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기술은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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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기술과 시민 협력으로 평화를 만듭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술을 활용한 사회 혁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사례가 있습니다. 공적 마스크 배포 과정에서 정부, 기업, 시민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만든 앱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부는 약사들이 입력한 마스크 판매 이력을 모아 마스크 재고 현황을 공공 데이터로 공개했습니다. 네이버, 카카오, KT 등 기업은 현황 데이터를 원활하게 공개할 수 있도록 서버를 제공했고요. 시빅해커(시민개발자)들과 관련 기업들은 마스크 재고 API를 활용해 약국의 마스크 수량을 확인하는 앱을 개발했습니다. 약사들이 손으로 입력한 데이터가 시민의 손에 닿는 과정을 정부와 기업, 시빅해커가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함께 만들어낸 것이죠. 이런 일이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이루어졌을까요? 

중요한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이롭다는 정부의 방침과 재난 극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빅해커들의 열정이 상호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민주주의 혁신의 수단으로 기대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슬로건은 기술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공공재나 공유재로서 다수가 기술을 함께 소유합니다. 누구나 쉽게 사용 가능한 기술을 만듭니다. 기술에 영향을 받는 이들이 기술의 작동 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합니다. 기술을 활용해 더 안전하고 풍요로우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전망에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기술을 함께 소유하고,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며, 기술 활용으로 창출되는 부가 가치가 모두를 위해 쓰이도록 민주적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술의 민주적 구성이 중요한 이유는 기술 활용의 낙관적인 전망의 이면에 있는 부정적인 가능성 때문입니다. 로봇으로 대표되는 생산 수단을 일부가 독점하여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생기는 사회나, 과도한 환경 파괴와 자원 남획으로 인류 및 생태계가 멸종 위기에 처하고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사회도 우리는 예상합니다. 현대문명 기술로 서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지고 이 때문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세계로 퍼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전망할 때 과학 기술을 원인이자 해결책으로 지목하곤 합니다. 대전염병이 인류를 멸망시키거나, 지금보다 퇴보한 사회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은 기술 발달로 인해 초-연결된 사회 때문이라고 분석하죠. 한편 물리적 거리두기에도 사회적 연대를 유지하는 데 화상회의, 온라인 강의 등 초-연결 기술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기술이 원인이자 해결책으로 지목되고, 그 기술의 판단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다면, 우리는 다수가 기술에 접근하고 기술을 만들고 소비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술에 접근하는 순서를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최첨단 기술이 펼쳐질 미래를 상상할 때, 기술의 활용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곤 했습니다. 이제는 기술이 다수를 위해 활용되도록, 기술을 함께 소유하고 기술에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기술의 발전이 민주주의와 함께 지속해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음 원칙들에 대한 지속적인 합의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와 함께 기술이 발전하기 위한 6가지 원칙 

1.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
2. 정부 및 기업 데이터를 모두가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공유
3. 특별한 소수가 아닌 평범한 다수를 위한 플랫폼 서비스 제작
4. 플랫폼에 가치를 더하는 사람들을 플랫폼 운영 및 소유에 참여 유도
5.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술의 작동 원리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요 정책을 시민과 함께 결정
6. 코딩 등의 교육을 넘어 시민 누구나 기술을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

모두를 위한 기술을 기대한다면 이 6가지 원칙에 따른, 모두에 의한, 모두의(가 함께 소유하는) 기술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이때 가능한 선택지는 다양하게 열려있는데요. 선택지를 살펴보려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다음은 유명한 SF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솔라리아'라는 행성을 묘사한 내용입니다.

"대화할 필요가 생기면 화상으로만 이야기를 나눕니다. 고도로 발달한 로봇이 필요한 모든 물품을 생산하고, 시설을 관리하기에 더 이상 인간의 노동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집단을 이루면 갈등이 생겨 내 의지를 꺾거나 상대의 의지를 꺾어야 하는 일이 생기니, 자원과 권한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거리를 두고 행성 전체의 인구도 섬세하게 관리합니다."

코로나19로 물리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서로에게 혐오와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원격 근무를 실험하며 안락함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가는 지금, 우리 사회는 '솔라리아'를 닮아가게 될까요? 그러나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세계에서 '솔라리아'는 인류가 우주로 나가면서 개척한 행성 중 마지막 50번째였고, 나머지 행성들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른 삶의 방식을 만들어갔습니다. 우리의 미래에도 가능한 선택지가 다양하게 열려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잠깐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죠.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당신과 후손들이 살아가게 될 미래를 선택하는 과학과 기술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나요?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장치와 제도, 토론과 논쟁이 충분히 가능한 환경인가요?

