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얼어붙은 탄소중립을 녹이는 녹색일자리

202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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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모두가 기후위기를 알고 있지만, 어느새 탄소중립이 상식이 되었지만

어느새 모두가 기후위기를 알고는 있게 되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탄소중립(Net zero), 지구 온도를 1.5도 내지 2도로 제한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한정된 시간 내에 0 가까이 감축해야 하는 사실도 군데군데 알려져 있지요. “2030년 배출 절반 2050년 탄소중립”이 상식이 되어가는 때입니다. 그런데 말이 나돈지는 벌써 3년이 지나가는데, 아직도 각종 질문을 듣습니다. 탄소중립이 무엇인지, 왜 탄소중립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탄소중립을 이뤄야 달성 가능한지, 누가 어디서 해야 하는지 등등. 이럴 때면 탄소중립은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긴급하게 흘러온 한국의 기후시간표를 살펴볼까요? 2019년 시민사회의 기후위기 비상선언이 시작되고, 2020년 국회와 지자체의 비상선언과 함께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와 그린뉴딜 정책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되고, <2050 탄소중립 녹색성장 위원회(탄중위)가 꾸려져졌지요.. 어렵사리 사회적 논의를 통해 부족하나마 탄소중립이라는 법과 목표를 정립한 것입니다. 이제는 탄소중립의 내용이 나올 차례입니다. 2023년 3월 25일 드디어「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 발표됩니다. 여기에는 탄소중립을 위한 국가전략과 국가기본계획이 담겨있습니다. 턱 봐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사회가 기후위기를 막는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하는 길에는 어려운 질문과 과제들이 넘칠 듯 말 듯 산적해 있습니다. 더군다나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해야 할 중요한 때인데,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습니다. (노건우. 2023. 탄소중립기본법을 읽는 3월)


얼어붙은 성문화의 저주

‘얼어붙은 성문화의 저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말 혹은 개념이 법적으로 성문화되면서 개념의 사회적 의미가 약해지고 퇴색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탄소중립이 명시된 법도 계획도 등장하지만, 우리의 현실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작동하는 것을, 전환을 체감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당장 근 몇 년간 고속도로와 주차장이 지어지는 건 봤어도 자전거도로가 만들어지는 건 못 봤고, 공항과 고속도로 등 토건개발로 지역이 들썩이는 건 봤어도 재생에너지 정책 규모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곳곳에 녹색분칠(Greenwashing)이 난립한다는 비판도 연이어 들려옵니다. 지역으로 내려가볼까요. 지방정부의 많은 계획들에 탄소중립이 등장은 하고 있지만, 온실가스를 감축하거나 기후위기에 적응할 수 있는 녹색 정책들은 도통 찾기가 어렵습니다. 보통 예산이 실리지 않은 정책을 허울만 좋다고 합니다. 해가 지나간 후 예산 결산 내역을 보면 녹색 정책들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탄소중립 계획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일자리 현황을 살피면 됩니다. 일자리를 생각할 수 없는 계획은 공상적인 계획입니다. 대표적으로 소형모둘원전(SMR)과 항공우주산업 계획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상용화될 수 없는 기술에 미래를 걸었을 때, 지금 여기의 사람들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또한 회색일자리를 낳는 계획은 망할 계획입니다. 대표적으로 신공항과 석탄발전소를 들 수 있습니다. 곧 좌초자산으로 사라질 일자리를 낳는 토건 계획은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지속불가능한 계획입니다. 기후위기의 심화와 함께 나날이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탄소중립의 추상적인 목표와 형식적인 내용 가운데에서, 실질적인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누락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얼어붙은 성문화의 저주’에 걸리지 않으려면 개념을 많이 토론하고, 많이 활용하고, 많은 논쟁에 노출시킴으로써, 단순한 법률용어로 고착되지 않고 사회화된 개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조효제. 2022.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사진. 이유진. 2022. 대한민국은 공항 활주로에 침몰할 위기. 민중의소리. : 녹색전환연구소, 2022, 17개 광역지자체 인수위원회 보고서 분석을 바탕으로 표 작성


