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미국 텍사스에서 라샨 하가드(Rashaan Hoggard)를 만났다. 그는 텍사스의 한 종합병원에서 약사로 근무하고 있다. 유명한 소송사건의 주인공 채리티 사우스게이트(Charity Southgate) *가 하가드의 5대 외증조모이기도 하다. 선조의 역사는 차치하고라도 라샨 그 자신도 미국에서 흑인으로서 겪는 개인적인 체험을 지니고 있다. 그를 통해 준틴스의 의미를 살펴 보았다.
Q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미국의 흑인 역사를 한국에 알리는 데 용기를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 독립기념일이나 대통령 선거일에 대해서는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데, 준틴스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거 같아요. 미국의 준틴스는 무슨 날인가요?
A : 준틴스(Juneteenth)란 노예 해방을 기념하는 날로, 6월 19일(June Nineteenth)을 줄인 말이에요. 브런치(Brunch)처럼 축약해서 부르는 이름이지요.
미국 남북전쟁 중에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선언을 발표했어요. 이 행정명령은 1863년 1월 1일부터 발효되어 남부연합의 모든 노예들에게 자유를 약속했지요. 그러나 해방선언의 이행은 무척 더뎠어요. 특히 남부 노예들은 해방이 선언됐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고, 전쟁이 노예 해방과 연관이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이런 상황에서 노예제도는 미국 각주마다 각기 다른 시기에 끝이 났어요. 남부연합주 가운데 가장 외진 텍사스주는 노예를 해방시킨 마지막 주였어요. 1865년 6월 19일 텍사스에서 노예해방령의 최종 시행 명령이 내려졌어요. 이것은 남부연합에서 노예제도의 종말을 의미했어요. 1년 후 1866년부터 준틴스 기념식이 열렸지요.
Q : 남부연합에서 노예제도의 종말이라면 미국 전역에 해당하는 게 아닌가요?
켄터키와 델라웨어는 노예주였지만 당시 남부연합에 가입하지 않았어요. 노예제도는 1865년 12월까지 이 주들에서 끝나지 않았어요. 때문에 1865년 6월 19일이 노예제도의 명백한 종말은 아니었지만, 미국 전역에서 공유되는 기념일이 되었어요.
Q : 준틴스는 하가드 씨 개인에겐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일까요?
솔직히, 저는 준틴스에 대해 처음 알게 된 때를 기억하지 못해요. 우리 가족이 기념하는 것이 아니었고 심지어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인 2월에도 제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았거든요. 개인적으로 제게 준틴스는 흑인이 해방된 날이란 의미보다 오히려 흑인이 해방됐음에도 오랫동안 노예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부당함을 상기시켜줍니다. 한편, 인종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지만, 그 이후로 흑인들이 얼마나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 왔는지 상기시켜주는 대목이기도 해요.
Q : 제가 알아보기로는 그 날이 공휴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도 있었어요. 오늘날 준틴스가 미국 전역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A : 준틴스는 텍사스의 지역 축제로 시작되었어요. 텍사스 이외의 지역에서 준틴스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어요. 아마 지금도 그럴 테고요. 바이든 대통령이 연방 공휴일로 지정한 지금, 저는 준틴스가 전국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전국적으로 인정은 하지만, 전국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준틴스는 전통적으로 흑인 축제지만, 흑인은 미국 인구의 약 15%에 불과하니까요.
Q : 지금도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또 인종차별을 겪은 개인적 경험이 있다면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 물론 오늘날에도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해요.다만 제 윗 세대가 직면했던 인종차별과는 다른 양상이지요. 부모님 세대에서는 정부가 승인한 인종차별을 감수해야 했어요. 예를 들어, 제 아버지 고향의 음식점은 백인 좌석과 흑인 좌석이 구분돼 있었어요. 어머니 고향 영화관에선 발코니 구역에 흑인이 앉았고 아래 중앙 구역은 백인을 위한 자리였지요.
살면서 제가 인종차별을 당한 건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하지만 노골적이지 않은 인종차별이 많았고, 그 경우 누군가의 행동을 인종차별 탓으로 돌리는 것을 항상 조심해 왔지요. 인종차별 때문일 수도 있는 상황들을 참았지만, 확실하게 인종차별이라 말하기도 어려웠어요.
Q :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A : 경찰이 제 차를 수색하기 위해 무작위로 차를 세운 적이 있어요. 수상해 보인다며 저를 경찰에 신고한 사람도 있고요. 제가 백인 여자친구를 사귀었을 때는 사람들에게 경멸적인 시선을 받기도 했지요. 종업원이 가게에서 저를 따라다니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들이 제 피부색 때문에 생긴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Q : 유감스럽게도 동양인인 제가 보기에는 피부색 말고 다른 이유를 찾기가 어려워 보여요. 하지만 애매해 보여서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분명 있었을 거 같아요. 일일이 화내거나 지적하기도 어려울 듯합니다. 성차별에서도 유사한 부분이 있거든요. 괜한 분란만 일으킬까 봐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요. 아마 그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이런 인종차별을 걷어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왔다고 생각해요. 아쉽게도 한국에는 흑인들의 역사에 대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혹시 미국의 반노예제 운동을 했던 사람 중에 우리가 주목했으면 하는 인물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 미국의 노예제 반대 운동에 참여한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 많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알아야 할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로는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 등이 있어요. 이 세 사람은 모두 흑인으로 스스로 노예제도에서 벗어났고, 다른 사람들도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데 일생을 바쳤어요.
백인 중에는 윌리엄 로이드 게리슨(William Lloyd Garrison)과 해리엇 비처 스토우(Harriet Beecher Stowe)가 노예제 반대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이 백인 작가들은 노예제 폐지론자로서 펜의 힘을 이용해 노예제도라는 사악한 제도에 맞서 싸웠지요.
Q : 모두 중요한 인물이군요. 그 인물들과 저작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준틴스 혹은 인종문제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A : 최근 미국은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기념했어요. 이 날은 퍼레이드, 불꽃놀이, 바비큐 야외파티로 가득 찬 날이지요. 팡파르 때문에, 7월 4일이 모든 시민들에게 자유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잊기 쉬어요.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모든 사람이 신이 주신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어요. 그러나 위선적으로 이 권리들은 수백만 명의 유색인종에게 거부되었어요.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1852년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노예에게 7월 4일은 무엇인가?"라는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표현했어요.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권리가 부정된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 준틴스가 독립기념일로 인정되는 이유예요.
비록 7월 4일과 같은 방식으로 기념되는 날은 결코 아닐지라도, 6월 19일은 여전히 1세기가 넘는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의미 깊은 날이에요.
*채리티 사우스게이트(Charity Southgate) : 그녀는 본디 백인 어머니와 흑인 노예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였다. 미국의 노예신분은 모계를 따랐으므로 신분상 자유인이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노예신분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자신의 신분을 되돌리려 소송을 걸었다. 이는 자식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자유인 신분을 되찾은 채리티는 이후 남편의 신분도 자유인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멘트
2준틴스. 기억해두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새로운 정보 감사합니다.