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주의 문화]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이번에 있었던 버터나이프 크루 사건과 이후의 과정들을 살펴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운동의 지속가능성은 어디서 오는가”였습니다. 사실 운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그 역사가 꽤 깁니다. 어느 순간 운동가로, 활동가로 살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부터 운동은 어떻게 지속적으로 사회에 변화를 일으켜내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이러한 고민들을 담아 2017년에 석사학위 논문을 쓰게 됐었고, 제가 관찰하고 발견한 것은 협동조합 조직 내 두가지 상반된 조직 문화였습니다. 하나는 가부장제라고 흔히 불리는 온정주의적 문화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러한 온정주의적 문화에 저항하여 형성된 자유주의적 문화입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하면, 이번에 여성가족부가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을 최종 중단하게 된 그 매커니즘이 결국 위에서 설명한 온정주의적 조직 문화와 밀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모두 너무나도 잘 알다시피 정부조직은 까라면 까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고 대체로 인민들에게 시혜적입니다. 정부라는 것은 사실 민주적 국가에서 인민들의 세금으로 인민의 뜻(필요)를 위임받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역사적으로 정부와 시장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정부와 시장이 다수의 인민을 배신했고 소수의 인민만을 위해 작동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냉정하게 보자면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빚은 무한 경쟁의 시대 속 불신과 야만의 문화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언젠가는 좋은날 오겠지, 좋은 사람들, 좋은 뜻은 언젠가 받아들여지겠지라는 최소한의 낙관조차 오만한 생각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배신감, 정의롭지 못하고, 전혀 상식적이지 못한, 그런 일들이 너무나도 쉽게 일어나는 그 시스템과 문화에 대한 절망감과 좌절감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시민사회 운동과 협동조합 운동에 참여하는 에너지와 이유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협동조합 빠띠’의 문화]
저는 개인적으로 2014년에 처음으로 자본력과 노동 착취가 기본값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관계가 기본값인 협동조합 경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충격은 2022년 현재도 협동조합 경제 속에 살아가게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저에게 컸습니다. 삶의 대전환이였습니다.
저의 옛날 얘기는 다음에 더 풀기로 하고요, 다시 돌아와서 솔직히 이번에 '사회적협동조합' '빠띠'를 다시보게됐습니다. 아, 정확히는 제대로 보게되었습니다. 빠띠가 민주주주의적 공론장을 운영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이번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이 중단된 뒤 빠띠가 취한 몇가지 움직임은 빠띠가 단지 사업적인 측면에서만 잘하는 협동조합으로는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버터나이프크루 사건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빠띠가 이 사업을 맡게되었는지 그것이 제일 먼저 궁금했습니다. 찾아보니 빠띠는 2019년과 2020년에 협력사로 버터나이프크루 1,2기의 성과를 함께 빚어낸 적이 있었더라구요. 그때의 좋았던 경험을 기반으로 보다 신중하고도 재밌있게 특히 빠띠의 장점인 공론장을 잘 활용하여 올해 사업을 진행해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장관이 축사까지 진행한 출범식이 열린지 단 3일만에 사업 재검토(이후 최종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건 속에 서로를 격려하며 시작했던 크루들이 그 배신감과 좌절감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사업을 기획한 빠띠 또한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 상황에서 ‘사회적협동조합 빠띠’는 인민의 뜻과 약속으로 세운 절차를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무시하고 사업을 중단한 여성가족부라는 온정주의적 체제의 상징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반문화(counter culture)를 구축하고자 움직였습니다.
2022년, 그리고 향후 앞으로도 더 이상 우리 사회와 함께 갈 수 없는 가치인 온정주의의 그 권위(a.k.a 통제)와 지원을 과감히 포기하고, 이런 상황에서 빠띠가 가장 잘 할수 있고, 잘해왔던 공론장을 통해 이 문제를 공론화 했으며, 선정된 버터나이프 크루팀의 중단없는 활동을 위해 자체 펀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협동조합운동의 야성(野性)]
학부 시절, 동아리하면서 선배들에게 이런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야성(野性)이 부족하다”
제가 배운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보완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체제가 숨기고 제거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조직하여 복원하는 대안적인 공동체 운동입니다. 역사는 인간의 야만성을 수천년간 증명해왔습니다. 우리가 왜 협동조합입니까? 빠띠가 왜 사회적협동조합입니까? 협동조합은 1섹터인 정부도 믿지 못하고 2섹터인 시장도 믿지 못해서 그리고 그 1,2섹터에서 배신당하고 좌절한 사람들이 주저앉아만 있지 않고 자발적으로, 주도적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낸 저항과 대안적 운동의 역사적 산물입니다.
우리들의 협동조합은 어떻습니까? 그 누군가의, 내 이웃과 친구들의 좌절감을 듣고 있습니까? 그 좌절감을 들었다면, 그리고 공감했다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해야합니까?
이번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운동체적인 움직임은 어쩌면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여러 또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우리 협동조합 존재 이유,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자기성찰이 바로 야성의 핵심이라 배웠는데 맞죠 선배님들...? 이미 제가 그렇게 반응하고 있구요 ㅎㅎ 살짝 난데없지만 저는 이 과정에서 ‘협동조합 빠띠’의 운동성에 덕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이러한 반응은 협동조합 운동의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야성의 또 다른 핵심은 '돈쭐내기'라고 배웠습니다. 답답해서 직접 뛰겠다는 사람들에게 포카리 정도는 사줄 수 있잖아요?
○버터나이프 크루의 중단없는 성평등 문화 운동에 연대, 지지, 후원하기 https://secure.donus.org/parti/pay/step1?_ga=2.173218019.1135914756.1654438308-18109579.1634018910
○빠띠 후원계좌 : 국민은행 030301-04-186573 (예금주: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소.돈.완(소소한 돈쭐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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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4오...! 결국 우리 스스로부터 함께하자는 의미이군요!
운동/활동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역시 민주주의는 지갑에서 나오는거 같습니다. 기승전기부, 기승전사회적소비 멋있는 완결이네요.
온정주의와 협동조합으로 보는 버터나이프크루라니! 새로운 접근의 글 잘 읽었습니다.
더하여 저도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에 관심이 있어서 마지막 부분을 특히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기존의 체제에서 소외된 사람의 목소리를 조직한 것이 곧 협동조합이라는 말씀에 매-우 공감해요! 소.돈.완. 서둘러 따라가겠습니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