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개인으로부터 사회로
기후위기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문제라는 인식이 전면화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기후위기를 심화하는 발걸음은 여전히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광범위한 지구적 인식의 확산, 탄소 배출의 실질적인 저지, 그리고 지속가능한 대안 체제 마련이 필요하다. 개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각자가 기후위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하나의 큰 문제이다. 이 글은 기후위기의 극복을 위해 개인들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맑스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로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이 그 자체로 완벽한 의지를 가지는 주체인 것은 아니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태어나기 이전에 형성된 사회구조들(국가, 제도 등)과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들에 의해 복합적으로 규정되고 형성된다는 의미다. 인간은 특정 시기에 특정 지역에서 특정한 문화 속에서 각기 다른 다양한 경험과 만남들 속에서 공통성과 차이들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이다. 개인은 사회적 관계들의 영향을 받아들이며 개인성을 끊임없이 재형성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제한적인 자율의지를 가진다. 생각이 같으면서도 다르게 형성되는 개인들이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에 억압적일 수 있는 사회구조의 작동방식을 함께 사회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함께’ 더 나은 사회구조로의 변형을 위한 실천을 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인식하고 사회적으로 실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어떤면에서 각 개인들의 의사소통의 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대화와 소통 그리고 토론과 논의, 논쟁 등을 바탕으로 하는 결정의 문제, 쟁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체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면 개인의 자율의지가 무시되고, 개인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면 각자 파편화되어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개인과 사회의 행복, 그리고 그것을 위한 개인과 사회의 실천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히고, 연결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위와 같이 인간과 사회의 관계만을 고려하는 견해는 자연, 환경, 생태계를 동시에 다루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우리는 지배적인 세계관에 따라 인간이 자연과 독립되어 존재하며, 자연은 객체로서 인간 주체에 의한 정복의 대상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 혹은 사회의 이익을 위해 벌어지는 과도한 생산은 자연ㆍ환경ㆍ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그리고 기후위기로 인간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때문에 사고의 지평을 더욱 넓힐 필요가 있다.
인간과 사회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자연 또한 분리할 수 없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비롯하여 진화를 거쳐온 자연의 일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간 사회는 ‘특수한’ 자연의 일부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인간=사회=자연’이 동일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삼자는 떼려야 뗄 수 없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구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만큼 (인간에 의해 인식된) 자연은 ‘사회적’이다. 조합과 배치, 구성이 다를 뿐 자연과 같은 물질들로 이루어진 인간과 그러한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 사회는 자연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을 위해 자연을 파괴해 온 것이 자연 그 자체에, 그리고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환경이란 ‘생물을 둘러싸고 밀접한 관계에서 영향을 미치는 자연적ㆍ사회적 조건과 상황’을 의미한다. 따라서 환경을 보전한다는 것은 인간과 인간으로 이루어진 사회 그리고 이와 상호작용하는 자연의 ‘관계’를 보전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생태계를 ‘어느 비유기적 환경 안에 사는 생물들(인간, 동물, 식물 등)과 그 생물들을 제어하는 제반 요인을 포함한 복합체계’라고 한다면, 환경을 보전한다는 것은 ‘관계’을 좀더 중시하는 표현으로 ‘생태의 보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생태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상호작용하며, 기후위기는 그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자연과 인간 모두를 위해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는‘사회적 실천’이 필요하다. ‘사회적 실천’은 무수히 많은 개인들의 실천을 전제로 한다. 개인적 실천들이 모여 사회적 실천을 이루고, 그러한 실천들이 조직의 차원, 그리고 제도의 차원으로 유기적으로 연결 될 때, 기후위기를 실질적으로 극복해낼 가능성이 열린다. 개인의 실천만으로는 공허한 자기 만족이 되기 쉽고, 개인없는 사회적 실천은 사회적 실천의 시도는 권위적인 강요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제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실천의 차원으로 내려와 보고자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천들을 직접 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 하고, 분리수거를 일상화 해야 한다. 친환경 먹거리를 이용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등의 개인인 실천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비건을 지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실천들만으로 거대한 기업이나 국가들에 의해 발생하는 더욱 근본적일지도 모르는 문제들까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윤이 지상목적인 전지구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화와 난개발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후위기를 심화 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수정할 사회적 실천을 필요로 한다. 대중의 기후위기직접행동, 시민사회단체의 환경운동, 시민사회와 정치인들에 의한 환경보호 관련 제도화 등이 사회적 실천의 중요한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개인들의 사회적 인식 및 실천과 연결되지 않으면 형성되기 어렵다. 형성되었더라도 고립되어 힘을 가지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만약 개인적으로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 인식했다면, 개인적인 실천에만 멈출 것이 아니라, 환경단체에 후원하거나 직접 참여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후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을 지지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비관적이더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코멘트
1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