앞서 얘기했던 시빅해커들의 모습을 떠올려봅시다.

마스크 재고 앱 개발에 참여한 시민은 중학생부터 대학생, 스타트업 개발자 등 다양했습니다. 다양한 오픈소스와 간편한 기술 인프라에 더해 공공 데이터가 적극적으로 제공되어 누구나 마스크 재고 앱 개발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빅해커들은 자신들의 기술로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 보람을 느꼈고, 정부의 적극적인 데이터 공개와 누구나 참여 가능한 기반 제공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시민의 디지털 역량이 커지고, 공공의 디지털 자원이 보편적으로 접근 가능할 때 사회가 문제를 다루는 방식도 달라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도 커진 것이죠.

<노동 없는 미래>를 쓴 팀 던럽은 기술 발전으로 노동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제시하면서도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만일 소수가 원하는 것들보다는 다수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응하는 정부를 재창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든 걸 포기한 채 새로운 로봇 지배자들을 환영하고,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의 삶을 살 기회가 싹 사라져 버린 세상, 그리고 그들과 우리로 갈라져 대립해야 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불행한 미래가 다가오기 전에 기술을 둘러싼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공공과 사회가 공유하는 기술을 늘려나가야 합니다. 다수를 위한 디지털 기술 기반의 사회 혁신이 작동하도록 다수의, 다수에 의한, 다수를 위한 기술을 만들고 그에 필요한 환경 구축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캠페이너100에 참여하며 2020년 5월 7일에 썼던 글을 다시 끄집어 내봅니다. 인구 소멸과 노동 소멸이 맞물리면서 아시모프가 그린 솔라리아를 닮아가는 세상으로 우린 점점 더 다가서는 것 같습니다. 결국 누구의 손에 기술이 놓이느냐에 따라 그 기술이 누굴 위해 활용될지를 결정할 텐데요. 기술 공공성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더 많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기술 비판을 넘어 공동체의 공공재로 만드는 운동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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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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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함께 기술이 발전하기 위한 6가지 원칙 모두 동의하고, 공감합니다. 원칙에 근거한 모두를 위한 기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생기고 있는 디지털 소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이 글이 2020년에 쓰여졌군요. 마치 어제 쓴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기술의 민주적 구성이 필요하단 말씀에 공감합니다. 지금 생성형 AI에 대한 민주적 구성이 또 절실한 시점이라서 더더욱 공감하게 되네요. 

코로나19라는 이례적 상황이 기술 공공성 의제를 다수가 체감하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너무 억지 긍정에 가까운 생각일까요?) 기술 공공성이 꼭 위기 상황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닌만큼 지난 3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더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네요.

요즘 '기술의 혁신'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그 기술이 어느정도 혁신인지,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기술의 발전이 논의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말 그대로 날아가는건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지금까지 발전과 혁신은 항상 이런 방향이었던 것 같네요. 누구의 손에 있고, 누가 시작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긍정적인 영향이 조금이나마 더 많았다고 생각하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기술의 민주적 구성이 중요한 이유는 기술 활용의 낙관적인 전망의 이면에 있는 부정적인 가능성 때문"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민주주의와 함께 기술이 발전하기 위한 6가지 원칙 
1.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
2. 정부 및 기업 데이터를 모두가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공유
3. 특별한 소수가 아닌 평범한 다수를 위한 플랫폼 서비스 제작
4. 플랫폼에 가치를 더하는 사람들을 플랫폼 운영 및 소유에 참여 유도
5.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술의 작동 원리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요 정책을 시민과 함께 결정
6. 코딩 등의 교육을 넘어 시민 누구나 기술을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

6가지 원칙도 곱씹게 되네요.

기술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술결정론에 대한 비판이 기술 그 자체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어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의 변화의 부정적인 가능성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혁신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기술에 대한 민주적 접근이 병행되어야 필요가 강조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술이 만능키도 아니지만, 민주주의도 만능키는 아닙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함께 공존하면서도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점에서 '기술에 대한 민주주의적 접근'은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