은 노동자,서민의 민생을 책임지고 정치개혁을 완수하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혹여 연대하고 공생해야 될 상대와 싸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한다.이대남 백재민은 우리의 고통이 어디서 나오고 있는지를 확실히 못박아두고 싶다.우리의 적은 우리가 아니다.아무런 힘이 없는 나는 부디 민주당이 정의당을 닮아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코멘트
2내가 군대에 있을 때 부대에 성 평등 강사가 찾아온 적이 있다.
그 강사는 우리가 남성임을 탓했고
우리의 무관심함을 탓했다.
몸소 차별을 겪고있는 우리에게 말이다.
가축마냥 신체검사하며 하찮다는 듯한 대우받고 들어가선 군바리, 군캉스 소리 들어가며 버텼는데 대통령은 페미 선언했다.
누구를 위한 군 생활인가 하는 물음,
그때의 그 회의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글을 읽다가 근거가 조금 궁금해지는 대목이 많네요. '페미니스트들이 여성할당제를 주장한다'는 문장의 근거가 무엇일까요? '여성할당제'는 역차별을 주장하는 남성들에게서 주로 등장한 용어로 기억합니다. 유사한 주장을 반복하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당대표 선거를 치르면서 폐지하겠다고 내세우기도 했죠.(관련기사 링크) 하지만 ‘여성할당제’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건 여러차례 검증됐습니다. 연합뉴스의 팩트체크 기사(링크)를 보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은 ‘여성할당제’ 개념의 제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고, 공기업에서는 여성의 채용이 아닌 채용자의 성별 균형을 맞추기 위한 양성평등 채용목표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기사에 인용된 것처럼 2020년 인사혁신처의 공공부문 균형인사 연차보고서를 보면 2012년부터는 지속해서 남성의 추가합격이 더 많았고, 2019년에는 남성 추가합격자가 여성의 3배 정도 더 많았습니다. 유사한 내용을 다룬 한겨레 기사(링크)도 있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여성할당제를 주장을 하고 있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혹시 이사회, 내각 등 주요 고위직 인사의 성별 비율을 근거로 유리천장을 깨고, 여성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이 글에서 ‘여성할당제’로 쓰였다면 용어의 개념이 조금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여성 할당제라는 용어와 별개로 저는 한국에서 가부장제를 바탕으로 한 성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댓글에서도 인용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성별 임금격차를 다룬 시사인 기사(링크)를 보면 여전히 수많은 기업에서 여성이 임금차별을 겪고 있다는 게 확인됩니다. OECD 통계에서도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2000년부터 2020년까지 꼴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물론 2000년 통계와 2020년 통계를 비교하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OECD 평균에 한참 못미치는 수준입니다) 조선일보의 ‘2022 젠더 리포트’ 기획 기사 중 일부(링크)를 보면 채용 과정에서 여성들이 받는 성차별 사례, 20대 여성의 채용률이 더 높다는 통계가 드러내지 않는 문제 등을 짚은 바 있습니다.(굳이 채용이 아니더라도 교제 중 살인 사건을 다룬 오마이뉴스의 교제살인 시리즈(링크) 등 안전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은 약자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그저 남성혐오일 뿐이다’라는 주장에 동의하기 힘드네요.
한국인사행정학회보 2014년 제13권 제3호에 실린 ‘여성(양성평등)채용목표제의 정책 효과성 평가’(링크)를 보면 1996년 도입된 이 제도의 배경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시기는 국내 정치상황을 포함해 IMF 등 경제위기, 북한 무장공비 침투 등 안보위기 상황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적 불평등 해소 정책을 펼친 것은 특정 사회 문제만을 우선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이야기 하신 것처럼 재벌개혁, 국제위기 대응 등 산적한 과제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이유로 여성인권, 성평등 실현 문제를 후순위로 미룰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함께 공존하고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선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은 배제한다’와 같은 태도가 아니라 ‘명확하고 투명한 근거를 바탕으로 함께 토론한다’는 전제가 있어야겠죠. 더불어민주당, 정의당을 비롯해서 국민의힘 등 원내 정당과 원외 정당까지 근거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 문제를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