실전 탄소중립, 생태경제를 위한 녹색일자리

탄소중립이 사회적인 개념으로, 실질성과 실효성을 갖추려면 가야 할 길이 구만리입니다. 탄소중립이 형식적으로 머물지 않도록 사람들의 살림살이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탄소중립을 이제는 말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의 일상으로 옮겨와야 합니다. 여기에는 가치있는 시간과 정성이, 구체적으로는 돈과 사람이 필요합니다. 기후위기를 빚어온 경제에서 기후위기를 막는 경제로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지, 기후를 위한 경제를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교적 익숙한 파고 짓고 부수고 또 짓는 그 개발, 성장, 회색 경제 말고, 재생하고, 회복하고, 돌보고, 살리는 경제가 탄소중립을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탄소중립 계획이 의미가 있으려면, 기후위기를 막는 경제의 밑그림이 그려져야 합니다. 말에서 넘어와 실전 탄소중립입니다. 

우리는 전환경제의 녹색일자리를 모색해야 합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노동이고, 일자리입니다. 1.5도 라이프 스타일(1.5 degree lifestyle)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생명 활동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고민하는 게 일상의 탄소중립 아닐까요. 에너지, 돌봄, 교육, 주거, 이동 등등 삶의 기본이 되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어떻게 생활에 녹여낼지 이야기해야 합니다. (김병권. 2023. 기후를 위한 경제학) 녹색일자리는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저감하는 괜찮은(decent) 일자리로 정의됩니다. 구체적으로는 (1) 기존 산업에서 녹색일자리, (2) 녹색산업에서의 일자리, (3) 환경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일자리로 나누어집니다.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 2019, Green Jobs and a Just Transition for Climate Action in Asia and the Pacific

자전거를 예시로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자전거는 자동차 중심 도시에 비해 더 많은 시민들이 평등하고 (지구와 도시에) 무해하게 다닐 수 있는 교통수단입니다. 자전거는 자전거 도로 및 주차 인프라 구축, 자전거 공방 및 수리센터, 공공자전거 운영 및 관리, 자전거 배달 등 다양한 분야의 일자리를 창출합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2016년 자료에서는 ‘자전거는 저숙련부터 고숙련까지 다양한 계층 대상으로 일자리 창출 가능’하다고 말하고, 국제교통개발정책연구소(ITDP)의 2021년 자료에도 자전거는 자동차 산업 대비 높은 고용 유발 효과를 보인다고 말합니다. 즉 자전거는 자동차에 비교할 때 많은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냅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수십 배가 차이나고요(매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이동 중 탄소배출량 84% 낮고, 자전거가 화석연료 자동차보다 한 번 주행시 탄소배출량 30배 낮음) 비록, 현재 자전거의 지위는 다수 시민들의 교통수단이 아니라 소수의 운동수단이지만요. 우리의 도시에서 차선 하나가 자전거도로로 바뀌는 것을 상상한다면 전환은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그려질지도 모릅니다. (풀씨행동연구소. 2022. 탄소중립과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정책제안)

전환을 위한 움직임은 일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유명한 국제노동조합연맹의  “파괴된 지구에서는 일자리도 없다(No jobs on a dead planet)구호나, 청년들의 기후행동단체 선라이즈무브먼트의 “우리는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일자리를 원한다”의 구호가 대표적입니다. 이 이야기들이 비단 먼 이야기만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나의 일자리가 녹색일자리인지, 어떻게 해야 녹색일자리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청년유니온, 2021. 녹색일자리와 양질의 일자리 사이! 내가 경험한 일자리는 어디쯤 있을까?)

완벽한 한 명의 비건(Vegan)은 없고 부족한 백 명의 비건이 있을 뿐이라는 말처럼, 완벽한 녹색일자리는 없고, 새로운 녹색일자리를 만드는 시도들과, 기존의 일자리를 녹색화하려는 시도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의 일자리 뿐 아니라 옆의 시민들의 일자리를 같이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석탄발전소가 폐쇄되면서 고용불안을 겪는 노동자, 기후위기로 농업환경이 변하며 어려움을 겪는 농민 둥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 연결되는 우리 동료 시민들의 일자리를 같이 생각하는 것의 의미가 소중합니다. 사회를 해체해왔던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서 사회를 보호하려는 노동 운동의 기본 정신도 이와 같습니다. “세계평화는 사회정의에 기초했을 때만 실현될 수 있다”는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이, 기후위기 앞의 극심한 불평등을 목도한 우리에게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노동체제의 중심에는 어떤 가치관, 다시 말하자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과는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담겨 있다.(프리드리히 슈마허. 1979. 굿 워크)"


나가며, 동료 시민들과 전환 만들어가기 

전환 경제의 상을 그리는 책 중에서 <모두를 위한 경제>라는 책이 있습니다. 원제는 The Making of a Democratic Economy로 민주주의 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환을 위한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 누가 그 경제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지, 그들이 어떻게 손수 협력하여 경제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살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탄소중립이든 녹색일자리든 기본 방향은 이 모든 과제의 중심에 시민을 놓고, 시민의 역할을 높이면서 문제에 대응해나가는 시민중심 접근법이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민주주의를 빠뜨리기에 쉬운 구조 같습니다. 탄소중립이라는 말이 어렵고 낯설다면, 그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놓쳤다는 게 됩니다. 말의 생명력은 말을 하는 이들의 관계망에 달려있습니다. 제가 요새 사랑하는 말이 있습니다. ‘동료 시민’이라는 말로, 같이 살아가는 곁의 존재들을 전환의 주체로 모시는 귀한 태도가 엿보이는 말입니다. 말장난이 난무하는 시대에, 얼어붙은 탄소중립을 녹여 녹색전환을 위한 우리의 살림살이를 꾸려가면 어떨까요. 동료 시민들과, 빠띠에서의 파티를 기대합니다.


<참고>

(녹색전환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녹색전환 플랫폼 녹색오리"

노건우. 2023. 오피니언[녹색전환을 한다고요?] 탄소중립기본법을 읽는 3월

조효제. 2022.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창비

이유진. 2022. [민중의소리X녹색전환연구소] 대한민국은 공항 활주로에 침몰할 위기

김병권. 2023. 기후를 위한 경제학. 착한책가게

풀씨행동연구소. 2022. 탄소중립과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정책제안

서울청년유니온. 2021. 녹색일자리와 양질의 일자리 사이! 내가 경험한 일자리는 어디쯤 있을까??. 빠띠믹스.

E. F. 슈마허. 박혜영 역. 2011. 굿 워크. 느린걸음.

마조리 켈리 외. 홍기빈 역. 2021. 모두를 위한 경제.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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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성문화의 저주'가 적절하네요. 제도화의 형식화만큼 무서운게 없습니다. '탄소중립'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기는 쉬운데.. 탄소중립의 성문화를 통해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을 실제로 작동하게 하는 것은 어렵네요. 전자와 후자가 마냥 대립되는 것은 아닐 것 같은데.. 전자에 속하며 후자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탄소중립을 추상적인 상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으로 조명하는 시도가 더! 더! 더! 필요해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 어떻게 발표될지 궁금합니다. 생태경제, 녹색일자리 등 사회 구조 전반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이 포함되어 있길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얼어붙은 성문화라는 말에서 약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도 어느 순간 단어와 개념을 계속 쓰다보니 오히려 저 개인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약해진 것 같아요.

변화된 생태계를 위해서는 그에 맞는 일자리가 필요하지요. 생각해보면 일자리가 혁신을 만든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예시로 자전거를 드셨지만, 녹색생태계에서 우리가 더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상상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

완벽한 한 명의 비건(Vegan)은 없고 부족한 백 명의 비건이 있을 뿐이라는 말처럼, 완벽한 녹색일자리는 없고, 새로운 녹색일자리를 만드는 시도들과, 기존의 일자리를 녹색화하려는 시도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의 일자리 뿐 아니라 옆의 시민들의 일자리를 같이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석탄발전소가 폐쇄되면서 고용불안을 겪는 노동자, 기후위기로 농업환경이 변하며 어려움을 겪는 농민 둥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 연결되는 우리 동료 시민들의 일자리를 같이 생각하는 것의 의미가 소중합니다. 사회를 해체해왔던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서 사회를 보호하려는 노동 운동의 기본 정신도 이와 같습니다. “세계평화는 사회정의에 기초했을 때만 실현될 수 있다”는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이, 기후위기 앞의 극심한 불평등을 목도한 우리에게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이 문단이 무척 인상깊습니다.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실천을 앞세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